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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캐가 본캐 되는 날까지

이블익시드

웹소설 > 일반연재 > SF, 판타지

뽀이뽀로밀
작품등록일 :
2013.03.06 05:05
최근연재일 :
2013.03.07 17:51
연재수 :
3 회
조회수 :
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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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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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36

작성
13.03.07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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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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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9쪽

열사[熱沙]의 도시(2)

※이미지와 상관없습니다.




DUMMY

남자가 에실론 성문에 도착했을 땐 예상대로 해가진 뒤였다.

“후우, 역시 성문은 닫혀있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둘렀지만 역시 시간에 맞추는 것에 실패한 그는 실망감에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이봐, 거기 여행자. 그렇게 한숨 쉴 거 없어. 성문은 두 시각 전에 이미 걸어 잠갔으니까.”

성문 밖에서 경계를 도는 에실론의 순찰병중 하나가 위로하듯 말을 걸어왔다.

“2시각 전? 아직 해 떨어지기 전 아닙니까?”

“그래, 이례적인 일이긴 하지. 이틀 뒤에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 있어. 지금 각국에 귀빈들이 에실론에 들어와 머무는 중이라 보안상에 조치야.”

“어이, 쓸데없이 나불대지 마. 근무 중이라고.”

옆에 있던 또 한 명에 순찰병이 핀잔을 주자 먼저 말을 건넸던 병사가 뭐 어떠냐는 듯 대꾸했다.

“어차피 내일 들어가면 다 알게 될 일인데 뭘 그래. 아무튼 그런 관계로 내일 아침엔 엄중한 검문 탓에 고생 좀 할 듯싶으니 미리 각오해 두라고 여행자 양반.”

“그만 떠들고 빨리 와. 오늘은 1km 전방까지 갔다 와야 한다고.”

다른 한쪽에 재촉에 느긋하게 대답한 병사는 뛴 걸음으로 남자에게 멀어졌다. 네부카드의 순찰병은 평시엔 성채와 도시 인근 지형의 척후까지 겸한 경비를 선다.

‘1km라면 제2경계령인가? 확실히 내일은 쉽사리 들어가긴 어려울 것 같군.’

방문시기를 잘못 잡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남자는 낙타를 끌고 사람들이 캠프를 치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모두가 제때 성문을 통과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평소보다 일찍 문을 닫은 것치고는 사람이 적은 편인 것 같은데. 아무래도 행사에 대한 정보는 꽤 알려진 듯해.’

그가 출발한 바그다라는 도시는 확실히 중부와 알자흐의 경계에 있는 도시고 네부카드의 영토이지만 변방에 속하는 편이었다. 서둘러 행장을 꾸린 탓에 정보수집에는 소홀한 편이지만 신경을 썼더라도 아마 출발할 당시에는 접하지 못했을 것이다.

“거기 자네. 자리를 못 잡았다면 함께 하는 게 어떤가?”

캠프 자리를 찾아 낙타를 몰고 가던 그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캐러밴인가?’

사막을 오가는 원정 상인들의 캠프로 보이는 곳에서 터번을 두른 허연 수염의 노인이 자신에게 손짓하는 것을 본 그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일행분들의 규모로 봐선 캐러밴이신 듯한데 괜찮겠습니까?”

“뭘, 기껏해야 하룻밤 아닌가?”

“제가 나쁜 생각을 품고 귀하들의 물건에 손을 대면 어쩌시렵니까?”

일단 사양할 생각으로 내뱉은 말이었지만 그 말을 들은 노인은 오히려 눈을 휘둥그레 뜨고 얘기했다.

“허허, 요새도 그런 질 나쁜 종자들이 있나? 에실론의 순찰대가 눈 시퍼렇게 뜨고 돌아다니는데 그런 짓을 했다 걸리면 즉결 처형이야.”

이번엔 남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노인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옛 추억에라도 빠진 듯 허공에 시선을 두었다.

