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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김정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현대판타지

서백호
작품등록일 :
2018.04.09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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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0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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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28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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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군정 통치(5)

등장인물과 배경, 권력기구와 부대 편제, 주둔지와 무기 체계, 그 성능. 그리고 역사적 사건 등등은 모두 작가의 상상에 의해 창조된 것으로 현실과는 다르고, 또 현실이 아니므로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DUMMY

일본의 항복 그리고 그에 따른 의식이 펼쳐지는 날이 바로 오늘이었고, 그 일본의 항복 의식을 거행하는 사회를 한중전쟁에 이어서 이번에도 국군 1군단장 이철영이 맡아 이렇게 시작을 알렸다.

그러자 행사에 참석한 남북한과 고구려군에서 이런 환호성이 터져 멀리멀리 퍼져나갔다.

그러자 그 환호성을 한동안 즐긴 이철영이 내빈과 외빈 그리고 남북한과 고구려군 장병을 한번 둘러본 다음에야 이렇게 말했다.


“우리 남북한과 고구려는 일본의 독도 도발로 지난 8월 15일부터 일본과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9월 6일 일본 총리 이시바가 항복함으로써 오늘 이 항복 의식을 거행하는 것을 참고해 주십시오. 그럼 옛 중화인민공화국이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항복한 전례에 따라서 일왕 나루히토와 상왕 아키히토 그리고 일본 총리 이시바와 전직 일본 총리, 부총리 니시가와와 전 부총리 아소, 외무상 에사키, 전 외무상 도테기, 방위대신 마사요시, 전 방위상 고노 이상 10명이 대한민국 이세연 대통령님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은 총비서님, 민재인 고구려위원회 위원장님께 옛 중국과 같은 삼궤구고두례(三跪九叩頭禮)가 아닌 구배구고두례(九拜九叩頭禮)의 예로 항복하는 의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참고로 전 일본 총리와 전 부총리 아소, 전 외무상 도테기, 전 방위상 고노 등은 이 전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자기들만 살려고 미국으로 도망쳤다가 얼마 전에 송환되어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것입니다.”


단기 4355년 음력 8월 18일, 서기 2022년 9월 13일 오전 10시, 일본의 독도 도발로 지난 8월 15일부터 시작한 한일전쟁이 9월 6일 일본 총리 이시바가 항복함으로써 이렇게 일단락됐다.

남북한과 고구려군은 단 23일 만에 전광석화처럼 일본 동경을 점령해 일왕과 상왕 그리고 총리와 방위대신 등을 포로로 잡아 항복을 받아낸 것이니 이때의 남북한군과 고구려군의 기동력과 막강한 전력에 일본은 30일도 견디지 못했다.

물론 그 승리의 바탕에는 탄도 미사일과 순항 미사일 전력 그리고 F-2 삼족오 스텔스 전투기로 대변되는 막강한 공군력이 있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러나 아직 홋카이도와 오키나와 등 일본 전역이 점령되지 않았기에 일본을 완전히 점령해서 항복을 받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항복 의식을 거행하는 것에는 별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따가운 눈초리와 은근한 압박 즉 하루라도 빨리 일본의 항복을 받는 선에서 전쟁을 끝내고, 잠시나마 군정을 실시한 다음 일본을 다시 정상 국가로 되돌려 놓으라는 그런 것 때문에라도 하루빨리 이 의식을 거행해야만 했다.

그래서 아직 홋카이도와 오키나와를 완전히 점령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이 항복 의식을 벌이는 것이었으나 앞에서 언급한 일정 기간 군정 실시 이후 일본의 정상 국가로의 전환은 미국을 비롯한 그 나라들의 희망 사항일 뿐이었다.

하고 일본을 앞으로 어떻게 통치할 것인지는 민재인 고구려위원회 위원장이 이미 미국 대통령 바이든에게 천명한 바가 있었다.

그래도 미국 등의 나라는 계속해서 그런 압박을 가했으나 남북한과 고구려는 눈도 끔뻑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일본이 조선에 식민지 총독부를 두었듯 일본에도 식민지 총독부를 두는 것이 아닌 일본 군정사령부를 두는 것으로 무늬만 한발 물러나 주었다.

어떻든 그런 가운데 이렇게 일본의 항복 의식이 열렸고, 그 사회자는 저번 중국 항복 의식에서도 사회를 맡은 국군 1군단장 이철영이 다시 맡았는데, 그가 이렇게 서두를 꺼내놓자 그야말로 카메라 수천 대가 일시에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방송 카메라 수백 대도 일시에 그를 집중적으로 촬영했으니 이 항복 의식을 촬영하려고 남북한과 고구려 각 방송사는 물론 전 세계 유수의 방송사 거의 모두가 지금 이곳에 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국군 특전사령부 예하 1, 3, 5여단과 국군 1, 2군단 특공여단과 저격대대, 인민군 8군단 8특공여단 등이 일본 왕궁과 항복 장소를 철통같이 경계하고 있었다.


