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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로 님의 서재입니다.

마지막 봄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SF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7.08.21 01:30
최근연재일 :
2021.02.13 09:16
연재수 :
116 회
조회수 :
14,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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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글자수 :
530,484

작성
17.09.20 23:32
조회
155
추천
2
글자
8쪽

18화

DUMMY

아침이 밝았다. 여기저기 물건을 가볍게 뒤적이는 소리가 침대에 누워있던 봄이의 귀를 간질였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상훈이 큰 가방에다 짐을 꾸리고 있었다. 상훈이 짐을 싸는 것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던 딩이가 그녀와 눈을 마주치자 꼬리를 흔들며 침대 위로 재빨리 뛰어올라 눈을 뜬 봄이의 가슴 위에 앉아 얼굴을 부드럽게 핥아댔다. 봄이는 재빨리 딩이의 얼굴을 왼손으로 밀어내고 몸을 일으켰다.


“일어났구나. 어서 짐 챙기자. 나가야 해.”


봄이도 일어나 가방을 집어들고 장롱과 벽 틈새 사이에 대충 꽂아 둔 쇠 파이프에 있던 옷걸이에 걸린 분홍색 후드 재킷을 잡아당겨 그녀가 입고 있던 와이셔츠 위에 걸쳐 입었다. 머리맡에 얌전히 놓아 둔 M60 리볼버도 잊지 않고 치마폭에 찔러 넣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상훈이 걱정된다는 어투로 말을 꺼냈다.


“그건 아무래도 놓고 가는 게 좋을 텐데.”


“제 몸은 제가 지켜야지요. 절대 뒤처지지 않을 테니 걱정 마시죠.”


“그게 아니라, 통제소의 검문소에서 틀림없이 걸릴 거야.”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는 걸로.”


상훈이 말려 보았지만 봄이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상훈이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봄이의 앞으로 다가와 그녀의 기운찬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잠깐 그거 이리 줘 보겠니?”


그 말을 들은 봄이가 한동안 몸이 굳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자 상훈이 그녀를 안심시키려는 듯 다시 달래는 어조로 말했다.


“걱정할 것 없어. 그냥 조금 도와주려는 것뿐이야.”


봄이가 머뭇거리다 권총을 내밀자 상훈이 오른손으로 총을 고쳐 잡고 엄지손가락으로 탄창멈치를 밀어 실린더를 열었다.


“빈 탄피가 한 개, 남은 탄환은 세 발 남은 건가. 이것들을 쓸 날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봄이는 실린더를 돌리고 다시 닫는 상훈을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상훈은 그런 봄이의 눈길을 의식했는지 권총을 기울이고 측면을 보여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아는 진 모르겠지만 잘 들어. 여기, 손잡이 옆에 둥근 삼각형 같은 게 보이지? 이걸 탄창멈치라고 하는데, 이걸 앞으로 밀면 탄창이 옆으로 나오는 거야.”


상훈은 그 말을 하며 다시 멈치를 엄지로 밀었다. 은빛 실린더가 옆으로 삐져나오는 것이 보였다.


“사실 지금은 총알이 생길 일이 없으니까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돼. 그냥 알아두면 좋을 거야. 잔탄 확인도 이렇게 할 수 있어. 그리고 탄창을 다시 몸체로 밀어 넣으면 탄창이 몸체에 안착되지.”


그러자 찰칵 소리를 내며 탄창이 권총 몸체와 일체되었다. 봄이가 말없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자 상훈이 이번엔 권총의 위쪽을 기울여서 봄이가 잘 보이게끔 도와주었다.


“탄창 뒤에 달린 이 망치 같은 건 공이라고 하는데, 방아쇠를 당기면 이게 총알을 세게 쳐서 탄환이 격발되는 방식인 거지. 공이 위에 붙은 이건 가늠자라고 해. 이 총구 끝에 달린 게 가늠쇠라는 건데 가늠자를 눈에 갖다 대고 네 초점과 일치하도록 가늠쇠의 모서리에 목표의 상을 맞추면 ‘조준’ 이란 게 되지. 한 번 잡아보도록 해.”


상훈이 권총 개머리를 휘릭 돌리며 봄이가 손잡이를 잡기 편하도록 배려해 주었다. 봄이가 개머리를 오른손으로 잡아들고 한 쪽 눈을 감은 채 총구를 들어 가늠쇠를 응시해 보았다.


“양손으로, 그렇지. 최대한 흔들림은 줄이고. 여기랑... 여기. 그래, 거길 통과해서.”


봄이가 쥔 권총이 부들부들 떨리자 상훈이 두 손으로 봄이의 손을 잡아주었다. 봄이는 상훈이 자신의 손목을 감싸자 손등이 따뜻해지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초점이 맞춰지면, 쏘면 돼. 그렇다고 여기서 쏘지는 말고. 그 정도면 됐어. 이제 어서 출발하자. 정부 통제소는 오후 늦은 시간이 되면 사람들이 붐비기 시작하거든. 마음 같아선 그 총은 내가 맡아두고 싶지만 네가 그걸 순순히 맡아달라고 줄 리는 없겠지.”


“잘 알고 계시네요.”


