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가이나스는 동고트족이 자신이 믿는 아리우스파 기독교를 믿도록 장려할 계획을 세웠다. 동고트족 병사들에게 종교를 바꾸고 일요일에는 교회에 오도록 독려했다.
“왜 기독교를 믿어야 하나요?”
“일요일에 교회에 가서 뭘 하는데요?”
“모처럼 하루 쉬는데 하필 그날 가야 합니까?”
동고트족은 굳이 종교를 바꿔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고, 휴일에 교회에 오려고도 하지 않았다.
가이나스는 그들을 어떻게든 교회로 오도록 만들기 위해서 강제할 방법을 고민했다.
“싫어도 오게 만드는 수밖에.”
그는 수천 명의 동고트족에게 명령을 내려서 강제로 일요일에 교회에 오도록 소집했다. 그러려면 많은 동고트족을 수용할 수 있는 큰 교회가 필요했다.
가이나스는 콘스탄티노플 주위에서 가장 큰 교회를 점찍었다. 동고트족 병사들에게 의무적으로 오도록 명령을 내려서 설교를 듣게 만들려는 계획이었다. 그렇게 설교를 매주 듣다보면 저절로 기독교로 개종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문제는 콘스탄티노플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교회는 가톨릭 교회였다. 그는 그 교회를 아리우스파 교회로 바꿔서 동고트족과 자신이 이용하는 교회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가이나스의 갑작스러운 요구에 대신들이 입을 벌리고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왜 꼭 그 교회여야 합니까? 새로 교회를 지어서 사용하면 안 됩니까?”
한 가톨릭교도 대신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새로 지을 때까지 어느 세월에 기다리란 말이오? 지금 당장 교회가 필요하오.”
가이나스는 한시가 급했다. 동고트족이 계속 사고를 치고 다녀서 골치가 아팠다. 하루빨리 교회에 그들을 집어넣고 살인을 하지 마라 도둑질하지 마라는 설교를 듣게 만들어야 했다.
가톨릭 교도들은 가이나스의 요구를 완강히 거부했다. 대주교 크리소스토무스도 나서서 가이나스에게 항의했다.
“가톨릭 교회인데 아리우스파 교회로 바꾸라는 것은 말도 안되는 요구입니다. 아리우스파는 이단입니다.”
가이나스는 화를 벌컥 냈다.
“내가 믿는 아리우스파가 이단이라니, 아리우스파를 이단으로 지정한 것은 불공정한 처사요.”
가이나스는 모든 일들이 자신의 뜻대로 너무나 쉽게 풀려나가자 점점 정상적인 판단력을 잃고 권력에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무시하고 종교의 영역까지 자신의 권력으로 강제하려고 들었다.
“이전에 발렌스 황제도 그대들의 부모세대도 아리우스파를 믿었소. 아리우스 파를 이단으로 지정한 것을 철회하시오.”
종교까지 간섭하는 가이나스의 요구에 대주교와 가톨릭 교도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이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자신들이 극도로 배격하는 이단을 정통으로 인정하라니 절대 인정할 수 없었다. 가장 민감한 종교문제를 건드리자, 로마시민의 분노가 폭발하고 말았다.
가뜩이나 야만족과 야합한 가이나스에 대한 불만이 부글부글 수면아래에서 끓고 있었는데, 그가 가톨릭 교회를 힘으로 빼앗으려고 하자 가톨릭 교도들이 모두 다 한꺼번에 들고 일어났다.
가이나스가 동고트족과 내통을 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다. 증거가 없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모두가 그렇게 믿고 있었다.
동로마군의 가톨릭교도 병사와 로마인 장교도 차츰 가이나스에게서 마음이 떠났다. 그들은 여전히 가이나스를 따랐지만, 그가 동고트족 편으로 돌아섰다는 것을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었다.
스틸리코는 시끄러운 동로마의 사정을 그가 연락을 주고받는 동로마 장교로부터 듣고 있었다.
‘가이나스가 기어이 화를 자초하는구나.’
스틸리코는 그가 곧 스스로 무너져 내릴 것을 예감했다. 가톨릭 교도의 심기를 거스른 것은 그의 치명적 실수였다.
“원로원과 시민들의 마음은 돌아섰습니다. 모두 가이나스가 물러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동고트족과 군대를 가이나스가 장악하고 있어서 방법이 없습니다.”
동로마 상황이 걱정되어서 조언을 구하기 위해 스틸리코를 찾아온 동로마 장교는 그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동고트족이 콘스탄티노플 시내를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동로마의 수도에 믿을 수 없는 야만족이 들어온 것은 묵과할 수 없는 큰일이었다. 그들이 무장을 하고 황궁으로 쳐들어가기라도 하면 황제의 목숨도 위험했다. 그런데도 황제는 아무런 손을 쓰지 못하고 두려움에 떨면서 가이나스가 하자는 대로 휘둘리고 있었다.
