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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로 님의 서재입니다.

마지막 봄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SF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7.08.21 01:30
최근연재일 :
2021.02.13 09:16
연재수 :
116 회
조회수 :
14,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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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글자수 :
530,484

작성
17.10.10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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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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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유령 도시

DUMMY

3. 유령 도시


이미 시각은 오후 세 시를 웃돌고 있었다. 예전 세계의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큰 축을 담당했었던 시간은 지금 세계에서는 그다지 보잘것없는 것이었다. 그들은 한때 먼 훗날 인류를 지배하는 것은 그들이 만들어낸 인공지능도 아니고, 더 진보한 과학기술과 지능을 가진 외계생명체도 아닌 그들 자신들의 시대적 통념과도 같은 고작해야 납덩어리 한 가닥의 시곗바늘일 것이라고 예측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먼 옛날부터 사람들 사이에 퍼진 지구 멸망을 예언했던 마야인들의 종말론처럼 더 이상 인류가 시간에 지배당한다는 출처 없는 루머는 잊혀져 버렸다. 그들이 정말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시계나 보며 가만히 앉아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는 그 시간에 남을 짓밟고 올라서서 누구보다 빠르게 최정상에 걸린 사과를 얻기 위해 싸우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 마야인들의 종말론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봄이는 찌그러진 블랙박스가 달린 차량의 앞유리 범퍼에 손을 짚고 차량 창문 옆쪽의 깨진 공간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마치 칼날처럼 날카롭게 날이 서 있는 창문 조각에 목이 닿지 않도록 주의해서 차량 내부를 한 번 눈으로 흘겨보고 나서 말했다.


“그대로 얌전히 있네요.”


“늑장 부리지 말고 빨리 챙겨. 벌써 경찰이 수색에 나섰을지도 몰라.”


팔이 짧은 봄이가 검문을 대비해서 잠깐 두고 온 가방끈을 유리조각에 겨드랑이가 닿지 않도록 낑낑대며 잡아끌었다. 가죽 긁히는 소리가 몇 번 난 후 봄이가 가방에서 그녀의 유일한 동료나 다름없었던 M60 리볼버 권총을 꺼내 이리저리 살펴보고는 치맛폭에 다시 집어넣었다. 상훈이 봄이가 짐을 챙긴 걸 확인하고 나서 떠나려고 하는데 봄이가 한 번 더 입을 열었다.


“이렇게 도로에 멍하니 널브러져 있는 주인 없는 차들을 타고 갈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안 그래요?”


“그랬으면 좋을 지도 모르지.”


난생 처음 동물들을 본 어린애처럼 깨지고 찌그러져서 흉한 차량의 모습을 신기하게 쳐다보던 봄이에게 상훈이 대충 대꾸했다. 그러자 봄이는 귀찮다고 말하고 있는 듯한 그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차에게 보내던 흥미로운 눈길을 그에게로 돌렸다.


“아저씨는 그거 못해요? 있잖아요, 영화에서 나오는 막 열쇠 없이도 시동 거는.”


“핫와이어 말하는 거냐?”


“몰라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상훈이 차량 주위를 돌아보더니 열려 있는 자동차의 원유 주입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보이지? 벌써 안에 있는 기름은 모조리 싹 가져갔다는 뜻이야. 가솔린 같은 소중한 자원을 이런 세상에서 누가 가만히 놔두겠어? 가솔린이야말로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하면서도 구하기는 쉬운 그런 자원이지. 물론 지금은 이 근처 차들은 빠짐없이 싸그리 털린 것 같지만. 아니면 원유가 얼어붙어 버렸을지도 모르고. 기름도 없는 빈 껍데기에다가 시동은 걸어서 뭐 해?”


“그럼 아저씨 집에 기름이 그렇게 많았던 이유가 있었다는 거네요.”


“너 때문에 반이나 날아갔지만 말이야.”


