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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로 님의 서재입니다.

마지막 봄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SF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7.08.21 01:30
최근연재일 :
2021.02.13 09:16
연재수 :
116 회
조회수 :
14,485
추천수 :
182
글자수 :
530,484

작성
18.03.31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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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9쪽

55화

DUMMY

“이번에는 그런 멍청한 짓 안 할 거지?”


봄이는 상훈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군중들도 쳐다보았다. 대기열에 몰려 있는 군중들과 자신의 뒤에 서 있던 상훈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는 듯 싶더니 이내 고개를 들고 상훈을 쳐다보며 말했다.


“안 할게요.”


“착하다.”


그렇게 말하며 상훈이 왼손에 들고 있던 조그만 상자를 봄이에게로 내밀었다. 봄이는 상자를 보고 나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이게 뭐죠?”


“아까 말했잖아. 줄 서서 받은 구호품 상자야. 이른 아침부터 줄이 엄청나길래 보니까 배급을 주더라고. 네 것까지 받아놨어. 그런데 한 사람당 한 개씩이라고 우기면서 어찌나 주지 않으려고 하던지. 사실을 설명해 줘도 도통 알아듣지를 못해서 잠깐 언쟁이 있었어. 그런데 영감이 나서니까 금방 해결되지 뭐냐. 아마도 면식이 있는 사이 같던데.”


“안에 뭐가 들었죠?”


“먹을 거 몇 개랑 물 한 통이 들어있어. 또 뭐가 있더라.....”


봄이가 상훈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말을 잘랐다.


“잘 됐네요. 안 그래도 먹을 거 떨어졌는데.”


“얼마 안 되니까 그렇게 기대하지는 마. 저기 온다.”


상훈이 눈길을 돌리며 어떤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상훈의 손가락을 따라가 보니 그 곳에는 백발의 노인이 가죽 코트를 강하게 부여잡은 채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봄이에게는 오늘 처음 보는 노인의 얼굴이었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노인의 얼굴은 잔뜩 구겨져 있었다. 어딘가 피로해 보이기도 했다. 어깨에는 힘이 없었다. 그녀는 노인의 눈동자를 보자 어젯 밤 노인에게 말하고 나가서 천막으로 돌아오지 않은 것이 조금은 후회스러웠다. 어차피 상훈이 모두 노인에게 얘기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말을 듣고 난 노인이 별다른 불만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노인이 이해해줄 것이라고 스스로 믿었다.


“어디 갔다 오셨습니까?”


상훈이 그들의 위치를 알리며 소리쳤다. 그제서야 노인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그들에게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잠시 아는 친구랑 얘기를 좀 했네. 그런데 젊은이, 내가 아직 말하지 않았나? 적어도 이곳을 벗어나기 전까지는 눈에 띄는 행동은 되도록 하지 말게. 통제소니, 정부 관리 구역이니 하면서 권위적으로 나오고는 있지만 이곳 가장 구석지에 깔린 아스팔트 바닥 한 뼘까지 안전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말라는 소리네. 한 마디로 정부를 너무 신뢰하지 말라는 것이야. 비록 선한 의도이든, 꿍꿍이가 있는 것이든 무너지는 치안을 억지로 붙잡아 세우고는 있지만, 지금은 이미 옛날과는 달라. 달라져 버렸어. 겉으로는 관대한 척 환영해도 뒷골목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도리가 없네.


“아까 그 일 때문에 그러시는 거라면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무슨 소리예요? 아까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노인은 마치 봄이의 존재를 자각하지도 못하고 있었다는 듯 그녀를 보며 얼굴을 크게 움직였다. 그의 얼굴 군데군데 피어 있던 잔주름들이 움직였다.


“구호품을 나눠준다는 소식은 들었겠지? 그 때 잠깐 마찰이 있었네. 대단한 건 아니고.....”


노인이 어물쩡거리며 말을 흐렸다. 봄이의 왼쪽 눈썹이 미세하게 올라갔다. 궁금증이 든 봄이는 노인의 눈빛을 계속 쫓았지만 노인은 고개를 돌려 버렸다.


“아무래도 난 자네들이 걱정돼. 느낌이 좋지 않네. 믿고 싶지도 않고 말해주고 싶지도 않지만, 무언가가 심상치 않아. 내가 비록 자네들을 본 지 몇 시간도 안 되었다고는 해도, 바위가 내 숨통을 강하게 짓누르는 것처럼 마음이 평탄치가 않네. 나는 점술가도 아니고 점치기에는 소질이 없지만, 아까 전에 경찰들이 자네를 대하는 태도가 뭔가 이상했어. 아니, 이상하다고 느끼지는 않았지만 그런 게 있었어. 묻고 싶은 게 산더미 같은데...... 자세하게 따지고 들 근거가 없기 때문에 더 이상 캐묻지는 않겠네.”


봄이가 들고 있던 상자를 양 팔로 껴안아 가슴 속에 품으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요.”


“아니지, 아니야. 아직 섣불리 판단하기는 일러. 조금 더 지켜봐야겠어. 이 이야긴 그만 하도록 하자......”


