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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로 님의 서재입니다.

마지막 봄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SF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7.08.21 01:30
최근연재일 :
2021.02.13 09:16
연재수 :
116 회
조회수 :
14,508
추천수 :
182
글자수 :
530,484

작성
17.09.26 23:36
조회
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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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9쪽

21화

DUMMY

봄이는 지구대 앞에 내팽개쳐진 채로 다시 들어가려고 애를 쓰며 경찰관과 실랑이를 벌였다. 인파들 속에 가려진 봄이를 찾는 데 시간이 걸렸던 상훈이 이쪽으로 급하게 달려왔다. 봄이가 경찰관을 다시 한 번 밀치려고 하는 순간 자신의 몸이 뒤쪽으로 강하게 당겨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분명 앞의 경찰관이 자신을 밀친 느낌이 아니었다.


“왜 섣부르게 행동하고 그래? 정신 나갔어?”


“이거 놔요!”


상훈이 윽박지르자 봄이가 성질을 내며 자신의 후드 모자를 굳게 붙잡은 상훈의 손아귀로부터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봄이는 외부 요인에게 매번 뒤를 붙잡히기만 하는 이 바보 같은 후드 모자를 아예 뜯어 버릴까 하고 잠시 생각했다. 상훈이 경찰관과의 대화로 상황을 설명한 다음 아까 전에 잠시 머물렀던 인적이 그나마 드문 천막의 늪 가장자리 빈 공터로 봄이를 데려(‘끌고’ 가 더 정확했을 것이다-)갔다.


“뭐 하는 거예요, 조금만 더 있었으면 얻을 수 있었는데! 이름만 확인하면 더 이상 여기에서 볼일은 없다구요!”


“생각 좀 하고 행동하라고. 지금도 간신히 치안 유지되는 중인데 거기서 난동을 피우면 어떡해? 여기 있는 이 많은 사람들을 전부다 적으로 돌리고 싶어?”


“그럼 어떡해요, 여기 통제소 수용인원만 몇 천 명 될 텐데 일일이 천막 뒤져요?”


“너 얼굴은 또 왜 이래? 외투는 또 왜 흙투성이고?”


“일단 이거나 좀 놔요. 옷 늘어나요!”


상훈이 후드자락을 손에서 놓자 발버둥치던 봄이의 몸이 앞으로 몇 발짝 튕겨져 나갔다. 봄이가 상훈을 날카로운 눈으로 째려보며 재킷과 치마에 묻은 흙을 손바닥으로 툭툭 털어냈다. 상훈은 자신을 못마땅하게 쳐다보는 봄이와 마주보다가 먼저 시선을 치우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일단 넌 좀 진정해야겠다. 잠깐 여기에서 마음을 추스르자.”


“이럴 시간 없어요. 빨리 가족이 있는지 확인하고 떠나야 한다구요.”


봄이가 제 나름대로 간절하고 다급한 어조로 말을 꺼냈지만 상훈은 그런 그녀의 말에 아랑곳하지도 않은 채 오리털 재킷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성냥을 꺼내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담뱃불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연기와 함께 상훈의 입과 코에서도 희뿌연 담배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봄이는 그런 상훈의 행동을 보고 경멸스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눈살을 찌푸리며 코를 싸쥐었다.


“정말 매너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네요. 당장 끄시던가 저리 가서 피우시죠.”


“좀 봐줘. 이거 정말 힘들게 구한 거라고. 여차하면 한 개비 줄까?”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난 미성년자라구요.”


상훈이 눈을 반쯤 감고 봄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봄이도 그의 시선에 맞추어 그를 노려보다가 상훈이 내쉰 연기가 그녀의 얼굴 전체를 감싸자 봄이는 고개를 저쪽으로 돌리고 연달아 기침을 해대며 소리쳤다.


“당장 저리 가요!”


“알았다, 알았어. 어디 가지 말고 여기에 있어. 금방 돌아올 테니.”


허파가 날카로운 것으로 찔리는 것처럼 기분 나쁜 담배 연기와 함께 상훈이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봄이는 위에 철조망이 달려 있는 족히 3미터는 되어 보이는 콘크리트 담에 기대어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딱히 별이 떠 있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가끔 구경하는 아름다운 얼음 건물들을 쳐다볼 때처럼 마음이 안정되고 차분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풍경은 봄이가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과는 완전히 상반되어서 비춰지고 있었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겨울바람이 봄이의 귓가를 스치자 인파들이 내는 떠들썩한 소음이 점점 옅게 들리는 것 같았다. 봄이는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이 싫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고요한 하늘에 집중했다. 하지만 너무 집중한 것이 문제였다. 봄이는 생각에 잠기느라 그녀의 옆에 드리운 거대한 그림자를 눈치채지 못했다.


봄이가 뒤늦게 인기척을 느끼고 옆을 돌아보았지만 그녀가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기도 전에 큰 털이 듬성듬성 난 거대한 손에 의해 멱살이 잡혀 들어올려졌다. 그녀와 면식이 있는 키가 크고 뚱뚱한 거구의 남자였다. 하지만 이번에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패거리로 보이는 성인 남자 두 명이 뒤에 더 있었다.


