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공기재단사님의 서재입니다.

제국의 약탈자

웹소설 > 작가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공기재단사
작품등록일 :
2019.01.11 23:16
최근연재일 :
2019.05.29 07:40
연재수 :
129 회
조회수 :
74,113
추천수 :
2,403
글자수 :
765,690

작성
19.05.28 08:20
조회
343
추천
14
글자
14쪽

[외전]제국의 멸망

DUMMY

아에티우스가 아틸라와 훈족부대를 살려 보내주었지만, 아틸라는 전혀 고마워하지 않았다. 그는 이듬해에 다시 병력을 충원해서 이번에는 이탈리아 본토로 쳐들어왔다. 카탈라우눔 전투에서 패배하고 무너진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였다.


아틸라의 군대에는 훈족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야만족, 온갖 기술을 가진 용병, 포로가 된 로마군, 정복한 지역의 속주민까지 다양하게 편성되어 있었다. 훈족 기병에다 로마군의 장점을 흡수한 아틸라의 군대는 무적이었다.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로마군만으로는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아퀼레이아 뿐만 아니라 밀라노와 파비아까지도 훈족에게 약탈당했다.


아에티우스는 얼마 안되는 이탈리아의 병력으로 아틸라를 맞아 싸웠지만, 그의 진로를 방해하는 정도였지 타격을 주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아틸라를 물리치기 위해서 서고트족 프랑크족 등 게르만족을 이탈리아로 불러들이는 것은 더 큰 위험을 가져올 수 있었다. 야만족이 아틸라와 손잡고 로마를 공격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아프리카에 반달족을 끌어들인 것과 같은 실수를 하게 될 수도 있었다.


“그것 보십시오. 그때 아틸라를 끝장냈어야 합니다.”

아비투스의 한숨 섞인 투덜거림에도 아에티우스는 확신에 차서 말했다.

“아틸라는 물러갈 거야. 두고 봐.”

그는 아틸라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나태해지는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틸라가 전에 말하기를, 말에서 내리는 순간 훈족의 생명은 끝나는 거라고 했어.”


아틸라는 밤에 잠을 잘 때 외에는 말에서 내리지 않았다. 훈족이 긴장을 풀고 말에서 내려 편안한 생활을 추구하게 되는 순간, 다른 민족에 대한 훈족의 강점이 사라지는 거라고 여겼다. 아틸라 자신도 검소했지만, 부대원들이 게을러지는 것을 싫어했다. 콘스탄티노플 인근까지 갔다가 땅을 돌려주고 물러난 것도 동로마의 풍족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에 부하들이 물들까봐 경계해서였다.


아에티우스는 꾸준히 협상을 하며 아틸라가 돌아가도록 회유했다. 그는 아틸라가 굳이 이탈리아에 머물거나 황제가 되려고 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틸라는 이미 서로마 황제 못지않은 영토와 힘을 가지고 있었다.


아에티우스의 예상대로 아틸라는 의외로 순순히 로마와의 협상에 응했다. 호노리아와의 결혼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겠지만, 이번에는 지참금만 받고 돌아가겠다며 막대한 돈을 요구했다.


아틸라가 로마까지 진군해오는 것이 아닐까 겁먹었던 로마시민들은 안도하며 그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아틸라는 약탈품과 지참금을 챙겨서 돌아갔다.

아틸라는 다음 해에 또 다른 젊은 아내와 결혼하고, 그날 밤 갑자기 죽었다.


아틸라의 아들들은 서로 싸우지 않았지만, 훈족의 아래에 복종하던 게피다이족과 동고트족이 반란을 일으켜서 독립했다. 아틸라의 아들들은 싸우다가 죽거나 훈족을 이끌고 그들을 피해 멀리 달아났다.


아틸라는 금품과 보상으로 왕국과 자신의 추종자를 만들었지만, 보상이 사라지자 추종자들도 물을 주지 않은 식물처럼 시들어 사라졌다. 훈족 왕국은 아틸라의 죽음과 함께 흔적도 없이 해체되었다.



