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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홍연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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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무협

완결

나홍연
작품등록일 :
2022.08.12 23:14
최근연재일 :
2022.11.06 03:20
연재수 :
5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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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94
추천수 :
467
글자수 :
318,555

작성
22.08.2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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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글자
12쪽

약산의 늑대 추양구

DUMMY

강원도 신고산.


“그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놈이 조선제일검 무휼이었다니...”


“누구 아니랴나. 며칠을 공치다가, 겨우 한건 잡았다고 신나서 달려들었더니 하필... 그나저나 그 곰 같던 놈은 누구였소? 우리 산채 박살낸 놈. 그 놈이 우리 두목보다 더 큰 것 같던데.”


추양구의 우마적들은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여전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산채는 박살이 나 멀쩡한 것이 하나도 없었고, 우마도 모조리 도망가 버려 그저 부서진 가재도구 따위만 휑하니 나뒹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양구 무리는 그냥 산채를 떠나기로 결정하였다. 더 이상 머무를 이유도 없거니와, 혹시라도 산채의 위치를 알고 있는 효성이 또다시 덮치지나 않을까 두려워서였다.


그렇게 강원도 쪽으로 방향을 잡은 양구 무리의 행색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한때 쉰 명이 넘어가던 인원은 이제 단 열두 명만이 남아 그의 뒤를 따르고 있을 뿐이었다. 그마저도 절반은 효성에게 맞아 반병신이 되어 걷기에도 힘이 부친 상태였다.


“에휴, 그나저나 이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누. 그 곰 같은 놈, 단 한 놈한테 산채 식구 전체가 당했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 텐데...”


현빈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그렇게 한탄했다. 그러자 앞장서고 있던 양구가 말했다.


“너무 나쁘게만 생각지 말아라. 일단 우리에겐 조선제일검과 붙었다는 경력이 있지 않느냐.”


“조선제일검은 무슨... 우리가 당한 건 그 덩치 큰 놈, 그놈뿐이었지 않소. 무휼이는 근처에도 못 가봤는데...”


“어허, 말귀를 못 알아먹는 구나. 조선 땅에서 실제 무휼이를 본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 그리고 실제 무휼이가 검을 휘두르고 싸우는 모습을 본 사람은?”


양구가 그렇게 말하자, 그제야 현빈이 그의 말뜻을 눈치 챘다.


“오호라, 그러니까 대충 우리가 무휼이 그놈하고 붙었었다고 소문을 내자구요?”


“그렇지! 바로 그거야. 생각해 봐라. 우리 두목이 조선제일검하고 대등하게 싸웠던 바로 그 추양구님이시다! 이렇게 소문을 내는 거지. 그러면 사람들이 앞 다투어서 우리한테 고개를 숙이지 않겠느냐, 이 말이다.”


“오호, 일리 있는데! 역시 우리 두목, 머리 잘 돌아가는 건 알아줘야해!”


현빈이 눈빛을 반짝이며 양구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러자 잠깐이나마 양구 무리의 얼굴에 득의양양한 미소가 지어졌다.


오전 내내 쉬지 않고 걷고 있던 양구의 무리는 신고산의 한 골짜기에 접해 있는 길에서 잠깐 쉬어 가기로 했다. 몸이 편치 않은 이들은 걷는 것만으로도 고단했던지 그 자리에 그냥 퍼질러 누워 버렸다.


그렇게 한참을 쉬고 있으려니, 불현듯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그 소리에 무리 중 몸이 가장 날랜 일남이 잽싸게 큰 나무 위로 올라가 주위를 살폈다.


“말이 한 마리 달려오고 있소. 이쪽 길이오!”


그 소리에 양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마침 잘 되었구나. 모두들 전투 준비를 하거라!”


양구의 한마디에 그때껏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쉬고 있던 이들이 한 호흡을 채 들이마시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전투태세를 취하였다. 칼이며 도끼 따위를 빼어들고 명만 내려지면 당장이라도 뛰어들 준비를 끝내었다.


