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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로 님의 서재입니다.

마지막 봄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SF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7.08.21 01:30
최근연재일 :
2021.02.13 09:16
연재수 :
11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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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16
추천수 :
182
글자수 :
530,484

작성
18.04.02 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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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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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6화

DUMMY

“저게 뭐야, 도둑이다!”


“잠깐만, 저 녀석 뭐야?”


봄이의 바로 옆에서 그녀가 밀쳐져서 넘어지는 걸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고 있던 상훈이 당황해서 소리쳤다. 노인은 다른 곳을 보고 있었지만 바로 등 뒤에서 들리는 예사롭지 않은 소리를 듣고 뒤늦게 뒤를 돌아보았다.


봄이는 일어날 생각을 하지도 못한 채 땅에 주저앉아 상훈과 노인을 재빠르게 번갈아 쳐다보았다. 상훈은 키가 컸다. 제대로 영양을 보충하기 힘든 세상에서 살아온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나이 역시 20대 초중반정도로 보였다. 그런 젊고 건장한 남성이기는 하지만, 다리를 다치고 말았다. 노인은 거동과 일상생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어디까지나 노인일 뿐이었다. 봄이는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이 무슨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다.


봄이는 재빨리 지면에 손을 짚었다. 그리고는 땅을 박차고 일어섰다. 격렬하게 요동치는 심장과 끓어오르는 핏줄을 느낌과 동시에 그녀의 머릿속에서 어떤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희미한 기억이었다.


그녀의 눈 앞에 보이는 것은 넓은 모래바닥이었다. 바람이 부는 곳이었다. 바람에 휩쓸려 날아오는 모래알들이 금방이라도 눈을 찌를 것만 같았다. 그녀의 옆에도 누군가가 있었다. 모두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하지만 마치 무엇인가가 봄이의 머릿속을 마구 헤집어 놓기라도 했던 것처럼 그들이 누구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이내 그들은 동시에 신호에 맞춰 모래바닥을 박차고 달려나갔다. 그녀도 다른 사람들을 따라서 모래바닥을 박찼다. 그러나 봄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그녀가 박차고 달려나간 것은 모래바닥이 아니었다. 새하얗고 차가운 눈밭이었다.


“자리 좀 맡아 줘요. 금방 다녀올게요!”


봄이는 달려나가며 그렇게 소리쳤다. 뒤에서 상훈이 손을 뻗으며 그녀를 제지했지만 이미 봄이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봄이는 이미 멀리 떨어져서 희미하게 보이는 어떤 소년을 뒤쫓았다. 구호품 상자를 옆구리에 끼고 정신없이 도망치는 소년의 뒷모습이 미세하게 보이기는 했지만 자꾸만 인파들에 의해 가려졌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앞을 가로막는 인파들을 팔로 밀쳐내며 계속해서 달려 나갔다. 그녀가 팔로 군중들을 밀쳐낼 때마다 여기저기서 욕설이 들려왔다. 그녀를 향해 소리치는 사람도 있었다. 그녀의 팔을 붙잡으려 손을 뻗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봄이는 멈추지 않았다.


소년은 군중들 사이나 비좁은 틈을 요리조리 잘 도망쳤다. 봄이는 소년을 따라 좁은 곳을 비집고 들어가다가 소년이 꺾인 모퉁이 뒤로 도망치자 서둘러 틈새를 빠져나왔다. 하지만 앞서간 소년은 봄이를 돌아보느라 앞을 보지도 않은 채 정신없이 뛰어가다가 앞에 가로막힌 무엇인가에 의해 몸을 부딪히고 넘어져 버렸다.


소년과 부딪힌 어떤 남성은 소년에게 뭐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그는 넘어진 소년을 붙잡으려고 했지만 그의 뒤에 모여있던 일행으로 보이는 남자 몇 명이 말리는 바람에 생각이 바뀌었는지 그만두고 어디론가 가 버렸다. 멈춰 선 봄이는 넘어져서 일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소년에게로 몇 발자국 다가갔다. 그러자 소년은 일어나지도 못한 채 기겁하며 물러나면서 쌓여 있던 눈더미를 손으로 움켜쥐고 봄이에게로 마구 뿌렸다.


그 소년은 한동안 뭐라고 소리치며 눈덩이를 던져대다가 소용없다고 판단했는지 돌멩이를 집어들려는 순간 봄이가 그의 팔을 잡아챘다. 그러자 소년은 기괴한 소리를 지르며 마구 발버둥쳤다. 주먹으로 봄이의 배와 어깨를 마구 쥐어박았다. 이대로는 대화는 커녕 제대로 말도 못하겠다는 생각에 자신에게서 벗어나려는 소년을 진정시키려고 어깨를 세게 움켜잡고 소리쳤다.


