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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 님의 서재입니다.

독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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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차.
작품등록일 :
2016.12.08 15:57
최근연재일 :
2017.02.05 16:31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4,445
추천수 :
25
글자수 :
68,750

작성
17.02.05 01:00
조회
240
추천
2
글자
9쪽

마지막.

DUMMY

두 번째 통증.

마치 처음은 경고였듯이 이번에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심장을 조여 왔다.

기현은 아득해져 가는 정신 속에서 핸드폰을 집어 들려 노력했다.

번호 하나에 그의 정신은 나갔다 돌아왔다. 마침내 그가 119를 눌렀을 때.

그는 의식을 잃었다.



"....."


텅 빈 길 한가운데. 온 바닥은 아스팔트에 주변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어디서 낯익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 기분 나쁜 보랏빛과 청록빛. 그리고 알 수 없는 먹구름이 가득 낀 하늘.

서서히 기억이 파문을 일으키며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래 여긴···.


"오랜만이네?"


기현은 무의식적으로 뒤돌아 상대의 눈을 보고는 급히 다시 눈을 내리깔았다.

두 번 봐도 전혀 익숙하지가 않았다.

자신을 신이라 칭하던 자. 자신에게 양날의 검을 선사한 남자.

꿈인지 사후세계의 경계인지 모르는 이곳에서 기현은 그 남자를 다시 만났다.


"어때. 재밌었어?"


남자는 모든 걸 봤던 것처럼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돌려줘."


"....."


남자는 더 이야기해 보라는 듯이 제스처를 취했다.


"완전히··· 잘못됐어. 내가 원하던 건 이게 아니야. 뭔가 틀어진 것 같아. 아무래도···."


"야."


미소는 여전했지만, 의미는 달랐다.


"네가 정한 일이야. 네가 선택하고, 네가 행동한 일이야. 무슨 뜻인지 알겠어?"


"아니, 난···."


기현의 말을 기다릴 새 없이 남자는 그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두 명이나 죽였지. 곧 세 명이 될 테고."


마침내 남자는 기현의 바로 앞에 마주 섰다.


"후회해?"


미비하게 기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돼."


"....."


"안되지, 안돼. 균형이 너무 어긋나 버렸어. 세상은 말이야···."


정체 모를 남자는 기현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말을 이었다.


"인과율이야. 돈은 유용한 매개체가 되지. 그 많은 돈이 어디서 생겨났을까. 다 남의 돈이야. 남의 것. 돈이 많아지니 너는 부자가 되고, 남들은 없어지니 가난해지는 거지. 여기서 문제. 균형을 맞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남자는 대답을 기대했던 것이 아니었기에 개의치 않아 했다.


"가진 자가 그만큼 소비하면 되는 거야. 불우이웃 모금을 하든, 돈을 뿌리든, 그만큼 물건을 사든지 가진 걸 내보내야 한다는 얘기지."


"그래. 네가 말 한 대로 난 정기적으로 후원도 하고, 쓸데없는 물건들을 사며 내 돈을 썼어. 그런데 뭐가 문제야?"


억울하다는 듯 그는 소리쳤다.


"것보다 더 많이 벌었지 않았던가? 더러운 곳에서 돈을 모으지 않았나? 남 인생 망치겠다고 악착같이 벌 지 않았나? 내가 잘못 본 건가? 대답해봐."


남자는 표정 연기까지 펼치며 그에게 정말 궁금한 듯 물었다.

그리고는 화가 난 듯 소리쳤다.


"말해!"


"....."


"자연이 조화를 이루듯 세상 또한 다르지 않다. 균형을 맞춰야 돌아가기 마련이라는 얘기지.

만약 그것에 어긋나는 존재가 생긴다? 어떻게 될까."


"글세···."


"무(無)로 돌린다.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다 네가 자초한···."


"헛소리 집어치워. 애초에 무작정 줘버린 건 당신이잖아."


"난 제의를 했을 뿐이지."


"난 받겠다고 한 적 없어."


"말만 안 했지 암묵적으로 승낙한 거 아니었나?"


"궤변이야. 멋대로 찾아온 건 당신이었어."


남자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내가? 내가 널? 천만에. 잘 생각해봐. 반지를 누가 먼저 가져갔는지."


"그건···."


기현은 말문이 막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모든 건 그 자신의 선택이었고, 결과 또한 모두 그의 것이었다.

어느 것도 누가 대신 선택한 게 아닌 스스로의 몫이었다.

그는 그저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알고 있었다.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그는 애써 외면했다. 하나씩 어긋나 버리는 일들을 보며 바로 잡으려 했었고, 그럴 때마다 더 어긋나버려 결국엔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그는 부정했다.


어디부터일까. 어디서부터 걷잡을 수 없이 일이 이렇게 커졌을까.

아마 나는 여기까지일 테지.

그는 그렇게 직감했다. 여태까지 경찰에 걸리지 않은 것만 해도 놀랄 일이니 말이다.