어찌나 세게 들어올렸는지 봄이의 외투와 셔츠가 밀려 올라가 하복부가 훤히 드러날 정도였다. 봄이는 뚱뚱한 남자의 엄청난 힘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억센 손을 붙잡은 채 한 쪽 눈을 감고 놀란 눈으로 남자를 쳐다보는 봄이를 노려보며 남자가 말했다.


“꼬맹이, 잠깐 얘기 좀 할까?”


“얘기 좀 하자는 사람치고는 첫 인사가 좀 화려한데요, 개자식아.”


남자가 금방이라도 죽일 듯이 노려보는데도 봄이는 움츠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더욱 강렬하게 남자의 미간을 쏘아보며 이를 악물었다. 잠시 동안 봄이와 남자의 눈빛에서 불꽃이 튀었다. 떠들썩하던 천막들이 순식간에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공터의 한가운데서 소란이 일어나자 순식간에 여기저기서 구경꾼들이 몰려들어 둘 주위를 빙 둘러쌌다.


뚱보의 손을 붙잡은 봄이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뚱보 역시 봄이의 작은 멱살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양쪽 손아귀 사이에서 점점 긴장감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뚱보가 자신의 손목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봄이가 가소롭다는 듯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기분이 나빠서 말이야. 지금이라도 무릎 꿇고 빌면 용서해주마.”


“어, 그거 괜찮네.”


봄이는 그 말을 듣는 척 하다가 순간적으로 잠시 힘이 빠진 뚱보의 손목을 비틀어 우람한 그의 팔뚝을 날카로운 이빨로 힘껏 깨물었다. 뚱보는 찢어지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봄이의 외투자락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꽤나 높은 높이에서 곤두박질친 봄이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서기도 전에 매서운 발길질이 봄이의 아랫배를 강타했다.


머릿속이 산산이 부서지는 충격이 봄이의 복부에 전해졌다. 온 몸의 장기가 뒤틀리며 진동하는 느낌과 함께 봄이는 콘크리트 담벽으로 날아가듯 튕겨져 나갔다. 견고한 콘크리트에 등을 거세게 부딪치고 주저앉은 그녀는 짧은 신음과 함께 몇 초 동안이나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기침과 메스꺼움이 동시에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두 눈조차 제대로 떠지지 않았다. 콘크리트와 충돌하면서 발생한 입자가 큰 희뿌연 먼지들이 봄이의 호흡기 속으로 침투해 들어왔다. 팔뚝에서 흐르는 피를 다른 손으로 움켜쥔 뚱보가 천천히 정신을 잃기 직전의 봄이에게로 걸어왔다.


봄이는 싸움을 못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같은 또래의 학생들 중에서는 아마도 남녀를 불문하고 외부와 가장 많이 마찰을 일으켰던 학생이었을 것이다. 학교를 다닐 시절에도 봄이는 호전적인 성격 때문에 주위와 마찰이 잦았다. 당연히 싸움도 많이 경험해 보았다. 남학생들과도 예외는 아니었다. 남학생들은 봄이를 여자라는 이유로 봐주지 않았다. 물론 그녀 자신도 그걸 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봄이가 처한 상황은 그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아무리 봄이가 싸움 경험이 많고 호전적인 성격이라고 해도 격투상황에서 체급의 차이란 생각 외로 엄청난 것이었다. 봄이는 이 거구의 뚱보 남성 앞에서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이것은 거스를 수조차 없는 필연적인 사실이었다. 봄이는 주저앉은 채로 잘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움직여 일어서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봄이는 운명의 장난에 어울려주듯 씁쓸한 표정으로 입 안에 남은 뚱보의 살점과 피를 침과 함께 뱉어냈다.


뚱보가 다가와서 봄이의 옆구리를 한번 더 걷어찼다. 봄이는 갈비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통증을 받고 옆구리를 감싸쥐었다. 욕을 해주려고 연 입에서는 차마 참지 못한 신음소리만이 새어나왔다. 눈 앞이 아득해지는 충격에도 이를 악물고 뚱보를 올려다보자 그의 거친 두 손바닥이 봄이의 목을 제대로 움켜쥐었다. 봄이는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고 점점 숨통을 옥죄는 눈앞의 뚱보를 쳐다보는 것밖에는 아무런 도리가 없었다.


“너 같은 꼬맹이들을 죽이는 데 편한 게 뭔지 알아? 힘이 별로 안 든다는 거야.”


봄이의 눈앞이 어둠으로 물들어갔다. 이제는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자신을 서서히 덮어오는 운명에 봄이는 몸을 맡겼다. 설사 그것이 비극적인 운명이더라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봄이는 정신이 희미해지자 단 일순간 자신이 섣부른 판단을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후회했다. 단 일순간뿐이었지만.


작가의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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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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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89 티말
    작성일
    17.09.27 06:35
    No. 1

    과연 어떤일이..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9 티말
    작성일
    17.09.27 06:39
    No. 2

    치안 유지가 간신히 유지 된다는 소리는, '간신히' 니까 아슬아슬 하다는거죠.
    당연히 틈을 보일 수 밖에 없는데, 대놓고 먹이감이 있다고 광고하는거나 마찬가지죠.
    그러니 잡혀가는거지..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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