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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24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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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훈 – 핵가족 (1)

DUMMY

메가톤 자경단 사람들도 사이보그화는 상당히 많이 진행한 편이었다. 형제단도 사이보그화는 많이 했지만, 그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덜 기계적으로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굳이 현준을 비교해보면 그는 형제단에 가까운 느낌이었지, 자경단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였다.


당장 여기 있는 사람들의 특징이라면 최대한 사람과 유사하게 생겼다는 것. 누구는 젊은 모습인데도 나이가 70에 육박하기도 했다.


요즘 사람들은 크롬으로 도배하거나 기계적인 모습으로 사이보그화를 하는데, 자경단 사람들은 멀리서 보면 평범한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모두가 사이보그화한 건 아니었다. 특히 요즘 시대에 보기 힘들 정도로 주름이 가득하거나, 제대로 움직이기 힘들어하는 노인도 보였다.


그럼에도 정정한 모습을 보여 뭔가 신기한 느낌도 들었다. 실제로 저런 노인을 보는 경우는 흔치 않았으니까.


"이야, 엄청 어린 녀석이네? 요즘 이런 어린 친구가 갱단에 다니는 걸 보면 마음이 아프단 말이지."


웬 노인 한 명이 우리에게 다가와 이야기를 나누더니, 이내 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내게 손을 내밀며 말한다.


"강병태. 만나서 반가우이. 그냥 병태 할아버지라고 부르면 돼."


"김영훈이라고 해요."


"영훈, 정말 좋은 이름이로구나. 혹시 한자는 어떻게 되는지 아니?"


'이거 당연히 알아야지.'

"아뇨, 저도 잘 몰라서..."


'뭐, 인마?! 그걸 모르면 어떻게 해? 부모님이 어렸을 때 친절히 알려준 이름인데!'


그야 나는 그 당시 기억이 거의 없다시피 하니까. 그리고 요즘 누가 한자로 이름을 쓴다고.


당장 기업 사람들 이름 좀만 보면 김제임스, 박제임스 같은 이름이 널렸다. 그 외에도 그냥 한자 없이 이름으로 짓는 사람도 많고.


그래서 난 지금까지 내 이름에 뜻이 딱히 없는 줄 알았다. 병태 할아버지는 내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흠, 고거 참 아쉽구먼. 나중에 자기 이름이 어떤 한자인지 알아두는 것도 좋아.

이름으로 사주 같은 걸 볼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부모님이 어떤 이유로 이런 이름을 남겨준 건지 알아볼 좋은 기회거든."


병태 할아버지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관심을 갖는 듯 보인다. 얼굴은 주름이 많았지만, 몸은 제법 우람한 모습이었다.


"네, 고마워요. 나중에 한 번 찾아볼게요."


'내가 알려줄까?'


영훈은 그래도 자기가 아는 이야기가 나와서인지 신나게 말한다. 하지만 지금 찾아볼 생각이 없어서 일단 나중으로 미뤘다.


근데 난 사주 같은 거 안 믿는데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겠지. 다시 자리로 돌아가자 보스와 정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안하지만 우리도 그렇게 넉넉한 사정은 아니라서 말이지."

"내가 듣기로는 구역도 넓힌 거 같던데. 사실상 양안구 전체를 집어삼켰던데."

"그래, 하지만 갱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 그래서 지금 그걸 정리하는 것만 해도 할 일이 많다고.

그런데 너희까지 돌보라니... 일단 며칠은 묵게 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우리도 힘들어. 떠날 때가 되면 알려주도록 하지."


보스는 마음에 안 든다는 눈치를 하고는 일단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리고 정환이 떠나자 그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노인네들. 돕기 싫다고 핑계 대기는... 봐라, 영훈. 저게 노인네들의 진짜 모습이다. 그저 자기 안위만 걱정하고, 남들은 신경 쓰지 않는 그런 모습."


"일단 다른 녀석들에게 모두 쉬라고 했어요. 여기 보스 방 키요."


론도는 보스에게 키를 건네주며 말했고, 보스는 키를 받고 건물 쪽으로 향했다. 이곳으로 오는 동안 워낙 많은 일이 벌어져서인지 잠이 쉽게 오진 않았다.


어차피 지금은 자유시간이었다. 메가톤 자경단에 대해 알아본다고 생각하며 주위를 좀 더 돌아다녔다.


그리고 참 많은 광경을 구경하게 되었다. 그늘에서 홀로그램 장기를 두는 두 사람이 있었고, 그 주위에 온갖 훈수를 두는 사람들도 있었다.


