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현재 도시의 전체적인 상황은?"
베히문트는 복면인에게 물었다.
"그게···."
이에 복면인은 엘리샤 왕녀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본래라면 자신의 주군인 엘리샤 왕녀의 허락이 떨어지기까지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는 것이 정상인 바.
하지만 베히문트를 보고 있자니 왠지 성실히 답변을 해야할 것만 같았다.
이에 엘리샤 왕녀는 한숨을 내뱉으며 말을 했다.
"후··· 말해보렴."
이에 복면인은 무엇 하나 빠트릴세라 요목조목 꼼꼼히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현재 도시의 대응 상황부터 시작하여 좀비 때의 수와 그 종류, 심지어 좀비가 된 카르킨의 위치까지···.
베히문트는 복면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현재 좀비가 된 카르킨이 묘지 최중심부에서 꼼짝을 하지 않고 있다는 건가?"
"네. 그렇습니다. 제 두 눈으로 카르킨님의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뭐지?"
복면인은 한참 뜸을 들어더니 이윽고 말을 이어갔다.
"그것이··· 마치 다른 좀비들이 카르킨님의 통솔을 따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좀비 킹(zombie king)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인가?"
"허윽. 죄, 죄송합니다. 제 어리석은 생각이옵니다."
베히문트는 팔짱을 끼고 곰곰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좀비 킹이라···.
정말로 카르킨이 좀비 킹으로 사자부활한 것이라면, 이것은 더 이상 단순한 문제가 아니게 된다.
통속적으로 좀비 킹이 된 자는 생에 탐욕스럽거나 죄를 많이 저지른 악독한 인물들이 된다고 전해지는 바.
이후 대영웅 카르킨의 평가마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베히문트는 엘리샤 왕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잠시 고민을 하는가 싶더니 이내 창을 내려놓았다.
강단 있는 성격치고는 다행히도 융통성이 없지는 않는 모양.
이로써 베히문트와 엘리샤 왕녀는 임시적이나마 동맹을 채결한 것에 더해 그녀에게 큰 빚 하나를 지게 한 셈이었다.
<엘리샤 왕녀와 임시동맹을 맺었습니다.>
<이후 퀘스트 '카르킨 토벌'을 훌륭하게 마무리 지을 시, 엘리샤 왕녀는 가장 큰 우군이 되어줄 것입니다.>
그렇게 상태창의 메시지를 훑어보는 찰나.
그러한 베히문트의 모습을 바라보던 엘리샤 왕녀는 문득 자신의 고혹적인 턱선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정말로 내가 알고 있던 7왕자가 맞는지 의심스럽구나."
"무슨 말씀이시죠?"
"내가 알고 있던 베히문트는 분명 천재는 맞았지.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마법에 한정된 것. 방금 전 싸움도 그렇고 말 한마디로 자신이 유리한 상황을 만드는 것고 그렇고. 마치 외할아버님을 상대하고 있는 것만 같아."
이에 베헤문트는 옅은 미소를 지을 뿐 딱히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대화의 화제를 바꾸기 위해 포격음이 연신 들려오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왕녀님은 병사들은 지휘하여 좀비들이 더 이상 도시로 못 넘어오게 하십시오. 그 사이 제가 공동묘지를 돌파하여 카르킨과 승부를 보겠습니다."
이에 엘리샤 왕녀는 무어라 말을 하려다 입을 꾹하고 다물었다.
블레이드 라이온의 가호도 사용했음은 물론이고 큰 내상을 입은 바.
무리해서 동행해봐야 짐덩어리가 될 것임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대신 왕녀는 고개를 돌려 복면인을 향해 말하였다.
"듣거라."
"네, 주군."
"7왕자를 따라가 카르킨님이 자리한 장소를 알려주거라. 상황이 긴급한 바 한치의 실수도 없도록."
"명 받들겠습니다."
그렇게 세 사람은 동시에 여관을 떠나갔다.
그리고 그곳에 남은 것은 벽이 훤히 뚫린 전망 좋은? 여관방과 그러한 여관을 사고도 남을 엘리샤 왕녀가 두고간 금화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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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온갖 암투에 노출되어 있는 왕위계승자인 왕자와 왕녀들은 남들보다 빠른 정보를 얻기 위해, 자신들의 눈이 되어줄 이들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그런 눈들은 저마다 특별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는데, 바로 이 복면인도 그런 부류였다.
"왕자님, 앞쪽에 좀비 10체가 땅 속에 숨어 있습니다."
"알겠네."
베히문트는 활의 시위를 당기고는 복면인이 말해주었던 지점을 향해 화살을 쏘아냈다.
그러자 그 땅에서는 검붉은 피가 번져나오며 상태창에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배틀 포인트+1>
<배틀 포인트+1>
<배틀 포인트+1>
······.
'과연 엘리샤 왕녀가 자신의 눈으로 쓸만하군.'
그와 동행한 결과 전투 센스는 영 꽝이었지만 주변 수색이라던가 은신 발견에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다.
최소 lv.6 이상의 능력.
애초에 눈들은 정보를 습득하는데 특화되었기에 최선의 인선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자네···."
"루쟌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왕자님."
"루쟌 자네가 내 정체를 꿰뚫어보고 엘리샤 왕녀에게 보고를 한 것인가?"
"아, 네, 그렇습니다. 왕자님."
베히문트의 물음에 루쟌은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이에 베히문트는 그저 삐뚜름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내 변장술은 이제 lv.5. 그 수준의 변장술을 간파해낼 정도라면 그녀의 주변으로 암살자가 다가가기도 힘들겠군.'
변장술이 있다면 그것을 간파해내는 능력이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닌 바.
'나도 기회가 된다면 내 눈이 되어줄 사람을 찾아봐야겠군.'
물론 베히문트에게는 '묘랑족'이 있었지만 그들 대부분은 전사적 성향을 띄고 있었다.
더욱이 그들은 광산에서 남몰래 베히문트의 청을 들어주며 '야성해방'으로 새로이 진화를 하고 있는 상황.
눈으로 쓰기에는 알맞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던 베히문트를 루쟌이 나즈막히 불렀다.
"왕자님."
"···알고 있네."
베히문트는 조용히 <기척 감지 lv.3>를 사용했다.
그러자 나무 뒤에 숨어 있는 열 명의 형상이 감지되었다.
"나와라. 나무 뒤에 숨어 있는 거 알고 있다."
베히문트의 말에 그들은 순식간에 몸을 움직여 모습을 드러냈다.
"모른 채 지나갔으면 목숨만은 살려주려 했거늘."
"네가 명을 재촉하는구나."
"오히려 잘 됐지. 좀비 하나라도 더 만들어야 돈 값하는 거 아니겠어?"
그렇게 저들끼리 떠들어대는 이들은 좀비가 아닌 살아 있는 인간이었다.
더욱이 이들은 이 상황과 연관이 있어 보였다.
베히문트는 품에서 철검을 꺼내들며 말했다.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데 다섯 입이나 필요하지는 않지."
그렇게 베히문트의 신형이 흐릿해지며 싸움이 다시금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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