아틸라가 없어진 것은 로마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아에티우스에게는 악재였다. 지금껏 훈족이 두려워서 아무 말 못하고 있던 원로원과 그의 반대파들은 로마제국이 일시적으로 안정을 찾자 불평하며 들고일어났다.


아에티우스에게는 새로운 외부의 적이 필요했다. 아틸라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가이세리크를 외부의 적으로 만들고, 자신은 황제의 사돈이 되어서 권력을 강화하려 했다.

가이세리크의 아들과 약혼했던 발렌티니아누스3세의 딸 에우독시아 황녀를 파혼시키고, 자신의 아들과 결혼시키려고 했다.


“에우독시아 황녀는 이제 혼기가 되어서 결혼을 미룰 구실이 없습니다. 호노리아 황녀가 아틸라의 침공의 빌미가 되었던 것처럼 가이세리크에게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는 에우독시아 황녀를 결혼시켜야 합니다.”


황제는 가이세리크 뿐만 아니라 아에티우스에게도 딸을 내줄 마음이 없었다.

황제에게는 아들이 없이 딸뿐이어서 황녀와 결혼하는 자가 다음 황제가 되는 것이었다. 황제는 딸을 아에티우스의 아들과 결혼시키고 나면, 아에티우스가 자신을 사고인 듯 암살하고 아들을 황제에 앉힐 거라는 공포에 시달렸다.


아에티우스가 계속 황녀의 결혼을 강요하자, 황제는 어느날 자신을 알현하기 위해서 무장을 하지 않고 있는 아에티우스를 자신의 칼로 찔러서 살해했다.



아에티우스의 죽음에 로마인들 뿐만 아니라 야만족도 슬퍼했다. 그것은 그가 전쟁에서 이긴 후에 적의 숨통 끊지 않고 살아날 길을 열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로마 안의 경쟁자들은 가차 없이 제거했지만, 로마 밖의 적에게는 관대했다. 적을 포용해서 자신이 활용할 카드가 많아지는 편이 게임에서 유리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적이라 해도 말살하기보다는 화친하는 것을 택했다. 야만족이라도 자신의 편이 되면 기꺼이 땅과 돈을 나눠주었다.

로마를 배신하지 않을 자라는 확신이 서면 야만족이라도 거리낌 없이 포용했다. 프랑크족 클로디오 왕의 아들 메로베우스, 수에비족 왕자 리키메르를 자신의 양자로 삼아 로마의 정치체제 안으로 끌어들였다.


반면에 협정을 맺은 동맹이라 해도 평화를 깨뜨리려 하면 야멸차게 응징했다. 서고트족도, 훈족도, 반달족도, 다른 야만족도, 로마를 위협하면 가만두지 않았다.


냉정한 아에티우스에게는 동맹도 충성도 동료도 결혼도 양자도 명예도 황금도, 모든 것이 자신을 지키고 로마제국을 수호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었다.


그는 야만족에 대한 증오심으로 싸운 것이 아니었고, 로마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고귀한 목적을 위해서 싸운 것도 아니었다. 그저 차가운 계산으로 현재의 평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싸웠다.



아에티우스의 사후에 황제가 암살당하고 다른 황제로 바뀌는 등 혼란의 시대가 열렸다. 곳곳의 과도한 세금으로 농민반란이 일어났고, 치안과 행정이 무너져서, 로마인들이 야만족이 다스리는 속주로 안전을 찾아 이주할 정도였다.



아에티우스의 죽음을 누구보다 기뻐한 것은 가이세리크였다. 가이세리크는 바다를 건너 로마로 왔다. 반달족 군대가 오스티아 항에 내려도 무정부상태인 로마군은 아무도 그를 막아서지 않았다.


