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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로 님의 서재입니다.

마지막 봄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SF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7.08.21 01:30
최근연재일 :
2021.02.13 09:16
연재수 :
116 회
조회수 :
14,528
추천수 :
182
글자수 :
530,484

작성
17.11.12 04:02
조회
135
추천
2
글자
8쪽

30화

DUMMY

봄이는 텅 빈 매장을 내려와 날카로운 유리 파편들이 잔뜩 널브러진 입구로 향했다. 정가운데에 큰 구멍이 뻥 뚫린 입구 유리문이 매서운 찬바람을 매장 내부로 들여보내고 있었다. 바깥 공기는 여전히 쌀쌀하고 건조했다.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았던 실내 공기에 익숙해져 있던 봄이의 손가락이 한기를 느껴 자신도 모르게 파르르 떨렸다. 봄이는 요란하고 불규칙적으로 깨져 있는 유리문 틈새로 조심스럽게 발을 집어넣은 다음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아까 매장으로 들어왔을 때는 느끼지 못했지만 유리문 위쪽으로 말려올라가 접힌 셔터에 달린 채 녹슬어 버린 자물통에서 쇠비린내가 풍겨오는 것 같았다.


봄이보다 먼저 바깥으로 나온 상훈이 크게 한 번 심호흡을 하고 나서 말했다.


“보기와는 다르게 대담하구나. 그 상황에서 진짜로 방아쇠를 당겨버릴 줄이야. 진짜 총소리를 듣는 건 꽤 오랜만이라 반갑기는 한데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고막 터지는 건 똑같네. 다음부터는 말이라도 좀 해 주고 쏘던가 해.”


“그럼 이제 어디로 갈 생각이죠?”


봄이가 빈정대는 상훈을 완전히 무시한 채 즉답하자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어디로 가긴? 당연히 역으로 가 봐야지. 아까 그 겁쟁이가 친절하게도 아는 걸 전부 순순히 불어줬으니 우린 녀석의 조언이 헛되지 않게끔만 돌려주면 되는 거야. 물 마실래?”


상훈이 그렇게 말하고는 중년 남자가 굴려다 준 물통을 내밀었다. 봄이는 그걸 받아든 다음 입을 대지 않고 들이킨 후 그에게 돌려주었다. 물을 마신 봄이가 재킷 소매로 입가를 닦고 나서 말했다.


“지하철 역이라면 아까 전에 봤어요.”


“봤다고? 어디서.”


“은행 사거리 버스 정류장 옆에 지하보도가 있었어요.”


봄이가 그렇게 말하고는 상훈을 앞질러 걸어갔다. 그를 지나쳐 몇 걸음을 더 걷고 나서야 무언가 묘한 기분이 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다른 사람을 앞질러 걸어가는 건 이번이 최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었다. 봄이는 이전까지는 절대로 낯선 사람을 등진 채로 걸어가지 않았다. 낯선 사람에게 거리낌없이 빈틈 투성이인 등을 보여준다는 것은 돌발사태에 대응하기에 가장 취약한 상황이었으니까. 그렇지만 웬일인지 지금 자신은 낯선 사람인 상훈보다 훨씬 앞을 내딛고 있었다. 이 사실을 뒤늦게서야 알아챈 봄이는 걸음을 멈추었다. 평소의 봄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실수였다. 혹시 이 상훈이라는 존재는 이미 그녀가 스스로 인식하고 있던 ‘낯선 사람’의 기준을 벗어나기라도 했다는 것일까?


“...뭐 해요, 앞장서시죠.”


봄이가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정작 상훈은 그녀의 복잡한 심정이 가당치도 않다는 듯 아무 거리낌없이 그녀를 지나쳐갔지만 말이다. 봄이는 자신을 앞질러가는 그의 뒷모습을 잠깐 동안 더 응시하고 있다가 그를 따라갔다.


몇 분 동안 걸어가던 그들은 지하철 역 앞에 멈춰섰다. 눈에 파묻힌 채로 그대로 얼어붙은 이정표에서는 ‘노원’이라는 글씨가 또렷하게 적혀 있었다. 지하보도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으로 이어진 통로를 제외한 모든 사방이 유리로 만들어진 지붕과 철제 기둥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지하보도 왼편으로 이어지는 그늘에 가려진 콘크리트 담벽 아래에는 주인 없는 자전거가 잠금쇠로 묶여 있었다. 그 옆에는 자전거 잠금쇠가 하나 더 있었는데 그곳에는 자전거가 없었다. 누군가 강제로 잘라 간 모양이었다. 맞은편에는 빛을 잃어버린 신호등 한 쌍이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그 외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전단지 쪼가리나 깡통 따위의 쓰레기만이 굴러다닐 뿐이었다.