스틸리코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발탁하고 승진시킨 가이나스를 자신의 손으로 파멸시켜야 하는 순간이 올 줄 몰랐다. 애초에 그를 동로마로 보내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가이나스가 서고트족을 분열시켜서 알라리크를 견제해주기를 기대하고 보냈는데, 반대로 알라리크가 그를 포섭해버릴 줄이야.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가이나스, 동로마군, 동고트족, 셋을 모두 떨어뜨려 놓고 각개격파 해.”
동로마 장교에게 전략을 일러주었다.
“셋을 어떻게 각개격파합니까?”
“일단 셋을 각자 다른 장소에 떨어뜨려 놔. 동고트족이 콘스탄티노플에 있고, 로마군은 콘스탄티노플 인근 숙영지에 있으니, 가이나스를 콘스탄티노플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도록 만들어.”
스틸리코는 좁고 긴 케르소네스 반도에 가이나스를 유인하고 나오지 못하게 입구를 막으라고 했다.
“그다음에는 어떻게 합니까?”
“로마군은 야만족도 있지만 가톨릭 교도가 많으니 황제의 명령을 따를 거야. 그러니 동고트족을 우선적으로 처리해.”
“어떻게 말입니까?”
“동고트족이 무장을 하지 않고 있을 때를 노려서 공격해.”
“그러면 가이나스가 보복을 할 텐데요?”
“그러니까 가이나스가 케르소네스에 간 후에 해야지. 가이나스에게 소식이 들어가기 전에 가이나스를 해임하고 신임 사령관을 임명해서 로마군을 지휘하도록 하면 돼.”
가이나스를 동로마군단과 콘스탄티노플에서 떨어뜨려놓고, 동고트족을 콘스탄티노플에서 제거하는 것이다. 가이나스에게 소식이 들어갔을 때 쯤에는 이미 새로 임명된 사령관이 군단을 장악하고 케르소네스 반도의 입구를 막고 있을 것이다.
“새로운 사령관 누구 말입니까?”
스틸리코는 그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적임자를 말해주었다.
스틸리코의 작전을 들은 동로마 장교는 동로마로 돌아갔다. 그는 가이나스에게 죽을 뻔 한 원로원 의원 아우렐리아누스를 찾아갔다.
“가이나스를 처치할 방법이 있습니다.”
그와 뜻을 모은 아우렐리아누스는 황제와 황후를 찾아가서 아룄다.
“야만족이 언제 황궁으로 쳐들어올지 모릅니다. 가이나스는 가톨릭 교회를 빼앗아 이단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저들을 콘스탄티노플에서 몰아내야 합니다.”
가톨릭 교도인 황제와 황후도 가장 큰 가톨릭 교회를 이단에게 빼앗기자 마음이 상해 있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콘스탄티노플에 돌아다니는 동고트족이었다. 그들은 언제든 가이나스가 명령만 내리면 거리낌 없이 황궁 담을 넘어들어와서 그들을 시해하려 들 것이다. 그들의 목숨은 바람 앞의 촛불과 같은 신세였다.
그들은 비밀리에 가이나스를 제거하기 위해서 원로원 의원들을 규합했다. 가이나스를 해임하고 공공의 적으로 선포하기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
원로원이 하나가 되어서 가톨릭교도인 로마군의 장교들을 하나하나 포섭하고 설득하도록 가이나스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동고트족의 편을 들고 가톨릭 교회를 빼앗은 가이나스는 동로마군의 가톨릭 교도로부터도 신뢰를 잃은 상태였다.
아우렐리아누스가 가이나스를 찾아왔다. 그는 자신이 가진 케르소네스에 있는 별장을 가이나스에게 증여하겠다고 했다.
“동고트족과 협상을 해서 제 목숨을 구명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감사의 표시로 장군의 지위에 어울리는 별장으로 골라놓았으니 받아주십시오. 마음에 드실 겁니다.”
가이나스를 콘스탄티노플로부터 멀리 떨어뜨려 놓으려는 속셈이었다. 가이나스는 의심 없이 그의 별장을 받았다.
“뭘 그 정도를 가지고. 아무튼 감사히 받겠소.”
가이나스는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도 모르고 흡족해했다.
“별장 바로 앞에 바다가 있어서 무척 아름답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일하셨으니 쉬다 오십시오.”
아우렐리아누스는 웃는 얼굴로 거듭 그에게 감사하며 사라졌다.