지도부가 붕괴된 로마를 대표해서 반달족 앞에 나선 사람은 성직자인 레오 주교였다. 그는 가이세리크에게 반항하지 않을 테니 사람들을 해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가이세리크는 교회에 방화하지 않고 저항하지 않는 자는 살려주고 고문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는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불을 지르지는 않았지만, 건물마다 들어가서 눈에 띄는 모든 재물을 약탈했다. 교회에 있던 동상, 금촛대, 은식기 등 귀중품도 예외가 아니었다. 로마인들 스스로의 손으로 도시를 장식한 조각상, 금은장식품, 심지어 문짝과 기와까지 떼어서 남김없이 자신의 배에 운반해서 싣도록 했다.

살해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수천 명의 로마인들을 납치해서 아프리카로 끌고 가서 반달족에게 노예로 나눠주었다.



가이세리크가 돌아간 후에 서로마는 서고트족이 추천한 아비투스를 황제로 세웠지만, 그는 곧 마요리아누스와 리키메르가 장악한 군부에 의해서 폐위되었다.


마요리아누스는 아에티우스 밑에 있던 로마인 장군이었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았다. 황제가 그를 둘째 황녀 플라키디아와 결혼시키려고 했을 정도였다.


아에티우스는 그가 자신의 경쟁상대가 되도록 놔둘 수는 없었다. 그를 갈리아로 발령 내서 멀리 보냈다. 감시를 하기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후대를 위한 포석이었는지, 자신의 양자이고 로마의 동맹인 수에비 왕자 리키메르와 지내도록 했다. 리키메르는 발리아의 외손자로서 서고트족과도 인연이 있었다.


아에티우스가 죽고 아비투스가 자리를 황제로서 자리를 잡지 못하자, 리키메르는 마요리아누스를 황제로 추대했다. 야만족인 자신보다는 로마인인 마요리아누스가 황제가 되기에 적합할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황제가 된 마요리아누스는 로마를 개혁하고 끊어진 속주와의 연결을 회복하려 했다. 속주에게 지금까지 연체된 세금은 받지 않을 테니, 앞으로 제대로 세금을 내라고 설득했다. 덕분에 각지에서 세금이 다시 들어왔다. 마요리아누스는 그 돈으로 배를 잔뜩 만들어서 가이세리크를 정벌하려 했다.


가이세리크는 정면으로 싸우면 승산이 없다고 생각해서 로마군이 배를 만드는 항구에 불화살을 쏘아서 배를 태워버렸다.


세금을 짜내서 만든 배가 허망하게 불타버려 로마의 여론이 나빠지자 리키메르는 마요리아누스를 희생양으로 삼아서 시해하고 다른 자를 황제로 추대했다. 하지만 그 역시 시해하고 동로마에 새로운 황제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아프리카를 정벌하려면 동로마의 돈이 필요했고, 동로마의 도움을 빌리려면 그들의 손으로 서로마 황제를 세우도록 해야 했다.


동로마는 황제를 임명해서 보내고 반달족 정벌을 위한 배와 병사도 보내주었다. 무려 10만명의 군대가 아프리카로 파병되었다. 그런데, 총사령관이 동로마 황후의 남동생인 20대의 경험 없는 애송이였다.


산전수전 다 겪은 늙은 여우 가이세리크가 젊은 총사령관을 거짓말로 속여 넘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는 사자를 보내서 호소했다.

“며칠만 말미를 주십시오. 항복을 할 의사가 있는데, 먼저 족장들과 상의해봐야 합니다. 항구에 정박해서 기다리고 있으면 곧 항복하겠습니다.”


싸우지도 않고 아프리카를 점령할 수 있게 되어 만족한 총사령관이 방심하는 사이에 가이세리크는 로마군 연합 함대에 불을 질러서 절반을 태워버렸다. 총사령관은 가장 먼저 도망쳐서 숨어버렸다.


가이세리크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시칠리아섬까지 진출했다. 싸움다운 싸움도 못해보고 가이세리크의 화공에 두 번이나 당해서 막대한 손해를 보았다. 동로마도 이제는 서로마를 도와주는 것이 밑 빠진 독에 물붓기라고 여겼다.



