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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09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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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훈 – 가족이 되는 방법 (6)

DUMMY

'이러다가 네 PTSD 더 도지는 거 아니냐.'


영훈은 걱정스럽다는 듯이 내게 말하지만, 지금 말했다간 옆에 있는 정욱이 또 뭐라고 할 테니까 그저 조용히 있었다.


그러나 영훈은 이런 내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혼자서 휘파람을 불고, 급기야 자기만 아는 이야기를 지껄이기 시작한다.


'히힛, 더 떠들어야지. 네가 말을 안 하면 내가 너무 심심하단 말이야.

내가 옛날부터 존재 자체가 넷에서는 비정상적이었는지 날 찾아오는 사람들이 엄청 많았거든. 물론 그때는 네가 게임이나 딴짓하던 때라 모르겠지만.

근데 그게 좀 대박이 난 거야. 성경 구절에서 몇 개만 바꿨는데도 그걸 믿는 사람이 있질 않나, 점점 규모가 커지더라고.

물론 나는 네가 넷에 연결할 때 빼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그사이에도 온갖 넷 전설이 섞이기도 했고 말이지. 물론 지금은 다 지나간 옛날 일이지만.

어쨌든 나도 친구가 좀 많다 이거야. 오죽하면 저번에 본 초자연심령회인가 뭐시깽이처럼 추종자도 있을 정도니... 어이, 듣고 있어?'


이 녀석은 온갖 TMI를 섞어가며 말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들어줄 만했지만, 좀 조용히 있고 싶은 순간에도 떠들어대니 죽을 맛이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녀석에게 대답할 수도 없고, 괜히 말을 꺼냈다간 운전하고 있는 정욱이 또 지랄할 거 같았다.


'그냥 지금처럼 네 생각을 떠올리면 되는 거 아닌가? 뭐 그렇게 어려운 길을 택해?'


생각해보니 어차피 이 녀석은 내 생각을 읽잖아. 그리고 살면서 엄한 짓도 몇 번 했는데 이 녀석은 지금까지 조용히 다 지켜봤다는 의미다.


'그래, 맞아. 그래도 네가 느끼는 감정도 나한테 들어오니까 심심하진 않았어.'


갑작스럽게 후회가 밀려온다. 지금까지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자니 소름이 돋는 느낌까지 든다.


어느덧 자동차가 멈추자 마침내 영훈도 떠드는 걸 멈춘다. 그리고 정욱이 먼저 내리고 나 역시 그를 뒤 따라갔다.


골목으로 들어서고 허름한 집 앞에 서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어 보였지만, 조금만 살펴보면 보안이 철저하다는 걸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신원 확인을 위해 현재 사용하고 있는 디지털 가면을 해제해주세요.』


정욱은 목 옆을 가볍게 터치했고, 패널에서 신원 확인을 마치자 문을 열어준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딱히 변한 게 없었다.


그는 이내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내 반응이 왜 그런지 알겠다는 듯 피식 웃으며 말한다.


"난 내가 믿는 사람에게만 얼굴을 드러내지."


그리고 함께 허름한 집으로 들어선다. 정욱은 한참 가만히 있었고, 나도 그 옆에 다가가 조용히 기다렸다.


이윽고 땅이 흔들리면서 바닥 전체가 아래를 향해 내려간다. 집 전체가 거대한 엘리베이터나 다름없었다.


천천히 위를 쳐다보자 천장이 다시 닫히면서 위는 가려진다. 은은한 네온사인의 조명만이 주위를 밝히고 있었다.


마침내 드러나는 지하. 내부는 사람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고, 여기저기서 흥정을 하며 시끌벅적하다.


"지하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인공위성 지하 촬영 금지 법안이 발표된 이후로 이런 곳이 많이 성행하게 되었지. 아마 우리 지하에는 모르는 게 널렸을걸."


정욱은 목을 다시 만지면서 말한다.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모두 내려오자 정욱을 따라 안으로 향했다.


