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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캐가 본캐 되는 날까지

이블익시드

웹소설 > 일반연재 > SF, 판타지

뽀이뽀로밀
작품등록일 :
2013.03.06 05:05
최근연재일 :
2013.03.07 17:51
연재수 :
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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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5,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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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3.06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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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열사[熱沙]의 도시(1)

※이미지와 상관없습니다.




DUMMY

모래가 섞인 뜨거운 바람과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

알자흐 사막의 혹서가 시작되는 이 시기에는 너무나 뜨거운 열기에 숨 쉬는 공기마저 뜨겁다. 순환 냉각 장치가 없는 소형 바렐[일종의 자동 차륜기] 같은 물건은 타이어에 사막용 스파이크 벨트를 장착하더라도 엔진 열 탓에 얼마 못 가 폭발하고 만다는 악명으로도 유명한 시기다.

그러나 냉각 장치가 달린 중형 이상의 바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이곳에선 유력 호족들이나 상인 연맹 같은 곳뿐이다. 이곳에 사는 대부분에 사람들은 낙타나 말이라는 고전적인 이동수단을 쓴다.

해서 남자 또한 낙타를 이용하고 있었다. 대신 이동수단보다는 운송수단으로 쓰는 중인지 낙태의 양 허리에는 항아리만 한 광주리가 매달려 있었다.

옆에서 낙타의 고삐를 쥐고 묵묵히 걷는 남자는 자외선을 피하고자 구트라[끈으로 지탱하는 면직물]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미세 모래가 폐부에 지나치게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입과 코는 천으로 가리고 있었다.

검은 눈동자와 사막 지방 사람들이 하는 복색을 하고 있지만 드러난 피부색은 그들 특유에 선천적인 구릿빛이 아니었다. 타국인, 알자흐를 터전 삼은 민족의 피를 지니지 않은 이방인이라는 증거.

게다가 키 또한 장대한 편이었다. 걸으면서 보이는 몸의 굴곡으로 봐선 호리호리하지만 빈틈없이 단련된 듯, 모래 언덕을 몇 개나 넘으면서도 걸음걸이엔 흔들림이 보이지 않았다.

가는 방향을 확실히 알고 있는지 빠질 빛을 삼키는 것만 같은 눈동자는 오로지 앞만을 바라볼 뿐. 조금도 다른 곳에 시선을 두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구름 한 점 없는 열사의 하늘 아래서,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걷는 남자의 뒤를 짐을 싫은 낙타 한 마리 많이 뒤쫓을 뿐이었다.

위이이이!

묵묵히 걷던 남자의 귀에 고요했던 주변을 울리는 굉음이 들려왔다.

걸음을 멈추고 소리가 난 방향으로 등을 돌리니 멀리서 모래 먼지를 일으키며 곧장 다가오는 물체가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고출력 순환 엔진음. 대형 바렐… 아니, 호버[수륙양용 부유함]인가? 대단한 인물이 지나가나 보군.’

대형 바렐도 아닌 고가의 호버를 이용할 정도면 거의 일국의 유력자나 대부호 정도일 것이 분명했다.

그는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엔진음에 살짝 겁먹은 낙타를 달래며 옆으로 크게 비켜섰다. 호버의 진행 방향으로 봤을 때, 그가 있는 곳을 곧 지나쳐 갈 것임을 알 수 있었기에 나온 행동이었다.

낙타의 볼을 쓰다듬으며 호버가 지나가길 기다리던 남자는 허리에 찬 물주머니를 꺼내 조금 목을 축였다.

‘한참 걸었으니 이 기회에 쉬는 셈 치자.’

목적지까지는 아직 하루를 더 걸어야 했다. 밤에는 기온이 굉장히 떨어지니 쉰다고 쳐도 지금 속도라면 다음날 해가 질 무렵에나 도착할 듯싶었다.

‘해가 지면 성문을 걸어 잠글 테니, 결국엔 도착하고 나서도 노숙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군.’

출발지인 사막입구 도시인 바그다에서 약 일주일이 조금 넘는 여정이었다. 도저히 혼자서 낙타 한 마리 대동하고 갈 수 있는 길이 아님에도 남자는 필요한 물품만을 챙겨 곧장 길을 나섰다. 대금을 받고 낙타와 식량을 내어 주던 상인의 단단히 미친놈을 보는 듯한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러나 바그다에서 만난 사람들의 우려와는 다르게 남자는 험한 여행길의 마무리 단계까지 와있었다.

“너와 하는 여행도 이제 거의 끝이 보이는구나. 조금만 더 고생하자.”

상냥하게 낙타를 쓰다듬으며 말하는 그에게 낙타는 고요한 눈망울을 하고 조용히 울뿐이었다. 그것이 마치 아쉬움에 표현처럼 들린 남자는 씁쓸하게 웃고 쓰다듬는 손길에 친근함을 더할 뿐이었다.

그렇게 낙타와 감정의 교류를 하는 와중에 호버는 그 위용이 눈에 보일 정도로 근접했다. 한 척의 함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거대한 기계장치가 모래사막을 가로지르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힘든 장관이었건만, 남자의 눈엔 이러타 할 감흥이 없었다. 오히려 그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호버 외벽에 새겨진 문양이었다.

