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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로 님의 서재입니다.

마지막 봄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SF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7.08.21 01:30
최근연재일 :
2021.02.13 09:16
연재수 :
11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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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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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글자수 :
530,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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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05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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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옴니버스 특별편(정2민 작가)

DUMMY

상훈의 발걸음과 엇박자로 들려오던 봄이의 발걸음 소리가 어느 순간부터 뚝 끊겼다.


“ ?”


이상하게 여긴 상훈이 뒤를 돌아보자 봄이는 제 자리에 서서 조금도 움직이려 들지 않고 있었다.


평소에 오래 걸으면 발이 아프다고 오만가지 불평불만을 하긴 해도 묵묵히 따라는 왔기에 왜 저러나, 싶었지만 표정을 보아하니 뭔가 상당한 불만이 있는 모양이었다.


“ 뭐하고 있냐, 너.”

“ 더는 못가요.”

“ 뭔 소리야, 이건 또.”

“ 오늘 내로 못 씻으면 저 죽어요. 진짜로.”


그렇게 말하는 봄이의 표정은 단순한 짜증 같은 것이 아니라 생리적인 혐오감 같은 것들이 쌓이고 쌓이다 못해 터진 듯한, 그런 표정이었다.

상훈은 지금 같은 시대에 잘 꾸며서 다른 여자들에게 잘 보이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며칠 안 씻는다고 해서 딱히 불편한 것도 없었기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봄이는 한창 사춘기를 보낼 나이인 16살 여자아이였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해가 안 가는 바는 아니었지만, 상훈은 아무래도 일이 귀찮아 질 것만 같은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 음, 그거 꼭 오늘······.”

“ 네. 절대. 오늘. 당장. 목욕.”


꼭 오늘 해결해야하는 문제냐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매섭게 상훈의 말허리를 끊고 들어온다.

이젠 더 말하기 싫다는 듯이 최소한의 문법적 요소조차 생략한 채 핵심 단어들만 단호하게 강조했다.


예전 같았으면 욕실에 들어가 호스의 수전만 돌리면 할 수 있는 것이 목욕이었기에 목욕 같은 걸로 고민할 필요는 없었겠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애초에 욕실이 있을만한 멀쩡한 집도 없고, 집이 있다고 해도 수도가 끊긴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이야기다.

즉, 지금 이 시기에 정식 ‘목욕’을 하려면 꽤나 복잡한 절차를 걸쳐야 한다는 거다.

사방에 널린 게 얼음이라 대충 씻기만 하는 거라면 불만 피울 수 있다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다만 이건 아마 상훈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겠지.

상훈이 어쩌다 씻는 방법 그대로 사춘기 소녀인 봄이에게 씻으라고 했다간 얼마 남지 않은 총알의 주인공이 자신이 될 지도 모르니까.


이를 어쩐다, 상훈은 고민에 빠졌다.

목욕이 가능한 곳이라면 상훈도 알고 있다.

아예 전문적으로 욕실을 취급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공짜는 아니지만.

문제는 그런 곳에 들르려면 원래 목적지보다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갈 길이 멀어진다는 건 그만큼의 추가적인 위험부담을 감수해야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상훈은 쉽게 결정하기 힘들었다.


“ 역시 아무 얼음이나 녹여서 하는 건 안 되겠지?”

“ ...미쳤어요?”

“ 그래 알았다.”


봄이는 마치 굉장히 더러운 벌레라도 보는 표정으로 상훈에게 말했다.

역시 안 되는 모양이다.

안 될 거라고 예상하긴 했지만, 막상 정말 안 된다고 하니 상훈은 막막한 마음이 앞섰다.

어쩔 수 없지, 귀찮긴 하지만 무시했다간 이 고양이가 언제 발톱을 드러내고 할퀴어 댈지 모르니.




○●○





그 후로 20여분을 더 걸었다.

상훈이 알고 있는 한, 주위에 목욕을 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그 중에 가장 가까운 곳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 아저씨, 진짜로 씻을 수 있는 거 맞아요?”

“ 그래, 그 동안 망하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 뭐라고요?”


봄이의 신경이 예민해진 것은 그 동안 씻지 못했던 것도 있지만, 체력적으로 벅찼던 것도 있었다.