낮게 공기를 뱉어내는 봄이의 입술을 본 상훈은 재빨리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그는 뒤에서 야유의 시선을 보내는 봄이를 무시한 채로 가방에서 도시 안내 지도 한 장을 꺼내 뒤집어 펼쳤다.


“여기서 큰길을 따라서 3킬로미터 정도 가다보면 사거리가 하나 나올 거야. 거긴 오래 전에는 번화가였어. 거기에 도착하면 쓸 만한 물건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정 꼬이면 거기엔 사람도 있을 테니까 물어봐도 될 테고. 거긴 지하철역도 있으니까 일단 거기에 도착하고 나서 다음 목적지를 생각해 보자고. 지하철이 아직까지 굴러다닐지는 잘 모르겠지만.”


“번화가였다구요? 그럼 백화점도 있겠네요.”


“장난감 가게도 있을 거야.”


봄이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덜 녹은 빙판길을 계속 걸어나갔다. 번화가에 점점 가까워지는데도 사람의 인적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봄이는 마음속으로는 내심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던 적은 한 두 번이 아니었는지라 잠자코 상훈을 따라 큰길을 건너갔다.


도로 블록마다 나란히 세워져 있는 눈 쌓인 이정표들이 보였다. 그 이정표들은 묘하게도 전부 하나같이 봄이가 가는 방향의 반대쪽으로 꺾여 있었다. 마치 이정표들이 봄이더러 이 쪽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봄이는 이 사실을 상훈에게 말해주려고 했지만 그랬다간 또다시 그의 귀찮음 섞인 빈정거림을 받아내야 할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그들은 그저 예전에 누군가가 남긴 유품일지도 모르는 조그만 지도 쪼가리에 의지한 채로 터벅터벅 걸어갈 뿐이었다.


한참을 말없이 걸어가던 봄이는 기나긴 정적에 가슴이 짓눌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먼저 말을 꺼낸 건 봄이였다. 하지만 이번에 꺼낸 그녀의 목소리는 지금까지와는 어딘가 달랐다. 이따금씩 농담을 건네던 그 말투가 아니라 무엇인가에 깊게 의문을 품고 있는 말투였다.


“그런데 아저씨는 혹시... 이 사태에 대해 아는 게 있나요?”


상훈은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봄이를 돌아보며 말했다.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냐?”


“내가 무슨 소리 하는 건지 아시잖아요. 대공황 말이에요. 단 몇 년 만에 우리나라를 완전히 망쳐버린 경제 사태요. 아저씨라면 어딘가 알 것 같은데요.”


“어떻게 내가 그걸 안다고 단정하지?”


봄이는 발길에 걸리는 돌멩이를 걷어차며 걷다가 그의 말을 듣고 행동을 멈추었다.


“전에 통제소에서요. 나한테 화낼 때 뭐라고 하셨잖아요.”


상훈은 머릿속에서 무엇인가를 곱씹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손바닥으로 목을 감싸고 봄이가 들으라는 것처럼 큰 소리로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자세히는 몰라. 요점만 간단히 말하자면 몇 년 전부터 최신 생명공학 기술이 상당히 유행했던 모양이야. 유니온에서 처음 기술 시연을 발표했을 때 정말 난리도 아니었지. 한마디로 이미 만들어진 인공 유전자를 사람의 체내에 이식하는 수술이었는데, 이게 크게 이슈가 되었었어. 생각해 봐. 자기 몸에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나, 장애가 있는 장애인들 같은 경우도 유전자만 이식하면 해결할 수가 있었어. 또 이 시술이 각광받았던 이유가 성형수술 같은 거랑은 다르게 가격이 정말 싸서 보급이 쉬웠다는 거지. 그야 유전자는 한 번 만들고 복제하면 그만이니까. 공개 된 바에 따르면 부작용도 없었어. 그래서 향후 몇 년 동안 이 검증되었다는 신기술이 날개 돋친 듯 퍼져나가기 시작한 거야.”


상훈이 잠시 말을 멈추고 침을 삼켰다. 그러자 봄이는 그 짧은 순간만큼도 못 기다리고 끼어들었다.


