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리
“대장암 말기야.”
나는 놀라지 않았다.
앞선 두 번의 검사에서 이미 어느 정도 얘기를 들었다. 아까운 돈 들여 구태여 정밀검사까지 한 것은 한 가지를 확실히 알고 싶어서였다.
“얼마나 더 살 것 같아?”
“치료를 받으면 6개월.”
“받지 않으면?”
“길어야 두 달.”
“길어야?”
“지금 상황에선 사실 한 치 앞을 알 수가 없어. 이렇게 멀쩡하게 걸어 다니는 것도 신기할 지경이고.”
45년 동안이나 이어진 삶이 두 달 안에 끝난단다. 도무지 현실로 받아들여 지지가 않았다.
왜 하필 내게 이런 일이······.
무슨 대단한 일을 한다고 뱃속이 썩어가는 줄도 몰랐을까?
“치료하자. 해보자.”
“이거 웃기는 놈이네. 방금 치료해도 6개월 밖에 못 산다고 해놓고. 왜? 죽기 전에 실적 좀 올려줘?”
“독일에서 개발된 신약이 있는데, 가격은 좀 나가지만 말기암 환자들에게 특히 효과가 있었어. 일단 시간을 좀 벌어놓고······.”
“얼만데?”
“주사제인데 회당 삼백만 원 정도야, 하루에 두 차례씩 한 달 정도 맞으면서 항암치료를 하면······.”
“일주일에 오천만 원, 한 달이면 최소 이억이네. 그런데도 고작 서너 달 생명을 연장하는 것에 불과하겠지. 병원 침대에 누워 인공호흡기 꽂고 몇 달 더 사는 조건으로 이억을 내놓으라고?”
“기적이 일어날 수 있는 시간을 배로 늘리는 거야. 현대 의학은 인체의 비밀을 10%도 채 알지 못 해.”
“장사 잘하네. 의사가 이렇게 약을 쳐도 돼?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아냐?”
“야, 김지훈!”
“나 개털이야. 한 푼도 없다고.”
“입만 열면 국내 최고 호텔의 총지배인이라며? 그동안 번 돈 다 어쩌고 한 푼도 없다는 거야?”
“총지배인이 아니라 부총지배인이야.”
“그게 그거 아냐?”
“달라. 총지배인은 호텔의 얼굴과 같아서 명문대를 나왔거나 외국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의 차지야. 나 같은 고졸은 현실적으로 부총지배인까지가 한계고. 너 다 알면서 지금 일부러 나 엿먹인 거지?”
“장난치지 말고.”
“나 이혼했다.”
“뭐?”
“1년 됐다.”
“너 마누라랑 애들 미국에 있잖아.”
“변호사 통해 서류만 보내왔더라.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며 갈라서자더라. 위자료랑 애들 양육비 달마다 찔끔찔끔 보내는 거 내 성격에 맞지 않아서 한방에 다 줬더니 빈털터리 됐다.”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너는 이혼할 때 나한테 말하고 했냐?”
“나.... 이혼한 거 어떻게 알았어?”
녀석의 눈이 똥그래졌다.
“동창회 밴드에 올라왔더라. 동구가 그러던데, 재벌 처갓집에서 너를 그렇게 무시했다며? 의사랍시고 불알 두 쪽밖에 없는 게, 그나마 그 불알에 씨가 안 들었다고.”
“허동구 이 개자식!”
“그러고 보면 내가 너보다 명(命)은 좀 짧아도 자식이랑 마누라 복은 더 있는 것 같애. 응?”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저 죽는 줄도 모르고 일하다가 이혼당한 놈이 퍽이나 마누라 복이 있겠다.”
“그런가?”
고등학교 때부터 만난 30년 지기 친구다. 어차피 똑같이 이혼당한 처지에 부끄러울 것도, 내가 더 잘났다고 내세울 것도 없다.
우리는 마주 보며 픽 웃고 말았다.
“애들 엄마한테 전화해. 아무리 이혼했다지만 20년을 함께 산 정이 있을 거 아냐. 애들과도 시간을 좀 보내야지. 그리고 혼자서는 못 버텨.”
“진통제나 넉넉하게 줘. 마약성 진통제 뭐 그런 거 있잖아. 평생 안 해본 마약을 이렇게 해보네.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지? ”
“오늘 당장 전화해.”