아에티우스의 후계자들이 서로마를 지배하는 동안, 아틸라의 부하들도 뿔뿔이 흩어져서 서로마로 옮겨와서 활약하기 시작했다.

아틸라가 자신을 암살하려한 동로마에게 협박하는 사신으로 보냈던 그의 비서 오레스테스는 판노니아의 로마인이었다. 그는 아틸라가 죽은 후에 동로마로 돌아와서 일했지만, 아틸라를 위해 일했던 그에 대한 동로마 관료들의 감정이 좋을 리가 없었다. 아틸라에게 딸을 바치고 환심을 샀던 그는 서로마 라벤나 황궁의 관료와 혼인관계를 맺어서 서로마로 옮겨와서 권력의 핵심에 접근해서 기회를 기다렸다.


리키메르가 병사하고 황제도 죽자 동로마에서는 다시 새로운 황제를 임명했다. 새 황제는 골치만 아프고 위험한 서로마에 가기 싫어서 동로마에서 출발하지 않고 미적거렸다. 그러자 오레스테스는 자신의 아들을 서로마 황제로 추대했다.


동로마는 이미 서로마에게 관심을 끊기로 했기에 딱히 반대하지 않았는데, 들고 일어난 것은 서로마 군부였다. 바로 오레스테스를 도와서 아들을 제위에 올리는데 협력했던 오도아케르였다.


오도아케르는 아틸라의 암살제의를 받았던 스키리족 호위대장 에데코의 아들이었다. 그는 아틸라의 비서인 오레스테스와 아틸라의 궁정에서 종종 마주치던 사이였다. 아틸라의 사후에 호위대도 뿔뿔이 흩어졌는데, 오도아케르도 로마로 와서 리키메르 밑에서 일하고 있었다.


오레스테스는 리키메르 사후에 군부를 장악한 그에게 자신을 지지해주면 그가 이끄는 야만족에게 땅을 나눠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약속을 지키지 않자 오도아케르가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온 것이었다.


오도아케르는 오레스테스를 죽이고 황제를 폐하고 더 이상 황제를 세우지 않았다. 그는 황제 대리인이자 이탈리아의 왕이라고 스스로를 칭했다. 야만족인 자신이 황제가 되면 동로마에게 공격의 빌미를 주게 되기 때문이었다.


오도아케르는 북이탈리아의 농장에서 수익의 1/3을 징수해서 자신의 부하들과 야만족에게 주며 이탈리아를 다스렸다. 스틸리코가 제안했지만 통과시키지 못했던 야만족에게 땅의 1/3을 주며 공생하는 법안을 변형한 것이었다.


황제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고, 각 속주가 황제에게 속주세를 보내지 않고 독립하면서 서로마제국은 소멸했다.



이후에도 게르만족의 로마화는 수백 년에 걸쳐서 많은 전쟁을 통해서 천천히 이루어졌다.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배척하고 때로는 편을 갈라 싸우면서 지배자가 바뀌었다.


그 기저에는 공존할 수밖에 없고 그러려면 바뀌어야 한다는 서로의 인식이 있었다. 로마인은 게르만족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게르만족은 로마화하지 않으면 로마인들의 반발에 결국 정상에서 쫓겨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로마인 스틸리코와 서고트족 알라리크는 시대를 앞서 그것을 가장 먼저 깨닫고 실천하려 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사후에 로마를 다스렸던 아에티우스와 리키메르와 오도아케르도, 야만족 왕들도 많던 적던 그들의 정책과 행동을 배우고 답습했다.