“...들키지 않게 잘 간수하라고. 잃어버리지도 말고. 정말 위급할 때에만 써야 한다.”


상훈이 지하실 문을 열려고 하는데 딩이가 꼬리를 흔들며 따라붙었다. 상훈이 딩이를 안고 같이 나가려고 하자 봄이는 예전에 아파트 단지에서 본 적 있던 일기장의 내용이 떠올랐다.


“애완견 반입은 안 되는 것 같더라구요.”


상훈이 한참 동안 봄이를 바라보다 봄이의 말뜻을 이해했는지 살며시 딩이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낑낑대며 문을 긁어대는 딩이에게 주머니에서 육포 조각 몇 개를 꺼내 주고는 딩이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딩이는 멀어져가는 주인의 뒷모습을 바라보기만 할 뿐 주인이 준 육포 조각을 먹으려 하지 않았다.


상훈이 어둑어둑한 지하실 계단을 올랐다. 분명히 시간대는 아침일 텐데 지하실 내부에는 빛이 한 점도 들어오지 않아 여기저기 걸린 거미줄조차 보이지 않을 만큼 사방이 어두컴컴했다. 이내 계단의 끝에 있던 여닫이문을 열고나서야 지하실 내부로 눈이 멀어버릴 것만 같은 강렬한 빛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봄이는 한쪽 눈을 질끈 감은 채로 왼손으로 다른 눈을 가리고 상훈을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 봄이는 이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을 바퀴벌레 같다고 생각했다.


익숙한 바깥 풍경이었지만, 많은 것들이 바뀌어 있었다. 온갖 도로를 하얗게 메꿨던 눈과 얼음은 거의 다 녹고 흙탕물과 뒤섞여 둥둥 떠다니는 지저분한 얼음 조각이 가득한 물웅덩이로 흥건했다. 마치 해일이 몰려와서 배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 침수된 도시 같았다.


이 물웅덩이들의 폭은 제법 커서 제대로 발을 디디지 않으면 발이 쑥 빠지거나 미끄러질 정도였다. 상훈이 먼저 흙탕물을 밟고 앞으로 나아가며 한 마디 꺼냈다.


“이런이런, 조금만 더 집에서 쉬다 나왔으면 도시 전체가 완전히 물에 잠겼겠는걸.”


봄이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물웅덩이에 발이 빠져 운동화가 젖지 않게끔 조심스럽게 한 발짝씩 나아갔다. 홍수가 난 것 같은 도로를 건너고 인적이 없는 주택가도 지났다. 봄이에게 익숙한 아파트 단지도 지나쳤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봄이가 힘겹게 발 디딜 얼음을 찾아 딛고 있는데 상훈이 난데없이 돌아보며 작게 소리쳤다.


“젠장, 누가 있어. 숨어!”


봄이는 뇌 속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안 좋은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봄이의 반응이 늦자 상훈이 달려와 봄이의 후드를 움켜잡고 강제로 근처의 트럭 뒤로 끌고 왔다. 그리고는 상훈이 이마에 핏줄을 세우고 봄이를 닦달했다.


“뭘 그렇게 멍청히 서 있어? 죽고 싶어?”


봄이는 입술을 깨문 채로 주저앉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봄이의 다리와 눈동자가 벌벌 떨렸다. 그녀의 초점이 지점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렸다. 봄이의 손에는 어느새 권총 손잡이가 들려 있었다. 상훈이 그런 봄이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앉아서 봄이의 양 손과 어깨를 부드럽게 잡고는 이리저리 시선을 피하는 그녀의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괜찮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총은 집어넣어도 돼. 우린 저들과 싸우려고 온 게 아니야. 여기에 잠자코 있으면 곧 지나갈 거야. 그러니까 침착해, 알겠지?”


그 말을 들은 봄이는 떨리던 입술이 열리고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봄이는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눈을 하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상훈이 말했던 ‘그들’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서 그와 함께 몸을 돌려 눈 쌓인 트럭 뒤에서 얼굴을 살며시 내밀었다.


작가의말

육포 냠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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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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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89 티말
    작성일
    17.09.21 05:56
    No. 1

    트라우마.. 쉽게 나을리가 없으니.. 으음.
    잡아먹으려면 기회긴 할텐데, 그런 내용이 나올리는 없을거고..
    과연 안 미치고 살아 날 수 있을것인가?
    독자 : 그런데 여긴 어디죠?
    봄 : 몰라.
    작가 : 어느 세상 어딘가. 어느 기록 중 하나 일걸요?
    독자 : 이 소설이 원하는대로 잘 끝나려나?
    봄 : 그건 내가 알바 없고, 따뜻한 물에 몸 담그고 쉴 시간이 있는건가? 으으.. 콜록. 감기도 걸린거 같은데..
    작가 : 빠져나가는건 무립니다.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했어요.
    봄 : ... 관두고 싶군. 정말. '말할 기운이 안나.' 으으..

    같은 이야기가 촬영 잠시 쉬는 때에 진행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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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95화 20.11.28 30 0 14쪽
97 95화 20.11.23 41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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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94화 20.11.19 62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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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91화 19.11.24 57 0 17쪽
91 90화 19.11.23 50 0 26쪽
90 89화 19.11.19 55 0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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