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보는 남자(37)
나처럼 그냥 편하게 놀고먹으면서 취미 생활이나 하면 되는데 말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그 여자 많은 헬스클럽에서도 여자 한 명 꼬이지 못하는 놈이 장사하면 여자가 떼거리로 붙어. 응? 그리고 인마, 여자는 장사한다고 붙는 것이 아니고, 일단 얼굴이 못생겼으면 현란한 말솜씨로 사로잡은 다음 어느 정도의 능력을 보여주고, 기회가 오면 죽여주면 되는 거야. 알아?”
“몰라. 그리고 백호 네 말처럼 내가 얼굴이 되는 것도 아니고, 말솜씨가 좋은 것도 아닌데 능력을 보여주고, 죽여줄 기회나 있겠어.”
“인마, 그러면 장사할 것이 아니라 말솜씨를 배우고, 능력은 좀 되니 죽여줄 기교를 익히면 되지.”
“아. 몰라. 하여튼 나 장사한다. 그러니 허락한 것으로 안다.”
“너 혼자 다 할 거면서 허락은 왜 받아.”
“백호, 네 덕분에 25억이나 생겨서 장사하니 일단 말은 해야지.”
민은정이 마침 화장실에 간 때문에 녀석의 이 말은 듣지 못했다.
안 그러고 내가 로또 복권을 주어서 녀석이 자기와 같은 날 25억의 당첨금을 받았다는 것을 알면 자기 친구 이수영에게는 2억 주고, 녀석에게는 25억이나 주었다고 삐질지도 몰랐다.
그래서 녀석에게 이렇게 당부까지 해야 했다.
“네 형수님은 그 일 모른다. 그러니 입을 조심해라. 알았어? 그리고 장사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봐라. 그런다고 여자가 붙는 것도 아니고, 쫄딱 망해서 알거지가 될지도 모르는데.”
“성희 씨가 알거지 되면 돈 많은 오빠가 좀 도와주면 되지. 그러니 성희 씨. 걱정하지 말고 하세요. 그럼 제가 친구들 데리고 자주 놀러 갈게요.”
“역시 형수님이 백호보다는 훨씬 낫네요.”
“뭐 인마.”
“오빠는 신경 쓰지 마시고, 장사 하세요. 그런데 계획은 있어요?”
“형수님은 아실지 모르겠지만, 우리 이모가 그 골목 갈매기살 집 중 한 곳에서 주방장으로 20년 일했거든요. 그런데 얼마 전에 디스크 수술을 받는 바람에 식당을 그만두게 되었죠. 물론 지금은 괜찮아졌습니다. 그래서 이모와 동업으로 식당을···,”
“이모는 정말 괜찮아?”
중간에서 말을 끊고 이렇게 묻자 녀석은 내가 흔쾌히 허락한 줄 알고, 그때부터 침을 튀겨가면서 괜찮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하여튼 이것도 친구라고, 그런 생각도 들었으나 어쩌겠는가.
친구인데 말이다.
그것도 가장 믿을 수 있는 녀석이었으니까.
“이모가 괜찮다니 그건 다행이다만, 내가 보니 너는 장사해도 여자는 못 꼬이겠다. 그러니 갈매기살 장사하면서 그냥 갈매기살이랑 결혼해라.”
“악담 좀 그만해라.”
“진담이다. 인마, 그리고 또 말하는데, 너처럼 해서는 죽어도 여자 못 꼬인다. 그러니 일찌감치 포기하고, 정 갈매기살이랑 결혼하고 싶지 않으면 외국에서 수입해라. 수입!”
“그러지 말고 진짜 형수 같은 예쁜 여자 꼬이는 법 좀 가르쳐 줘라?”
“이미 가르쳐 줬잖아.”
그때 민은정이 끼어들더니 이성희 녀석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빠 말 신경 쓰지 마세요. 제가 친구 소개해 줄 테니까요.”
“민은정, 괜히 친구 소개해 주고 욕 듣지 마.”
얼굴로 안 되면 말 빨, 그것도 안 되면 능력, 그래도 안 되면 여자를 아예 죽여주는 기교라도 있어야 하는데, 녀석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비록 로또 복권 당첨금 25억이 있었어도 여자가 바보가 아닌 이상 팬티부터 벗겠는가.
