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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로 님의 서재입니다.

마지막 봄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SF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7.08.21 01:30
최근연재일 :
2021.02.13 09:16
연재수 :
116 회
조회수 :
14,514
추천수 :
182
글자수 :
530,484

작성
17.11.01 04:37
조회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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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8쪽

28화

DUMMY

2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는 멈추어 있었다. 그들은 삐걱거리는 발판을 밟으며 양쪽에 달려있는 핸드레일을 붙잡고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에스컬레이터를 통해올라가자마자 보이는 안내판과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은 채 굴러다니는 옷걸이들이 2층이 의류매장이라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조금은 봄이의 예상대로, 역시나 2층에도 크게 쓸 만한 물건은 없었다. 신상 옷들은 전부 창고로 돌아가 버린 것 같았고 진열대에는 재고로도 쓰지 못한 것 같은 헌 옷들만이 굴러다닐 뿐이었다. 사실 지금의 그들에게는 반짝반짝 광이 나는 신상 옷 같은 건 필요하지도 않았다. 상훈이 얼마 남아있지 않은 헌 옷들을 가방 속으로 집어넣자 그런 그의 행동에 의문을 가진 봄이가 그를 보며 말했다.


“옷가지들은 왜 챙기는 거죠?”


“몰라서 물어? 불 피우는 데에는 이만한 게 없거든. 너도 조금은 챙겨놓는 게 좋을 거야. 이왕이면 면으로 된 걸로.”


봄이는 지금까지 불을 피우는 데에는 휘발유나 장작만이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봄이의 어리숙한 착각일 뿐이었다. 봄이는 지금까지 자신이 몰랐었던 사실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상훈을 따라서 옷가지를 골라 가방 속으로 주워 담기 시작했다. 한참을 구겨 넣고 있는데 봄이는 자신의 뇌리에서 어떤 기억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예전에.... 삼촌이랑 같이 백화점에 온 적이 있었어요.”


“그래? 무슨 일로.”


사람의 목소리를 좀처럼 듣기 힘들어진 지금 상훈은 봄이가 의미 없이 걸어오는 말들을 환영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봄이도 그와 대화하는 것이 싫지 않았다. 어쩌면 그들이 서로 무언가 말이라도 꺼내지 않는다면 잔인하게 얼어붙은 바깥 세상에 파묻혀 들려오지 않는 사람 목소리를 영영 듣지 못하게 될까 두려워서였을지도 몰랐다. 봄이는 상훈이 자신이 꺼낸 말에 흥미를 보이자 계속 이야기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중학교에 가야 했는데 삼촌이랑 같이 살던 안성에는 그 때 당시에 중학교가 없었어요. 모두 문을 닫아 버렸죠. 왜 그랬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아마도 그때부터 경기 불황이 시작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우리가 살던 곳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도시랑은 거리가 좀 멀었거든요. 아무튼 그래서 중학교를 다니기 위해서는 서울로 내려와야 했는데, 삼촌이 마지막으로 중학교 입학 선물을 사준다면서 반강제로 데리고 왔어요.”


“좋았겠네. 나 때는 입학선물이라던가 그런 건 꿈도 못 꿨는데.”


상훈이 여전히 시선을 헌 옷가지들에 고정시킨 채로 대답했다. 봄이는 옷가지들을 담던 손을 잠깐 멈추고 계속 이야기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삼촌은 그때 뭘 그렇게 선물을 사주려고 했는지 모르겠어요. 돈이라도 많다면 모를까 당장 생계유지도 어려웠을 만큼 진짜 가난했는데. 제가 괜찮다고 마다했는데도 기어코 백화점으로 끌고 가서 선물을 사 주셨죠.”


“뭘 사주셨는데 그래? 그다지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인데.”


봄이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뭐 대단한 걸 사 주셨겠어요? 그냥 몇 천 원 하는 싸구려 잠바였어요. 분홍색에 모자가 달린 촌티 나는 잠바요.”


“네가 지금 입고 있는 그거 말이냐?”


봄이는 그 말을 듣고 한숨을 쉬고 나서 답답하다는 듯 힘없이 중얼거렸다.


“...요즘 누가 이런 걸 입는다고. 촌스러운 분홍색에다, 돈도 없으면서...”


“지금 네가 입고 있잖냐.”


“제 말 뜻이 지금 그게 아니잖...”


