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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오 님의 서재입니다.

중세 X 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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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오
작품등록일 :
2022.10.03 23:59
최근연재일 :
2022.10.04 00:15
연재수 :
3 회
조회수 :
154
추천수 :
9
글자수 :
18,086

작성
22.10.04 00:15
조회
35
추천
4
글자
12쪽

2. 세 명의 생존자 (2)

DUMMY

“크에엑―!”


머리가 박살 난 괴물은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르며 모래톱 위로 추락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튀어나온 널빤지와 노 구멍을 밟아가며 놈들은 순식간에 뱃전을 기어올랐다. 대체 몇 마리나 되는 괴물이 배에 달라붙어 있는 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갤리선 전체가 끼익 끼익 나무 뒤틀리는 소리를 내며 위태롭게 흔들거렸다.


“끄어어―!”


이번엔 알몸뚱이 송장 하나가 뱃전을 넘어 갑판 위로 뛰어들었다. 놈의 가랑이 사이에서 반쯤 썩어 문드러진 흉물이 덜렁거리고 있었다.


“우욱, 이런 개자식이!”


놀포는 곧장 십자고상을 휘둘러 놈의 관자놀이를 후려쳤다. 단 한 방에 머리가 으깨지며 분홍색 파편들이 갑판 위로 흩뿌려졌다.


“으앗···! 발에 튀었잖아요!”

“그때처럼 토하지는 말고!”

“먹은 게 없어서 토할 것도 없거든요!”


말을 마치자마자 꼬맹이 테오도라는 주저 없이 쇠뇌 방아쇠를 당겼다.


“빡!” 두개골 쪼개지는 소리가 둔탁하게 울려 퍼지더니, 놀포의 등 뒤로 다가오던 괴물 한 마리가 맥없이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배의 선수상을 타고 소리 없이 기어오른 녀석이었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테오도라는 잽싸게 시위를 당겨 화살을 재장전했다.


“그놈의 자비경(慈悲經)은 언제까지 욀 거야?”

“계속요!”


테오도라가 단호하게 소리쳤다.


“종부성사도 못 받는 가엾은 사람들이에요. 기도라도 해 줘야죠! 아멘!”


또 한 발의 화살이 휙, 바람 가르는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그리고 갤리선 좌현을 기어오르던 괴물의 목덜미를 꿰뚫었다. 목 한가운데에 손가락 크기의 구멍이 생겨 목뼈가 들여다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그만한 상처로도 괴물의 질긴 숨통을 끊어놓지는 못했다.


“키이이이―!”


성대가 찢어졌는지, 끔찍한 쇳소리를 내며 괴물은 갑판 위에 두 다리로 올라섰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에 서 있는 먹잇감에게 달려들었다. 쇠스랑을 든 미하일이었다.


“아저씨, 조심해요!”

“흐압!”


한바탕 기합 소리와 함께, 미하일은 능숙한 솜씨로 괴물의 턱 아래에 쇠스랑을 찔러넣었다.


쇠스랑은 본디 농기구일 뿐 사람의 뼈를 뚫을 만큼 날카롭지는 못하다. 하지만 틈이 날 때마다 숫돌로 갈아둔 두 개의 쇠스랑 날은, 괴물의 턱주가리를 치즈처럼 뚫고 들어가 단번에 정수리로 튀어나왔다.


“도라! 내 걱정은 말고 네 몸을 지켜!”


괴물의 턱에서 쇠스랑을 빼내며 미하일이 소리쳤다. 쇠스랑을 쥔 그의 양팔은 통나무 원목만큼이나 두껍고 단단했다. 예순이 넘은 나이. 그러나 사십 년 넘는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노동을 멈춰본 적이 없는 그의 용력은 결코 얕볼 것이 못 되었다.


바짓단에 손바닥 땀을 닦아내며 미하일은 쇠스랑을 바로 쥐었다. 식인 괴물들에게 둘러싸인 상황이다. 겁이 안 난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연장자로서 그는 결연히 마음을 다잡았다. 약한 모습을 보여줄 생각은 결코 없었다.


‘한 놈씩 확실하게 처치하자. 늘 해왔듯이···.’


미하일은 천천히 숨을 고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눈앞에서 놀포가 괴물 한 놈의 머리통을 질퍽한 곤죽으로 만들어 놓고 있었다.


“죽어! 미친! 괴물아!”

‘저긴 걱정 없겠군. 테오도라 쪽은?’


고개를 돌린 미하일의 눈에 아찔한 광경이 비쳤다. 테오도라의 뒤편에서 시꺼먼 형상이 빠르게 접근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도라, 네 뒤에!”


미하일의 외침에 화들짝 놀란 테오도라는 재빨리 몸을 돌려 선미를 겨냥했다. 하지만 눈앞엔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없다고 생각했다. 괴물의 손아귀에 한쪽 다리를 붙잡히기 전까지는.


