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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로 님의 서재입니다.

마지막 봄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SF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7.08.21 01:30
최근연재일 :
2021.02.13 09:16
연재수 :
116 회
조회수 :
14,511
추천수 :
182
글자수 :
530,484

작성
18.04.15 16:13
조회
85
추천
1
글자
8쪽

60화

DUMMY

봄이는 대충 걸친 망토를 부여잡고 공용 천막을 나섰다. 언제부터인가 눈이 녹아 질퍽해진 땅에 흥건히 고인 물웅덩이들이 노을빛을 받아 누렇게 빛나고 있었다. 슬슬 통제소 내부 자체전력이 하나둘씩 켜지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발전소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고, 기계 장치들이 작동되는 소리들도 들렸다. 군중들도 대부분 자기 천막으로 돌아가 버리고 얼마 남지 않았다. 다만 아까 전에 보았던 장터에만큼은 군중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봄이가 자신도 모르게 가만히 서서 장터 쪽을 바라보고 있자니 상훈이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흥미 있어?”


“아니, 됐어요.”


봄이가 몸을 돌리려 하자 상훈이 붙잡았다.


“그렇게 딱딱하게 굴지 말고 매사에 흥미를 좀 가져, 이 재미없는 녀석아. 그냥 가서 구경만 하자는 거야. 어차피 저 조그만 장사판은 그리 오랫동안 하지 않을 거야.”


“생각 없어요. 아저씨나 갔다 오세요.”


그대로 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늘어선 천막으로 걸어갔다. 봄이가 몇 발자국 더 걸어가고 나자 뒤에서 상훈이 외쳤다.


“그럼 먼저 가 있어. 먹을 것 좀 가져갈 테니까.”


그 말을 들은 봄이가 뒤를 돌아보았다. 이미 상훈은 다리를 절며 군중들 속으로 향하고 있었다. 봄이는 멀어지는 상훈의 등 뒤에다 대고 소리쳤다.


“딸기 우유나 좀 사오시던가요.”


봄이는 상훈의 반응을 기다리지 않고 왔던 길을 그대로 되돌아갔다. 왔던 길이 뒤바뀔 리가 없음에도 그녀는 무슨 이유에선지 자기 천막으로 돌아가는 데 꽤나 헤맸다. 그녀의 내부에서 여러가지 생각들이 마구 겹쳐서 자신의 몸 속이 마치 텅 빈 껍데기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봄이는 마음 속 깊이 묻어둔 근심덩어리가 많아서 그러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그럼에도 천막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무겁고 시시하기만 했다.


봄이는 돌아오면서 주위에 보이는 경찰관들의 수가 많아진 것을 느꼈다. 이들은 여전히 아무런 감정 없는 눈을 찡그린 채 기계적으로 순찰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몇 경찰관들은 모여서 어두운 얼굴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봄이는 제대로 엿듣지는 못했지만 좋은 소식은 아닌 것 같았다.


봄이는 왠지 모르게 이 사실이 거슬렸다. 이유는 몰랐다. 그저 누군가가 아물지 않은 상처를 뾰족한 것으로 콕콕 찌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굳이 그들의 눈에 띄고 싶지 않아서 그저 걸음만을 빠르게 재촉했다.


몇 분동안 헤매고 나서야 천막을 찾을 수 있었다. 가까스로 찾아 돌아간 천막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천막 안쪽에서 입구가 열어젖혀졌다. 흠칫 놀란 봄이가 반사적으로 걸음을 내빼자 열린 천막 안쪽에서 나오는 경찰관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약간 체격이 크고 험상궂은 인상을 가진 남자였다. 봄이는 딱히 의식하고 있지 않았음에도 본능적으로 자신을 조여오는 압박감에 휩싸였다. 단 1초도 그와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왜인지는 몰랐다. 봄이가 그의 눈을 잠깐이라도 더 보고 있었다면 하마터면 그녀의 심장에 피가 쏠려 폭발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험상궂은 경찰관은 봄이를 힐끗 훑어보더니 흥미 없다는 듯 어디론가 가 버렸다. 봄이는 그가 사라진 후에도 한참 동안이나 자신이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채 움직일 수 없었던 까닭을 알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정돈되지 않은 생각들만 먼지와 함께 휘날릴 뿐이었다. 아니, 봄이는 그 까닭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무의식이 그 까닭이 머릿속으로 구현되어 생각나게 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봄이는 바깥에서 한참을 서 있다가 온 힘이 다 빠진 채로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안에는 노인이 심오한 얼굴로 혼자서 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는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있었다.