“유니온이 뭐죠?”


상훈이 봄이의 말에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았다.


“유니온을 몰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얼마나 영향력 있던 공학 연구기업이었는데. 하여튼 그 기업 덕분에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그토록 바라던 자신들의 이상이 실현되었다는 둥 기뻐했어. 그때까지만 해도 여론이 참 좋았었는데, 최근에 문제가 터진 거지.”


봄이는 그 말을 듣고 예전 아파트 단지에서 본 적이 있었던 어떤 생존자의 일기장을 떠올렸다. 세세한 내용까지 전부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일기장에서 본 내용과 소름돋을 만큼 일치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봄이의 궁금증이 풀려갈수록, 더욱 더 풀리지 않은 궁금증이 그녀의 머릿속을 끝없이 달궜다. 봄이는 시간을 등에 매고 말꼬리를 질질 끄는 상훈을 답답하게 쳐다보았다.


“왠지 노린 것 같지만, 부작용은 세계 인구의 40퍼센트가 이 검증되었다고 떠드는 시술을 받고 난 후에야 점차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어. 유전자를 끊임없이 복제하다 보니 유전형질의 동질화가 일어나버린 거지. 젊은 여자들은 출산도 못하는 몸이 되어버렸어. 당연히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유전자로 인해 세계인의 평균 수명도 단축되어 버렸어. 심하면 유전자 세포가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변이를 일으켜 그냥 돌연사해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았고. 그렇게 해서 짧은 시간 안에 사람 숫자는 거짓말처럼 확 줄어 버렸어...”


상훈이 말을 하다 말고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뒤를 돌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의 말을 유심히 듣고 있던 봄이가 맞받아쳤다.


“그럼 유니온은 어떻게 되었죠? 사람들이 멀쩡히 놔뒀을 것 같지는 않은데요.”


“어떻게 되었냐고? 세상 모든 여론이 유니온을 질타하기 시작했어. 아니, 그건 질타 수준이 아니었어. 그 때는 유니온 건물 앞에서 사람들 몇 백 명이 모여서 폭력시위를 벌이는 게 일상이었으니까. 그 여파로 유니온의 주가는 폭삭 내려앉아 버렸어. 한마디로 망해버린 거지.”


상훈이 팔을 들어올려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덕분에 그 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돌아가던 은행은 어떻게 되었을까? 더 이상 은행에 산더미처럼 쌓인 화폐가 세상에 돌지를 않으니 심각한 경제 대붕괴가 일어나버린 거야. 역사상 전례 없던 사상 최고의 하이퍼 디플레이션이 시작된 거지.”


“뭐, 대충 알겠어요. 어찌되었든 간에 지금 나랑은 상관없다는 뜻이네요.”


무서운 이야기를 듣고 느끼는 게 있는 아이처럼 귀 기울여 듣고 있던 봄이가 금세 흥미가 떨어졌다는 듯 이야기했다. 하지만 상훈은 그런 봄이를 한 번 쳐다보기만 한 다음 목소리를 낮게 깔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또 다시 들려오는 소문이 있어.”


“뭔데요?”


“분명히 유니온은 망해서 파산했어. 그런데 유니온은 평소에 분노한 시민들이 가끔 저지르는 본사 공격에 대비해서 따로 회사에서 고용한 사설 경비업체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들은 사라지지 않았던 모양이야.”


“그게 무슨 소리예요?”


봄이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상훈을 닦달했다. 그러나 상훈의 표정에서는 아까와 같은 여유로움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글쎄다. 거기까지는 나도 잘 모르겠구나.”


봄이는 멍하게 얼버무리는 상훈을 몇 번 다그쳤지만 상훈은 계속해서 모른다고만 일관할 뿐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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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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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89 티말
    작성일
    17.11.11 13:35
    No. 1

    음.. 뭔가 중요한게 나왔나 보군요.
    그런데 앞에 나왔던 그 이상한.. 상황과 관계가 있을까?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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