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보는 남자(3)
그때는 정말 앙증맞고 귀여웠던 가슴이 이제는 딱 봐도 B컵은 될 것 같았으니 세월은 무상하게 흘러서 귀엽던 소녀 동생이 이제는 성숙한 여인이 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수진이는 키가 167cm, 몸무게는 자기 말로 47kg이라는데, 내가 보니 50kg은 될 것 같았다.
하니 날씬하다고도 할 수 있었으며 얼굴은 엄마를 닮아서 그런지 아주 예뻤다.
그리고 성격도 무난했고, 귀여웠으며 애교도 많았으니 어디 내놔도 빠질 그런 아이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수진이가 도끼눈을 뜨고는 잡아먹을 듯이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보고 싶어서 본 것이 아니라 우연히 봤다. 지금 이 말이야?”
“응, 그리고 너도 오빠 샤워하는 것, 옷 갈아입는 것 많이 봤잖아.”
“그건 정말 우연이고, 오빠는 고의로 봤지. 안 그래?”
“정말 우연히 봤으니까 오해하지 말고, 다음에는 꼭 뽀뽀도 하자. 알았지?”
“흥!”
수진이 귀엽게 이러고서는 방을 나가버리는 바람에 한동안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건 그렇고 아버지에게는 돈 이야기를 어떻게 할지 한동안 고민하는데, 전화가 울리기에 받으니 가장 믿을 수 있는 그리고 진짜 하나밖에 없다고 할 만한 친구 이성희였다.
“술 안 마신다.”
“그럼 운동하러 와라.”
“그것도 싫다.”
“밥 사준다. 백수가 돈이 없어서 밥이나 먹고 다니겠느냐. 그러니 이 형님이 사주마.”
“주민등록증 가지고 와라. 그래서 오늘 누가 형님인지 결판을 짓자. 그도 아니면 주먹으로 결판을 짓거나. 알았어?”
이 바람에 결국 아버지에게 돈 이야기도 못 하고 이성희 녀석이 일하는 헬스클럽에 가서 오랜만에 운동했다. 그렇게 한바탕 땀을 흘리고 나니 오히려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이었다.
“한우 어때?”
“회가 먹고 싶으니 회 먹자. 돈 있지?”
“백수보다는 많지.”
친구 이성희 녀석과 그렇게 인근 횟집으로 가서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기어이 주민등록증을 꺼내서 내가 형님이라는 것을 못 박고 나니 녀석이 이러는 것이었다.
“제수씨하고는 진짜 어떻게 할 거야?”
“인마, 형수다. 그리고 아직 어떻게 할지 서로 결론이 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영원히 결론이 안 날 것 같다.”
“그냥 이혼하고, 새로운 여자 만나. 백호, 네 특기가 여자 꼬이는 것 아냐. 그런데 그게 뭐냐?”
“악담해라. 악담을!”
그러고 보니 지금의 나는 진정한 내가 아닌 것 같았다.
결혼하기 전의 나는 친구 이성희의 말처럼 바람둥이에 호색한이었으나 지금은 전혀 그런 것 같지가 않았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 과거가 어디 가고, 그 뜨거운 피가 어디 가겠는가. 하나 아직은 법적으로 유부남이니 참고 또 참을 뿐이었다.
어떻든 이름만 들으면 여자 같은 이성희 녀석과 술을 마시고 다시 차에 치일까 봐 조심조심하면서 집에 들어와서는 그날이 이미 산 로또 복권 추첨일인 2005년 7월 2일 토요일인 것도 모르고 잠에 빠져들었다.
“동생 가슴이나 훔쳐보는 엉큼한 오라버니, 차 내가 가져간다.”
“훔쳐본 것이 아니라 우연히 봤다. 그리고 어디 가는데?”
“친구 만나러 가니 신경 끄셔요.”
“남자 친구 만나러 간다고?”
“흥! 오빠 같은 엉큼한 놈 만날까 봐 남자 친구가 아니라 여자 친구들 만나러 간다.”
다음날 일요일 아침 9시도 되지 않아서 이렇게 나를 깨운 여동생 수진이 내 차이지만 제가 더 많이 타고 다니는 내 차를 끌고 나가는 바람에 나도 부스스 일어나서 대충 밥을 먹고 동네 목욕탕으로 직행했다.
