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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 님의 서재입니다.

독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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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차.
작품등록일 :
2016.12.08 15:57
최근연재일 :
2017.02.05 16:31
연재수 :
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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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44
추천수 :
25
글자수 :
68,750

작성
17.02.02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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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2부 - 9화.

DUMMY

깊은 어둠이 찾아와 모든 것들을 집어삼킬 때 기현은 그 입속으로 쉽사리 빨려들지 못하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늘 이런 식이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럴 때가 오면 그는 늘 한없이 작아지기만 했다.


처음에는 오지 않는 잠을 청하기 위해 억지로 자려 노력했다. 성질을 내고, 머리를 내리찍으며 사라져도 다시 떠오르는 생각들을 지우려 애썼었다.

하지만, 곧 그건 자신을 더 괴롭게 할 뿐이라는 걸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쳐버린 건지, 체념한 건지 아니면 그렇게 애쓰는 자신이 초라해 보여 그런 건지 그는 그렇게 언제부턴가 그저 힘없이 누운 채로 언제고 찾아올 잠을 기다리며 누워 있기 시작했다.


오늘은 특히 더 심란해져 그는 마냥 누워 기다리기가 갑갑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좋지 않은 망상들은 전날들보다 더 선명하고 강렬하게 떠올라 그를 괴롭혀 가만히 놔두려 하지 않았다.

안개는 그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화가 났다. 그는 진심으로 화가 났다.

한 달 사이에 그는 두 명을 죽였다. 고의가 되었든 실수가 되었든 간에 그는 사람을 죽였다.

용서 따위는 애초에 구하려 하지 않았다. 그럴 일도, 그럴 가능성도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는 차라리 자백을 하는 게 어떨까 싶었다.


이런 마음고생과 피폐해지는 정신을 가진 채로 버텨가기가 자신이 없었다.

경찰이 오지 않길 바라면서도 자신의 집 문을 두드리길 바랐다.

철창 안에 갇혀 전보다 못한 삶을 살기 싫었지만 그러길 바랄 때도 있었다.


그는 괴로웠다. 돈이고 나발이고 모든 게 다 짜증이 났다.

왜 이런 행동을 하고 이런 일을 벌이게 되었는지, 자신이 그렇게 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한 번이라도 다시 보고 싶은 여자 친구. 하소연을 털어놓으며 정신 나간 채 술을 같이 마셔 줄 친구들. 가진 것 없고, 할 줄 아는 것 없는 놈 받아 준 반장님.


재영이는 일을 잘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내가 해고만 되지 않았다면··· 잠깐.

그는 흘러가는 과거의 한 곳에 닻을 내렸다.


"저 새끼 해고시켜. 내일도 내 눈앞에 보이면 당신도 모가지야. 알겠어?"


배를 정박시키니 그때의 일들이 생생히 떠올랐다.

그래... 내가 이렇게 된 건 다 그 일 때문이야.


"너 벌써 몇 번째냐 이게."


가슴이 저려왔다. 다른 사람 모두에게 들어도 반장님에게만큼은 그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의 주먹은 분노로 꽉 쥔 채 떨려오기 시작했다.


"내가 잘 이야기할 테니까 일단 반차로 하고 들어가. 내일은 쉬는 날이니까 모레 출근해."


비참함이 밀려왔다. 값비싼 동정이라도 동정은 동정일 뿐. 괴로워지고 나약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는 데에는 바뀌는 게 없다.


그래. 내가 이렇게 망가진 건 그 일 때문이야.

그 망할 놈의 이사가 와서 진상만 부리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다고.

다 그놈 때문이야. 원인은 걔였어.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컴퓨터에 접속해 자신의 전 회사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무엇이 되었든 마음 편히 즐겁게 시간을 보낼 만한 일을 하세요.'


그 말은 사실이었다. 것도 강한 동기부여가 되는 일이라면 말이다.

어쩌면 그는 그 일을 몰두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현실을 마주하기 무서워하는 겁쟁이.

엄마 뒤에 숨어 아버지의 호통을 두려워하는 어린아이.


그는 결국 재활용이 되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그에게 필요한 건 단지 자신의 짐을 덜어 짊어져 줄 상대였으리라.


주식부터 시작해 회사의 모든 걸 하나하나 찾아보았다.

가장 쉬운 방법은 그것 밖에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돈. 그것 하나면 다른 게 필요 없었다.

이 더러운 밑바닥에서 그가 얻은 거라면 아마 그것이 될 것이다.


그의 통장들에는 상상하기 힘든 액수들이 찍혀 있었지만, 그는 계속해서 돈을 벌기 시작했다. 전과는 다른 게 있다면 이번에는 취미나 그런 쪽이 아니라 어떤 일종의 사명감.

변질된 정의감 같은 마음으로 행하고 있었다.



그가 원하는 만큼 돈을 벌어들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쯤에서 그는 자신의 전 회사의 지분을 꽤 사들였다.

방법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그는 남들이 가지고 있던 지분을 웃돈을 얹어주고 사 왔다.


대기업까지는 아닌 곳이라 그의 돈으로는 충분히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할 수 있었다. 물론 그에 걸맞게 돈의 대부분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그는 걱정하지 않았다.


그에게 돈이란 이제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숨 쉬는 것과 같이.

그러니 그는 바닥이 날 정도로 쏟아부어도 개의치 않아 했다.


그는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이미 지분의 3분의 2는 그의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상태에서 그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기억이 맞다면 그 꼬장을 부린 놈은 직책이 이사였다.

최소한 전무. 아니, 부사장은 만나 면전에서 말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성급하게는 하지 않았다. 접대를 하러 온 과장부터 그 밑 부하 직원들을 시작해 천천히 얼굴을 익히게 해주며 모든 자리에 참석했다.



여름의 절정은 습도였다. 높은 습도로 체감상으로 더 더워지고 불쾌지수는 더 높아진다.

그 더위 속 한 회사 옥상에는 두 명의 남자가 있었다.

한 명은 난간에 기댄 채 여유롭게 담배를 태우고 있었고, 나머지 한 명은 더위 때문인지 긴장 때문인지 땀을 훔치는 것에 여념이 없었다.


"어쩐 일로 여기까지 다 찾아··· 오셨습니까?"


을은 나이 지긋한 중년이었고, 갑은 그보다 훨씬 젊은 사내였다.

갑은 푹푹 찌는 더위에 인상을 찌푸렸다.


"제가 이 회사 좋아하는 거 아시죠? 부사장님."


"그럼요. 잘 알고 있죠."


"그래요. 다 좋아요. 다 좋은데··· 딱 하나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어요."


을은 이제 기절이라도 할 듯 긴장을 한 채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갑은 아마 이 말을 하기 위해 참고 또 참았으리라.


"서송우 이사. 아니, 나는 그 친구가 조금 별로더라고···."


조금 민망한 듯한 미소.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하는 말투.

이날을 위해 짜여 진 그가 만든 각본과 연출.


분리수거가 되지 않는 쓰레기는 땅에 묻거나 태워서 보이지 않게 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지구에게 끼치는 민폐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기현은 그 길을 걷기로 자처했다.

돌아갈 수 없음을 느낀 그는 오히려 더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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