“한 4~50년 전에야 그런 일이 성행하기는 했지만, 최근의 내부카드에서는 외곽의 도시나 성채에서도 보기 드문 광경이지.”

“과연… 네부카드도 상당히 변했군요.”

“음? 자네 설마 네부카드 사람이 아닌가?”

“예, 동쪽에서 왔습니다.”

“호오, 구트라를 뒤집어쓰고 있길래 사하드 민족인 줄 알았더니.”

노인은 놀랍다는 듯 그의 복색을 위해서 아래로 훑고는 양손을 교차해서 가슴에 대는 사막의 전통적인 인사를 해왔다.

“난 바슐타 브하드-네라 아슈레이라고 하네. 이 캐러밴을 이끌고 있지. 이국에서 온 여행자인 자네를 환영하네.”

그리고 고개를 숙이는 노인에게 남자 또한 왼손을 오른쪽 어깨에 올리는 동작으로 화답했다.

“당신의 친절에 감사드립니다. 동쪽에서 온 신준하입니다.”

그 인사에 노인의 얼굴이 다시 한 번 이채를 띄었다.

“상당히 오래된 인사법을 알고 있군. 최근엔 좀처럼 볼 수 없는 사막 전통의 풍습일 텐데?”

남자는 그에 대해선 뭐라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묵묵히 서 있었다.

“이런 이런, 곤란하게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미안하군, 늙으면 말이 길어진다네. 그건 그렇고 저쪽에 낙타를 묶고 이쪽으로 오게나. 보아하니 아직 식사 전인 것 같은데 같이 들면서 천천히 얘기나 나누세.”

“거듭, 친절에 감사드립니다.”

노인이 가리킨 곳엔 벌써 몇 필의 말과 낙타들이 묶여 있었고 남자… 신준하는 자연스럽게 낙타를 몰아 한쪽에 능숙하게 묶었다. 그리곤 낙태의 짐을 풀어주고 편히 쉴 수 있게끔 해놓고 모닥불 주변으로 걸어갔다.

“이쪽으로 오게나.”

이미 자리를 잡은 노인은 자신의 옆을 가리켰다. 준하는 자신을 향하는 여러 시선을 느꼈지만 태연하게 그 사이를 걸어가 노인의 옆에 앉았다.

“동쪽에서 온 신준하입니다. 마후드 네라의 친절로 이렇게 자리를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제게 나눠주시는 음식과 온기만큼 알자흐가 여러분께 은혜를 베풀기를.”

준하의 인사에 약간 경계 어린 시선으로 보던 다른 일행들의 눈이 일순 커지며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준하는 자신이 뭔가 실수라도 한 게 아닌가 싶어 의아한 얼굴로 아슈레이를 보았다. 그는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과연 아브카자라르의 예를 취하며 인사할 때부터 알아봤네만, 우리의 풍습에 상당히 잘 아는 것 같으이. 자네가 이국인인 것은 모두에게 말했지만 설마 자네에게서 알자흐의 은총을 듣게 될 줄은 예상 못 했네.”

마후드는 ‘어르신’과 비슷한 의미의 사막 언어. 알자흐는 이곳 사막을 뜻하지만 터번을 쓰는 브하드 민족에게 있어서는 신앙의 대상이다.

“허허허, 아무튼 기껍네. 이국인 중에서 예의 있는 사람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아니네만, 그렇게까지 우리들의 전통 풍습을 갖추러 예의를 차리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운 편이지.”

“아, 예…….”

준하는 난감하게 머리를 쓰다듬을 뿐이었다.

“자, 내가 다른 사람들을 소개하지. 이쪽이 나의 큰아들인 바슐타 브하드-기라 슐레이만.”

아슈레이는 자신의 옆에 앉은 거한을 소개했다. 수염이 덥수룩하지만 자세히 보면 분명 아슈레이와 무척이나 닮은 사내였다.

“그 옆에는 아들 녀석의 딸이자 내 귀여운 손녀인 메디아.”