눈길을 걷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다리에 많은 피로가 간다.

발이 푹푹 빠지는 눈은 말할 것도 없고 빙판길이라도 만나면 중심을 잡느라 알게 모르게 체력이 소모된다.

건장한 청년인 상훈도 30분 정도 걸으면 슬슬 피로감이 느껴지기 마련인데, 16살 밖에 안 된 봄이가 그걸 견뎌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대견하기도 하고, 동시에 안쓰럽기도 했다.


“ 괜찮아?”

“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꽤나 오랜 시간 걸었기 때문에 봄이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자신 때문에 하지 않았어도 될 걸음을 한 것에 대해 미안한 모양인지, 상훈이 걱정스러운 낯빛을 하고 물어볼 때마다 일부러 씩씩한 척을 하며 발걸음을 떼었다.


“ 근데 이렇게까지 걸었는데 망했으면 진짜······.”

“ ... 너 잠깐만 저기 서봐.”

“ ?”


상훈은 길가에 아무렇게나 버려져있는 한 승용차 위를 가리켰다.

봄이는 무슨 영문인지 몰랐지만, 상훈이 아무 의미 없이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었기 때문에 일단은 승용차의 보닛 위에 올라갔다.


“ 이렇게요?”

“ 그래 내 쪽 보고.”


봄이는 아무 의심 없이 상훈의 쪽을 바라보고 섰다.

그러자 상훈은 기습적으로 뒤를 돌아 봄이의 허벅지를 양팔로 감싸 봄이를 들쳐 업었다.


“ 앗...!”

“ 으쌰.”

“ 이게 뭐하는 짓이에요! 빨리 내려 주세요!”


역시 업힌 봄이는 얌전하지 않았다.

양팔은 투닥투닥 상훈의 어깨를 때리고 있었고 양발은 이리저리 마구 흔들어 대서 제대로 업기 힘들 지경이었다.

상훈에게 한 가지 다행이었던 건 봄이의 몸무게가 생각보다 가벼웠다는 것일까.


“ 앞으로 20분 더 걸어야 되는데 괜찮겠냐? 내려달라면 내려줄게.”

“ 20분이요?”


방금 전까지 날뛰던 봄이는 20분정도 더 걸어야 된다고 하자마자 으음, 하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여자로써의 정조와 몸의 편안함, 16살 소녀에겐 아무래도 우열을 가리기 힘든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봄이가 상훈의 넓은 등에 몸을 맡기자마자 그 동안 계속 걷느라 느끼지 못했던 다리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기 때문이다.


“ 고민되지?”

“ 뭐가 웃겨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상훈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 버렸다. 비웃을 생각은 없었는데.


“ 이번엔 얌전히 아저씨의 호의를 받아들이도록 하죠. 다음엔 정말 화낼 거예요.”

“ 오냐.”






○●○






“ 다 왔다.”


20분을 더 걸어 도착한 곳은 목욕탕, 이라기보다는 대여소에 가까운 장소였다.

카운터, 같이 보이는 장소에 주인인 듯한 뚱뚱한 사람 한명, 그 옆으로 무슨 용도인지 모를 드럼통이 몇 개가 줄을 지어 진열되어 있었다.


“ 여기가 목욕탕이에요?”

“ 아마 그럴 거다. 나도 와본 건 처음이다만.”


봄이는 의심스럽다는 듯이 상훈에게 물었다.

상훈이 생각하기에도 상식적인 목욕탕과는 많이 달랐기에 자신 있게 대답 할 수 없었다.


“ 저 여기가 목욕탕 맞습니까?”

“ 맞소만.”


찾아오기는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었다.


“ 이런 걸로 어떻게 목욕을 하는지 좀 여쭐 수 있겠습니까?”

“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그냥 드럼통 하나 빌려다가 물 받고 들어가서 하는 거지 뭐.”


두세 겹으로 접힐 듯한 숨 막히는 뱃살이 특징적인 주인은 상훈의 물음에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 어른은 4천원, 아이는 3천원. 드럼통만 빌린다면 천원이오. 먹을 것이라든지 그런 것들이라면 보고 결정하겠소,”

“ 그렇게나 비싸나요?”

“ 그럼 알아서 뼈 빠지게 얼음 캐다가 하루 종일 녹이고 계시던가.”


