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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로 님의 서재입니다.

마지막 봄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SF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7.08.21 01:30
최근연재일 :
2021.02.13 09:16
연재수 :
116 회
조회수 :
14,524
추천수 :
182
글자수 :
530,484

작성
18.05.29 22:11
조회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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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7쪽

68화

DUMMY

상훈이 사이드 브레이크를 젖히고 엑셀을 밟자 자동차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동차는 곧바로 뻗은 도로를 향해 달려나갔다. 타이어는 무릎께까지 올라오는 눈높이에도 불구하고 기압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폭발한다거나 하지 않고 잘 굴러갔다. 길목을 지날 때마다 차량의 꽁무니 뒤편에서는 진흙이 섞인 새하얀 안개가 마구 솟구쳤다.


봄이는 덜컹거리는 자동차 시트에 등을 기대고 조수석 옆유리에 맺힌 수증기가 물방울이 되어 창문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조용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윽고 그 물방울들이 완전히 갈라져 없어지자 봄이는 생각에 잠겼다. 커다란 한숨이 폐 깊은 곳에서부터 밀려 올라왔다. 머릿속이 마치 팽이처럼 빙빙 돌았지만 더 이상 그녀는 아무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봄이는 결국 원래 존재했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그녀는 갑자기 우울해졌다. 이 세상은 봄이가 바라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한 번만 더 무엇인가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기라도 하면 더 이상 견디지 못할 것만 같았다. 봄이가 아무리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운명과 맞선다고 하더라도 이 거대한 운명이라는 소용돌이는 그녀가 다시 일어날 때마다 몇 번이고 그녀를 통째로 집어삼킬 뿐이었다. 점점 봄이의 어깨에서 자신감이 빠져나갔다. 그녀가 품었던 작은 소망은 끝없이 몰아치는 매서운 눈보라에 파묻혀 사라져버렸다. 가족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마저도 전부 어디론가로 흩어졌다. 봄이는 자신의 가슴 속 깊숙한 곳에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봄이도 언젠가는 자신이 커다란 난관에 부딪힐 때가 오리라고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지금 그녀가 느끼는 가슴이 텅 빈 공허함은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 사실을 되새기자 가슴이 쓰라렸다. 그 사실을 전부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더욱 더 무력하게만 느껴졌다.


질주하던 차량의 타이어가 얼음에 부딪히자 차량의 차체가 크게 흔들렸다. 봄이는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쥐어쌌다. 생각하기 쉬웠던 근본적인 질문들이 봄이의 뇌리에 날아와 꽂혔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공공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이제 그들은 영락없는 도망자 신세가 되어버렸다. 또 다시 혼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무 곳에서도 손을 벌릴 수 없었고, 누구도 그들을 환영해 줄 것 같지 않았다. 봄이에게는 익숙한 일이었지만, 그녀는 생존을 위해 끝없이 반복되는 윤회와도 같은 사투에 그만 질려버렸다. 더 이상 목숨을 담보로 내건 위험한 도박에 말려들고 싶지 않았다. 정말로 이상하지 않은가.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한다니. 만약 그래야만 한다면, 그것은 또 무엇을 위해서일까? ‘목숨’을 걸면서까지 ‘생존’ 해야 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어젯밤까지만 해도 봄이에게는 분명히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 것도 없었다. 모든 것이 전부 다 부질없이 느껴졌다. 남아있는 것은 후회뿐이었다. 더 이상 봄이에게는 아무런 의지도, 의혹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저씨, 우린 이제 어디로 가야 하죠?”


봄이가 먼저 침묵을 깼다. 그녀는 앞유리에 쌓이는 눈더미들을 정신없이 밀어내는 와이퍼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로 말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상훈이 봄이를 한번 힐끗 쳐다보고 나서 말했다.


“생각 중이야. 이 쪽 근방은 솔직히 나도 길을 잘 몰라. 우선 당장은 눈더미가 높지 않은 길을 따라가고 있긴 한데 아직까지는 모르는 길이야. 조금 더 가봐야겠어.”


상훈이 그렇게 말하며 시선을 다시 운전대로 돌렸다. 봄이가 대답하지 않자 차량 내부는 다시 엔진 소리만으로 가득 차버렸다. 고개를 숙인 봄이의 머리카락이 얼굴을 덮어 그녀의 눈가를 완전히 가렸다. 상훈은 그런 봄이의 눈치를 살피고 나서 조심스럽게 한 마디 던졌다.


“음, 봄아. 괜한 참견일지도 모르지만..... 가족 일은 정말 유감이구나.”


봄이는 그의 한 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곧 거의 풀린 눈으로 말했다.


“아저씨가 왜 사과해요? 잘못한 것도 없는데.”


봄이가 딱잘라 말하자 상훈이 대답했다.


“그런 건 아니고, 혹시 네가 마음에 담아두고 있지 않을까 해서. 만약 담아두고 있으면 다 잊어버려.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야.”


“아뇨.”


상훈이 말을 미처 마무리짓기도 전에 봄이가 끼어들었다. 상훈은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저, 이제 그만 끝내려구요.”


그 말을 들은 상훈의 눈썹이 치켜올라갔다. 봄이는 타고 있던 차량의 속도가 약간 줄어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끝내다니, 뭘 끝내겠다는 거야?”


상훈은 봄이를 똑바로 쳐다보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 같았지만 차마 운전대에서 눈을 뗄 수는 없는 것 같았다. 봄이는 주저하지 않고 이야기를 마저 꺼내놓았다.


“내가 하고 있는 거 말이에요. 시시하고 부질없는 가족 찾는 거.”


상훈의 눈동자가 커졌다. 봄이를 저지하고 싶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끝내겠다니. 네 하나뿐인 가족이잖아. 절대로 포기해선 안 돼. 안부가 걱정되지도 않아? 그 쪽은 분명히 온 나라를 뒤지면서 널 찾아다니고 있을 거야.”


그 말을 들은 봄이는 해탈하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아뇨. 이제 그만할래요. 나는 가족이 정확히 어떤 건지는 솔직히 잘 몰라요. 그렇지만 가족 같은 건..... 저에게 있어선 그저 소망에 지나지 않는 것 같아요. 누구나 하나쯤은 간절히 원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 건 대부분 존재하지 않아요. 어디까지나 ‘소망’ 일 뿐이니까.”


상훈은 봄이의 말뜻을 이해한 것 같았지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잠자코 듣기만 했다. 봄이는 말을 계속 이었다.


“....이제 지쳤어요. 난 이제 더 이상 가족이니 뭐니 하는 어설픈 소망에 목숨 걸지 않을 거예요. 굳이 이렇게까지 내가 죽을 고비를 넘겨가면서까지 찾아야 하나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건가요? 도대체 가족이란 게 뭔데요? 찾는 사람 속은 다 뒤집어 놓고 정작 자기들은 어딘가에 처박혀서 코빼기도 안 보이는 사람들인가요? 이젠 지긋지긋해요. 솔직히 말해서 회의감마저 들어요. 지금까지 내가 뭐 때문에 이 고생을 했나 싶기도 하고요.”


상훈은 여전히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심각한 얼굴로 시선을 내리깔고 운전대만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봄이가 다시 말을 꺼냈다.


“집으로 돌아가신다고 하셨죠?”


상훈은 완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마치 봄이가 다음에 꺼낼 말을 예상하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렇다면 더 이상 저한테는 볼 일 없으시겠네요.”


상훈이 고개를 돌려 봄이를 쳐다보았다.


“여기서부터는 따로 가요. 내려주세요.”


작가의말

감사함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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