“안녕하세요.”

7, 8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가 귀여운 목소리로 손을 흔들었다.

“그 옆부터는 모두 아들의 친구들이자 이번 캐러밴에 참여한 동지들이네.”

각자의 이름을 알려주며 소개를 함과 동시에 준하는 모두와 눈을 마주치며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모두가 처음의 경계심을 풀고 그를 환영하는 듯 손을 들거나 마주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해왔다.

“자, 서로 통성명도 끝났으니 이제 배를 채우도록 하세나. 우리 브하드 민족의 음식이 입에 맞을는지 모르겠네.”

“얻어먹는 처지에 배부른 소리야 하겠습니까. 감사히 먹겠습니다.”

준하는 그제야 이을 가리고 있던 천을 풀었다. 그러나 그를 쳐다보고 있던 모두에 입에서 나직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 경탄의 감정을 가볍게 흘러 넘기며 준하는 자신의 앞에 노인 꼬치구이를 집어 들어 가볍게 뜯어 먹기 시작했다.

사막 도마뱀의 고기를 태연하게 뜯는 그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아슈레이는 다시 작은 웃음과 함께 그에게 말을 건넸다.

“허허, 자네 여러모로 사람을 놀라게 하는 군. 그 체격과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여자라고 해도 좋을 외모야.”

섬세한 이목구비와 잡티 없는 얼굴. 긴 속눈썹을 보면 확실히 여성이라 봐도 좋을 외모였다.

“흑예[黑濊]의 머리칼과 그와 같은 눈동자라……. 신준하라는 이름도 그렇고 여러모로 신비한 분이구려.”

아슈레이의 옆에 있던 슐레이만이 입을 열었다.

“외모는 어머니를 많이 닮은 경향이 있습니다. 체격은 어릴 때는 왜소한 편이라서 놀림도 받았지요.”

준하의 설명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어떤 놀림을 받았는지 상상이 간 탓이다.

“13살 이후에 갑자기 키가 커지고 몸이 불기 시작하더니. 18살을 넘길 때쯤에는 주변 사람 대부분을 내려다볼 정도로 커졌습니다. 그 당시엔 저보다 큰 사람이 아버지 외에는 없었지요.”

“호오, 장대한 신체는 아버님의 피를 물려받은 것인가?”

아슈레이가 말을 받았고 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버지 역시 주변에선 보기 드물 정도로 큰 분이셨습니다.”

“허허, 아름다운 어머니와 거인 같은 아버지라? 보는 사람이 즐거워지는 조합이었겠군. 두 분은 뭐하시는 분들이신가?”

“돌아가셨습니다. 오래전에…….”

“이런, 미안하군.”

고개를 숙이는 그에게 준하는 고개를 저었다.

“지난 일입니다. 게다가 제 얼굴과 체격을 화제 삼아 이렇게 누군가와 이야기할 때면 뿌듯하기도 하고, 좋은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니 괜찮습니다.”

“좋은 말이오.”

슐레이만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잔을 건넸다.

“받으시오.”

“고맙습니다.”

한 모금 입에 담으니 사막에선 좀처럼 구할 수 없는 밀주였다. 귀한 술을 나눈다는 것은 사막 민족에게는 호감의 증표나 다름없었기에 준하는 놀란 얼굴로 슐레이만을 보았다.

“이국의 피를 이으면서 우리의 말, 우리의 풍습으로 우리와 마주하는 그대. 그리고 부모에게 물려받은 자신의 피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그 자세도 마음에 드오. 비록 하룻밤이지만 함께하게 된 것을 무척이나 기쁘게 여기는 바요.”

자신도 잔을 들어 준하를 향해 내밀고 말한다. 준하는 난처한 듯했지만 입가에는 미소를 띠고 그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쳤다. 그러자 않자 있던 모두가 너나 할 것 없이 준하에게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여행을 많이 하셨나요?”