돈부터 빼먹지.
그런데 녀석은 그런 여자를 휘어잡아서 자기 여자로 만들 무언가 필살기가 없었다.
그러니 여자가 호구 잡았다고 더 돈부터 빼먹겠지.
요즘 세상이 다 그러니 말이다.
“오빠가 생각하는 그런 세속에 찌든 속물 같은 애가 아니라 마음을 먼저 보는 그런 착한 애를 소개해주면?”
“그 말은 내가 모르는 은정이 친구 중에서 예전의 은정이 같은 착하고 순진한 애가 또 있다는 말이야?”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요즘 세상에도 그런 여자가 남아있기는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니 민은정이 이렇게 말하리라.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이성희 녀석이 만면에 웃음을 짓더니 민은정에게 이렇게 말했다.
“형수님! 고맙습니다.”
“고맙기는요. 그런데 저처럼 예쁘지는 않아요.”
“으하하! 이성희 인마, 우리 은정이가 저렇게 말하면 정말 못생긴 애니 너무 기대하지는 마라.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니까 말이야.”
“오빠가 상상하는 그 정도로 못 생기지는 않았네요. 단지 나보다 조금 못할 뿐이지.”
민은정보다 조금 못할 뿐인 여자의 미모는 어느 정도일까.
그리고 민은정은 다른 여자들처럼 자기 친구 소개해 준다고 해놓고는 자기보다 훨씬 못생긴 애를 소개해주는 그런 여자가 아니란 말인가.
그래서 먼저 이렇게 어떻게 생겼다고 통보해주는 것인가.
“내가 모르는 그런 친구도 있다는 말이지. 그럼 좋아. 은정이 얼굴이 100점이라면 그 애 얼굴은 몇 점이야?”
“한 70점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그 정도면 예쁘잖아. 그런데 그런 애를 이 자식에게 소개해 준다고?”
“왜 그럼 안 돼?”
“안 될 것은 없지만, 혹시라도 그 애가 이 자식을 가지고 놀다가 돈만 쏙 빨아먹고 가버리면 이 자식은 어떻게 해.”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오빠가 생각하는 그런 세속에 찌든 속물 같은 애가 아닌 마음을 먼저 보는 착한 애라고 말이야.”
이 말에 이성희 녀석은 그때부터 침을 질질 흘리기 시작했지만, 나는 의심의 눈초리로 민은정을 쳐다봤다.
내가 아는 민은정 친구 중에서 그런 조건에 합치되는 애가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민은정이 거짓말을 할 사람도 아니어서 더 그럴 수밖에는 없었다.
“그런데 은정아, 그런 애가 있었으면 진작 이 자식에게 소개해주지 않고, 왜 이제야 소개해 주겠다는 거야. 그리고 그런 애가 이 자식을 좋아할까?”
“인연은 다 때가 있는 것이고, 진정한 인연이라면 결과도 좋겠지.”
“무슨 소리야?”
“오빠는 그냥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라는 소리야.”
“하하하! 역시 형수님이 최곱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잔 드세요.”
“주세요. 자! 건배!”
이게 뭐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혹시 그 여자가 돌아온 싱글인가.
아니면 다른 놈과 사귀다가 얼마 전에 헤어졌는가.
그래서 인연은 다 때가 있다고 한 것인가.
그리고 혹시 그 여자가 전남편이나 전 남자친구랑 헤어지고, 다시 남자를 만나면 이제부터는 얼굴보다는 마음을 볼 것이라고 민은정에게 말이라도 했는가. 하여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인마, 그렇게 김칫국부터 마시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공부 좀 해라. 공부! 그래서 마음에 들면 이번에는 확 잡아. 알았어?”
“무슨 공부?”
“에라 이 자식아! 지금 그걸 몰라서 물어!”
“성희 씨가 여자를 공부하라는 말이에요. 그러나 너무 그렇게 신경 쓰지 마시고, 제 잔 받으세요. 그리고 장사 준비도 잘하시고, 꼭 성공해서 돈 많이 버세요. 알았죠?”
“그래야죠. 그리고 역시 저를 알아주는 것은 형수님밖에 없습니다.”
“놀고 있네. 그러고 네 친구는 민은정이 아니라 나다. 인마. 또한, 이 세상에서 너를 가장 잘 이해해주고, 네가 쫄딱 망해도 다시 후원해 줄 놈도 나뿐이라는 것만 잊지 마라.”