빵 두 개에 오백 원인 걸 감안하면 꽤 비싼 가격이다. 딱히 시설이 좋은 것 같지 않은 것 까지 감안하면 더더욱.


“ 너도 목욕하러 온 거냐? 직접 받으면 무거울 텐데 아저씨가 직접 받아주마.”


주인은 고개를 내밀어 상훈의 뒤에 서있던 봄이에게 말을 걸었다.

상훈에게 퉁명스럽게 일관하는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친절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다.

봄이는 순수한 친절이 느껴지기 보다는 흑심 같은 것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봄이는 일단 상훈을 잡아끌었다.


“ 아저씨, 목욕할 수 있는 곳이 여기 밖에 없나요?”

“ 하나 더 있긴 하다만, 거기까지 가려면 또 걸어야 할 텐데. 맘에 안 드냐?”

“ 네. 소름끼칠 정도로요.”

“ 그래 알았다 그럼. 거기로 가보자.”


가격도 가격이었지만, 여기서 몸을 씻기에는 주인이라는 사람이 도저히 거부감이 들어서 못할 것 같았다.

왠지 모르게 씻고 있을 때 훔쳐본다거나, 성추행을 한다거나, 그럴 것만 같은 사람이었다.

주인은 제쳐놓는다고 해도 드럼통 안에 물을 받아놓고 그 안에서 씻어야 한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 근데 거기로 가려면 지하철도로 걸어야 할 거 같은데 괜찮겠어?”

“ 상관없어요. 차라리 눈길보다 나을 거 같네요.”





○●○





아까 상훈이 업어준 덕분에 힘이 들지는 않았지만 지하철도로 걷는 것은 그 나름대로 피곤하긴 마찬가지였다.

가끔 사람이 지나다니는 것 말고는 역으로서의 기능은 멈춘 지 이미 오래 전이다.

당연히 불같은 게 켜져 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손전등 하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 발 밑 조심해라.”


그리 멀지 않은 곳이긴 했지만, 상훈은 몇 가지 걱정되는 것이 있었다.

하나는 상훈과 봄이 향하고 있는 목욕탕도 방금 들렀던 곳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것.

다른 또 하나는 이런 환경이여서야 언제 습격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다.

상훈은 한발 한발 내딛으면서도 주변 환경에 신경을 날카롭게 곤두세웠다.


“ 아저씨, 어디서 이상한 소리 안 들려요?”


조금 전부터 점점 크게 들려오는 소리가 신경 쓰였는지, 봄이가 그렇게 물었다.

처음에 미세하게 들려올 때는 단순한 소음 같았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소리가 선명해지더니 이제는 액체가 떨어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이젠 코앞까지 온 것 같다.


“ 어, 저거 물 아니에요?”

“ 글쎄다······.”


봄이가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손전등을 비추자 확실히 투명한 액체가 통로 벽면의 균열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물 같은 게 지하 통로에서 흐를 리가 없었기 때문에 이 액체가 물이라고 쉽게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렇게 상훈은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 물 같은데요?”

“ 위험하게 뭐하는 짓이야! 위험한 화학 약품 같은 거면 어쩌려고 그래!”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이 액체의 정체를 밝힐 수 있을까, 심각하게 생각하던 상훈의 고민도 무색하게 봄이는 이미 떨어지는 액체에 손을 대고 있었다.


“ 에이 괜찮아요. 딱 봐도 물이였는데.”

“ ...앞으론 제발 조심 좀 해라.”


점성은 일절 없음. 냄새 없음. 투명함. 그리고 차가움. 다행히도 일단은 물 같았다.

상훈은 왜 이런 곳에서 물이 쏟아져 나오는 건지 궁금했지만, 일부러 벽을 파내면서 까지 그 이유를 알아내고 싶진 않았다.

어딘가의 지하수 같은 게 터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지 뭐.

한 가지 확실한건, 이런 곳이 예전부터 있었다면 목욕탕의 그 탐욕스러운 인간이 가만있지 않았을 테니, 최근에 터진 것일 거라는 거다.


“ 아저씨 저 그냥 여기서 씻을래요.”

“ 뭐라고?”

“ 여기서 씻는다구요. 어차피 지나가는 사람들도 없고. 게다가 어둡고.”