“넌 누구야, 왜 그걸 훔쳐 달아난 거야?”


“이거 놔, 아빠가 나쁜 놈들이 가진 물건은 훔쳐도 된다고 했어. 아빠가 나쁜 놈들은 죽여도 된다고 했어. 도둑놈, 나쁜 놈! 악마!”


그 소년은 봄이의 얼굴을 때리려고 팔을 치켜들었으나 그녀에 의해 저지당했다. 그 후로도 계속해서 난동을 부리며 그녀에게서 도망치려고 했지만 봄이가 소년의 어깨를 더 강하게 움켜잡자 소년의 과격했던 행동이 조금씩 누그러졌다. 그러는 듯 싶더니 이내 그 소년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처음 보는 소년이었다. 그 소년은 중학생도 안 돼 보였고, 얼굴과 팔은 뼈가 훤히 드러날 정도로 삐쩍 말라 있었다. 그 소년이 공터 한가운데서 주저앉아 흐느끼자 순식간에 군중들이 몰려들었다. 봄이가 이 소년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 생각하던 도중 주위에 있던 경찰관 두 명이 소란을 알아채고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무슨 일입니까?”


“얘가 내 물건을 훔쳤어요.”


봄이를 쳐다보던 경찰관이 그녀의 말을 듣고 소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소년은 봄이의 손을 뿌리치고 달아나려 했지만 곧 경찰관에게 뒷덜미를 붙잡히고 말았다. 소년은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괴성을 질러댔다.


“놔, 더러운 손 치워! 누가 물건을 훔쳤다는 거야, 이 나쁜 놈들아. 나한테 손대면 아빠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 나쁜 놈들은 죽어야 해.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빼앗아야 해. 너희들 같은 나쁜 놈들이 세상을 이렇게 만든 거야. 너희들이 아빠를 그렇게 만든 거야. 나쁜 놈들이 저주한 거야. 아빠는 나쁜 놈들이 이 세상을 없애버린 거라고 했어. 나쁜 놈들이 우리들을 세상의 벼랑 끝까지 몰아넣은 거라고 했어. 다 너희들 때문이야. 다 너희 같은 나쁜 놈들 때문이야.”


소년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잡혀가면서도 끝까지 봄이의 얼굴을 손톱으로 할퀴려 했다. 경찰관들이 소년을 발버둥치지 못하도록 꽉 붙잡고는 말했다.


“이봐, 들었어? 나쁜 놈들이래.”


“헛소리야. 저 녀석 이번이 처음이 아냐. 정식 입소 절차는 밟고 온 건지 모르겠어. 어젯밤부터 헛소리를 지껄여대길래 붙잡아서 한 소리 했는데, 그 때도 비슷한 소리를 하더군. 저 녀석은 자기 이름이 뭔지도 몰라. 계속 아빠를 들먹이기는 하는데, 저 녀석 여기 들어올 때 혼자였어. 물어봐도 제대로 협조도 안 해. 미친 놈이야. 내쫓고 싶기는 한데 현행법상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강제로 쫓아내지는 못 해.


봄이는 경찰관이 말하는 현행법이라는 것을 듣고 잠깐 동안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대공황 사태 이후, 봄이는 이 땅에 마지막으로 남은 문명이 먼지가 되어 사라져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지금으로부터 3년도 채 되지 않은 일이었다. 인구 감소로 인해 화폐 가치는 자꾸만 낮아졌다. 기업들은 주가 폭락으로 문을 닫았고, 청년들은 일자리를 잃고 길바닥에 내몰렸다. 봄이는 약 50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것을 배워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결과였다. 이것은 봄이가 몇 년 전에 즐겨보던 세계 멸망 영화 따위가 아니었다. 이것은 영화처럼 갑자기 들이닥치지 않았다. 마야인들이 예언했던 운석 충돌 따위로 인해 들이닥친 재앙이 아니었다. 어리석은 인간들의 흑심에 분노한 대자연의 재앙 같은 것도 아니었다. 이것은 서서히 덮쳐왔다. 몇십 년에 걸쳐 인류에 드리우기 시작한 먹구름과도 같았다. 문명은 자연에 의해 멸망하지 않았다. 더 진보한 외계 생명체에 의해 멸망하지도 않았다. 그저 인류가 스스로 자초한 결과였다.