그들은 지하보도로 내려가면서 한 숨 돌릴 수 있었다. 황량했던 사거리처럼 역 내부 역시 텅 비어 있었다. 계단으로 내려가면서 그들은 빛이 사라져 버린 음료수 자판기와 화장실 왼편 구석에 잔뜩 비치된 ATM 입출금기 몇 대를 볼 수 있었다. 그와 마주보던 개찰구 오른편에는 민간용 방독면들이 강화유리에 담긴 캐비닛 상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개찰구는 플랫 형식이 아니었기 때문에 봄이는 왼손으로 스커트를 단단히 붙잡은 채로 역무실 옆을 기준으로 주욱 늘어선 개찰구를 낑낑거리며 넘어가야만 했다. 하지만 상훈은 이 광경을 지켜보고도 딱히 도와주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플랫폼으로 내려가자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은 터널에 덮힌 채로 끝없이 곧게 뻗어있던 철로가 드러났다. 플랫폼 내부에는 놀랍게도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코빼기도 안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소수의 사람들이 보였다. 봄이는 플랫폼에서 종이 상자 따위를 덮고 자는 부랑자들을 처음에는 야생을 넘나드는 털복숭이 동물이라고 생각했다. 몇몇 깨어 있던 부랑자들로부터 봄이를 흘겨보는 것 같은 시선이 느껴졌다. 이들은 플랫폼 도보에서 모닥불을 피운 채로 그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이들 부랑자들은 옷이라고도 할 수 없어 보이는 누더기 조각을 몇 겹 싸매서 껴입은 채로 모닥불 주위에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이 지나가던 플랫폼 아래에는 술병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봄이는 자신의 발 밑으로 굴러오는 술병에 다리가 걸리지 않도록 발로 밟아서 멈추게 했다.


그들이 길게 뻗은 플랫폼을 지나치자 모여 있던 부랑자들이 상훈을 보고는 황급히 자리를 떴다. 마치 무엇인가를 두려워하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들이 선로에서 내려 터널을 건너려 하자 얼굴을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수염이 덥수룩한 부랑자 들이 뒤에서 자기들끼리 수근거렸다.


“오랜만에 보는 젊은 아가씨군. 들어봐, 나한테도 전에 저 나이 또래의 딸이 하나 있었는데......”


봄이는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아 버린 터널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플랫폼 벽에 걸린 노선도에 따르면 그 쪽은 창동 방향이 확실했다. 봄이와 상훈이 가방에서 각자의 회중전등을 꺼내들었다. 터널을 걸으려 하니 봄이는 전에 상훈에게 백화점에서 했던 말이 왜인지 자꾸만 떠올랐다. 무엇인가가 마음에 걸리는 것 같았다. 상훈이 어둠을 향해 먼저 한 발짝 나아가려고 하는데 지금까지 이어지던 침묵을 참지 못한 봄이가 뭔가 이상하다는 말투로 말했다.


“저기, 아저씨.”


“왜.”


상훈이 텁텁하게 대답했다.


“왜인지는 몰라도, 아까부터 자꾸 신경쓰였는데요.”


상훈이 봄이의 다음 이어질 말을 기대하는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전에 백화점에서요, 제가 말해드렸던 삼촌 이야기 말이에요. 제가 전에 한 번 말하지 않았었나요?”


“무슨 이야기, 삼촌이 백화점에 데리고 갔었다는 이야기 말이냐?”


“아뇨, 학교가 없어서 서울로 내려왔었다는 이야기 말이에요.”


“글쎄다, 나는 처음 듣는데.”


“분명히 전에 말해드렸던 것 같은데요.”


“음, 나는 네가 삼촌이 있었다는 것 밖에 몰랐어.”


“이상하네, 분명히 전에 누구한테 한 번 말해 줬었던 것 같은데.....”


봄이는 뜬금없이 몰려오는 이상한 기분에 시선을 위로 향한 채로 머리를 짚었다.


작가의말

티말 님 코멘트 감사드려유요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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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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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89 티말
    작성일
    17.11.12 14:15
    No. 1

    독자 : 오래돼서 기억안나. 다시 보기 귀..
    봄 : 그럼 다시 보질말아. 흐음.. 기억이.. 안나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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