“나 간다. 내 장례식 때 꼭 와라. 장례식 때 잘 나가는 의사 친구 하나 와서 떡 하니 앉아 있으면 그렇게 간지나 보이더라고.”
“말을 해도 꼭······.”
“동구한테는 너무 뭐라 그러지 마라. 그 자식 고등학교 다니는 큰 애가 알고 보니 제 애가 아니었다더라. 자식 놈이랑 정이 너무 깊이 들어버려서 이혼도 못 하겠다더라고. 우리보다 더 불쌍한 놈이야.”
***
오피스텔로 돌아온 나는 소주와 양반김 한 봉지를 까놓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거실 한쪽엔 사놓고 한 번도 쓰지 못했던 캠핑장비들이 가득 놓여 있었다. 그 옆엔 통기타도 있었다. 저것도 배워야지 배워야지 하면서 도저히 시간을 내지 못 했다.
이제 와서 보니 거실엔 그런 물건들이 한 가득이었다. 낚시장비, 천체망원경, MTB 자전거까지, 하나같이 내 손길만 기다리다가 그대로 옛날 물건이 되어 버린 놈들이었다.
그러나 나를 가장 후회하게 만든 것은 따로 있었다. 벽에 걸려 있는 커다란 액자 속엔 10년 전의 아내와 두 딸과 내가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가기 전, 한껏 차려입고 동네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이제는 말을 해야 한다.
혼자서는 무서워서라도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들었다.
“웬일이야?”
“그냥, 잘 지내나 해서.”
“지금 몇신 줄 알아?”
“미안, 여기랑 반대라는 걸 깜빡했네.”
“술 마셨어?”
“조금 했어.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거든. 당신 의환이라고 알지? 거 왜 대학병원에서 내과 과장 하는 놈 있잖아. 머리가 홀라당 벗겨진······. 아, 당신이 한국에 있을 때는 안 벗겨졌나? 그러고 보니 벌써 10년이나 됐네. 당신이 애들이랑 미국으로 간 지 말이야.”
“하고 싶은 말이 뭐야?”
“한국에 한 번 오지 않을래? 비행기 값이랑 체류비랑 내가 전부 보내줄게. 나랑 같이 지내는 게 부담스럽다면, 서울에서 제일 좋은 호텔도 잡아주고.”
“갑자기 왜 그래?”
“애들 본 지도 오래됐고. 이제 아가씨 다 됐겠네. 이맘때 여자아이들은 금방 달라지잖아. 애들은 나 보고 싶어 하지 않아?”
“이젠 부모를 찾을 나이가 아니잖아.”
“그런가?”
“우리 이혼 한 거 애들 이제 적응하기 시작했어. 정말로 애들을 생각한다면 당분간은 좀 참아줘. 수영이 대학가고 나면 그땐 애들이 싫다고 해도 내가 보낼게.”
나는 이혼하기 전에도 떨어져 지냈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쏘아 붙이고 싶은 걸 참았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내가 한 거라곤 아내와 아이들이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최소한 돈 때문에 서러운 일은 없도록 죽어라 일해서 보내준 거밖에 없는 것 같은데.
하지만 아내는 항상 부족하다고 했다.
항상 재촉했고, 항상 돈 이야기만 했다.
아내의 말 앞에는 언제나 아이들이 있었다. 나는 우리 수준에 맞지 않게 너무 높은 곳을 바라본다고 아내를 나무랐고, 그러면 아내는 그게 아빠로서 할 소리냐고 했다.
“앞으로 나한테 전화하는 것도 삼갔으면 좋겠어. 애들 문제로 의논할 게 있으면 메일로 해. 메일주소 알지?”
“새벽에 전화해서 화난 모양인데. 알았어. 다음부턴 낮시간에 맞춰서······.”
“나 결혼해.”
“뭐?”
“전직 PGA 프로골퍼 출신의 코치야. 애들도 레슨을 받는 중이고. 그 사람이 얼마전에 청혼을 해왔어.”
이혼한 마누라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술이 떡이 되도록 퍼마시던 친구들이 여럿 있었다. 그때 든 생각은 녀석들이 불쌍하다가 아니라, 도대체 어떤 기분일까였다.
이제는 알 것 같다.
기분 진짜 좆같다.
“애들은 뭐라 그래?”
“애들도 잘 따라. 좋은 사람이야.”
“잘됐네. 진짜 잘 됐어.”
“고마워. 당신은 만나는 사람 없어?”
“성가셔. 이 나이에 무슨.”
“.....”
