6. 믿고 있는 모든 것에 의문을 품어라 - 5
“블랙수트와...그녀가 서로 좋아해서 같이 떠나려 했던 게 아닐까요?”
모두의 얼굴에 찬물을 끼얹은 듯 교실이 한순간 조용해졌다. 지금 누가 말한 거야? 서로 눈치를 보다가 티앤 단까오의 의외의 발언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1, 2, 3, 4, 5초 후 교실이 한바탕 웃음바다로 변하였다. 배꼽을 잡고 웃다가 겨우 웃음을 멈춘 실크롱이 수염 자락으로 눈물을 닦으며 꺼억꺼억 기침을 했다. 그리고 조롱하듯 말을 내뱉었다.
“컥컥컥컥, 이런 로맨티스트 같으니라고. 흠흠, 농담도 심하구나. 흠흠,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린 집어치우고. 흠흠, 여기 봐라. (수진이 읽었던 브라잇 동맹사 책을 흔들어대며) 왕비가 자살시도를 했다고 적혀있지 않느냐?”
“함께 떠나려던 계획이 실패해서 절망감에 자살시도를 할 수도 있었겠죠. 제가 좋아하는 로맨스 소설에 많이 나오던데요? 뭐라더라? 딱 맞는 전문용어가 있었는데. 음, 맞아요. '사랑의 도피'를 한 것일 수도 있죠. 그리고 아까 역사책을 적힌 그대로 믿지 말라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러니 자살도 확실치 않을 수 있지 않을까요?”
아이들 중 유일하게 웃지 않은 수진이 시큰둥하게 대답하자 상대방의 표정이 아차 싶더니 혼자 깊은 생각에 잠기었다. 그는 잠시 후 고개를 들고 손에 든 분필을 허공에서 흔들었다. 앞쪽 칠판에 ‘양파’라고 써졌다.
“흠흠, 그래, 만에 하나 그럴 수도 있겠지. 흠흠, 우리가 배운 사실이 다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걸 나 역시 자꾸 까먹는구나. 흠흠. 난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단다. 흠흠, '진실'은 양파와 같아서 계속 껍질을 까도 그 속내를 다 알 수 없는 거라고.
흠흠, 이 시간 이후부터 너희가 믿고 있는 모든 것에 한번 의문을 가져보렴. 흠흠, 그럼 모든 게 이전과 다르게 보일 게야. 흠흠, 새로운 눈이 떠지는 순간이지.
흠흠, 아이고, 시간이 벌써. 흠흠, 그럼 이만, 내일 아침에 또 보자꾸나.”
그는 야구 투수처럼 왼팔을 요란스레 돌려 재빨리 수염을 감더니 부리나케 교실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누가 보면 무척 화장실이 급한 분처럼 보였을 것이다. 정말로 그랬나? 아이들은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돌리기도 하고 체조를 하면서 몸을 풀었다.
“참 괴짜이셔, 괴짜.”
카할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수진을 향해 말했다. 그녀는 잔뜩 기대했던 캠프의 첫 프로그램이 이리 학구적일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내일 또 있다니 벌써부터 실망감에 젖어들었다. 동맹의 역사나 진실, 양파 등등의 세부적 내용은 그녀에게 관심 밖의 따분한 주제일 뿐이었다.
반면 이안은 기분이 좀 이상해졌다. 아까부터 머릿속으로 알지 못할 먹구름이 잔뜩 몰려오더니 폭풍전야의 고요함을 경험하고 있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다만 교실 문을 나서면서 자신의 눈이 이전보다 좀 밝아진 것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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