비록 지금의 신세는 볼품없다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름만 들으면 우는 아이도 울음을 그친다는 바로 그 추양구의 우마적이었다.


그렇게 살기를 잔뜩 품은 양구의 무리는 일남이 말한 그 말이 눈앞에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두두두두두. 그리고 드디어 말을 탄 남자가 양구의 시야 안으로 들어왔다.


“네 이놈, 내가 누군지 아느냐? 이 몸이 바로 조선제일검 무휼하고...”


두두두두두.


하지만, 양구가 무어라 말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말을 탄 사내는 양구 무리 사이를 헤치고 가던 길을 그대로 가버리고 말았다. 말이 일으킨 바람과 먼지만이 양구 무리의 얼굴을 스치고 있었다.


“저놈이 이미 나의 명성에 대해 알고 있었나 보구나. 나를 보자마자, 꽁지를 말고 바로 도망가 버리는 것을 보니.”


양구가 짐짓 그렇게 허세를 부렸지만, 그 사내가 양구 일행을 미처 못 보고 지나쳐 버린 것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양구 무리는 그저 멍하니 말이 달리는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와, 그나저나 저 말 정말 실하다. 조선에도 저리 좋은 말을 타는 사람이 있었구나.”


말은 여섯 자는 충분히 될 만큼 큰 덩치에 단단한 근육질을 하고 있었다. 온 몸은 윤기 나는 검은 털로 덮여 있었는데, 네 발목과 이마에만 흰 털이 나있었다.


그 잘생긴 말이 힘차게 질주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바로 눈앞에서 놓친 것이 더욱 아깝게 느껴졌다. 저 정도 말이라면 분명 고가에 팔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이미 지나가 버린 일. 양구 일행은 그저 땅바닥에 내려놓았던 짐들을 챙겨들며 다시 이동할 준비를 하였다. 그런데 그때 나무 위에 있던 일남이 급하게 소리쳤다.


“잠깐 기다려 보시오. 더 오고 있소. 말이 더 오고 있소. 이번엔 여러 마리요!”


그 말에 양구 일행은 다시 짐을 내려놓고 무기부터 빼어 들었다.


“일단 길부터 막아야 된다. 나무를 잘라서 길을 막아라!”


양구가 그렇게 명을 내리자, 도끼를 든 부하들이 근처의 나무를 내려찍기 시작했다. 도끼가 없는 이들은 주변의 쓸 만한 돌이며 나무토막 따위를 주워 날랐다.


“근데 말이 좀 많은 것 같소. 열 마리가 넘는 것 같은데...”


나무 위에서 망을 보던 일남이 걱정스런 어투로 그렇게 말했다.


“걱정 말고 그냥 길부터 막아라. 내가 누구냐! 영변 전체를 공포에 떨게 만든 약산의 늑대, 추양구님이 아니시더냐! 너희들은 그냥 길을 막고 학익진을 펼치거라. 중앙엔 내가 서겠다. 알겠느냐!”


“네, 두목!”


양구의 명에 모두들 우렁찬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했다.


두목의 괴력은 익히 알고 있는 바였다.


약산의 늑대 추양구.


5백근을 짊어지고 3백리를 가는 고금무쌍의 장사. 그야말로 장비의 현신.


‘이제 두목이 나서서 한 놈만 제압을 한다면, 뒤이은 놈들은 알아서 머리를 조아릴 것이다. 그러면 오늘 점심은 간만에 푸짐하게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모두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들로 가득 찼다. 그러한 기대감에 힘든 줄도 모르고 나무를 자르고 돌을 날랐다.


양구의 무리는 한참을 길을 막는 데에 열을 올렸다. 그리고 그 사이에도 말발굽이 울리는 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려왔다.


두두두두두.


그 소리가 가까이 들려오는 만큼 양구 무리의 심장은 흥분으로 요동쳤다. 신고산에 도착하자마자, 이리 크게 한탕할 수 있을 줄이야...


그런데 문제는 그 소리가 지나치게 크게 울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열 마리? 스무 마리? 어쩌면 그 이상?


양구는 무언가 크게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나무 위에서 망을 보던 일남이 자지러지듯 고함을 질렀다.