술잔을 부딪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에 슈레이만의 딸 메디아가 고개를 쏙 내밀며 물어왔다. 준하는 그 영롱한 눈빛에 절로 웃음이 나왔고 상냥하게 그 물음에 답해주었다.

“음… 여행을 오래 하기는 했지.”

“헤에, 그럼 어디 어디를 다녀 보셨나요?”

그 질문은 캐러밴의 모두가 듣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했다. 태어나서 사막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그들에게 있던 타국 여행자의 이야기는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거처온 나라는 많지만, 두루두루 둘러본 것은 아니야. 동쪽 끝에서 곧장 중부 대륙을 가로질러 네부카드에 들어왔으니까”

“우와, 그럼 아저씨는 진짜 동쪽에서 온 게 맞네요. 그곳은 어떤 곳인가요?”

“내가 가족들과 살던 곳은 산과 물이 많은 곳이지. 청락[靑落]의 바다를 끼고 있기 때문에 간혹 바다를 건너온 태풍이 찾아오기도 하고 여름이 되면 보름이 넘도록 비만 오는 때도 있어.”

“진짜요? 보름이 넘도록 비가 온다니 상상이 안 돼요.”

비가 온다는 것 차체가 신의 은총이나 다름없는 사막에선 분명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메디아의 그 반응에 준하는 빙긋 웃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정말이야. 비가 많이 내리고 물도 많으니 왕은 항상 치수[治水]에 골머리를 쌓고 있지. 대신 우기가 지나면 여기보단 덜하지만 상당히 무덥기까지 해서 과실이 많이 나기도 하고.”

메디아는 과실이 많이 난다는 말에 살짝 입맛을 다셨다.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네요.”

“하하, 메디아가 좀 더 크면 모를까 지금은 조금 힘들 거야. 사막을 건너는 거야 어떻게든 되겠지만 중부대륙과 동부대륙 사이엔 거대한 산과 바다가 가로 막고 있어. 정상의 산등성이 전체가 1년 내내 눈으로 뒤덮인 알카라즈라는 산맥과 청락의 바다로 이어지는 하르타 해가 바로 그것이지. 아저씨 나라의 말로는 따로 반고 산맥과 여명해라고 부르기도 해.”

“눈?”

태어나서 눈을 본 적이 없는 메디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자 그는 친절하게 눈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하늘 위에 수분이 차가운 공기 때문에 얼어붙은 결정을 말하는 거야. 새하얀 얼음 가루가 비대신 내리는 거라고나 할까?”

“정말 그런 게 있어요?”

“물론이지. 언젠가 메디아가 커서 기회가 된다면 북부 대륙으로 놀러 가보렴 한겨울엔 사람 키보다 높게 쌓이는 눈을 볼 수가 있단다.”

“진짜요? 정말 한번 보고 싶어요!”

서부대륙에서 북부로 가기 위해서는 성해[聖海]를 건널 필요가 있다. 그전에는 아직도 종파 전쟁으로 으르렁거리는 알자흐 사막 북방을 지나거나, 좀 더 서쪽으로 들어가 알토리아 연맹을 경유하는 방법이 있지만, 또 네브카드와 알토리아 연맹은 오랜 앙숙이다. 사막 민족이 알토리아 연맹의 영토를 경유해 서해를 건너는 것은 위험하고 또한 쉽지도 않다.

캐러밴 모두는 그런 정세를 알고 있었지만 작은 소녀의 꿈을 망치고 싶지 않았기에 굳이 말을 하지는 않았다.

“아저씨는 계속 혼자서 여행을 해 오신 거예요?”

“응? 뭐, 그런 셈이지.”

“외롭지는 않으셨어요?”

“글쎄다. 지나오면서 지금처럼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기도 했으니 그렇지만도 않았단다.”

대답과는 다르게 준하는 쓸쓸한 미소로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렇게 밤이 깊어가고 모두가 잠자리를 펴기 시작했다. 메디아는 좀 더 준하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지만 슐레이만의 엄한 눈초리를 받고는 쪼르르 자신과 슐레이만의 천막으로 달려갔다.