‘노튼 제국 황실의 문장 아닌가? 북쪽 대국의 황족이 이런 변방 사막에 무슨 일이지?’

눈앞을 지나는 호버의 외장을 쫓는 그의 눈에 작은 의문이 피어올랐다.

‘이 방향이라면 목적지는 에실론인가? 되도록 그냥 지나쳐 줬으면 좋겠군.’

그렇게 속으로 투덜거린 그는 문득 자신을 향한 시선을 느꼈다. 아마 호버의 주인이라고 짐작되는 금발 벽안의 소녀가 자신을 창문 안쪽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신을 똑바로 응시하는 그 눈에 담긴 약간의 흥미와 지루함을 읽은 그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지루한 여행에 작은 눈요기 거리도 못돼서 미안하게 됐군.’

불안해하는 낙타를 진정시키며 그는 저 멀리 호버가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꿈쩍 않고 있었다.




노튼 제국의 5황녀. 루시아 오드 벨민스터는 멍하니 창밖을 보다 호버의 이동선 상에서 비켜선 여행자와 낙타 한 마리를 발견했다.

자신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하는 여행자의 시선을 느꼈지만, 기분 탓으로 여겼다. 밖에서 자신의 시선을 눈치 챘을 리도 없거니와 그렇다 하더라도 감히 황족을 똑바로 올려다보는 무례를 범할 하등민 따윈 살면서 경험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네부카드는 신분의 상하가 노튼보다 엄격한 나라였지.’

최하층민 노예계급부터 실질적인 주권자들인 대호족들의 이르기까지 총 5개의 신분이 있는 네부카드와 달리 노튼은 100년 전 노예제도를 폐지함으로 법적으로는 평민과 귀족, 황족의 계급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래 봐야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나뉜 것은 똑같아.’

뮤렌과 알스터 같은 공화국이 등장한 것도 겨우 70년이 채 되지를 않았다. 사법체계 아래 신분의 평등을 추구한 그곳에서도 빈부의 격차라는 것이 존재했고 양극과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세계는 변혁을 겪고 있었지만 그를 위해 치러야 할 성장통은 아프기 그지없었다. 각국은 아직도 유물의 기술을 독점하기 위한 정치적, 외교적 마찰에 국력을 소모할 뿐이었고 그것은 지난 300년간 북쪽에서 군림해온 노튼 제국도 다를 바 없었다.

‘그 유물을 위해 황족이 이런 변방에까지 파견된다는 것조차 어불성설인 거다. 사람들은 이제 슬슬 유물의 기술이 주는 족쇄로부터 벗어나야 해.’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녀는 알고 있었다. 당장 그녀가 타고 있는 호버조차도 유물의 기술에서 파생된 결과물이었으니까.

“황녀 전하. 약 30분 후 에실론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루시아가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들기 직전에 때맞춰 안으로 들어온 것은 그녀의 수행원인 도리안 비튬이었다.

“이제야 도착한 건가? 호버를 타고 오는 편한 여정이었지만. 사흘이나 이런 방안에만 처박혀 있으려니 좀이 쑤시는걸.”

그제야 창가에서 떨어진 그녀는 방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큰 귀빈실 중앙에 서 있는 도리안에게 다가갔다.

“어머, 좀처럼 우는 소릴 안 하시는 황녀 전하께서 웬일이신가요?”

고개를 갸웃하자 그녀의 붉은 머리카락이 가볍게 흔들렸다. 다른 한 켠에선 우아한 걸음걸이로 중앙에 응접 테이블까지 걸어온 루시아는 근처 소파에 앉아 그 가늘고 긴 다리를 꼬았다.

“너는 나를 무슨 철혈의 여인쯤으로 여기는 것 같은데 나도 사람이야. 게다가 알다시피 무척이나 활동적인 사람이고.”

“가볍게 움직이시기엔 이 방도 적당히 넓다고 생각됩니다만?”

“시끄러, 사흘 내내 날 이방에 가둬놓고 혼자서 여기저기 기웃거린 여자한테는 듣고 싶지 않아.”

“호호, 황태자 전하의 전용 호버답게 여기저기 호화로운 시설들이 참 많더군요.”

“지금 시비 거는 거지?”

입을 가리며 웃는 도리안을 향해 살짝 노려보는 시선을 던진 루시아는 정말 분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모처럼 류엘 오라버니의 호버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고. 순환 엔진 시스템이나 압축 공기 분사 장치 등 이것저것 볼 게 많았는데 말이야.”

일국의 황녀 전하께서 가질만한 관심사라 하기엔 괴악하기 짝이 없는 견학 리스트다. 듣고 있던 도리안이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쉬었다.

“정말이지… 최근엔 좀 뜸하다 싶었는데 역시인가요? 황녀 전하, 측근으로서 이제 그만 숙녀로서 가질 만한 관심사에 눈을 둬 주시기를 간청 드립니다.”