“ 이 물에다가 씻겠다고? 그럴 바에 그냥 아까 그 드럼통 빌려다가 따뜻한 물에 하지 그러냐.”

“ 미쳤어요? 여자애가 어떻게 드럼통에 들어가서 목욕을 해요. 게다가 전 그 주인, 영 꺼림칙해서 도저히 못하겠어요. 애초에 전 남이 있으면 목욕 못한다구요. 차라리 차가운 물에 씻고 말지.”


봄이의 입장에서 보면 상훈 자신도 남이 아닌가, 싶었지만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 하기야 나도 그 인간은 조금 마음에 안 들더라만은, 이것도 만만치 않게 미친 짓인 것 같구나.”

“ 그러니까 제가 씻을 동안 아저씨가 망을 잘 봐주셔야죠.”

“ ...정말 할 생각이냐?”

“ 말했잖아요. 전 오늘 못 씻으면 죽는다니까.”





○●○





상훈은 지금 망을 보고 있는 중이다.

상훈의 등 뒤에서는 천이 살갗을 스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 준비중이겠지?


“ ...말해두지만 그 손전등, 이쪽을 향했다간 바로 총 쏠 거예요.”

“ 너무한 거 아니냐?!”


봄이는 이제 맨발이 된 모양인지, 신발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 읏, 하아...”


지하 통로 안은 밖보다 비교적 따듯한 편이었지만, 역시 그 물을 씻는 용도로 쓰기에는 차가웠던 모양인지 봄이는 신음소리를 흘렸다.



“ 재촉해서 미안하다만, 빨리 끝내줬으면 좋겠어. 감기걸리는 것도 그렇지만 계속 여기 머무르다간 위험할 테니까.”

“ 아, 알겠으, 으니까, 저, 저기로 좀 가줄래요? 시, 신경 쓰여서 못 씻겠어요.”


저러다 정말 감기 걸리는 것 아닌가 걱정될 정도로 봄이의 목소리는 떨고 있었다.

저렇게 까지 씻어야 하나, 상훈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여자애는 여자애 나름의 사정이 있는 거겠지.

상훈은 봄이의 부탁에 멀찍이 떨어져서 주위를 살피기로 했다.




5분정도 지났을까.

아까부터 손전등을 키고 이리저리 둘러봐도 인기척은커녕 쥐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 들어올 때부터 생각한 거지만, 이렇게 따듯한데도 노숙하는 사람한명 없다는 사실에 상훈은 영 꺼림칙한 느낌을 털어 버릴 수 없었다.

아무래도 이 지하 통로엔 뭔가 있는 게 아닐까, 라고 생각했을 때였다.


터벅, 터벅.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던가.

저 멀리서 발자국 소리 같은 게 희미하지만 확실히 들렸다.

발자국 소리를 세어보니 두 명... 정도 인 것 같았다.


그들은 상훈의 위치에서도 들릴 정도로 큰 소리로 대화하고 있었다.

특히 그중 한 사람은 굉장히 흥분한 듯 했다.



“....장 ...잡아다가 ....싹 다 죽여 버려! ...의 ...들...”

“ ...은... 할 수 있겠어...”



정확히 들을 수는 없었지만, 잡아다가 싹 다 죽여 버리라는 것만큼은 확실히 들렸다.

게다가 그들의 손전등에 비친 그림자는 연장을 매고 있는 듯이 보였다.

... 아무래도 사냥꾼인 것 같았다.

이 정도 거리라면 앞으로 3분정도면 봄이가 있는 곳에 도달할 것이다.

빨리 돌아가서 봄이에게 말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

상훈은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벌떡 일어나 봄이가 있던 곳으로 내달렸다.




“ 봄! 봄아!”

“ 이런 미친...!”


상훈은 6분 정도 지났으니 대충 마무리 했을 거라고 지레 짐작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아닌 모양이었다.

상훈의 손전등에 비친 봄이의 모습은 미처 치마도 입지 못한 속옷차림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M60리볼버의 총구는 상훈 쪽을 향한 채였다.


“ 갑자기 튀어나와서 정말 미안하다만 지금 이 쪽으로 사냥꾼들이 오고 있으니까 빨리 숨어야 해!”