봄이는 노인을 보자 말하고 싶은 욕구를 참지 못했다.


“방금 그 사람은 누구죠?”


노인은 손에 든 물건을 내려놓을 생각도 하지 않고 눈동자만 굴려 봄이를 올려다보았다. 노인의 눈동자에는 생기가 없어 보였다. 마치 방금 전에 천막을 빠져나온 경찰관이 이 노인의 핏기를 전부 빨아들이고 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자 봄이는 갑자기 소름이 끼쳤다.


노인은 봄이를 보자 얼굴색을 억지로 풀었다.


“그 녀석? 내 옛 친구야. 잠깐 이야기를 좀 했단다.”


“친구요? 무슨 이야기를 했죠?”


봄이는 자신도 모르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다그쳤다. 그런 봄이의 반응에 노인은 약간이나마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무슨 이야기를 했느냐고? 별 거 아니야. 그냥 조금 일에 차질이 생겼다는 모양이야. 많은 사람들을 관리하는 이곳 특성상 이런저런 사소한 일에도 꽤나 민감한가 봐.”


봄이는 어딘가 마음 한 구석이 불안해졌다. 그는 노인의 말꼬리를 더욱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혹시..... 자세하게 알려주실 수 있나요?”


평소답지 않은 봄이의 행동에 노인은 눈을 껌벅이며 말했다.


“문제가 있기는 한 모양이지만 그것까진 말 안 해줬어. 적어도 너희랑 관련있는 사태는 아닐 거야. 그건 그렇고 네 친구는 어디 있니?”


노인의 말이 사실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봄이는 그의 말을 듣자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쓸데없이 과민반응하는 것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달랬다.


“어디 들렀다가 온다는데, 금방 돌아올 거예요.”


노인은 입으로 수긍하는 듯한 소리를 내더니 봄이에게서 시선을 치우고 하던 일에 집중했다. 봄이는 노인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려고 그에게로 더 가까이 다가갔다.


“뭘 하시는 거죠?”


봄이가 그렇게 묻자 노인이 손에 들고 있던 장치를 들어올려 보여 주었다.


“이걸 말하는 거냐? 라디오야. 예전에는 많은 도움이 되어 주었는데 지금은 고장 났는지 작동이 안 돼. 고칠 수 있을까 싶어서 계속 들고 다녔는데 아무래도 글렀나 봐. 하긴 이걸 몇 년을 썼는데 그럴 만도 하지. 보내줄 때가 됐으면 얼른 보내줘 버려야지.”


노인이 라디오를 구석으로 밀어버리고 다시 자리에 털썩 앉았다. 봄이도 약간 떨어져서 그를 따라 바닥에 앉았다. 그녀가 자리에 앉자마자 노인이 기다렸다는 듯 말을 꺼냈다.


“봄아, 내가 아까......”


하지만 노인이 그렇게 말하기가 무섭게 천막 입구가 다시 열려버려서 그의 말은 허공으로 붕 떠버렸다. 천막으로 들어온 사람은 상훈이었다. 그는 양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이제 돌아오는 거예요?”


“음, 보다시피.”


봄이는 상훈이 양손에 든 물건들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품기라도 한 것처럼 말했다.


“......사 오셨어요?”


그 말을 들은 상훈은 코웃음을 쳤다.


“이런 곳에 그런 게 있을 것 같아?”


상훈이 그렇게 말하고는 봄이에게 조그만 페트병을 던졌다. 봄이는 얼떨결에 날아오는 페트병을 받아들었지만 그의 뻔뻔함에 어이가 없어서인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물이나 마셔, 이 녀석아.”


상훈은 그렇게 말하고는 봄이를 보란 듯이 지나쳐갔다. 봄이는 그런 상훈을 한참 동안이나 멍하니 바라보다가, 못마땅한 얼굴로 그를 노려보며 받아든 페트병을 뚜껑을 열어 벌컥벌컥 마셨다.


작가의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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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95화 20.11.28 30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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