로마의 전통과 가치를 계승하려 한 프랑크왕국 서고트왕국 등은 비교적 오래 지속되었다. 훈족과 반달족처럼 로마의 물질만을 탐한 왕국들은 백년도 못되어 사라졌다. 서로마제국은 멸망했지만 그 뒤를 이어 나타난 왕국들은 저마다 로마의 유산을 물려받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제국의 약탈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로마제국지도 19.01.17 2,245 0 -
129 [부록]대체역사 +5 19.05.29 598 14 25쪽
» [외전]제국의 멸망 19.05.28 344 14 14쪽
127 [외전]카탈라우눔 전투 19.05.27 223 12 16쪽
126 [외전]아틸라 +1 19.05.26 243 12 17쪽
125 [외전]가이세리크 +1 19.05.25 213 13 17쪽
124 [외전]테오도릭 19.05.24 244 13 15쪽
123 [외전]보니파키우스 +2 19.05.23 268 16 19쪽
122 [외전]아에티우스 +1 19.05.22 268 10 14쪽
121 [외전]훈 족 +1 19.05.21 409 13 13쪽
120 서고트 왕국 +5 19.05.20 502 26 13쪽
119 아프리카로 +2 19.05.19 360 18 12쪽
118 방랑 19.05.18 301 12 13쪽
117 로마 약탈 +2 19.05.17 335 22 13쪽
116 3차 로마 포위 19.05.16 320 15 12쪽
115 황제 추대 +1 19.05.15 367 17 15쪽
114 오스티아 항구 19.05.14 311 11 12쪽
113 2차 로마 포위 +3 19.05.13 347 15 13쪽
112 권력 암투 19.05.12 335 13 15쪽
111 협상 +1 19.05.11 336 12 14쪽
110 기아 19.05.10 324 13 12쪽
109 1차 로마 포위 +3 19.05.09 337 16 16쪽
108 복수를 위하여 +2 19.05.08 327 16 14쪽
107 충성 +2 19.05.07 325 18 13쪽
106 고뇌 19.05.06 306 12 12쪽
105 숙청 +1 19.05.05 314 12 13쪽
104 올림피우스 19.05.04 297 11 12쪽
103 로마의 명예 +2 19.05.03 322 12 12쪽
102 협약공개 19.05.02 314 12 14쪽
101 제안 +3 19.05.01 339 13 13쪽
100 퇴각 +3 19.04.30 326 10 13쪽
99 비엔느 +2 19.04.29 339 11 13쪽
98 콘스탄티누스의 반란 19.04.28 335 13 13쪽
97 다가오는 위기 19.04.27 315 13 13쪽
96 압박 +2 19.04.26 338 12 12쪽
95 반달족 +1 19.04.25 319 14 12쪽
94 프랑크족 +1 19.04.24 330 14 14쪽
93 마르코미르 19.04.23 326 13 12쪽
92 고디기젤 19.04.22 346 11 12쪽
91 피에솔레 전투 +2 19.04.21 347 12 12쪽
90 라다가이수스 19.04.20 334 12 12쪽
89 노예해방 19.04.19 349 14 12쪽
88 포석 +1 19.04.18 345 13 12쪽
87 재임명 19.04.17 350 13 13쪽
86 동맹 19.04.16 340 15 12쪽
85 개혁 19.04.15 377 16 12쪽
84 휴전 +1 19.04.14 382 21 12쪽
83 은거 19.04.13 385 18 12쪽
82 개선식 +2 19.04.12 440 12 12쪽
81 징병제 개혁 +1 19.04.11 381 15 13쪽
80 베로나 전투 +4 19.04.10 394 16 12쪽
79 싱게리크 19.04.09 363 11 12쪽
78 퇴각협상 +2 19.04.08 383 16 13쪽
77 도주 19.04.07 389 18 13쪽
76 폴렌티아 전투 +1 19.04.06 422 14 12쪽
75 부활절 +1 19.04.05 412 16 14쪽
74 추격 +1 19.04.04 391 20 12쪽
73 호노리우스 +1 19.04.03 432 16 12쪽
72 아스타 성 +1 19.04.02 427 16 14쪽