봄이는 현행법이란 게 있었다면, 왜 자신이 사냥꾼들에 의해 집에서 쫓겨나왔을 때 그 법이란 것이 자신을 보호해주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봄이는 법이라는 것은 절대 ‘선’이며,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고? 절대적인 ‘선’이라고? 그렇다면 자신이 ‘악’이 치켜세운 칼날에 의해 악몽과도 같았던 고통에 유린당하고 있을 때, 그 가증스러운 ‘선’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던 헌법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봄이는 ‘악’에 맞서기 위해 악행을 저질렀다. 그녀 역시 자기가 저지른 악행의 무게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정말로 악의에서 피어난 행동이었다면, 왜 ‘선’ 이라는 것은 그녀를 처단하지 않았을까? 만약 봄이가 당겼던 재앙의 방아쇠가 선의에서 피어난 행동이었다면, 왜 ‘악’이라는 것은 그녀를 삼켜버리지 않았을까?


봄이는 소년이 마지막까지 외친 ‘나쁜 놈’이라는 말이 잊혀지지 않았다. 나쁜 놈들, 나쁜 놈..... 소년의 찢어지는 절규가 머릿속에서 자꾸만 맴돌았다. 그 자리에 같이 있던 모든 사람들이 한 귀로 듣고 흘렸을 하찮은 말이었지만, 봄이에게는 사방이 꽉 막힌 밀폐된 공간에서 끝없이 들려오는 울림과도 같이 들렸다.‘나쁜 놈’이라는 것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다른 사람의 물건을 빼앗은 사람일까? 다른 사람을 위협한 사람일까? 아니면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다른 사람을 총으로 쏜 사람일까?


봄이는 갑자기 우울해졌다. 소년이 말한 ‘나쁜 놈’이란 게 혹시나 자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했다. 손가락이 떨렸다. 자기 자신이 너무나도 초라하게 느껴졌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랐지만 감정이 복받쳐 올라왔다. 슬퍼졌다. 창피하게도 눈물이 나려고 했다. 자기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했던 모든 행동들을‘선’은 명백한 ‘악’으로 못박아버렸다. 그리고 그 ‘선’이라는 것은 어쩌면, 결국에는 인간들이 스스로 세운 기준에 지나지 않았다.


봄이는 경찰관 두 명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소년을 끌고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몇 분씩이나 그 광경만을 가만히 지켜보고 서 있었다. 소년의 절규는 점점 멀어지다가, 이내 완전히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들 주위로 몰려들었던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다가 각자 갈 길을 갔다. 몰려든 군중들 중에서는 어린애들도 많았다.


순식간에 군중들은 샅샅이 흩어졌다. 봄이는 고통스럽게 외치던 소년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자, 벽면으로 몇 걸음 걸어가 상자를 주워들었다. 몸을 돌려서 돌아가려고 하는데 마침 그녀에게로 절뚝거리며 다가오는 한 사람이 보였다.


“멀리도 갔네. 넌 몸집이 작아서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으면 찾기도 어려워.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길이라도 잃으면 어쩌려고 그랬어. 영감한테 자리 맡아달라고 했으니까 얼른 돌아가자.”


상훈이 허리를 구부려 봄이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끌었다. 하지만 봄이는 고개를 숙인 채로 좀처럼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이런 봄이의 행동에 의문을 가진 상훈이 묻자 봄이는 잠깐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자그맣게 대답했다.


“아저씨.”


몇 초 후에 봄이가 말했다.


“저는 나쁜 놈일까요?”


상훈이 봄이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는 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표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표정 뿐만 아니라 그녀의 가슴 깊숙이 박혀 있는 비수가 무엇인지 역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봄이는 당장이라도 상훈의 품에 안겨 울고 싶었다. 그 소년처럼 속 시원하게 울음을 터뜨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상훈은 말없이 팔로 봄이의 어깨를 감쌌다. 그리고 봄이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러자 봄이의 발이 한 발자국 움직였다. 그들은 대기열로 돌아갔다.


사라진 가족을 찾기 위해서.


그들이 선택한 운명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



5. <운명의 길> 마침.


작가의말

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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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105화 21.01.05 32 1 12쪽
107 104화 21.01.03 65 1 13쪽
106 103화 20.12.21 46 0 9쪽
105 102화 20.12.20 27 0 16쪽
104 101화 20.12.16 63 1 12쪽
103 100화 20.12.11 29 0 13쪽
102 99화 20.12.08 38 0 12쪽
101 10. 종착점 20.12.07 37 0 11쪽
100 97화 20.12.02 58 0 13쪽
99 96화 20.11.29 67 0 11쪽
98 95화 20.11.28 30 0 14쪽
97 95화 20.11.23 41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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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94화 20.11.19 62 1 9쪽
94 93화 20.11.17 70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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