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과연 좀비 킹이라서 그런가? 별의별 능력들이 다 있군.'
베히문트는 능력 리스트를 바라보며 삐뚜름한 미소를 지었다.
<고기 폭탄>, <슈퍼 좀비 소환>, <산성 토악질> 등 수많은 기괴하면서도 강력해 보이는 능력들이 즐비해 있었다.
만약 이러한 능력들을, 카르킨 자신의 강력한 창술과 함께 사용했다면 패배한 쪽은 베히문트 쪽일지도 몰랐다.
'···무인의 긍지라는 건가?'
하지만 카르킨은 좀비 킹이 되었음에도 오로지 창술로 베히문트를 상대했다.
왜 그런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베히문트는 왠지 카르킨이 '무인의 긍지'로 인해 그랬을 것만 같았다.
물론 어디까지나 베히문트 본인의 생각일 뿐, 진실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베히문트가 몇 페이지 정도를 넘겼을까.
'···하?'
창술과 관련된 능력이 시작됨과 동시에 도저히 끝이 보이지가 않았다.
그야말로 창술에 보고(寶庫)라 할 수 있을 정도.
카르킨이 젊은 시절 대륙을 돌아다니며 얻은 <창술 콜렉터>라는 별명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바였다.
'마스터 클래스는 역시 다르다는 건가? 능력의 수가 많은 것은 둘째치고 레벨들도 하나 같이 높다.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거지?'
아무리 낮은 레벨의 창술일지라도 최소 lv.5.
어떤 창술을 선택할지라도 바로 실적에 써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무작정 시간을 낭비할 수 없던 베히문트는 일단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창술 몇 가지만 간추려냈다.
<피닉스 스피어 lv.8>
<수강창 lv.13>
<데스 그랑 lv.2>
하나 같이 그 위용이 남다른 창술들이었다.
일단 '피닉스 스피어(phoenix spear)'는 불의 정령과 한 몸이 되어 사용하는 정령 창술로, 왕국 서쪽 끝자락에 자리한 대사막의 부족이 사용한다고 전해졌는데 아무래도 카르킨은 그곳까지 간 모양이었다.
속성 공격이 전무한 베히문트에게는 좋은 선택이라고 할 수 있었다.
두 번째로 선택한 수강창(手强槍).
말 그대로 창 없이도 손을 창처럼 사용하는 맨손 격투술이었다.
주로 수인족 중에 야인종(野人)들이 주로 사용했는데, <초악력>이 있는 베히문트에게는 역시나 좋은 선택이었다.
맨손이라고 방심한 적을 상대로 비장의 수로 사용할 수 있을 터였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데스 그랑은 조금 독특한 능력이었다.
처음 이 능력을 발견한 베히문트가 눈을 의심할 정도.
왜냐하면 데스 그랑(Death grand)은 암흑대륙의 패자인 '마족'들이 사용하는 능력이었기 때문이었다.
닿은 생명체의 생명력을 흡수하는 드레인 능력의 창술로, 과연 <창술 콜렉터>답게 습득한 모양이었다.
'정말이지 눈이 돌아갈 지경이군···.'
베히문트는 이외에도 다른 창술도 쭉 둘러보았다.
그렇게 그의 독무 창술인 <드래곤 드라이브>가 보인 찰나 베히문트는 스킬 리스트가 끝이 났음을 직감했다.
'음?'
하지만 예상 외로 드래곤 드라이브가 능력 리스트의 맨 마지막이 아니었다.
보통 가장 희소한 능력일수록 마지막이었던 것으로 미뤄보아 이상한 일이었다.
그의 독무 창술 '드래곤 드라이브'보다 특별한 능력이라니?
베히문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거진 알아보기 힘든 회색 글씨로 적힌 능력의 명칭을 읽어내렸다.
'체인 드라이브?'
그렇게 베히문트가 글씨를 속으로 읽어 내린 찰나.
흐릿하던 회색 글씨는 밝은 황금빛을 뿜어내며 번뜩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었다.
<히든 퀘스트 '카르킨의 유지(遺旨)'가 발동됩니다.>
<스피어 마스터 카르킨이 노년에 자신의 창술의 지식을 총망라하여 최강의 창술을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무공이 완성되기 전 그가 죽는 바람에 결국 '체인 드라이브'는 미완성의 능력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카르킨의 영혼은 누군가 자신의 진전을 이어 '체인 드라이브'를 완성하기를 강력하게 바라고 있습니다.>
<[!]본디 미완성의 능력은 습득이 불가능한 바. 강제 전이의 대가로 '능력 선택권' 5개가 소모됩니다.>
이에 베히문트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완성되지도 않은 능력을 습득하는데 무려 능력 선택권 '다섯 개'를 내놓으라니. 완전 날강도가 따로 없잖아?'
그 위력이 전혀 확인되지 않은 미완성의 능력.
그것을 위해 이미 검증된 능력 다섯 개를 포기한다니 미친 짓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이내 베히문트는 팔짱을 끼며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이도 아니고 바로 카르킨의 정수가 담긴 창술···. 이후 내가 이 창술을 완성시킬지는 모르겠지만 다섯 개 정도는 투자할만한 가치가 넘친다.'
이에 베히문트는 과감히 결단을 내렸다.
까짓꺼 완성 못하면 못하는 데로 쓰자는 생각에서였다.
<'체인 드라이브'를 습득하였습니다.>
베히문트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이었다.
<배틀 포인트 +1>
<'인형 조종술'을 습득하였습니다.>
뜬금 없는 메시지에 뒤를 돌아본 베히문트.
그곳에는 바닥에 쓰러져 싸늘하게 식어 있는 다크 엘프와 당황한 표정의 루쟌이 서있었다.
"왕자님 죄송합니다! 이 녀석이 왕자님이 생각에 잠긴 사이 이상한 행동을 하는 바람에···."
그러한 다크 엘프의 머리통에는 화살이 꽂혀 있었다.
물론 그 화살은 베히문트가 건내준 것으로 그 화살 촉에는 부패의 독이 듬뿍 발라져 있었다.
간접적인 사인(死因)임에도 시스템은 부패의 독에 대한 영향을 인정해준 모양이었다.
"괜찮다."
베히문트는 루쟌을 다독이며 말했다.
어차피 다크 엘프의 생사는 그에게 딱히 의미가 없는 바.
'이제 돌아가 엘리샤 왕녀에게 보상을 받는 일만 남았군.'
지금쯤이면 좀비 떼의 도시 습격 역시 종장에 이르렀을 터였다.
베히문트는 떠오르는 새벽 해를 바라보며 엘리샤 왕녀에게 무엇을 요구할까하고 그저 생각에 잠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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