가이나스는 동고트족으로 북적거리는 복잡한 콘스탄티노플을 떠나서 한적한 케르소네스 바닷가의 별장으로 갔다. 우아한 흰 대리석 건물이 햇빛에 반짝이며 그를 기다렸다. 상쾌한 바람이 불며 하늘의 구름을 양떼처럼 몰고 지나갔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잎사귀들이 그를 칭송하듯이 바람에 흔들리며 박수를 쳤다. 꽃이 한가득 심어진 정원에는 나비가 날아다녔다.
“그래. 이런 게 사는 거지.”
가이나스는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기지개를 켜며 중얼거렸다. 머리에 깍지를 끼고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는 바닷가 풍경을 바라보며 긴 의자에 누웠다.
황제도 그의 눈치를 보는데 굳이 황제가 되지 않아도 좋았다. 사람들의 존경과 두려움을 받으며 군림하는 것 자체가 좋았다. 가난한 서고트족 소년이었던 자신이 마을을 떠나 로마군에 들어갈 때만 해도 로마인들을 호령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동안의 고생과 겪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갔다.
그는 눈을 감고 꽃향기를 맡으며 낮잠을 청했다. 번잡한 일을 잊고 마음편한 휴가를 즐겼다. 이 행복이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 같았다.
준비는 끝났다. 가이나스는 콘스탄티노플로부터 한참 떨어진 별장에 있었고, 동로마군단은 콘스탄티노플 밖에서 황제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콘스탄티노플 시내에는 동고트족 병사들만 남아 있었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동고트족은 가이나스의 명령대로 교회에 가기 위해서 콘스탄티노플을 나가려고 성문 앞에 길게 줄을 섰다. 그들의 앞에 한 거지 여인이 나타났다. 그녀는 큰 소리로 기도를 하며 야만족을 비난했다.
“이건 또 뭐야?”
동고트족은 그리스어는 몰랐지만, 그녀가 자신들을 비난하고 있다는 것은 느껴졌다.
“조용히 안 해?”
그들이 거지 여인을 둘러싸고 위협하자, 로마인들이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서 몰려들었다.
“약한 여자에게 무슨 짓이오?”
성문 앞에서 사태를 지켜보고 있던 아우렐리아누스는 차갑게 명령했다.
“성문을 닫아.”
야만족이 빠져나가거나 가이나스를 따르는 로마군이 들어오지 못하게 성벽과 성문을 차단했다.
동시에 가톨릭 기독교도들이 소리치며 야만족들을 습격했다.
“야만족을 죽여라!”
그들은 소리치며 야만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칼을 휘둘렀다. 반년 동안 동고트족에게 학살당하고 약탈당한 로마인들의 증오심이 폭발했다. 가톨릭교도 뿐 아니라 전 로마 시민들이 합세했다.
야만족들은 체격도 옷차림도 행동거지도 달라서 쉽게 눈에 띄었다. 동고트족은 로마인들보다 키도 크고 머리카락 색깔도 노랗고, 눈 색깔도 푸르렀다.
동고트족은 교회 예배에 가기 위해서 나온 것이라 무기를 소지한 자가 없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로마인들은 무기도 없고 살려달라고 비는 야만족도 모조리 학살했다.
살아남은 야만족은 교회로 도망쳤다. 가톨릭 교도들이 교회에 숨은 사람은 끌어내어 죽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무기도 지니지 않았으니 붙잡아서 노예로 만들 수도 있었지만, 아우렐리아누스는 그들을 살려둬서 화근을 남겨놓을 마음이 없었다. 다른 로마인들도 야만족에게 그동안 당한 복수를 하려는 마음뿐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교회 안에서 난투극을 벌일 수는 없지.”
“그럼 교회를 통째로 불태우면 어떨까요?”
“교회를 불태우는 것도 신성모독이야.”
아우렐리아누스는 결국 방법을 찾아냈다. 그는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촛불에 불이 붙어서 교회에 불이 나는 경우는 종종 있지.”
교회에 직접 불을 지르는 대신 불이 붙은 나무토막을 교회의 지붕을 뜯고 그 안으로 던져 넣도록 했다. 교회 안은 금새 연기로 자욱해졌다. 야만족들은 연기에 질식해서 숨졌다.
7천명이나 되는 야만족이 하루 만에 콘스탄티노플에서 살해되거나 화재로 숨졌다. 야만족은 일순간에 깨끗이 사라졌다.
“동고트족을 처리했습니다. 이제 가이나스의 차례입니다.”
동시에 원로원은 가이나스의 직위를 박탈하고 공공의 적으로 선포했다. 동로마 총사령관으로 로마군단과 야만족부대를 거느렸던 가이나스는 졸지에 모든 것을 잃고 반역자가 되어 쫒기는 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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