이 바람에 녀석이 장사하는 것도 공식화됐고, 민은정에게 여자 소개받는 것도 현실화될 것 같았다.
하여간에 복은 많은 놈인 것 같았다.
그리고 꼴값을 떤다고 수천억 부자와 수백억 부자인 우리 부부를 젖혀두고 제가 횟값을 계산하더니 이어서는 2차까지 산다고 지랄을 했다.
하여튼 그 때문에 가까운 칠성통 인근의 바로 가서 2차를 하고, 3차는 노래를 부르러 갔다. 저번 가라오케에서의 안 좋은 추억이 있어서 가지 않으려고 했으나 민은정이 가자고 자꾸 부추기는 바람에 결국 가서 노래도 불렀다.
“집에서만 자지 말고 가끔 이렇게 나와서 외박하면 분위기 전환도 되고 좋으니까 자주 외박해라. 그래야 좋은 시간도 더 많이 가지지.”
“여자도 없는 놈이 별 희한한 소리를 다 하고 있네.”
“없으니까 하는 소리다. 그리고 형수 같은 미인을 아내로 둔 네가 무지하게 부럽기도 하다.”
“까불지 말고 들어가서 자라.”
적당한 음주와 노래 끝에 아파트로 가서 자자니 이성희 녀석이 우겨서 우리는 근처 호텔로 갔다.
그런데 애인도 없는 녀석이 이렇게 말했으니 기가 막혔다.
그러나 그 바람에 객실 2개를 잡아서 녀석을 한 방에 밀어 넣고, 우리도 다른 객실에 들어가니 녀석의 말처럼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
우리가 함께 살기 시작한 10월이 왔고, 하늘은 점점 높아져 갔지만, 여전히 주식, 로또, 경마, 미래의 일 등등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바람에 지난 7월 독일 월드컵 결승전 37.8배 토토 배당금 이후 수입이라고는 주가 상승분과 포스코 주식 중간 배당을 제외하고는 정기 예금 100억의 매월 이자 3,525만 원이 다였다.
그러나 그 돈 중에서 1,000만 원은 민은정 생활비, 1,000만 원은 수진과 부모님에게 몰래 용돈으로 주고 나니 나에게 떨어지는 것은 고작 1,525만 원이 다였다.
그런데 내 생활비, 세금 등을 내고 나면 거의 남는 것이 없다고 봐야 했다.
물론 다른 통장에 든 돈은 그대로 있었고 말이다.
“돈을 버니 씀씀이가 커져서 월 1,525만 원으로도 부족한 것 같으니 이거야 원.”
“그건 오빠가 너무 사치스럽기 때문이야. 그러니 좀 절약해.”
“그럼 은정이가 살림해.”
“싫어. 그러니 살림은 지금처럼 오빠가 다 해.”
“월 1,525만 원으로도 부족한 것은 모두 은정이 때문이야. 그러니 살림해.”
“왜 나 때문이야?”
“은정이가 먹는 것, 입는 것, 가지는 것 모두를 아무것이나 해줄 수 없으니까.”
이러고서 민은정을 보니 기가 막혀서 죽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니, 자기가 언제 그런 것을 바랐느냐는 그런 표정이었다.
그러나 나는 민은정에게는 모든 것을 최고로 해주고 싶었다.
“내가 그렇게 해달라고 한 것도 아니니까 덤터기씌우지 말고, 요즘은 왜 로또, 토토, 경마 그런 것은 안 해. 그러니 수입이 없어서 이런 억지스러운 이유나 가져다 붙이지.”
“은정이가 홍콩 제대로 보내주지 않아서 그런 것도 안 보여.”
“뭐라고?”
“아니, 나는···,”
“다시는 안 해준다.”
민은정은 이때 내가 해달라면 정말 최선을 다해서 해 주었으니 이건 내 실수여서 얼른 삐지려는 그녀를 달랬으나 이미 늦은 뒤였다.
그래서 이렇게 분위기를 반전시키려고 했다.
“우리 영화나 보러 갈까?”
“싫어.”
“그러지 말고 보러 가자.”
“뭐?”
“타짜나 라디오 스타!”