"밖에서 파는 모조란 따위와는 비교가 안 되는 진짜 유정란입니다! 맛도 좋고 영양가도 풍부합니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신상 SAF-14! 심지어 아직 출시하지도 않은 SAF-15T 프레임도 팔고 있습니다!"


온갖 음식부터 시작해서 사이보그 프레임이나 부품도 가지각색으로 팔고 있었다. 한참 정신을 팔던 바람에 먼저 앞서 나가는 정욱을 놓칠뻔했다.


솔직히 불법시설은 말로만 들었지 이런 곳에 존재한다고는 생각 못 했다. 무엇보다 밖에서 사면 비싼 부품을 이곳에서는 거의 반값 이상으로 싸게 팔고 있었다.


넷은 워낙 감시가 심하니 저런 걸 팔려고 시도했다간 큰일 날 게 뻔하다. 그러니 지금처럼 오프라인으로 거래하려는 거겠지.


"여기선 절대 카드를 사용하면 안 돼. 오직 현금만 쓴다. 그래야 어디서 유통되었는지 확인하기 어려우니까."


확실히 현금은 추적이 거의 불가능하지. 여기저기서 맛있는 냄새가 감도는 가운데, 정욱은 어느 상점에 들어가 걸음을 멈춘다.


"아아, 오늘은 또 누구야. 엄청 유명하신 분께서 이런 곳을 찾아왔네?"


"됐고, 이거나 좀 봐줘."


정욱은 상인에게 눈알 2개를 보여줬다. 상인은 의안을 받고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피 같은 건 닦아내면 되고, 사용한 지 그렇게 오래된 것도 아니야. 제법 돈 많이 나가겠는데? 하나당 천오백 어때?"


"고작 그것밖에 안 하나?"


"요즘 잇몸말랑이들이 좀 많아져서 말이지. 그건 그렇고 뒤에 있는 녀석은 누구지? 신입?"


"어, 쓸모도 없는 놈이야."


애초에 나한테 대단한 일 별로 시키지도 않았으면서. 이럴 거면 그냥 데려오지나 말지.


'그러게, 그냥 단순히 본보기용으로 데려온 것 치고는 뭔가 빈약한데 말이지.'


영훈도 지금 상황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조용히 중얼거렸다. 정욱은 상인에게 돈을 받고는 내게 건네주며 말한다.


"옜다, 750만 원. 나머지는 보스에게 전달해야지."


"쓸모도 없다면서요."


"뭐냐, 그 말 때문에 삐진 거냐? 하여간 애새끼들은..."


정욱은 날 마음에 안 든다는 눈치로 보며 중얼거리더니 이내 다시 자동차로 향한다. 나도 그의 뒤를 따라 타려고 했지만, 정욱은 내가 타기도 전에 먼저 출발했다.


멀리 떠나가는 자동차를 한참 바라보다가 이윽고 메일이 도착했다고 알림이 뜬다. 근처 공중전화 부스에 다가가 넷에 연결했다.


『암시장에서 놀다가 집에 알아서 잘 오도록.』


짤막한 문장 하나가 전부다. 아무래도 정욱이 보낸 건 확실한 것 같은데.


'흥, 그 인간 생긴 것부터 하는 짓까지 은근히 마음에 안 든단 말이지. 혹시 그 인간이 배신자 아니야?'


"아닐 거야. 밥맛 떨어지는 양반이긴 해도 나름 갱단을 위해 일은 열심히 하잖아. 일단 나가서 암시장이나 좀 더 둘러보자."


'잠깐. 넷에 들어온 김에 확인할 게 있어서.'


영훈은 이렇게 말하고는 잠시 모습을 감춘다. 넷에 연결한 것도 오랜만이니 잠시 기다려줄까 하는 마음에 주변 사이트를 둘러봤다.


하지만 생각 이상으로 오래 걸린다. 내가 주로 들어가는 커뮤니티를 여러 군데 들렀다 나와도 영훈은 돌아오지 않는다.


슬슬 지겨웠던 찰나, 마침내 영훈이 돌아왔다.


"어디 갔다 온 거야?"


'그냥. 나도 넷에 친구는 많은 편이라서 말이지.'