그렇게 온탕에 앉아서 오늘은 어떻게든 아버지에게 돈 이야기를 하고 빌리든지 뭘 하든지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는 온탕을 나와 사우나실로 들어가니 처음 보는 아저씨 둘이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어젯밤 추첨한 로또 복권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번호가 내가 이미 산 번호랑 비슷한 것이었다.
그래도 느긋하게 사우나를 즐기고, 집으로 가서 엄마랑 잠시 놀다가 방으로 들어가서 컴퓨터를 켰다.
그렇게 로또 복권 당첨 번호를 검색해서 지갑에 넣어둔 복권을 꺼내 무신경하게 번호를 대조하다가 심장이 멎을 뻔했다.
“우와! 이게 뭐지! 이게 뭐야! 와아아! 우와와!”
로또 복권 당첨번호가 내가 산 번호 그대로 당첨이 된 것이 아닌가.
그 바람에 한동안 흥분해서 괴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다음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고 1등 당첨자 숫자를 보니 5명이었다. 그러나 그 5명은 모두 나였다.
왜냐하면, 내가 5장을 그 번호 그대로 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1등 당첨금 총액이 111억 3,576만 원이라는 것이었다.
세금 33% 36억 7,480만 원을 떼도 실수령액이 자그마치 74억 6,095만 원이라는 것이 더 문제였고 말이다.
“백호야, 왜 그래?”
엄마가 내가 지른 소리를 들었는지 방으로 들어와서 이렇게 묻기에 순간 마음을 가라앉히고 당첨 사실은 일단 비밀에 부쳤다.
그리고는 엄마를 방에서 내보내고, 그때부터 그 돈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궁리를 시작했다.
“일단 빚부터 갚고, 부모님과 수진이 용돈도 드리고, 기부도 한 1억하고, 그리고는 그녀를 다시 낚을 밑밥을 뿌리고, 미끼도 던지고, 그래서 그녀가 입질은 해오면 ···,”
그때부터 당첨금을 어떻게 쓸지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니 정말 행복했고, 짜릿했다.
마치 그녀의 첫 나신을 본 그때처럼 말이다.
하여튼 온종일을 그렇게 보낸 다음 날 아침, 오늘도 차를 가져가려는 수진을 일단 제지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저녁에 우리 수진이가 제일 좋아하는 참치 사 준다. 그러니 오늘 차는 오빠가 쓴다. 또 저번에 이야기한 그 하얀색 샤넬 백은 이제 안 갖고 싶어?”
“우리 오빠, 오늘 왜 이래? 맞다. 내 가슴 훔쳐 본 것이 미안해서 이래?”
“정말 우연히 봤으니까 하여튼 그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고, 참치도 사주고, 백도 사 줄 테니까 전화하면 받아라.”
귀신에 홀린 것 같은 표정의 수진을 뒤로 하고, 부모님께도 저녁같이 하자고 한 다음 오랜만에 아끼는 양복을 꺼내 입고, 수진을 태워서 근무하는 초등학교 앞에 내려줬다.
그리고는 시간에 맞추어서 중구 충청로 1가에 있는 농협 본점으로 가서 로또 복권 1등 당첨금을 찾으러 왔다고 하고, 직원의 안내로 당첨금 지급 장소로 들어갔다.
그리고 당첨 용지, 신분증, 도장까지 주고 농협 통장과 그 통장의 체크카드까지 만들었다.
“말씀하신 대로 24억 6,000만 원은 1,000만 원짜리 자기앞 수표 246장으로 찾았고, 나머지 50억 원은 통장으로 넣었습니다.”
“수고했습니다. 하면 이쪽으로 나가면 되나요?”
직원의 안내를 받아서 주차장으로 바로 나간 다음 차에 시동을 걸 때만 해도 몰랐는데,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시키자 가슴이 벅차올라서 한동안 또 괴성을 질렀다.
“우와와! 야호! 으하하하하!”
얼마나 그렇게 괴성을 질렀을까.
겨우 마음을 진정한 다음 찾아간 곳은 당연히 대한 은행 여의도지점이었다.
“야, 대출금 갚아!”
최 대리 놈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농협에서 찾아온 1,000만 원짜리 수표 12장 즉 1억 2,000만 원을 면상에다 던져주었다.
그러니 인상을 쓰는 것이 아닌가.