71 밀라노 +1 19.04.01 419 19 13쪽
70 수에비족 +1 19.03.31 429 21 13쪽
69 알레만니족 19.03.30 401 18 14쪽
68 이탈리아 19.03.29 428 19 13쪽
67 라에티아 +1 19.03.28 439 20 13쪽
66 아퀼레이아 19.03.27 461 16 12쪽
65 연합 +1 19.03.26 457 19 13쪽
64 해임 19.03.25 479 20 13쪽
63 프라비타 +3 19.03.24 497 18 13쪽
62 몰락 19.03.23 438 15 13쪽
61 교회 19.03.22 426 18 13쪽
60 가이나스 19.03.21 440 15 13쪽
59 에우트로피우스의 최후 19.03.20 440 16 12쪽
58 동고트족 19.03.19 475 18 13쪽
57 트리비길트 19.03.18 455 18 12쪽
56 시찰 +1 19.03.17 499 22 13쪽
55 본색 19.03.16 451 16 13쪽
54 픽트 전쟁 +1 19.03.15 483 18 14쪽
53 종교전쟁 19.03.14 449 15 13쪽
52 마스케젤 +1 19.03.13 482 17 12쪽
51 길도의 반란 19.03.12 491 17 14쪽
50 냉전 19.03.11 510 17 15쪽
49 서고트족의 왕 +1 19.03.10 521 18 15쪽
48 출전 19.03.09 484 16 12쪽
47 재판 19.03.08 500 17 14쪽
46 훈련 +1 19.03.07 503 14 13쪽
45 일리리쿰 군사령관 19.03.06 512 20 16쪽
44 에피루스 19.03.05 509 15 13쪽
43 로마의 적 19.03.04 518 18 12쪽
42 코린토스 만 19.03.03 501 15 13쪽
41 탈출 19.03.02 507 17 12쪽
40 19.03.01 509 18 12쪽
39 플로이 19.02.28 523 18 12쪽
38 아르카디아 전투 19.02.27 543 17 12쪽
37 펠로폰네소스 반도 19.02.26 559 20 12쪽
36 아테네 19.02.25 562 23 13쪽
35 아프리카 19.02.24 602 21 12쪽
34 그리스 침공 19.02.23 588 19 12쪽
33 반역죄 19.02.22 607 21 13쪽
32 새로운 동료 19.02.21 613 21 13쪽
31 암살 19.02.20 618 19 14쪽
30 콘스탄티노플 19.02.19 677 22 13쪽
29 회군 19.02.18 685 20 13쪽
28 동로마 황궁 19.02.17 656 20 13쪽
27 패주 19.02.16 659 22 14쪽
26 테르모필라이 19.02.15 680 18 11쪽
25 진군 +1 19.02.14 649 25 12쪽
24 승리 +1 19.02.13 688 23 13쪽
23 약탈 19.02.12 680 24 13쪽
22 돌파 +1 19.02.11 666 22 12쪽
21 결집 19.02.10 731 20 13쪽
20 악연 19.02.09 706 23 13쪽
19 사루스 19.02.08 721 21 11쪽
18 아르카디우스 황제 19.02.07 718 27 12쪽
17 충성 서약 19.02.06 736 25 13쪽
16 루피누스 19.02.05 752 24 13쪽
15 로마군 +3 19.02.04 803 32 13쪽
14 프리기두스 전투 19.02.03 823 28 13쪽
13 희생 19.02.02 783 28 13쪽
12 작전계획 19.02.01 839 26 14쪽
11 출정 19.01.31 864 27 13쪽
10 알라리크 19.01.30 877 22 13쪽
9 서고트족 +2 19.01.29 912 27 12쪽
8 아말리 가문 19.01.28 932 26 12쪽
7 스틸리코 19.01.27 993 24 12쪽
6 테오도시우스 황제 +1 19.01.26 1,126 25 12쪽
5 원로원 +1 19.01.25 1,166 27 12쪽
4 발티 가문 +1 19.01.24 1,502 29 14쪽
3 황제 시해 19.01.23 2,146 41 12쪽
2 대립 +2 19.01.22 3,230 67 16쪽
1 바스타르네이 전투 +3 19.01.21 6,118 71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