"그래애... 그럼 이제 암시장 구경하러 가도 되는 거지?"


'마음대로.'


영훈은 그래도 넷에 오래 머물렀던 게 만족스러웠나 보다. 이도 당연한 것이 그가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건 넷밖에 없었으니까.


다만 이 녀석이 뭘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게 흠이라면 흠이란 말이지. 넷의 연결을 끊고 수중의 돈을 들고 암시장으로 다시 향한다.


정말이지, 암시장은 별의별 생각도 못 한 걸 다 팔고 있다. 불법 마약을 포함한 온갖 의약품도 있고, 지금은 단종되어 다시 구할 수 없는 무기도 있다.


"어서 와. 아까 정욱과 함께 오더니 지금은 안 보이네."


돌아다니다가 아무 상점이나 들어온 찰나였다. 상인은 제법 곱상하게 생긴 여성이었다.


"정욱을 아시나요."


"물론이지. 이곳에 거의 사나흘에 한 번씩은 방문한다고. 애초에 지하만큼 편한 곳이 없으니까. 뭐, 사고 싶은 거 있나?"


상인은 자신이 팔고 있는 물건들을 보여주며 말한다. 하지만 막상 내가 사고 싶은 건 없었고, 나도 그냥 잠시 들러본 것뿐이었기에 고개를 저었다.


"흠, 그럼 어쩔 수 없고. 다음에 정욱과 같이 오면 할인 좀 해줄게."


상점에서 나오고 잠시 주위를 둘러본다. 사실 뭔가 사려고 왔으면 찾아보기라도 할 텐데, 그조차 없으니 볼거리도 없는 것만 같다.


"이만 돌아가 볼까."


"로봇 동물에게 지친 여러분께 어울리는 이 새를 보십시오! 밖에 돌아다니는 새를 직접 교육해서 말도 잘 듣는답니다."

"사이버 돌침대! 별이 무려 열 개! 자면서도 넷에 연결할 수 있습니다!"


떠나기 전, 문득 들려온 소리에 걸음을 멈춘다. 한 상점은 밖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를 팔고 있었고, 그 옆에는 돌침대를 팔고 있었다.


"돌침대면 좀 더 낫지 않을까."


'확실히 잠은 잘 잘 수 있겠네.'


"그것도 있고, 내가 자는 동안에 넷에 연결해두면 너도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으잉? 고작 그 기능 때문에? 저건 그냥 사람들 속이려고 쓰는 거잖아. 자면서 넷에 연결 못 하는 것도 아니고, 그건 그냥 싸구려 사도 충분할 텐데.'


"겸사겸사하자는 거지."


까악─! 까악─!


돌침대에 가까이 다가가자 옆에 있는 까마귀가 크게 울기 시작한다. 나도 모르게 흠칫 놀라며 새와 눈을 마주친다.


아마 까마귀였나, 정말 밖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종이었다. 물론 나는 이걸 사려고 한 게 아니라서 곧장 몸을 틀어 옆으로 향한다.


새를 파는 상인은 자신의 상점에 들어오는 줄 알고 맞이하려고 했지만, 옆집으로 들어서는 날 보고는 실망을 금치 못한다.


"으왓, 진짜 오셨네. 크흠흠, 어서 옵쇼! 사이버 돌침대 하나 장만하시지 않겠어요?"


"네, 혹시 1인용 돌침대 있나요. 잘 때 넷에도 연결할 수 있는 그런 거로요."


"으하하! 물론 있죠, 있고 말고요. 배달해드리면 되는 거겠죠?"


아무래도 이런 돌침대를 사는 사람은 많지 않은가보다. 오죽하면 저기 있는 돌침대에 먼지가 가득 붙어있겠는가.


'진짜 살 생각이라니... 나도 모르겠다. 뭔가 돈 낭비 같지만 그냥 사려면 사라.'


영훈은 내 마음대로 하라고 하지만, 사실 이 녀석도 아마 속으로는 좋아하지 않을까. 만약 이 녀석의 실체를 진작 알았더라면 조금이라도 노력했을 텐데.



* * *



"그래서 사 온 게 이거야?"