죽으려고 환장한 것 같아서 대가리를 한 대 갈긴 다음 목을 잡으니 그제야 내가 누군지 똑똑히 기억났는지 꼬리부터 말았다.
지점장이 그 모양이니 직원들도 다 이 모양이었다.
하여튼 놈이 대출금을 상환하는 그때 지점을 이렇게 만든 주범 정창수 놈에게 가서 이렇게 말했다.
“야 이 새끼야! 너는 고객이 왔으면 차라도 한잔 타 와야지 지점장이라는 새끼가 멀뚱거리면서 눈치만 봐!”
“······,”
“이 새끼야! 차 타오라는 말 안 들려! 그리고 노파심에서 말하는데, 침 뱉지 마라. 맛이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개 값 물어줄 돈 넉넉하게 있으니까 복날에 개 맞듯 맞는 수가 있다.”
정창수 놈이 그래도 미적거리기에 놈의 책상 위에 있던 서류를 집어 던져버리고, 놈의 정강이를 한 대 걷어차자 여기저기서 여직원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제야 놈도 내가 누군지 똑똑하게 기억났는지 정강이를 만지더니 차를 타러 가는 것이었다.
진짜 그 모습을 보니 속이 다 시원했다.
“정기 예금 아직도 정 양이 담당하지?”
“예, 강 대리님.”
“나 이제 강 대리 아니다. 그러니 그런 시답잖은 소리 하지 말고, 여기 10억 있으니까 1년짜리 정기 예금이나 만들어와. 요즘 이자가 얼마야?”
“3.50%이니 연 2,960만 원 정도 되겠네요.”
“그럼 한 달에 246만 원 정도, 용돈은 되겠네.”
이 바람에 대한 은행 대출금은 모두 갚고, 정기 예금 10억도 가지게 됐다.
그러나 아직 갈 곳이 있었으니 곧 정기 예금은 10억에서 20억으로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러려고 수표로 24억이나 찾은 것이다.
어떻든 한바탕 여의도 지점을 뒤집어 놓고, 대출금도 갚고, 정기 예금도 만든 뒤 대출금 해지 증서와 통장을 갈무리한 다음 대한 은행 명동 지점으로 갔다.
그곳에는 그녀의 아주 중요한 끄나풀이 있었기에 그녀를 다시 낚을 밑밥은 그곳에서 뿌려야 했기에 말이다.
“심숙희, 선배를 봤으면 얼른 인사부터 안 해!”
“선배님, 오셨습니까. 은행 그만두고, 암으로 병원에 2달이나 입원했다면서요. 저는 선배님이 어떻게 되는 줄 알고, 얼마나 걱정을···,”
“전혀 걱정한 얼굴이 아닌데.”
“진짜 걱정했어요. 그런데 무슨 일로?”
“점심이나 사주려고, 그리고 부탁할 일도 있으니까 우선 이 계좌 번호로 1,000만 원씩 나누어서 5,000만 원 입금하고, 10억짜리 1년 정기 예금 만들어.”
정말 눈이 동그래지는 심 양, 아니 심숙희는 내 대학 후배였으나 아이러니하게도 나랑 친한 것이 아니라 좀 전 그 생글거리는 웃음 뒤에는 그녀 민은정이 도사리고 있었다.
즉 내 대학 후배가 그녀의 완전한 끄나풀이 되어서 내 일거수일투족을 고자질하고 있었으니 그것이 아이러니가 아니면 무엇이 아이러니겠는가.
그러나 내가 은행을 그만두었으니 이제 그러지를 못해서 한동안 입이 근질거렸을 것이다. 하여 오늘 이곳에 와서 이렇게 밑밥을 넉넉하게 뿌렸으니 이 일은 곧 민은정의 귀에 들어갈 것이고, 5,000만 원도 그녀 통장에 들어갈 것이었다.
“그런데 선배님, 이건 언니 통장 번호네요?”
“응, 지난 3월부터 주지 못한 생활비야. 한 달에 1,000만 원 합쳐서 5,000만 원.”
“전에는 200만 원 줬지 않아요?”
“인상했어. 그래야 내 아내로 이 세상을 당당하게 살 것 아냐. 안 그래?”
“······,”
심숙희가 대답을 안 하기에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봐 한동안 궁리를 해보니 어느 정도는 감이 잡혔다.