“자, 그럼 이제부터 일본의 항복 의식을 거행하겠습니다. 먼저 식순에 따라서‘궤(跪)! 모두 무릎을 꿇는다.’


사회자 국군 1군단장 이철영이‘궤(跪)! 모두 무릎을 꿇는다.’라고 했지만, 예전 중국 국가 주석 시진핑 등처럼 일왕 나루히토와 상왕 아키히토 특히 전 일본 총리 등은 무릎을 꿇지 않았다.

그러자 그때처럼 그들 10명 곁에 붙어서 있던 남북한과 고구려에서 엄선해서 선발된 병사 20명이 강제로 그들을 꿇어 앉혔다.


“일배(一拜)!”


궤(跪)에 모두 무릎을 꿇고 있던 이들이 일배의 호령에도 절을 하지 않자 역시 병사들이 강제로 절을 시킨 다음 이마가 땅에 닿도록 머리를 조아리게 했다.

아니, 머리를 세차게 땅에 찍어버렸다.


“재배(再拜)!”


이철영의 이어진 재배 호령에도 또다시 일왕 나루히토와 상왕 아키히토, 전 총리 등이 절을 하지 않자 역시 병사들이 강제로 절을 시킨 것은 물론 이번에도 이마가 땅을 찍도록 내리눌렀다.


“삼배(三拜)!”


삼배의 호령에 역시 이마가 땅에 닿을 듯 절을 시킨 병사들이 머리도 땅에 찍었다.

그러자 사회자 이철영이 다시 사배(四拜)라고 호령했으니 이것이 옛 중국이 항복한 삼궤구고두례(三跪九叩頭禮)와는 다른 것이었다.

즉 남북한과 고구려는 이미 옛 중국이 항복한 방식인 삼궤구고두례가 아닌 새로운 방식인 이 구배구고두례(九拜九叩頭禮)라는 것을 만들어서 이렇게 일본의 항복을 받았다.

이 구배구고두례는 바로 아홉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그야말로 치욕적인 방법이었으니까 말이다.

옛 중국 명나라도 오배삼고례는 있었어도 아홉 번 절을 시키는 구배구고두례는 없었으니 이는 실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치욕적인 방법이 맞았으니 남북한과 고구려가 일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것만 봐도 바로 보여 주는 예라고도 할 수 있었다.

어떻든 사배에 이어서 오배(五拜), 육배(六拜), 칠배(七拜), 팔배(八拜), 구배(九拜)까지 하고 머리까지 조아린 일왕 나루히토, 상왕 아키히토 등이‘기(起)’호령에 따라서 그제야 일어날 수 있었다.

옛 중국은 삼궤구고두례(三跪九叩頭禮) 또는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로 항복했고, 일본은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이 구배구고두례(九拜九叩頭禮)로 항복하는 의식은 일단 그렇게 끝이 났다.


“와!”


그 순간 일본 왕궁 앞 광장에 늘어서 있던 국군과 인민군, 고구려군 장병이 일제히 다시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그 소리는 이번에도 일본 왕궁을 휘감아 돌며 멀리멀리 동경 시내로 퍼져나갔다.

국군과 인민군, 고구려군 장병이 지르는 그 환호성과 옛 중국에 이어서 다시 펼쳐진 이 생소한 항복 의식에 외신 기자들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바람에 사회를 보는 이철영의 목소리가 일순 묻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착각도 잠시 이철영은 항복 의식이 끝나자마자 이어서 전 세계가 들으라는 듯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이 항복 의식에는 옛 중국이 항복할 때처럼 미국, 영국, 러시아 등의 지도자도 대사도 눈에 띄지 않았으니 그건 남북한과 고구려가 그들을 초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 각국의 취재진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으니 그들도 실시간으로 이 항복 방송을 보고 있을 것이 뻔했다.

그리고 이때 일본의 모든 항공편은 저 오키나와를 제외하고는 남북한과 고구려 공군에 의해 완전히 통제되고 있었기에 그들이 일본으로 오고 싶어도 제 마음대로 들어 올 수도 없었다.

하고 그건 일본인들도 제 마음대로 외국으로 나갈 수 없다는 말이었고, 관광객도 제 마음대로 일본으로 들어올 수 없다는 말이었으니 일본은 완전히 고립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서 중사님, 이제 항복 의식 끝났습니다. 그런데 구배구고두례(九拜九叩頭禮)라는 것을 보고도 잘 이해가 안 갑니다.”