“에스테도 꼬박꼬박 받아, 드레스 룸도 계절 바뀔 때마다 갈아치워. 거기에 몸매 관리를 위해 운동도 하잖아. 대체 뭐에 눈을 더 두라는 거야?”

“음… 자수나 뜨개질이라던가?”

“지난겨울에 목도리랑 장갑 떠서 선물해준 게 누구더라?”

“그럼 음악은 어떠세요? 작곡 같은 건 전하께 딱이라고 생각되는 걸요.”

“나 음치인 거 몰라?”

“그럼 문예 쪽은 어떠세요? 최근 노팅힐[노튼 제국 수도] 최고의 인기 작가, 호세 마르소를 초빙한다든가.”

“차라리 슈타이어[노튼 제국 유물기술 연구원]의 수석 연구원을 초빙하겠어.”

속속들이 받아 받아치는 루시아의 태도에 도리안는 결국 항복을 선언했다.

“후우, 알겠어요. 황녀 전하께는 정말 두 손 두 발 다 들었습니다. 어째서 유물기술에 그렇게 매달리시는 거죠?”

그 질문과 미소 속에 담긴 일말의 씁쓸함에 루시아는 담담하게 대꾸했다.

“이전 시대의 멸망 이후 벌써 오 백년이나 흘렀어. 그럼에도 지금의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바로 전 시대 문명의 잔재인 유물들이야. 그것들이 가진 힘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 유물기술을 바로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그럼 유물기술에 통달하신 뒤엔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글쎄…… 솔직히 그 뒤는 나도 잘 모르겠어.”

턱을 괴는 루시아의 호수 같은 눈동자가 맑은 빛을 머금었다.

그 이상의 대답을 듣지 못할 것임을 짐작한 도리안은 한쪽에 마련된 찬장에서 능숙하게 티 세트를 꺼내 루시아의 앞에 내놓았다.

얼음을 넣은 유리잔에 그녀의 머리색을 닮은 액체가 떨어지며 은은한 향을 살포시 뿌렸다.

“솔직히 폐하께서 에실론에서 열리는 경매에 루시아님을 보내신 이유가 전하의 남다른 취미 생활 때문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오는 와중에 생각해보면 고작 유물 경매에 일국의 황녀가 직접 가는 것도 어떨까 싶군요.”

“그만큼 이번 물건의 파장 크다는 증거야. 류엘 오라버니 말로는 듀터스의 왕제[王弟]와 가이넬의 동궁[東宮:왕세자를 지칭], 코린토스 제국의 3황자를 비롯해 유력한 귀족이나 대부호들이 참석한다고 하시더군.”

“황태자 전하께서 말씀이십니까? 그게 사실이라면 분명 대단한 물건이 나오는 모양이군요.”

도리안은 사실 경매에 물품에 관한 자세한 내용까지는 듣지 못했다. 해서 나온 질문에 루시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가 따라준 차가운 차를 가볍게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이번에 에실론에서 내놓은 물건은 마키나야. 그것도 원형이 상당히 보존된.”

“어머나, 그게 정말이라면 각국의 제후나 왕족이 벌 때 같이 몰려들 만하네요.”

루시아가 알려준 경매품에 대해들은 도리안은 눈을 크게 뜨며 감탄했다.

“가장 최근에 이전 시대 마키나가 발굴된 사건은 분명… 20년 전 크릭서 반도에서였지요?”

“맞아. 상반부, 그마저도 중요 동력계통으로 추정되는 부분이 파손된 기체가 인양되었어. 이전 시대 마키나라는 건 대부분 그런 식이야. 그보다 이전인 392년도엔 외부 한 기체의 것으로 추정되는 좌완부와 각부가 발견되었고, 401년엔 트란토 산 중턱에서 바위들과 함께 있는 마키나의 머리를 발견했지.”

전 세계 각지에서 발견되는 유물 중에서 해석이 불가능한 것들을 뺐을 때 가장 가치가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마키나의 파편이었다. 그 마키나의 파편으로부터 현재 만들어지는 마키나들의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어쩌다 발견되는 마키나의 파편에서 현재의 기술보다 뛰어난 기술이나 설계를 건지는 예도 있었다.

“20년 전 바닷속에서 끌어올린 유물 마키나에서 파생된 기술로 본국의 아쉐리트가 개발되었어. 상반신만 남은 고철에서 건진 기술만으로도 지난 20년간 지상전에서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는 마키나가 탄생한 거야. 그럼 원형이 거의 보존된 마키나를 손에 넣으면 과연 어떨지 상상이 가?”

루시아는 살짝 머금은 잔에서 입을 때며 말했다.

“빨리 보고 싶네. 온전한 이전 시대의 마키나.”

멀리 창문 밖으로 보이는 에실론의 모습을 확인한 그녀의 고운 눈이 광채를 발했다.


작가의말

스타트!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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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Personacon 윈드윙
    작성일
    13.03.17 05:08
    No. 1

    무협에 익숙한 저에게는 신선하군요..^^
    여행자의 시선이 끝나고 바로 황녀의 시선으로 이어지는 장면..^^ 좋은데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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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사[熱沙]의 도시(1) +1 13.03.06 384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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