‘너는 그 입으로 나불거리다가 기어이는 그 입으로 나를 도와주는 역할밖에는 안되니 너도 참 불쌍하다.’
어떻든 그렇게 밑밥으로 뿌린 생활비 5,000만 원이 민은정 통장으로 들어가고, 10억짜리 정기 예금도 만들어졌다.
“총 정기 예금이 20억, 한 달 이자가 492만 원이니 용돈은 넘겠지?”
“좀 전에 한 10억 말고, 정기 예금 10억이 또 있어요?”
“응, 여의도지점에. 여기 통장 있으니까 봐. 그리고 이제 부탁 하나 하자.”
“뭔데요?”
“은정이 만나면 이 20억을 내가 위자료로 준비했다고 해. 그러면 뭔가 말이 있겠지. 단 위자료를 주기 전에 조건이 하나 있으니까 그건 만나서 논의하자고 해줘.”
“무슨 조건이기에 위자료를 20억이나 줘요?”
조건은 무슨 조건이겠는가.
민은정이란 대어를 다시 낚을 밑밥이지.
하여튼 그런 내 꿍꿍이도 모르고 심숙희는 20억 위자료를 준다니 마치 나를 호구 보듯 했다.
‘이 멍청한 년아. 네 눈에는 내가 별거 중인 마누라와 이혼해주는 조건으로 20억이나 위자료를 주는 호구로 보이지. 그러나 내 눈에는 네가 나에게 이용당하는 멍청이로 보인다.’
어떻든 이렇게 밑밥을 뿌렸으니 심숙희는 그것을 민은정에게 알려줄 것이고, 민은정 그녀는 이제 미끼를 물 일만 남은 것 같았다.
과연 그녀가 미끼를 제대로 물어서 내가 추진하는 꿍꿍이가 잘 될지는 이제 하늘에 달린 것이 아니라 오직 그녀의 선택과 내가 꾸민 꿍꿍이를 그녀가 눈치를 채지 못하게 할 내 연기력에 달린 것 같았다.
‘내가 연기는 좀 하지.’
이제 그녀가 내가 던진 20억이라는 밑밥에 속아서 입질을 해오면 현란한 손놀림 즉 연기를 펼쳐서 내 곁에 영원히 잡아두면 내 꿍꿍이는 완벽하게 성공이었다.
“그 조건은 만나서 이야기한다. 그리고 어서 먹어. 다시 들어가서 일해야 하잖아.”
“그래도 20억은 좀···,”
“인마, 아직 20억을 위자료로 준 것도 아닌데 뭘 그래. 그리고 내가 20억 준다고 은정이가 날름 그 돈을 받을 사람이야? 아니, 우리가 이혼할 것 같아?”
“그건 아닌 것 같아도 20억을 위자료로 준비했다면 남들이 다 선배님을 호구라고 할 걸요.”
“뭐? 호구?”
“예, 호구요!”
근처의 제법 유명한 일식집 정식으로 점심을 사주면서 심숙희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붕신아! 내가 호구는 무슨 호구! 내 연기에 속는 네가 붕신이지.’
어떻든 그 심숙희가 점심을 먹고 다시 은행에 들어간 다음에는 근처 유명한 백화점으로 갔다.
거기에서 수진이 예전부터 눈독을 들였으나 비싸서 못 산 샤넬 하얀색 핸드백을 약 800만 원에 샀다.
그러니 엄마가 걸려서 이번에는 하얀색이 아닌 분홍색으로 하나를 더 사고, 아버지에게는 아르마니 양복을 한 벌 샀다.
“자! 이건 우리 수진이 선물이다. 그리고 이건 엄마 것, 아버지 것은 양복이라서 차에 있으니 집에 가서 줄게요.”
“우와! 이게 뭐야. 아침에 한 말이 사실이었어. 그런데 설마 이거 짝퉁은 아니지?”
“짝퉁 아니다. 그러고 오빠가 용돈까지 줄 테니까 뽀뽀 한 번만 해줘.”
“어디서 사기 쳤어?”
“사고는 쳐도 사기는 안 친다. 그러니 그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뽀뽀 한번 해줘. 그러면 용돈 준다. 거기다가 차도 사주마. 어떠냐?”
1억이 든 봉투를 들고 이렇게 물었으나 수진은 뽀뽀해줄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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