배라는 것 자체를 처음 타 본 테오도라에게 갤리선의 갑판 구조는 무척이나 특이하고 낯선 것이었다. 테오도라가 서 있는 선수 갑판이 위로 솟아있는 것에 비해 중앙 갑판은 아래로 꺼져있다. 갤리선 중앙은 노잡이들이 모여 앉아 노를 젓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등 뒤에 움푹 꺼진 갑판이 있다는 사실을 잠시 망각한 것. 그 방심이 테오도라의 시야에 일시적 사각을 만들었다. 신장이 작은 탓에 더더욱 아래에서부터의 공격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어어어―!”

“앗, 이거 놔!”


괴물이 다리를 잡고 늘어지자 테오도라는 발목을 접질린 채 비틀거렸다. 얼결에 쏘아버린 화살은 괴물의 뺨을 스치고 날아가 갑판 위에 꽂혔다.


“도라, 안 돼!”


미하일이 쇠스랑을 움켜쥔 채 내달렸으나 시간이 촉박했다. 괴물은 이미 테오도라의 살점을 씹기 위해 더러운 아가리를 들이밀고 있었다. 발목까지 길게 늘어뜨린 수도복 옷자락에 눈이 가려 제대로 물 곳을 찾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최악의 상황, 그러나 테오도라는 침착하게 대처했다. 허리춤의 화살통에서 새 화살을 꺼내, 그대로 괴물의 귓구멍 깊숙이 찔러 넣은 것이다.


“그어― 그어어―”


균형 감각을 잃었는지, 다리를 놓치고 힘없이 비틀거리던 괴물은 이내 바닥에 얼굴을 처박으며 쓰러졌다. 귀에 박힌 화살대를 따라 주홍빛 뇌수가 줄줄 흘러나와 갑판을 적셨다.


“헉헉··· 자비를 베푸소서···.”


손끝에 전해져 온 소름 끼치는 감각에 부르르 몸을 떨면서도, 테오도라는 망자를 위한 기도만큼은 잊지 않았다.


“도라! 다친 데는 없니? 안 물렸어?”


한발 늦게 도착한 미하일이 허둥지둥 테오도라를 일으켜 세우며 물었다.


“네, 괜찮아요.”

“다행이다, 다행이야···.”


미하일은 철렁했던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 곁에 꼭 붙어있으렴! 항상 뒤를 조심하고!”


테오도라가 미하일의 호위를 받으며 쇠뇌에 화살을 메기는 동안, 놀포는 십자고상을 휘둘러 괴물 한 마리를 추가로 해치웠다. 하지만 이틀을 꼬박 굶은 탓인지 체력이 점점 달려오고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십자고상은 금박을 입힌 강철 재질로, 어지간한 철퇴보다도 무거운 물건이었다. 그만큼 파괴력은 출중했지만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소모되는 힘도 상당했다.


“헉헉···!”


놀포는 연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아까부터 등줄기를 따라 뜨거운 땀방울이 쉴 새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머리에선 김이 폴폴 올라왔고, 바짝 말라붙은 목구멍에선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다.


“염병···! 헉헉···! 사방에서 기어오르는군···!”

“크르르―”


그 말대로, 벌써 새로운 괴물들이 뱃전 난간 위로 상체를 들이밀고 있었다.


“오냐, 누가 이기나 해보자! 이 역겨운 송장 놈들아!”


놀포는 남은 힘을 몽땅 짜낼 작정으로 십자고상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닥치는 대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황금빛 둔기가 커다란 반원을 그리며 괴물들의 정수리를, 혹은 관자놀이를 때릴 때마다 빠개진 골편과 이빨, 살덩이들이 공중에 휙휙 날아다녔다.


“죽어! 죽어!”


호기롭게 괴물 몇 놈의 머리통을 박살 낸 것까지는 좋았으나, 위기는 금방 찾아왔다. 빙그르 몸을 돌리며 크게 휘두른 한 방이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만 것이다.


“으윽, 젠장···!”


십자고상의 무게에 관성까지 더해져, 놀포는 균형을 잃고 갑판 위에 나자빠졌다. 손에서 놓쳐버린 십자고상은 긴 핏자국을 남기며 뱃전 구석으로 주르륵 미끄러졌다.


손쉬운 먹잇감을 노리는 것이 괴물들의 사악한 본성인바, 뱃전 난간을 넘어온 세 마리 괴물이 놀포를 향해 순식간에 달려들었다.


“놀포! 조심하게!”


미하일이 가까스로 괴물 한 놈의 장딴지를 찍어 넘어뜨렸다. 이어진 테오도라의 쇠뇌 원호로 또 다른 괴물이 피를 흩뿌리며 쓰러졌다. 하지만 마지막 남은 한 마리는 그대로 놀포의 상반신을 덮쳤다.


놀포는 두 팔뚝으로 괴물의 가슴팍을 받쳐 간신히 목덜미를 지켜낼 수 있었다. 하지만 허리를 깔고 앉은 거구의 괴물은 엄청난 체중으로 놀포를 내리눌렀다.


“크에에―!”

“이런, 씨팔···!”


괴물은 놀포의 얼굴 바로 위에서 새까만 이빨을 딱딱거리기 시작했다. 침인지 피인지, 역겨운 냄새를 풍기는 검은색 액체가 놀포의 뺨 위로 뚝뚝 떨어졌다.