“ 뭐, 뭐라구요? 사냥꾼?”

“ 그래 사냥꾼이 온다고. 나머지는 나중에 입고 지금은 빨리 몸을 숨겨야 해!”

“ ...좀 이따 봐요, 진짜!”


봄이는 얼굴을 새빨갛게 하고도 빠르게 옷가지들을 챙겨 반대편 철도 쪽의 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상훈과 봄은 어두운 역 플랫폼의 후미진 곳에 몸을 숨기고 사냥꾼들을 기다렸다.


“ 거짓말이면 진짜 총 맞을 줄 알아요.”

“ 이런 걸로 내가 거짓말을 하겠냐······. 쉿!”


잠시 뒤 상훈이 방금 봤던 두 사람이 손전등을 킨 채 나타났다.

둘 다 중년의 남성인 것 같았다.


“ 확실히 좀 적어진 것 같지? 그 놈의 쥐새끼들 정말.”

“ 쥐새끼 많은 것만 빼면 참 살만한 곳인데 말여. 흑사병이 고것들 때매 돈다는데 무서워서 살 수가 있어야지.”

“ 그래도 이 주위는 좀 깨끗해진 것 같군. 저기로 가보세.”

“ 또 잡는 거여? 그냥 이짝만 괜찮아지면 된 거 아니여?”


두 중년 남성의 대화소리는 점점 멀어져 갔다.

아무래도 잡아 죽인다는 이야기는 이 부근의 쥐들의 이야기였던 모양이다.


“ 후우······.”


봄이는 멀어져가는 남자들의 모습을 보며 어이가 없어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크게 한숨을 쉬었다.


“ 음, 저, 봄아. 미안하다.”

“ 됐어요, 이 변태야!!”

“ 야, 어디가, 같이 가!”





○●○






이미 목욕이라는 당초의 목적을 달성했기에 상훈과 봄은 원래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이렇게만 보면 평소와는 다름없는 모습이었지만, 아무래도 아까전의 일이 풀리지 않았는지 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걷고 있었다.


“ 아직도 화났어?”

“ ······.”

“ 미안하다니까. 정말 사냥꾼인줄 알았어.”

“ ······.”


상훈이 아무리 말을 걸어도 아무런 대답조차 하지 않는다.

사춘기 소녀에겐 속옷 차림을 보인 게 많이 화가 난 모양이었다.


“ 그래. 내가 뭘 해주면 화 풀래.”

“ ...뭐든 해 줄거에요?”

“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해주마.”

드디어 입을 굳게 닫고 있던 봄이 상훈의 말에 관심을 보였다.

봄이가 말하기 시작한 것은 기뻤지만, 들어주기 힘든 부탁을 말하면 어쩌나 상훈은 속으로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이어진 봄이의 말은 상훈의 예상 밖의 것이었다.


“ ... 그럼 업어주세요. 한 30분 정도만.”

“ 진짜야? 너 이런 거 싫어하는 거 아니었냐?”

“ 정말 싫어하긴 하지만, 다리 아프니까 업어달라는 거예요. 절대 다른 뜻은 없으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 ? 뭐 그 정도야...”


상훈이 무릎을 굽혀 업을 준비를 하자 봄이는 상훈의 등에 냅다 몸을 던졌다.


“ 윽, 너 좀 과격하게 업히는 거 아니냐?”

“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손해 아니에요? 한번 업어주는 걸로 남의 속옷을 훔쳐보는게 어딨어요.”

“ 미안하다니까. 내가 일부러 봤니······.”

“ 아무래도 억울하니까 앞으로 업힘권 한 세 번 정도 킵 할래요. 괜찮죠?”

“ 업힘권이래.”

“ 괜찮죠??”

“ 그러시던가.”


아무래도 다음 목적지까지 굉장히 고생할 것 같은 느낌이다.


작가의말

< 노답이라서 즐거워? > 로 유명하신 정2민 작가님이십니다.  정2민 작가님께서 마지막 봄 특별단편을 써 주셨습니다. 


다른작가님께서 써주신 단편을 보니 내용이 참 훈훈하네요! 본편 내용과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으므로 부담없이 읽어보세요! 정2민 작가님께서 어디선가 지켜보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많은관심가져주세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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