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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로 님의 서재입니다.

마지막 봄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SF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7.08.21 01:30
최근연재일 :
2021.02.13 09:16
연재수 :
116 회
조회수 :
14,521
추천수 :
182
글자수 :
530,484

작성
18.05.29 05:20
조회
69
추천
1
글자
7쪽

67화

DUMMY

코를 다친 경찰관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어디론가로 가 버렸다. 그러자 다른 경찰관은 그를 뒤따라가면서도 이쪽을 수십 번 돌아보다가 이내 그를 따라 사라졌다.


상훈은 무릎을 짚고 주저앉은 채로 눈보라 속으로 사라져가는 경찰관들을 넋이 빠진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봄이는 고개만 가까스로 들고 있었다. 경찰관들이 완전히 사라지자 노인은 상훈에게로 다가와 그의 손을 붙잡아 일으켜 주었다.


“다친 데는 없나?”


상훈이 묵묵부답하자 노인은 봄이에게로 다가가 그녀를 부축하며 말했다.


“망할 개자식들.”


상훈이 다리를 절며 노인에게로 몇 걸음 다가갔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그 녀석이 어르신을 어떻게 알아봤던 겁니까?”


노인이 어깨를 떨며 말했다.


“아주 먼 예전에 나에게 빚을 하나 졌어. 그 녀석은 내 오랜 친구야. 아니, 친구라기 보다는 은인사이에 더 가깝겠군. 벌써 5년도 더 된 이야기야. 말하자면 길어.”


엎드려 있던 봄이는 노인을 말을 듣고 나자 어젯밤 천막 바로 앞에서 마주쳤던 경찰관의 인상이 떠올랐다. 체격이 크고 험상궂은 남자..... 천막에서 노인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이 그 사람이었나?


노인이 쭈그려 앉아 봄이의 어깨를 붙잡아 주려고 했으나 그녀는 손을 내저었다.


“괜찮아요. 걸을 수 있어요.”


봄이는 심호흡을 한 번 하더니 눈길에서 팔을 짚고 일어섰다. 그녀의 온 몸은 눈과 섞인 진흙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노인은 봄이의 그 모습을 보더니 눈을 찡그리며 혀를 찼다.


“젠장, 완전히 엉망진창이군.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서 서둘러. 곧 해가 뜨기 시작할 거야. 동이 트기 전에 어서 여기서 벗어나야 해.”


“이제 어떡하실 겁니까? 함께 가지 않는 겁니까?”


“난 할 일이 남아 있어. 내 걱정은 말고 먼저들 가 있어.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군.”


봄이는 노인이 말한 ‘남아 있는 일’ 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았다.


“내 차는 차도 왼쪽 맨 끝 가장자리에 있어. 시간이 없어. 동이 터 버리면 모든 게 끝나버려. 더 이상 대꾸하지 말고 얼른 가게. 그리고 다음부턴 절대로 녀석들 눈에 띄어선 안 돼.”


노인은 그렇게 말하며 그들의 등을 떠밀었다. 봄이는 어떤 이유에선지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묘한 감정이 봄이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복잡한 감정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봄이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만난 지 사흘도 되지 않은 노인이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지냈던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렇기에 봄이는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과 헤어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봄이가 쉽사리 자리를 떠나지 못하자 노인은 그녀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그의 마지막 손길에 남은 온기에는 연민이 녹아 있었다. 그것이 노인이 봄이에게 표할 수 있는 마지막 감정이었다.


봄이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하얗게 센 머리카락의 허름한 차림의 노인이 서 있었다. 노인과 눈이 마주치자 봄이의 안에서 무엇인가가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그녀는 예전처럼 주저하지 않았다. 얼버무리지도 않았다.


“구해 주셔서,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말한 봄이의 코끝이 찡해졌다. 봄이는 다시는 약한 마음을 먹지 않으리라고 결심했지만, 그녀의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을 도저히 주체할 수가 없었다. 창피하게도 눈물이 나오려고 하자 봄이는 그들에게서 고개를 돌려 버렸다. 자신의 은인에게 아무것도 보답할 수 없는 자신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또 그런 은인에게 마지막까지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봄이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뒤돌아 걸어갔다. 차마 노인이 제 발로 자신의 시야에서 사라져가는 것을 보고만 있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뼈저리게 느껴지는 연민의 감정에 미련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봄이는 노인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최대한 빨리 추적자들이 쫓아오지 못하는 곳으로 걸었다. 조용히 봄이는 눈과 진흙으로 범벅이 된 옷소매로 눈가를 쓸어내렸다. 하지만 옷소매에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봄이는 통제소가 눈보라에 가려 거의 보이지 않을 때까지 뒤돌아보지 않고 걸었다. 상훈이 따라오든 말든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다리를 다친 그가 영 마음에 걸렸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뒤를 돌아보니 그는 다리를 절면서도 생각보다는 잘 따라오고 있었다. 그의 상태를 확인하고 나서 봄이는 노인이 말했던 큰 차도가 뻗어 있는 도로변으로 먼저 걸어갔다.


큰길 차도에는 자동차 바퀴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반쯤 녹은 눈길에 선명하게 새겨진 그 바퀴자국은 눈이 덮인 채 그대로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하지만 그 자국이 그들이 이틀 전에 남겼던 흔적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봄이는 울퉁불퉁하게 이어진 바퀴자국을 보고 아직은 자동차가 어마어마하게 쌓인 눈더미 속에 파묻힐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봄이는 노인이 말한 가장자리 자동차를 찾으려고 주차된 차량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차량들의 종류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다양했다. 짐칸에 눈이 산더미처럼 쌓인 트럭도 있었고, 기름 주입구가 열린 채로 속이 텅 비어있는 SUV도 있었다. 그렇게 늘어서 있는 차량들 가운데 봄이는 어딘가 눈에 익숙한 차량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봄이는 낯익은 차량 앞으로 걸어가서 눈으로 덮힌 범퍼를 손바닥으로 쓸어 보았다. 앞유리창에 쌓여있는 눈들도 쓸어내리자 운전석 백미러에 매달려 있던 곰인형 모양 악세사리가 보였다. 틀림없이 그 자동차였다. 봄이가 손에 쥐고 있던 자동차 열쇠의 버튼을 누르자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자동차 뒷면의 백라이트가 환하게 깜빡였다.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낀 봄이는 뒤돌아 소리쳤다.


“아저씨, 여기예요.”


상훈은 자동차 문에 손을 짚은 채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고는 차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았다. 봄이도 차량의 등 뒤로 돌아가 조수석에 앉았다. 봄이는 차량에 탑승하자마자 뒷좌석으로 몸을 뻗어 가방부터 챙겼다.


“젠장, 연료가 얼어있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벨트부터 매라. 출발할 거야.”


상훈은 그렇게 말하고서 안전벨트를 채우고 와이퍼를 작동시켰다. 다행히도 시동은 쉽게 걸렸다. 시동과 함께 켜진 라디오에서는 지지직대는 잡음만이 들려왔다. 다리 사이에서 히터가 뿜어져 나왔지만 상훈은 연료가 아깝다며 곧바로 히터를 꺼버렸다. 봄이는 그 사실에 불만을 품었지만 그 사실을 몸 밖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상훈이 사이드 브레이크를 젖히고 엑셀을 밟자 자동차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동차는 곧바로 뻗은 도로를 향해 달려나갔다.


작가의말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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