죽으라면 죽을 수 있었다. 다만 가기 전 마지막에 여자 친구와 친구들을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었다. 그래야 마음이 조금이라도 놓일 것 같았다.


"그만. 시간 다 됐다. 가자 이제."


“마지막으로 보고 싶은 게 있는데.”


남자는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마지막이니까 안 될 건 없지.”


기현은 이제 모든 걸 포기한 듯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내 친구들과 여자친구가 어떻게 사는지 보여줘.”


“마지막 소원답군. 애처로워. 아주 좋아. 그래··· 안타깝지만 우리는 이제 여기까지야. 아쉽네. 나는 좀 더 지켜보고 싶었는데, 세상일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


기현의 몸은 어느새 하반신부터 천천히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더디지만 조금씩, 조금씩 날아갔다.

남자는 끝까지 그를 비웃었다. 하지만 기현은 어떤 반응도 보일 수가 없었다.

그러면 저 작자에게 패배한 느낌이 들 것 같았기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 기현도 담담하게 마주 웃어주었다.


“고맙군. 근데 진짜 넌 뭐지?”


“네가 생각하는 게 있다면 그게 내 이름이 되는 거야. 그래, 내 이름이 뭐지?”


남자는 즐거워 보였다. 마지막 성찬을 즐기기라도 하듯.

무슨 대답이 나올까 그는 어린아이마냥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기현은 이제 다 지워져 가는 형태에서 말했다.

목소리는 이제 허공에서 울려 나왔다.


“악마.”


“식상하군.”


그의 마지막 미소는 진심으로 즐거워 보였다.




사방이 하얗다. 극한 어둠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듯이 기현은 극한 빛 한가운데에 들어선 느낌을 받았다.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


말을 해 보았지만, 목소리가 들리지 않은 것인지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온통 흰 곳에 있으니 점점 불안해지고 정신적으로 힘들어지는 느낌을 받아갈 무렵.

흰 바탕에 색이 조금씩 입혀지기 시작했다.


안개가 서서히 걷히듯 흐려 보이던 시야는 점점 명확해졌다.

전체적으로 좀 어두운 조명. 가게는 비교적 작은 편에 바닥과 테이블은 전부 진한 갈색보다는 더 어두운 나무로 된 재질.

익숙한 풍경.

그와 친구들이 자주 가는 술집이었다.


“.....”


그곳에는 그의 친구들이 모여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자신의 빈자리는 원래 있지 않았던 것처럼.

바로 옆에서 보는 것처럼 보였지만, 어느 소리 하나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굳이 듣지 않아도 그는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없어도 그렇게 어색하지 않다는 것.

외로운 마음이 한편으로 조금 들었지만, 그것보다는 오히려 다행이라는 마음이 더 컸다.

그간 미안했던 마음이 어느 정도 사라진 기분이 들었다.



세상은 다시 안개로 갇혀지더니 어디론가 빠르게 이동했다.

달리고 달려 어느 한 곳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점점 눈앞이 또렷해지자 그는 흐르지 않는 눈물을 흘렸다.

그의 앞에는 여자친구가 있었다.


이제는 자신의 자리가 아닌 그녀의 옆에는 낯선 남자가 같이 걷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둘은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


그는 무어라 소리쳤지만, 자신이 무엇을 말하는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그는 단지 북받치는 감정을 토해낼 뿐이었다.


끊임없이 눈물이 흐른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죄가 흐르고 미안함이 흐르고 안도감과 안타까움이 동시에 흘러내렸다.

고통이 흘러내렸다.


손을 뻗어 그녀를 잡을 수만 있다면··· 그녀에게 용서를 구할 말이 나올 수만 있다면···.


다행이야. 내가 저지른 일이니 너는 슬퍼하면 안 돼.

지금처럼 나보다 좋은 사람 만나 행복했으면 해.


용서하지 마.


끝까지 나는 자존심을 버리지 못한 겁쟁이니까.


용서하지 마.


나를 저주해 줘. 찌르고 부숴버려 더 이상 가루조차 남지 않을 때까지.

기억나지 않을 때까지.


고마웠어. 내 처음이자 마지막 사람아.


안녕,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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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는 에필로그에서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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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2부 - 8화. 17.02.02 166 1 8쪽
15 2부 - 7화. 17.02.01 199 1 7쪽
14 2부 - 6화. 17.01.31 140 1 8쪽
13 2부 - 5화. +2 17.01.31 150 1 8쪽
12 2부 - 4화. 17.01.29 190 1 7쪽
11 2부 - 3화. 17.01.27 142 1 9쪽
10 2부 - 2화. 17.01.26 222 1 6쪽
9 2부 - 1화. 17.01.25 193 1 9쪽
8 1부 - 끝. +1 17.01.24 251 1 14쪽
7 1부 - 7화. 17.01.24 171 2 8쪽
6 1부 - 6화. 17.01.20 218 1 11쪽
5 1부 - 5화. 17.01.19 196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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