“참, 계좌번호 안 바뀌었지?”
“계좌번호는 왜?”
“돈 좀 보내줄게.”
“그러니까 왜?”
“필요한데 써. 위자료라고 생각해도 되고.”
의환이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나한테는 아직 오피스텔 보증금 1억 정도가 남아있다. 어차피 죽으면 없어질 돈, 나는 이걸 아내와 아이들이 한국으로 오면 줄 생각이었다.
아빠가 주는 마지막 선물로.
“위자료는 헤어질 때 이미 충분히 받았어. 그건 지금도 고맙게 생각해. 그러니까 더 보내줄 필요 없어.”
“그럼 애들 필요한 거 사줘. 아, 투어 다닐 때 아직도 승용차 타고 다니지? 밴 사줘. 거 왜 연예인들이 타고 다니는 거 있잖아. 그게 안전하다더라고.”
큰딸 수영이와 작은딸 수진이는 어렸을 때부터 골프를 했다. 소질도 있었고, 아내의 헌신적인 뒷바라지까지 보태져 지금은 제법 유명한 아마추어 선수였다.
“당신 그게 얼마인 줄이나 알아?”
“한 1억이면 안 될까?”
“아냐, 됐어.”
“왜 모자라? 조금 더 만들어 볼까?”
은행에서 대출하면 된다.
월급쟁이에 불과하지만, 직업이 멀쩡하니 신용대출로 5천 정도는 당길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갚지 못하고 죽을 테지만, 딸자식들을 위해서라면 마지막으로 한 번쯤은 범죄자가 될 용의가 있었다.
“됐다니까.”
“옛날엔 차가 작아서 골프백이 안 들어간다고 허구한 날 투덜대더니, 지금은 왜 큰 차를 사준다고 해도 난리야?”
나도 모르게 살짝 짜증을 냈다.
이런 걸 그냥 참고 넘길 아내가 아니다. 당연히 날카로운 목소리가 날아올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미 있어.”
“뭐?”
“이미 있다고.”
“어디서 나서?”
“노먼이 사줬어.”
“언제?”
“1년 전에.”
노먼이 누구인지 물어볼 것도 없었다.
이건 아내에게서 결혼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보다 더 기분이 더러웠다.
비참하고 화나고.
솔직한 진심은 욕이라도 퍼붓고 싶었다. 아직 결혼도 안 했다면서, 그 새끼가 뭔데 내 아이들한테 그런 걸 사주느냐고.
문득 호텔 로비의 잡지에서 보았던 노먼 브라운이라는 사람의 기사가 떠올랐다. PGA투어 통산 3승에 빛나는 호주의 젊은 백만장자 이혼남.
그렇게 돈돈하더니······.
“그 친구 때문이었어?”
“뭐가?”
“나랑 헤어진 거 말이야.”
“이제 와서 그런 게 중요해?”
그렇다. 중요한 게 아니다.
무언가를 따지기엔 이미 너무 늦었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로서, 한 여자의 전남편으로서 치러야 한다고 생각했던 모든 마지막 의식들이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아내는 물론이거니와 갑자기 새끼들까지 하나도 보고 싶지 않았다. 정말 솔직히 말하면 배은망덕한 것들이라고 욕을 퍼붓고 싶었다.
그러나 꾹 참았다.
모든 게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해해. 진작 말하지. 속으로 힘들었겠네.”
“의환 씨는 왜 만났어? 어디 아파?”
아내가 화제를 돌렸다.
별로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잘도 물어본다.
나는 아내의 장단에 놀아나 주고 싶지 않았다. 더는 통화를 이어나가고 싶지도 않았다.
“근처 지나가다가 마침 퇴근 시간인 것 같길래 불러내서 한잔했어.”
“술 좀 줄여. 회사에서 속상한 일 있어도 참고. 다른 사람들도 다들 그렇게 억울해하면서 살아. 혼자 사는데 몸이라도 건강해야지.”
“그만 끊어야겠어. 축구하네.”
“알았어. 잘 지내.”
“그래. 당신도.”
나는 그렇게 아내와 작별인사를 했다.
오피스텔 보증금 1억은 3년째 간암과 싸우느라 집안이 풍비박산 난 고등학교 동창놈에게 주었다.
그리고 한 달 후, 내 인생은 다른 많은 사람이 그런 것처럼 마흔 중간쯤에서 어중간하게 나가리가 되어 버렸다.
분명히 그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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