그 조그만 뒷모습이 천막 사이로 사라질 때까지 빤히 쳐다보던 준하는 모닥불로 시선을 옮겼다. 고요하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일렁이는 불빛이 흔들렸다.

“자네도 자리를 펴지 그러나?”

“아직은 잠이 오질 않는군요.”

“그런가? 이 늙은이도 마찬가지일세.”

불침번 초번이었는지 슐레이만은 각자의 인원수와 자리를 확인하고 있었다. 상훈의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아슈레이는 그와 함께 모닥불 너머로 그 모습을 지켜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 바슐타 마을은 그리 크지 않은 마을이라 먹고 살기 위해선 이렇게 부단히 원정을 다녀야 하지. 슐레이만은 12살 때부터 나를 따라 네부카드의 여기저기를 다녔다네.”

“그랬군요. 어쩐지 모든 행동에서 능숙함이 엿보였습니다.”

“자네도 마찬가지야. 중부대륙에서 들어왔다면 바그다를 거처 왔다는 얘기인데. 이 혹서에 혼자서 에실론까지 오다니 어지간한 사막 민족에게도 힘겨운 여정일세. 사막이 초행은 아닌 모양이지?”

“예, 이전에 조부와 함께 사막을 넘나든 적이 있습니다. 덕분에 많은 걸 배웠지요.”

“그랬군. 그 오래된 예법이나 우리의 풍습은 모두 조부에게서 배운 것들인가?”

“그렇습니다.”

“허허, 참으로 대단한 분이시군. 헌데 듣자하니 동부 대륙에서 곧장 서쪽으로 방향을 잡고 여행해 온 듯한데. 하르타 해로 접어들었다면 바닷길이 더 안전할 텐데, 굳이 험준한 산맥과 혼란스런 중부 대륙을 경유한 이유가 있는가?”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사람?”

“예, 검은 옷을 입고, 저와 같은 동쪽 사람의 외모를 지닌 여인입니다. 혹시 모르십니까?”

“글쎄……. 들은 기억이 없구먼. 애초에 네부카드는 칭[동부 대륙]과의 교류가 거의 없다네. 알토리아 연맹은 서쪽 끝 홍천[紅天]의 바다를 건너는 항로를 개척한 이후로는 계속 교류해 왔기에 동부대륙 사람이 간간이 보인다고 들었네만. 우리는 성해로 가는 길마저 막힌 체 북부와도 원활하기 교류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네.”

아슈레이는 모닥불에 낙타 변으로 만든 연료를 던져 넣으며 네부카드의 정세를 이야기했다.

“덕분에 네부카드에서 동부 대륙 사람은 거의 볼 수 없는 편이지. 나 역시 살면서 동부인을 본 것은 자네가 처음일세.”

“그렇습니까…….”

만족할 만한 대답을 듣지 못했음에도 준하는 별달리 실망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런 준하의 반응을 살피던 아슈레이는 살짝 의아한 마음이 들었지만 달리 묻지 않았다.

“오늘을 만월이군.”

그저 달을 보고 내뱉은 말이었지만 아슈레이가 말하면 뭔가 그다음이 있는 듯이 들렸다.

“우리 브하드 민족에게 아사흐[태양]가 아버지라면 루시나[달]은 어머니이지. 혹독하게 우리를 몰아붙이면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주는 아사흐가 지나면 루시나가 뜨는 밤이 찾아와 조용한 안식을 준다네.”

“그것이 여러분의 신앙입니까?”

“그렇다네. 우리 선조들은 달이 뜨는 밤이 가져오는 조용한 안식을 어머니의 품처럼 여긴 듯 모양이야.”

힘겹게 활동하는 낮을 아버지로, 몸을 뉘이고 잠을 청하는 밤을 어머니로 준하는 단순하면서도 나름대로 이해가 가는 그들의 신앙에 고개를 끄덕였다.