벤치에 앉아 선풍기를 들며 조용히 앉아있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큰 개와 함께 산책하는 사람도 있었다.


확실한 건 양안구는 그 어떤 곳보다 노인의 비율이 높았다. 자경단이 노인들로 이뤄졌다는 게 빈말이 아니었던 거 같다.


"어이, 거기."


그때, 한 노인이 멀찍이서 날 불렀다. 그는 내게 손을 까딱이며 오라고 명령했고, 나는 마지못해 그쪽으로 걸어갔다.


"부르면 째깍째깍 와야지 뭐 그리 빈둥거리며 와?"


"왔으면 된 거지, 정 씨."


아까 인사를 나눴던 병태 할아버지와 정 씨라고 불리는 사람이 공원 벤치에 앉아 쉬고 있었다. 정 씨 할아버지는 병태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고등학생이지?"


"네."


"어이구, 벌써 어른 다 됐네. 서울에서 무탈하게 자란 친구들 보면 참 대견해."


"떼잉, 나 때는 말이야, 20살은 넘어야 성인 취급은 받았다고. 사실 20살 넘어도 애새끼 취급받기도 했지.

그런데 요즘은 뭐야? 그 빌어먹을 반전자화 강제 법안 때문에 개나 소나 지식을 쌓는다고.

노인네들은 반전자화하는 것조차 버거운데, 애새끼가 우리보다 더 나은 취급을 받는 게 말이 돼?"


"그래, 신기하지. 영훈, 너는 모르겠지만 옛날에는 정 씨가 말한 대로 19살은 넘어야 성인 취급을 해줬단다."


예전에 역사책으로 들은 적 있었던 거 같다. 지금처럼 전자화가 활발해지기 전에는 20살 가까이 되어야 성인 취급을 받았다고.


"요즘은 고등학생만 들어서면 성인 취급한다며? 에잉, 그래서 요즘 것들이 문제야. 17살만 되면 어른이 됐다면서 유흥업소에 가거나, 담배나 푹푹 피워대기만 하고."


"하하, 수백 년 전 조선 시대로 돌아간 느낌이지 않나?"


"옘병, 그때랑 지금이랑 같나? 그때는 수명도 짧고 배울 게 많지 않았으니까 그런 거고. 너, 영훈이라고 했나? 넌 지금 이게 괜찮다고 생각해?"


갑자기 토론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나는 그들 앞에 서서 우물쭈물하며 쉽게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애초에 이런 거는 그냥 당연하다고 생각해왔고, 지금처럼 딱히 생각할 가치도 없다고 느꼈었다. 그런데 이런 데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 있다니.


"으휴, 아는 게 없구만? 전자화는 대체 왜 했냐? 칩 박고 남들보다 더 대단한 사람 되지 그랬어?"


"으음, 저는 전자화하지 않았거든요."


"응? 그럼 뭐여, 반반이여? 요즘 애들은 다 전자화하지 않던가?"


"아유, 왜 그래, 정 씨. 보아하니 사이버 학교 다닌 거 같은데 맞지?"


그 말을 듣고 병태 할아버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병태 할아버지는 미소를 짓고는 말을 이었다.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다 안타까워서 그래. 요즘은 칩으로 지식을 쌓고, 세상 모든 걸 배울 수 있으니까.

프로그래밍을 하고 싶으면 비싼 프로그래밍 교육 칩을 넣거나, 기계를 수리하고 싶으면 해당 기계 수리 칩을 넣고 수리하면 되니까.

하지만 정신적인 성숙은 칩 같은 거로 이루어지지 않아. 어느 것이 옳은지 그른지는 직접 경험하고 배워야 한다고."


"암, 그렇고말고."


"요즘은 배울 게 너무나도 많아. 그런데 그 배움은 점점 쉬워지고, 그만큼 가치도 떨어지니까 옛날을 향해 점점 회귀하는 거지. 결국 아는 만큼 보이는 게야."


"그런데 빌어먹을 기업 정부 놈들은 단순히 지식만 쌓으면 다 된다면서 성인 기준도 확 낮추는 거지.

그리고 그게 사실은 기업 놈들이 돈 벌려고 하는 짓거리야. 어차피 전자화하면 그만큼 고객이 생기는 거니까.

전자화 가능 나이를 낮춘다면 그만큼 사람도 늘어날 테니 하는 짓인 거지. 에혀, 이래서 최한철 대통령 때가 최고로 좋았다니까."