“으윽··· 더러워, 이 새끼야···!”

“조금만 참아요!”


테오도라가 떨리는 손으로 화살을 장전하며 소리쳤다.


“금방 갈 테니 기다리게!”


미하일은 괴물의 장딴지에서 쇠스랑을 빼내지 못하고 있었다. 두 개의 다리뼈 사이를 쇠스랑 날이 절묘하게 비집고 들어간 탓이었다. 장딴지를 꿰뚫린 괴물은 코를 박고 엎어진 채, 고통과 분노가 뒤섞인 목소리로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크아아악―!”


놀포는 어금니를 꽉 악물었다. 다른 괴물이 언제 갑판 위로 뛰어들지 몰랐다. 이 냄새 나는 송장 녀석과 언제까지고 힘 싸움을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얌마, 맘껏 먹어라!”


놀포는 괴물의 아가리 앞으로 과감하게 왼팔을 내밀었다. 그러자 놈은 기다렸다는 듯 놀포의 팔뚝을 꽉 깨물었다. 하지만 달콤한 살점 대신 씹힌 것은 팔뚝을 꽁꽁 싸매고 있던 사슬 보호대였다.


“크르르르르―!”


우두둑 소리와 함께 괴물의 깨진 이빨 조각들이 피에 섞여 흘러내렸다. 그럼에도 참으로 경이로운 턱 힘이었다. 사슬 위로 어떻게든 이빨을 박아넣고 말겠다는 듯, 놈은 턱을 질근거리며 끝까지 팔뚝을 물고 늘어졌다.


“고기가 꽤 딱딱하지?”


놀포는 반대쪽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있는 힘껏 휘둘러 놈의 턱주가리를 날려 버렸다.


“크아아악―!”


괴물은 바닥을 구르며 나가떨어졌다. 그리고 침을 줄줄 흘리며 다시 몸을 일으켰다. 박살 난 아래턱이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갈 듯 덜렁거리고 있었다.


경쾌한 “퍽!” 소리와 함께 괴물은 다시 한번 뒤로 나자빠졌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이마빡 한가운데 적중한 화살이 비로소 놈에게 치명상을 안긴 것이다.


“괜찮아요?”


쓰러져 있는 놀포에게, 테오도라가 쪼르르 달려와 손을 내밀었다.


“후, 천국 문까지 다녀온 기분이군.”


테오도라의 손을 붙잡고 놀포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욱신거리는 주먹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어찌나 주먹을 세게 내질렀던지 장갑의 철편이 죄다 떨어져 나가고 없었다.


“젠장, 새것을 구해야겠네.”


한편, 미하일은 괴물의 다리뼈에 걸려있던 쇠스랑을 간신히 뽑아냈다. 그리고 곧장 괴물의 눈구멍을 찔러버렸다. 반격의 기회조차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괴롭게 신음하며 버둥대던 괴물은, 이윽고 팔다리를 축 늘어뜨리며 얌전해졌다.


“놀포, 물린 곳은 어떤가?”


겨우 한숨을 돌린 미하일이 놀포를 돌아보며 물었다.


“걱정하지 마. 보호대 위였으니까.”


팔뚝 보호대를 빙글빙글 어루만지며 놀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손에서 놓쳐 버린 십자고상을 다시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피 웅덩이 속에서도 아름다운 황금빛으로 번쩍이고 있었으니까.


“어쨌든 이젠 거의 끝난 것 같군.”


십자고상을 주워 들며 놀포가 말했다. 괴물 놈들의 시끄러운 울음소리가 아까부터 거의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방심은 금물이지만.”


최후의 한 마리로 보이는 괴물이 뱃머리를 넘어 갑판 위로 굴러떨어졌다. 굉장히 화려한 옷차림을 한 괴물이었다. 몸에 착 달라붙는 비단옷에, 금실과 은실로 수놓아진 소매에는 반짝이는 호박 단추까지 달려 있었다.


“우와, 예쁘다···.”


테오도라는 자기도 모르게 입을 열고 감탄했다.


아마 돈깨나 있는 귀족 집안의 아가씨였으리라. 게다가 비교적 최근에야 괴물이 된 게 틀림없었다. 귀가 떨어져 나가고 없다는 점만 빼면, 생전의 아름다운 미모가 아직도 얼굴 위에 제법 남아 있었다.


“크아아아아―!”


그러나 괴물은 어디까지나 괴물. 아름다운 얼굴을 한껏 일그러뜨리며 놈은 증오로 가득 찬 괴성을 내질렀다.


놀포는 미간을 찌푸린 채 괴물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십자고상을 휘두를 준비를 하면서 말이다.


“네가 마지막이다, 이거지?”


괴물의 머리통이 갑판 위의 새빨간 얼룩으로 변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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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39 치타리아
    작성일
    22.10.10 00:56
    No. 1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개성있는 소재 좋아합니다. 어떻게 전개될지 기대하고 있습니다.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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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 세 명의 생존자 (1) 22.10.04 50 2 13쪽
1 0. 안프레오노의 일지 +2 22.10.04 69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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