“군대요! 군대요, 군대!”


일남의 고함소리에 양구가 즉각 반응하였다.


“치워라! 모두 치워라!”


그 소리에 모두들 정신을 차리고 길을 막아두었던 나무며 돌들을 황급히 길옆으로 치우기 시작했다. 양구도 손발을 걷어붙이고 부하들과 함께 돌을 치우기 시작했다. 5백근을 든다는 그 괴력으로 돌을 굴리고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치우고 있자니, 머잖아 군마가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열 마리, 스무 마리, 서른 마리...


수백 기의 군마가 양구 무리의 앞으로 쏜살같이 지나가기 시작했다. 그들 중에 양구 무리의 존재를 신경 쓰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양구 무리는 행여나 말발굽에 채이기라도 할까, 머리를 감싸고 길가에 엎드려 있었다. 어서 빨리 이 악몽이 끝나기를 빌 뿐이었다. 그 와중에 현빈은 말발굽에 튄 돌에 놀라 그대로 골짜기 아래로 굴러 떨어져버렸다.


군마가 지나기엔 분명히 비좁은 길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마치 넓은 평야를 달리듯 기가 막힌 기마 솜씨로 산길을 달리고 있었다. 흙먼지가 날려 길도 잘 보이지 않을 터인데도 그들은 그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는 듯 했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자니, 마침내 그 긴 군마의 행렬이 끝이 났다. 그들이 일으킨 흙먼지가 가라앉는 데에도 또한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흙먼지가 가라앉은 길 위에는 수 백 개의 말발굽 자국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양구 무리는 기병이 지나가는 길에 단지 옆에 서있던 것만으로도 기진맥진해버렸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양구가 무리를 돌아보며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여기도 아닌갑다. 그냥 다른 곳으로 가자꾸나. 가급적 빨리 이곳을 벗어나자꾸나.”


양구의 말에 대답할 기운도 없던 부하들은 그저 주섬주섬 다시 짐을 챙겨 들 뿐이었다. 그런데 그때 또다시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슴푸레 들려오던 그 소리는 이내 거대한 천둥소리처럼 울리기 시작했다. 좀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소리였다.


두두두두두.


온 산을 뒤흔드는 말발굽소리에 귀청이 터질 것만 같았다.


양구 무리는 허겁지겁 길 밖으로 빠져나와 주변의 나무들을 부여안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행여 군마의 질주에 휩쓸리기도 할까 사력을 다해 나무를 껴안았다.


이윽고 말을 탄 기병의 행렬이 양구 무리가 있던 길을 지나가기 시작했다. 거대한 말들의 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말발굽 소리에 온 산이 진동하였고, 놀란 산짐승들은 구멍을 찾아 몸을 숨기기에 바빴다.


수 백을 넘어 수 천 기의 군마가 지나갔다. 도무지 끝날 기색이 없었다. 그 행렬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실신을 할 정도였다.


두두두두두.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마침내 그 긴 군마의 행렬도 끝이 났다. 참으로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양구 무리는 모두들 반쯤 얼이 빠져 있었다. 군마가 일으킨 바람으로 모두들 산발이 되어 있었다. 들고 있던 짐들은 어디로 휩쓸려 가버렸는지 흔적조차 없었다.


양구가 터덜터덜 길로 내려왔다. 군마의 질주에 주변의 나무며 풀들이 쓰러져 처음보다 길이 두 배는 넓어진 것 같았다.


“짐이라도 챙겨서 빨리 이곳을 뜨자꾸나.”


양구 일행은 혹시라도 남아있는 짐을 찾을 수 있을까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찢어진 천 조각만이 군데군데 흩날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반쯤 얼이 빠진 상태로 길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기병 한 기가 그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보였다.


‘아직도 더 남았단 말인가.’


양구 일행은 절망적인 심정으로 그쪽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이번의 기병은 그대로 지나가지 않고 양구 일행 앞에서 말을 멈추어 세웠다.


“너희들은 여기에서 뭣들 하고 있는 것이냐?”