그렇게 겨우 민은정을 꼬여 탑동으로 가서 라디오 스타라는 영화를 보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예지 능력이 생긴 지 일 년이 되는 즈음 독일 월드컵 결승전 경기가 보였고, 그 이후에는 전혀 예지가 보이지 않았으니 예지 능력은 결국 그렇게 끝난 것이 아닌가. 바로 그 생각 말이다.
‘로또, 토토, 경마 이런 것은 필요 없고, 내년 포스코 주식 매도하면 그즈음 한 2배만 되는 다른 주식 종목 시세는 보여야 하는데. 보여야 하는데.’
그즈음 약 2배만 오르는 종목이 보인다면, 내 재산은 2조가 넘을 것이니 그러면 영원히 돈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건 내 욕심이었다.
거의 알거지에서 그동안 약 4,000억에 가까운 부자가 되었어도 만족하지 못하고, 그런 욕심을 부리니 말이다.
어떻든 라디오 스타라는 영화를 보고 나와서는 민은정이 먹고 싶다는 갈치구이와 갈칫국, 갈치조림, 갈치회 등 갈치 풀코스로 저녁을 먹는데, 그녀가 이렇게 물었다.
“저 영화 관객이 한 500만은 들겠지?”
“그 정도는 아니고, 내가 보니 한 200만은 들겠다.”
“200만? 저 정도 재미있는 영화가 200만? 웃기시네.”
“그럼 내기할까?”
“무슨 내기?”
“무슨 내기는 저 영화의 배경이 된 영월로 여행가는 내기지. 단 경비는 지는 사람이 내는 것으로 하자.”
민은정이 응하는 바람에 내기는 그렇게 성립됐다.
영화는 재미가 있었으나 관객이 500만은 들지 않을 것 같았으니 내 승리가 확실했다.
같이 개봉한 아주 재밌을 것 같은 타짜라는 영화라면 모를까 말이다.
그 다음 날은 서울로 올라가서 부모님께 인사하자마자 수진까지 데리고, 비싼 화분도 사고, 봉투도 챙겨서 이성희 녀석의 갈매기살 집 개업식에 갔다.
“어서 오십시오. 의원님!”
“인마, 의원님이 뭐냐. 그러니 그냥 편히 불러!”
“예, 아버님! 어머님도 안녕하셨죠? 수진아, 너는 가면 갈수록 더 예뻐진다. 그래서 말인데 오빠에게 시집 안 올래?”
“성희 오라버니, 우리 새언니에게는 친구 소개해 달라고 해놓고, 나에게는 시집오라고? 흥이다. 새언니, 친구도 소개해 주지 마세요.”
“수진아, 왜 그러니? 오빠가 잘못했다.”
“인마, 주접 그만 떨고, 고기나 가져와 봐.”
이성희 녀석의 갈매기살 집은 개업이라서 그런지 이른 저녁인데도 손님이 제법 많았다.
이 골목은 퇴근 시간만 되면 앉을 자리가 없어서 일찍 왔는데도 이 모양이니 늘 이렇게만 장사가 되어서 녀석도 돈을 더 벌고, 제 꿈처럼 장가도 갔으면 했다.
그러고 보니 가게는 일반 식당을 인수해서 개조한 관계로 다른 곳보다는 훨씬 깔끔했고, 주방과 화장실도 깨끗했다.
그런데 가게 이름이 기가 막히게도 백호 갈매기였다.
“이 형님 이름 가졌다 선 것은 좋다만, 이름에 먹칠하지 않도록 잘해라. 그리고 원산지 속이지 말고 아니, 웬만하면 모두 국내산 그것도 이 형님이 사는 품질 좋은 제주산을 사용해.”
“고기, 상추, 배추, 파, 마늘 등등 모두 다 국내산이니 걱정하지 마라. 그리고 제주산은 고려해 보마. 그런데 맛은 어때?”
“다른 집과 비교해서 특별하게 맛있다는 생각은 안 든다. 그리고 이 특제 양념장이라는 것도 맛이 평범하니 다시 연구해봐. 또 확 끌리는 밑반찬이 한 가지 정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런 것도 없고···,”
아주 냉정하게 맛을 평가하자 이성희 녀석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그러나 이렇게 말해주는 누군가는 있어야 했기에 계속해서 부족한 것 같은 부분을 지적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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