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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로 님의 서재입니다.

마지막 봄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SF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7.08.21 01:30
최근연재일 :
2021.02.13 09:16
연재수 :
116 회
조회수 :
14,493
추천수 :
182
글자수 :
530,484

작성
17.10.01 05:59
조회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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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6쪽

23화

DUMMY

봄이는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전부 내뱉었지만 어째서인지 마음 한 구석이 솜에 꽉 막힌 듯이 답답했다. 분명히 봄이는 마치 학교 선생님처럼 자신을 상대로 끝없이 설교나 해대서 듣는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상훈을 비꼬려고 자신이 심술을 부렸다는 건 인정했다. 사소한 부주의에서 시작된 말다툼이 점차 불씨가 커지듯이 번져 나갔고, 그 커져버린 불씨는 봄이에게서 상훈이 등을 돌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봄이는 멀어져가는 상훈의 등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해 지나가는 것을 경험했다.


상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까 봄이를 구해주었을 때와는 사뭇 다른 어깨넓이로 얼음길을 천천히 건너가고 있었다. 봄이는 묘하게도 그런 상훈의 움츠러든 좁은 등판에서 쉽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봄이는 완전히 그의 실루엣이 잔인할 정도로 하얀 눈밭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동공조차 흔들리지 않은 채로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상훈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봄이는 아까부터 계속 응시하던 허공에서 시선을 치우고 그가 걸어갔던 방향의 반대쪽으로 뒤를 돌 수 있었다. 하지만 한 걸음 내딛으려던 발자국은 도중에 조금도 불어오지 않는 눈보라에 얼어붙은 듯 굳어버렸다. 봄이 자신도 자신의 몸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당황했다. 봄이 자신도 자기가 왜 망설이는지 알지 못했다. 지금까지는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지만 상훈과의 첫 대면의 때가 눈앞에 떠올랐다. 시장에서 자신을 붙잡은 빵집 주인에게 회중전등을 내밀었을 때도 떠올랐다. 모든 것을 포기했을 때 눈앞에서 역광을 받아 장대하게 비춰진 그의 어깨도 떠올랐다.


해가 지기 전에 움직여야만 했다. 봄이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그러나 낡은 운동화 속으로 얼음 녹은 물이 스며들어 동상에 걸리기 일보 직전인 그녀의 발은 녹다 만 질퍽한 눈밭에 고정이라도 된 듯 단단히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혹시 상훈의 뒷모습에 미련이 남은 것이었나? 봄이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가로저으면서도 그녀의 무의식 속에서는 결코 그의 뒷모습을 잊지 못한 듯 자꾸만 계속해서 실낱 같았던 그리운 느낌과 함께 떠오르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봄이는 처음에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무의식 속에서는 자신을 몇 번이나 구해준 그 고마운 남자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 가로막는 것도 아니었지만 봄이 스스로가 감정을 드러내기를 거부한 것이었다.


봄이는 낯선 사람의 호의 같은 건 절대로 받지 않겠다고, 설사 남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온다고 하더라도 무엇이든지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피치 못할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고 가정했을 때는 보답 같은 걸 할 생각은 아예 논외로 두었다. 봄이가 그래야만 했던 이유는 명확했다. 그녀는 인연으로서 이어진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도 그녀의 삐뚤어진 성격에 일조했을 것이다. 봄이의 무의식 속 떠나간 상훈에 대한 그리움은 점차 불안감으로 바뀌어갔다.


봄이의 발이 지면에서 떨어졌다. 그리고는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봄이의 보폭이 점점 빨라지고 넓어졌다. 발걸음은 끝없는 심연 속에서 빠져나오기라도 하듯 점점 그녀를 재촉했다. 봄이는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달리는 방향은 결코 방금 전까지 봄이가 바라보고 있던 상훈이 사라진 방향의 반대쪽이 아니었다.


봄이는 상훈이 사라진 쪽으로 무턱대고 달렸다. 그녀가 달리기 시작했을 때는 확실히 아까 전보다는 발걸음이 다급했지만 훨씬 가벼워져 있었다. 봄이는 제발 늦은 게 아니었으면 하고 생각하며 초조한 눈으로 더욱 빠르게 얼음과 흙이 뒤섞인 지면을 박차고 있었다. 봄이는 상훈이 어디로 갔는지는 전혀 몰랐지만 방향은 신경쓰지 않고 무조건 그를 찾아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달리고 또 달렸다.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눈바람을 가르는 봄이의 뺨에 굵은 눈송이가 스쳐 시려왔다. 차갑게 얼어붙은 칼바람에 노출된 채로 그대로 가로지르며 받아낸 귓가가 빨갛게 물들었다. 봄이는 자신의 눈썹에 눈이 쌓이는 기분이 들었다. 빠른 달리기로 인해 소모된 산소를 다시 보충하려는 폐는 점점 큰 소리를 내며 떨려왔다. 봄이의 거친 호흡으로 인해 생겨난 입김이 그녀의 눈앞을 가렸다. 그런 봄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눈속으로 사라진 상훈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봄이는 저려 오는 발바닥의 감각을 거의 무시한 채로 달려 나갔다.


거의 5분 동안이나 쉬지 않고 달려온 결과 점차 봄이의 눈앞에 희미한 모습을 보여 주는 익숙한 남성의 뒷모습이 보였다. 봄이는 숨을 고를 새도 없이 천천히 규칙적으로 걸어가던 남성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남성은 뒤에서 달려오는 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고 봄이의 몰골을 한 번 훑어보고는 전과는 다른 딱딱한 말투로 말했다.


“아직 할 말이 남았나 보군.”


봄이는 차마 그 남자와 눈을 마주치지는 못했다. 지금까지 자신이 까칠하게 대했던 태도가, 커다란 대형 스크린과 같이 눈앞에 떠오르는 상훈에게 진 빚 앞에 산산이 짓밟히는 것을 느꼈다. 봄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어깨를 떨며 남자의 앞에 멈추어 서서 지금까지 그녀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단 한 번도 입 밖에 낸 적이 없는 한 마디를 꺼냈다.


“아까는.... 죄송했습니다.”


작가의말

으ㅏ아 날이 밝는다 여섯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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