“낭만적이군요.”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자넨 신앙이 없나 보군.”

나름 정곡을 찌른 그 말에 준하는 슬쩍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전엔 믿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만들고 관장하는 절대자가 나를 반드시 옳은 길로 이끌 것이라고,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은 모두 그가 주재하시는 일이다. 분명 뭔가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었습니다.”

“호오, 상당히 광대한 신을 믿었군. 헌데 어째서 신을 믿는 것을 그만두었나?”

“마후드께선 단 한 번도, 신을 의심해 본 적이 없습니까?”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는 그에게 아슈레이는 빙그레 웃으며 가볍게 대꾸했다.

“그걸 말이라고 하나? 언제나 의심하고 있다네.”

“예?”

"의심이란 건 믿음에 반대급부라네. 믿기 시작한 그 순간, 언젠가 마음속에선 의심이 피어나기 마련이네. 하지만 그게 잘못은 아니지.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인가?”

“하지만 신을 의심한다면 어째서 신앙이 성립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허허, 자네의 신은 상당히 믿음을 강요한 모양이구먼. 그래서야 마음에 의지처가 되어야 할 신의 존재가 고통이 되어 버리지 않겠나? 신이란 믿고 싶을 때만 믿으면 그만이라네.”

“후후, 자유로운 신앙이군요. 확실히 제가 유독 신실했던 것은 맞습니다.”

익살스런 얼굴로 말하는 아슈레이의 태도에 준하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래, 그렇게 웃게나. 우리의 신앙은 자연에 있네. 자연에 감정은 없어. 단지 자연이 주는 은혜에 감사하고, 그것 얻기 위한 혹독함을 묵묵하게 이겨내는 지혜를 기르면 될 뿐이야. 우리가 믿지 않는다고 하여 저주하고 배척하는 신은 이미 신이라 부를 수 없지. 그건 인간들이나 하는 짓이 아닌가?”

“자연에 감정은 없다……. 훌륭한 말씀입니다.”

풍진 세월을 살아온 노인의 가르침에 준하는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질투하고 저주하는 것은 인간뿐이지.’

이런 사막에서 마주친 우연한 만남에서 참으로 가슴에 와 닿는 얘기를 들었다고 그는 생각했다.


작가의말

큰일 났습니다!

 

이 다음 얘기가 더 이상 없어요... 그래서 다음 연재는... 비축분 만드는 대로 다시 재게 하겠습니다... 푸드득!(도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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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7

  • 작성자
    Lv.72 꺄아아아악
    작성일
    13.03.16 02:44
    No. 1

    정말재밌어요!작가님꺼 다찾아보겠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윈드윙
    작성일
    13.03.20 19:57
    No. 2

    헉! 잡아라!! ㅋㅋㅋ

    그나저나 오파츠라고 하나요? 저도 종종 고대문명과 현대로 이어지는 신비한 관심이 많거든요. 언젠가 무협에도 응용하고싶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장르중독자
    작성일
    13.04.02 18:16
    No. 3

    참 흥미진진한 글이네요^^
    포춘코드 열심히 보고 작가님의 다른 글을 읽고 싶어 들어왔는 데
    대박입니다. 건필하세요.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6 버니
    작성일
    13.04.03 15:02
    No. 4

    상훈의 인사에 여기서 상훈이 아니고 준하 아닌가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뽀이뽀로밀
    작성일
    13.04.03 15:35
    No. 5

    준하 맞습니다... 상훈은 다른 이야기의 주인공인데 헷갈려 버렸군요. 수정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6 버니
    작성일
    13.04.03 23:52
    No. 6

    다음 이야기도 너무 기대되네요 ㅎㅎ 왠지 그리운 파이브스타 스토리즈 생각도 나면서.....그럼 건필하세요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윈드윙
    작성일
    13.04.11 05:52
    No. 7

    어서 다음편 올려주세욧!!(버럭버럭 ㅋㅋ)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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