노인은 봄이의 물음에도 계속해서 뭐라고 중얼거리기만 하며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상훈은 그저 먼 곳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 불편한 상황에 답답함을 느낀 봄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런데 할아버지, 아저씨가 말해주셨는데 전화가 된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요?”


봄이의 물음에도 아랑곳없이 노인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시선을 불안정하게 흩뜨렸다. 봄이가 노인의 팔을 쿡쿡 찌르며 다시 한 번 되묻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노인이 대답했다.


“전화가 왜 되냐고? 그거야 모르지. 전화 자체는 예전부터 됐었는데 자네들이 모르고 있었던 거야. 물론 지금 전화선 같은 전산망은 지금 복구하기가 쉽지 않아서, 통제소를 포함해서 아주 극소수의 장소에서만 관리되고 있네. 그것도 수가 적어서 정식으로 담당 부서에 예약을 해야 하지. 통신수단으로 부족하지는 않지만 물론 자유롭게 발수신이 되는 그런 방식은 아니네. 우선 차례가 되면 전국 각지의 전화선이 연결된 장소, 즉 통화가 가능한 장소가 보여. 통화가 되는 장소를 한 군데 고르면 창구 담당자가 통화 사유를 물어볼 거야. 예를 들어 너처럼 사람을 찾는다고 치면 네가 고른 장소에 찾는 사람이 있는지 알아봐주고 통보해주는 식이지. 만약 요구가 받아들여지고 고른 장소에 찾는 사람이 있다면, 후에 별도로 연락 기회를 줄 지도 모르네.”


봄이는 노인의 말을 반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녀는 마음 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노인이 설명하기 쉬운 말을 일부러 어렵게 꼬아놓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노인은 대기열을 다시 한 번 쓱 둘러보고는 말했다.


“보다시피 대기인원이 많이 몰려서 예약은 저녁 전까지만 받는다는 모양이네. 그리고 예약을 끝마친다고 하더라도 다시 통보되기까지는 아주 오래 걸리는데, 입소 가능 최장기간인 사흘 내로 연락이 오지 않을지도 모르네. 어쩔 때는 예약이 누락되기도 하는 모양인데, 그런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예약을 해야 하네. 자세하게는 차례가 오면 그 때 내가 도와주지.”


봄이는 마음이 앞섰지만 천천히 마음을 가다듬었다. 지금 자신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그렇지만 별다른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봄이의 머리 너머로 길게 늘어선 앞줄의 상황을 파악해보려고 했지만 대기열의 앞줄은 벌떼처럼 메운 사람들의 머리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기다려야겠지요. 조금 시간 걸리겠어요.”


봄이는 나름 목소리에 힘을 실으려고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목소리의 반은 성대를 통해 입 밖으로 나가고 나머지는 성대를 빠져나가지 못하고 목구멍에서 맴돌다 흩어졌다. 봄이는 자신이 말한 방식이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했지만 정정하려 들지 않았다. 봄이의 어깨에서는 곧 힘이 빠졌다.


그런 봄이의 감정을 꿰뚫어보았는지, 지금까지 생각에 잠겨 있던 상훈이 언제 그랬냐는 듯 봄이의 등을 손으로 두드리며 말했다.


“지켜보자. 잘 될 거야. 그건 그렇고 영감님, 그 일 말인데, 아까 말씀드리려고 한 겁니다만........”


“앗!”


봄이는 상훈이 다음에 꺼낼 말에 귀를 기울였지만, 이내 모든 감각이 산산이 조각나 버렸다. 그녀는 한동안 자신이 어떠한 일에 휘말리게 되었는지 자각하지 못했다. 무엇인가가 봄이의 몸에 거세게 부딪혔다. 아니, 그것은 틀림없는 사람이었다. 누군가가 봄이와 거세게 충돌했다.


아무런 대처를 하고 있지 않았던 봄이는 갑작스레 번개처럼 전해져오는 외부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중심을 잃고 말았다. 봄이는 손에 들고 있던 상자를 놓쳐버리고 눈길로 튕겨져 나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몇 발자국이나 밀려났는지, 불과 1초조차 되지 않았던 시간인데도 충돌한 순간으로부터의 기억이 마치 먼 옛날에 벌어졌었던 일처럼 흐릿해졌다.


그녀의 뇌세포가 산산이 조각나 전부 뇌리를 떠나가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혼란스러웠다. 봄이는 넘어진 채로 자세를 바로잡으려고 상반신을 일으켰다. 온 몸에 묻은 눈을 털지도 못하고 정면을 바라보자 누군가가 자신에게서 젖 먹던 힘을 다해 도망치고 있었다. 그것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작았다. 봄이보다 더 작았다.


봄이는 방금 벌어진 상황을 파악조차 하지 못했지만 하나의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그녀가 방금 전까지 들고 있던 상자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서둘러 두리번거리며 눈밭을 쓸어 보았다. 하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당황한 봄이의 머릿속에는 단 한 가지밖에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실행에 옮겼다.


“저게 뭐야, 도둑이다!”


작가의말

고맙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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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101화 20.12.16 63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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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97화 20.12.02 58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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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95화 20.11.28 30 0 14쪽
97 95화 20.11.23 41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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