“그냥 간단하게 아홉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 조아린다고 생각하면 쉽지. 뭘 그렇게 따져. 따지기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생소해서 그렇습니다.”

“짱깨 놈들에게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를 받았고, 이번에는 그 삼배(三拜)가 구배(九拜)로 바뀌었을 뿐인데 생소한 것도 많다.”

“그래도 생소한 것은 생소한 것입니다.”

“그래, 생소하다. 생소해. 그러니 주변이나 잘 살펴. 혹 미친놈이 총이라도 쏘면 안 되니까.”

“이 마당에 총 쏠 미친놈이 있겠습니까?”

“일왕과 상왕이 항복했다고 할복자살하는 놈들이 수두룩한 일본이다. 그런데 아직 항복을 인정하지 않고, 총 가지고 있는 놈이 없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하긴 그것도 그러네요.”

“그래. 그러니까 주변 감시 잘해라. 괜히 특전사 애들과 우리 저격대대는 물론 인민군 특공여단 등등이 이 주변에 쫙 깔린 것이 아니니까.”

“예, 그런데 이제 일본의 항복도 받았고, 그럼 전쟁에서 이긴 것과 마찬가지이니 한국 돌아가면 인민군 여군 소개해주는 것입니다.”

“뭐라고?”

“들었지 않습니까.”

“뭘!”


항복 의식이 펼쳐지는 일본 왕궁 앞이 환히 내려다보이는 인근 빌딩 옥상에서 주변을 경계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국군 1군단 저격대대 서한국 중사의 말 사이로 그 1군단장 이철영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남북한과 고구려 국민 여러분, 온 세계만방의 시민 여러분, 일본이 이처럼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고구려에 항복했습니다. 우리 남북한과 고구려군은 지난 20여 일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드디어 일본의 항복을 받았지만, 아직 이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많은 일을 해야 하고, 더 위대한 업적을 쌓아야만 합니다. 그럼 이상으로 구배구고두례의 항복 의식은 마치고 먼저 이세연 대한민국 대통령님의 축사를 듣겠습니다. 아, 그리고 옛 중국과는 달리 일본은 항복문서 조인식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일본은 조건이 없는 항복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세연 대한민국 대통령님의 축사부터 듣겠습니다.”


나와 민재인 위원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단상 중앙에 마련된 연설대로 나간 이세연 대한민국 대통령이 운집한 내외신 기자와 남북한군과 고구려군에 이어서 저 멀리 경계를 서고 있는 병사들까지 한번 쳐다본 다음 이렇게 축사를 시작했다.


“친애하는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 여러분, 고구려 국민 여러분, 오늘은 정말 뜻깊은 날입니다. 이 일본이 군사력을 동원해서 완전한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 조약을 맺도록 한 지난 1876년 2월 27일부터 오늘까지는 무려 5만 3,525일이 흘렀습니다. 그 긴 시간 우리는 일본의 지배를 받았고, 해방이라는 이름의 광복을 맞기도 했지만, 그 이후에도 우리는 일본의 영향력에서 전혀 벗어나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부끄럽고 부끄럽게도 우리 내부에는 친일민족반역자들이 다수 존재했고, 아직도 그들 일부가 남아있습니다. 하나 오늘 우리는 완전하게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 일본을 극복했고, 그동안 일본에 당한 수모를 오늘부터는 모조리 갚아 줄 것이며, 아직도 우리 내부에 남아있는 친일민족반역자들을 모조리 단죄할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일본은 항복 조건이 없습니다. 그래서 일부 염려하시는 분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 전혀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부터 이 일본에는 남북한과 고구려군이 군정사령부를 차려서 군정 통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로 일본은 군정사령부가 통치하는 기간 내내 자위대를 보유할 수도 없고, 단 한 자루의 소총도 생산할 수 없으며, 단 한 척의 함정도 단 한 기의 항공기도 마음대로 생산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일본이 국가로서 가졌던 모든 권한도 오늘 이 순간부터 박탈합니다.”