정 씨 할아버지는 이내 옆 벤치에 툭툭 손을 친다. 그리고 나는 그의 행동에 따라 옆자리에 앉았다.


"너 어렸을 때 기억나냐?"


"아뇨, 잘 기억 안 나요."


"인간이 미성숙한 시기에는 주변 환경을 보고 배우려고 하지. 예를 들어 보면 어른에게 반말이나 찍찍하는 네 살배기 어린아이가 있다고 치자.

그 아이는 존댓말을 할 줄 몰라서 계속 반말을 하는 거지. 그때, 어른이 반대로 그 아이에게 존댓말을 계속하는 거야. 그럼 아이는 어떻게 할 거 같아?"


"자기가 배운 대로 계속 반말하게 될까요?"


"아니, 어린아이는 결국 어른에게 존댓말을 하게 돼. 그건 말이지, 아이가 자기를 배려하거나 존대하는 걸로 판단해서가 아니야.

그렇다고 어른을 존대하는 게 옳다고 분별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아까도 말했다시피 4살짜리 꼬마 아이가 그런 걸 알기는 어려우니까.

이유는 단순해. 그저 자기에게 존댓말을 하니까 나도 존댓말을 해야겠구나, 하고 그게 맞는다고 생각해서야.

왜냐하면 주변 환경이 자기가 하는 것과 다르다고 생각하면 그건 잘못된 거라고 생각해 버리거든.

그래서 조기 교육이 중요한 거지. 잘못된 길로 이끌지 않기 위해서 어렸을 때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려줄 어른이 필요한 거야.

하지만 요즘은 아무도 그렇게 안 해. 그런 건 그냥 귀찮다고 건너뛰고, 칩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고 해.

어차피 멍청하게 키워도 칩 넣어주면 애가 다 알아차려 버리니까. 설령 아이가 존댓말을 칩으로 배워도 그게 왜 중요한지도 모른 채, 결국 누군가 존대하는 법도 무시하게 되는 거지."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야기는 충분히 재밌었고, 납득이 안 되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다만 내가 이런 토론을 딱히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괜히 여기서 나갔다간 혼날 거 같아서 나도 모르게 그들 말에 따랐다.


"너 어쩌다가 갱단에 붙게 된 거냐? 지금처럼 어린 나이면 할 것도 많을 텐데."


"왜, 정 씨, 그거 있잖아, 그거. 쉐어캣인가 뭔가 하는 거."


"설마..."


정 씨 할아버지는 이내 날 물끄러미 바라봤고, 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정 씨 할아버지는 살짝 분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예끼, 이놈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갱단이 뭐냐, 갱단이. 죽을 뻔한 적도 한둘이 아닐 텐데..."


"다 사정이 있겠지, 정 씨. 그렇지, 영훈?"


"네..."


갱단에 처음 입단했을 때 어땠더라. 레벨의 도움을 받고, 그를 따라 도착한 게 바로 이 천리안 갱단이었다.


입단 테스트로 넷의 원혼도 해치우고, 저택도 잠입해보고, 갱 전쟁도 경험했다. 고작 3개월도 안 돼서 이 모든 걸 경험해본 셈이다.


"이런 녀석 보면 요즘 세상이 너무 슬퍼. 우리야 죽어도 그냥 늙은이가 죽은 거지만, 이런 어린 친구가 죽으면 마음이 너무 아파."


"안타까운 현실이지. 늙은이들이 먼저 가고, 젊은이들이 한창 꿈꿔 나가야 할 시기이거늘.

근데 지금은 오히려 나 같은 늙은이들이 더 오래 살고, 젊은이들은 자기 목숨 소중한 줄도 모르고 허무하게 버리곤 한다니까."


두 사람은 날 동정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저런 눈빛이 싫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지금 이런 취급을 받고 싶진 않았다.


난 내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고. 그런데 그게 마치 잘못됐다는 듯이 말하면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인생이 부정당하는 것 같잖아.


'그렇지 않아. 내가 잘 알고 있잖아. 너도 너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는걸. 저 노인네들은 그냥 널 알기만 할 뿐, 직접 경험한 게 아니라서 말하는 거라고.

그래도 다른 사람 입장으로서 네 인생을 바라보면 만만찮게 기구한 인생이긴 하지. 그래도 후회 안 하면 되는 거 아니겠어?'


영훈은 내 마음을 읽었는지 내게 나지막하게 말해준다. 녀석도 제법 위로할 줄도 알고, 나름 든든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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