거대한 돌침대의 자태를 본 보스는 할 말을 잃은 듯 쳐다보고 있었다. 주원은 보스의 옆에 서서 쿡쿡 웃고만 있었다.


"정욱이랑 밖에 나갔다 온 거 아니었냐. 정욱, 너는 이걸 보고도 가만히 있었어?"


"흥, 내가 이 녀석을 언제까지 봐줘야 한다고. 그냥 암시장에서 놀다 오라고 하고 먼저 왔잖아."


주원은 그래도 적대적인 느낌을 내게 보이지 않는데, 정욱은 왠지 모르게 주원의 첫인상과 겹치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하아...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나저나 너한테 불면증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혹시 닥터 타오에게 진단도 받아봤니?"


"아뇨... 별로 친하지 않기도 하고요."


"이참에 친하게 지내는 것도 괜찮을 거 같은데. 닥터 타오의 실력은 출중하니까 한번 들러보는 건 어때? 이거 설치는... 현준이에게 맡기면 되겠네."


보스는 내 등을 툭툭 두드리며 의료실로 보낸다. 현준 혼자서 저걸 하기에는 좀 역부족이지 않을까 싶은데.


의료실로 들어오자 동그란 안경을 쓴 남성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는 서류 너머로 나와 보스를 힐끗 보고는 말을 잇는다.


"뭐야, 일 없으면 들어오지 말라고 했잖아."


"상담 전문은 자네 아니던가? 둘이 만난 적도 별로 없을 텐데 한번 이야기 나눠보라고."


"난 상담사와 거리가 멀어서 말이지. 그래도 치료가 필요한 거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라고."


보스는 날 의료실 안으로 들여보내고는 먼저 자리를 뜬다. 그리고 나와 닥터 타오만 어색하게 남아 한동안 이야기가 오가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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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영훈 – 핵가족 (2) NEW 19시간 전 4 0 13쪽
131 영훈 – 핵가족 (1) 22.11.24 5 0 12쪽
130 영훈 – 형제애 (4) 22.11.23 8 0 13쪽
129 영훈 – 형제애 (3) 22.11.22 8 0 13쪽
128 에밀리 – 불행의 끝 22.11.21 8 0 13쪽
127 에밀리 – 불행의 연속 (3) 22.11.18 9 0 12쪽
126 도미닉 – 서아를 찾아서 (2) 22.11.17 9 0 12쪽
125 도미닉 – 서아를 찾아서 (1) 22.11.16 13 0 13쪽
124 영훈 – 형제애 (2) 22.11.15 14 0 12쪽
123 영훈 – 형제애 (1) 22.11.14 9 0 13쪽
122 도미닉 – 부활 22.11.11 11 0 14쪽
121 에밀리 – 불행의 연속 (2) 22.11.10 13 0 12쪽
120 에밀리 – 불행의 연속 (1) 22.11.09 11 0 13쪽
119 영훈 – 붕괴 (4) 22.11.08 11 1 12쪽
118 영훈 – 붕괴 (3) 22.11.07 11 0 12쪽
117 영훈 – 붕괴 (2) 22.11.04 12 1 12쪽
116 영훈 – 붕괴 (1) 22.11.03 14 1 12쪽
115 에밀리 – 범죄와의 전쟁 (2) 22.11.02 13 1 12쪽
114 에밀리 – 범죄와의 전쟁 (1) 22.11.01 14 1 12쪽
113 영훈 – 갱 전쟁 (14) 22.10.31 14 0 13쪽
112 영훈 – 갱 전쟁 (13) 22.10.28 15 0 12쪽
111 에밀리 – 종달새는 어디로 갔는가 (1) 22.10.27 16 0 14쪽
110 다큐멘터리 – 아프리카 보복 전쟁 208■년 0■월 ■■일 22.10.27 17 0 8쪽
109 도미닉 – 은퇴 22.10.26 18 0 12쪽
108 영훈 – 갱 전쟁 (12) 22.10.25 13 0 13쪽
107 영훈 – 갱 전쟁 (11) 22.10.24 1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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