검붉은 얼굴에 억센 수염, 곰의 어깨를 가진 거대한 장수였다. 그리고 그 뒤엔 관복을 차려입은 선비 하나가 타고 있었다.


‘뒤쳐진 병사들인가...’


그런데 그 꼴이 묘한 것이 선비는 천으로 앞자리의 장수의 허리춤에 묶여 있었다. 그런 선비의 두 눈은 흰자를 드러내며 까뒤집어져 있었고, 입에는 거품을 물고 있었다.


이순몽과 안숭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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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오라버니 군대 두 번 간다 22.10.27 212 4 12쪽
52 외통수 22.10.25 204 4 12쪽
51 만인장의 기재를 갖추다 22.10.22 214 5 13쪽
50 군대를 두 번 가라니요 22.10.20 235 3 13쪽
49 인재는 우라산성으로 모이고 22.10.18 224 2 12쪽
48 호부견자 22.10.15 213 3 13쪽
47 송서방, 말은 탈 줄 아는가? 22.10.13 225 3 13쪽
46 다음달이 전역인데... 22.10.11 245 5 13쪽
45 병력의 절반을 잃게 될 걸세 22.10.09 251 3 12쪽
44 이징규 22.10.08 245 4 13쪽
43 범찰의 이간계 22.10.06 252 4 11쪽
42 양무타우 22.10.04 273 4 12쪽
41 과인이 서운한 점이 많소 22.10.01 300 4 12쪽
40 척가의 핏줄 22.09.30 281 4 12쪽
39 대적하려는 자, 이 칼을 들어라 22.09.29 267 4 12쪽
38 극강 생존의 달인 22.09.28 289 4 12쪽
37 김인을, 최해산 22.09.27 287 5 12쪽
36 소인이 아니라, 소장이라 하거라 +2 22.09.24 318 5 13쪽
35 왕은 인의를 지키는 자가 아니다. +1 22.09.23 318 5 13쪽
34 오랑캐는 그만 항복하시오 22.09.22 320 6 13쪽
33 조선 왕의 만용이로다 +1 22.09.21 306 6 13쪽
32 그것이 그리 쉽게 부서지겠나 22.09.20 297 4 12쪽
31 어찌 나의 병사들을 버리란 말인가 22.09.17 312 5 13쪽
30 이 전쟁, 오래 끌 이유가 없습니다 22.09.16 334 5 12쪽
29 일고초려 22.09.15 337 3 12쪽
28 삼고초려 22.09.14 354 5 13쪽
27 떡값이나 받아 가시오 22.09.13 334 3 12쪽
26 그만 떠들고 덤벼라, 오랑캐 22.09.10 367 7 12쪽
25 너의 왕을 지켜라! 22.09.09 367 6 12쪽
24 뜨거운 술이 식기 전에 (2/2) 22.09.08 347 6 13쪽
23 뜨거운 술이 식기 전에 (1/2) 22.09.07 367 7 13쪽
22 조선군의 피로 해자를 채우게 되었구려 22.09.06 421 8 12쪽
21 네가 그렇게 목숨을 부지하였구나 22.09.03 392 9 13쪽
20 아무래도 눈이 침침해서 그런 것이겠지요 +1 22.09.02 415 10 12쪽
19 네놈이 이제야 고개를 숙이는 구나 22.09.01 438 10 13쪽
18 이만주의 구상 22.08.31 445 8 13쪽
17 내 다시 한 번 해 보리다 22.08.30 453 10 12쪽
16 이놈이 발칙한 구석이 있었구나 +1 22.08.27 483 10 13쪽
15 밤시중이라도 들겠느냐 +1 22.08.26 534 10 13쪽
14 복룡 이양정 22.08.25 521 10 13쪽
» 약산의 늑대 추양구 22.08.24 545 10 12쪽
12 백인참살 곽성오 22.08.23 559 12 12쪽
11 흑표 홍사석 22.08.22 620 12 12쪽
10 야인 7부족 회의 22.08.21 696 13 12쪽
9 과부를 내어주고 장수를 얻다 22.08.20 781 1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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