작가의말

이 글은 현실이 아니므로 현실과 다른 내용이 있을 수 있고, 그 부분은 작가의 상상력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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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3 최후의 승리(3) +1 22.11.01 511 12 12쪽
462 최후의 승리(2) +6 22.10.31 568 11 11쪽
461 최후의 승리(1) +1 22.10.29 596 17 11쪽
460 항복 협상(12) +1 22.10.28 541 16 11쪽
459 항복 협상(11) +1 22.10.27 519 16 12쪽
458 항복 협상(10) +2 22.10.26 498 15 11쪽
457 항복 협상(9) +4 22.10.25 535 13 11쪽
456 항복 협상(8) +3 22.10.24 529 18 11쪽
455 항복 협상(7) +2 22.10.22 577 17 11쪽
454 항복 협상(6) +1 22.10.21 553 13 12쪽
453 항복 협상(5) +1 22.10.20 561 19 11쪽
452 항복 협상(4) +1 22.10.19 569 16 11쪽
451 항복 협상(3) +1 22.10.18 581 15 11쪽
450 항복 협상(2) +1 22.10.17 577 19 12쪽
449 항복 협상(1) +1 22.10.15 637 14 11쪽
448 진격의 나팔 소리(12) +1 22.10.14 534 16 12쪽
447 진격의 나팔 소리(11) +1 22.10.13 512 14 11쪽
446 진격의 나팔 소리(10) +1 22.10.12 516 16 11쪽
445 진격의 나팔 소리(9) +1 22.10.11 533 17 12쪽
444 진격의 나팔 소리(8) +1 22.10.10 516 14 11쪽
443 진격의 나팔 소리(7) +1 22.10.08 572 18 11쪽
442 진격의 나팔 소리(6) +1 22.10.07 553 18 11쪽
441 진격의 나팔 소리(5) +1 22.10.06 611 18 11쪽
440 진격의 나팔 소리(4) +1 22.10.05 582 18 11쪽
439 진격의 나팔 소리(3) +2 22.10.04 562 15 11쪽
438 진격의 나팔 소리(2) +1 22.10.03 612 17 11쪽
437 진격의 나팔 소리(1) +1 22.10.01 668 2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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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9 2차 한중전쟁의 서막(9) +2 22.08.30 874 20 12쪽
408 2차 한중전쟁의 서막(8) +2 22.08.29 885 23 12쪽
407 2차 한중전쟁의 서막(7) +2 22.08.27 903 23 12쪽
406 2차 한중전쟁의 서막(6) +3 22.08.26 910 26 11쪽
405 2차 한중전쟁의 서막(5) +3 22.08.25 918 21 12쪽
404 2차 한중전쟁의 서막(4) +3 22.08.24 953 24 12쪽
403 2차 한중전쟁의 서막(3) +1 22.08.23 992 21 12쪽
402 2차 한중전쟁의 서막(2) +1 22.08.22 995 21 12쪽
401 2차 한중전쟁의 서막(1) +2 22.08.20 1,120 22 12쪽
400 남북한과 고구려(12) +1 22.08.19 1,012 28 12쪽
399 남북한과 고구려(11) +1 22.08.18 936 27 11쪽
398 남북한과 고구려(10) +2 22.08.17 941 22 11쪽
397 남북한과 고구려(9) +3 22.08.16 944 22 11쪽
396 남북한과 고구려(8) +2 22.08.15 992 23 12쪽
395 남북한과 고구려(7) +2 22.08.13 1,011 26 11쪽
394 남북한과 고구려(6) +2 22.08.12 1,011 25 11쪽
393 남북한과 고구려(5) +4 22.08.11 1,029 32 11쪽
392 남북한과 고구려(4) +3 22.08.10 1,028 25 11쪽
391 남북한과 고구려(3) +2 22.08.09 1,060 22 11쪽
390 남북한과 고구려(2) +3 22.08.08 1,143 26 12쪽
389 남북한과 고구려(1) +2 22.08.06 1,235 30 12쪽
388 군정 통치(12) +2 22.08.05 1,097 23 11쪽
387 군정 통치(11) +2 22.08.04 1,045 24 12쪽
386 군정 통치(10) +2 22.08.03 1,037 25 12쪽
385 군정 통치(9) +2 22.08.02 1,057 25 12쪽
384 군정 통치(8) +2 22.08.01 1,080 27 12쪽
383 군정 통치(7) +3 22.07.30 1,155 30 13쪽
382 군정 통치(6) +3 22.07.29 1,085 33 13쪽
» 군정 통치(5) +3 22.07.28 1,110 31 12쪽
380 군정 통치(4) +2 22.07.27 1,136 29 12쪽
379 군정 통치(3) +2 22.07.26 1,207 27 12쪽
378 군정 통치(2) +3 22.07.25 1,262 31 13쪽
377 군정 통치(1) +2 22.07.23 1,374 28 12쪽
376 일본의 항복(12) +2 22.07.22 1,285 27 12쪽
375 일본의 항복(11) +4 22.07.21 1,187 33 11쪽
374 일본의 항복(10) +3 22.07.20 1,159 29 12쪽
373 일본의 항복(9) +2 22.07.19 1,131 25 11쪽
372 일본의 항복(8) +2 22.07.18 1,137 27 11쪽
371 일본의 항복(7) +2 22.07.16 1,195 2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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