상훈이 비웃듯이 말하자 봄이가 얼굴을 찡그리고 맞받아쳤다. 그러나 봄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원지를 알 수 없는 눈부시게 밝은 빛이 그녀의 눈을 따갑게 비추었다. 봄이는 심장이 멎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내장이 이리저리 뒤틀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자신의 집(‘자신의’ 집은 아니었지만-) 문 앞에서 당했던 갑작스런 습격이 떠올랐다. 이 기억을 더듬으면서 생긴 단 한순간의 현기증에 의해 봄이는 숨이 턱하고 막히는 기분도 느꼈다.


그들은 놀라 눈을 반쯤 가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자세히 보니 불빛은 한 개가 아니었다. 족히 세 개는 되어 보이는 노란 회중전등 불빛이 봄이의 몸을 골고루 비추고 있었다. 빛의 역광 때문에 이들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껏 그들과는 면식이 없는 낯선 남성 세 명이라는 것 정도는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봄이가 오른손을 반사적으로 치마폭으로 옮기자 상훈이 그녀의 팔을 가로막았다. 이후 낯선 남성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공허한 매장 내부를 울렸다.


“너희들은 뭐야, 어디에서 들어온 거야?”


봄이는 그렇게 소리친 남성의 눈을 노려보며 맞받아치고 싶었지만 그들이 회중전등을 거둘 생각이 없어보였기 때문에 그의 눈을 쳐다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들은 계속해서 눈을 찡그린 채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아무 말이 없자 이번엔 아까의 목소리하고는 사뭇 다른 중후한 목소리가 들렸다.


“저것 좀 봐, 어린 여자애도 있어.”


“아까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렸잖아? 막아놓은 유리문을 깨고 들어온 모양이야.”


동시에 다른 남성의 목소리도 울렸다. 봄이가 욕이라도 한 번 해주려고 하는데 상훈이 그녀를 가로막고 나서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는 얼굴로 최대한 그들을 진정시키려는 어조로 먼저 대화를 시도했다.


“어, 저희는 그냥 떠돌던 장사꾼입니다. 먹을 것이나 입을 것을 찾다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상훈의 그 말에 낯선 남자들은 코웃음을 쳤다.


“장사꾼이라고? 그 여자애라도 파는 건가?”


“그 주둥아리 안 닥쳐?”


봄이가 수치심을 참지 못하고 입 밖으로 폭언을 쏟아냈다. 역광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말을 한 남자 중 하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뭐라고? 이 건방진 씨발년이....”


잘 보이지 않던 남성이 회중전등을 아래로 내리고 그림자 밖으로 걸어 나오자 그의 모습이 드러났다. 손에 든 각목을 질질 끄는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그는 귀를 울릴 만큼의 큰 목소리와는 달리 체구가 작았다. 머리는 손질하지 못했는지 눈을 가릴 정도로 긴 편이었다. 그의 짧은 다리가 봄이에게로 몇 발자국 다가오자 상훈이 다시 진정시켰다.


“진정하세요. 저희는 그저 남은 물자를 얻으러 왔을 뿐입니다. 필요한 만큼만 챙겨서 제 발로 나가겠습니다.”


“무슨 헛소리야? 여기는 우리 영역이야. 죽여버리기 전에 지금 당장 짐 다 내려놓고 썩 꺼져버려.”


“저희들이 가진 물건이 있습니다. 원하는 게 있으면 교환하는 건 어떻습니까? 그리고 저희가 정보가 하나 필요한데 말입니다.”


“형씨, 말귀를 못 알아 듣는군.”


봄이가 정신을 차리고 사방을 둘러보았을 때는 이미 세 명의 성인 남자가 저마다 제각각의 무기를 손에 든 채 그들을 빙 둘러싸고 있었다. 봄이의 머릿속이 다시 한번 지끈거렸다. 이번 마찰은 피해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싸움이 시작될 것처럼 그들을 죄어오는 숨막히는 긴장감이 그들 사이에서 감돌았다. 봄이는 치마폭에 오른손을 가져다 댔다. 서로가 서로를 노려보며 눈치를 보던 도중 체구가 작은 말라깽이 남자가 입맛을 다시며 말을 꺼냈다.


“교환을 하자고? 그거 좋지. 우리가 식량이랑 너희가 원하는 정보를 줄 테니, 너희는 그 여자애를 넘겨.”


작가의말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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