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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버섯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판타지

완결

이맛로
작품등록일 :
2016.12.08 15:57
최근연재일 :
2017.02.05 16:31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3,957
추천수 :
25
글자수 :
68,750

작성
17.01.31 15:11
조회
119
추천
1
글자
8쪽

2부 - 6화.

DUMMY

그쯤에서 기현은 생각을 재정리하기 시작했다. 그의 감정은 탁해졌고, 눈빛은 빛을 잃었다. 탁경의 행동과 표정에선 그렇지 않다 해도 모든 게 가식적으로 느껴졌고 일종의 혐오감까지 불러일으켰다.


그는 손에 잡혀있는 패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차피 보나 마나 자신이 무조건 이기는 패지만 전체적으로 게임 자체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한마디로 그는 재미가 없어졌다.


눈치껏 대화에 참여하고 가끔 져주기를 반복하는 것에 신물이 날 때쯤 탁경은 전화가 온 걸 보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바빠?”


주변을 살피며 무슨 소리가 날까 확인하며 어정쩡하게 그는 대답했다.


“으응. 조금 바쁘네. 무슨 일이야?”


“아니 지수가 아빠 목소리 듣고 싶다고 해서.”


수화기 너머로 아내의 목소리와 멀리서 들려오는 딸이 부르는 목소리. 그 사이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가 그의 귀에 닿았다.


“어디 가?”


“아, 그냥 지금 애 데리고 요 앞에··· 알았어, 알았어. 금방 바꿔줄게.”


아무래도 딸의 보챔이 심한가 보다. 아내가 뒤돌아보며 어르는 모습을 상상하니 탁경은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뒤돌아?


“운전 중에······.”


귀를 찢는 경적 소리가 강타했다. 그리고 이어 아주 잠깐의 정적 후. 폭발하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고철 따위가 구겨지는 소리가 드문드문 들려왔다.


“······.”


추위에 떨 듯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니 그는 정말로 한기를 느꼈다.

입마저 굳은 듯 바들바들 떨릴 뿐 목구멍이 막혀버린 것처럼 그는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리는 손으로 겨우 통화를 종료하고 그는 119를 누르려 노력했다. 떨리는 심장박동만큼이나 그의 손은 핸드폰을 놓치지 않는 게 최선이었다.


가까스로 통화를 연결한 그는 그제야 두 다리를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이 미쳤다.

첫발을 내딛는 순간 그는 자칫 고꾸라질 뻔했다.

자신도 모르게 풀려버린 다리는 그의 간절한 마음을 배신하며 말을 듣지 않았고 그래서 그는 주먹으로 허벅지를 내려쳤다.


“제발···.”


흐느낌에 가까운 작은 절규를 내뱉으며 그는 간신히 다리에 힘주는 법을 깨우쳤다.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할 때 통화가 연결되었다.

소방관이 채 말하기 전에 그는 소리 지르며 외쳤다.


“교, 교통사고가 났어요. 제, 제발··· 도와주세요. 제발. 제 아, 아내가 위험해요.”



기현은 무심코 손목시계를 바라봤다. 몇 번째 쳐다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순간 그는 짜증이 밀려왔다. 왜 내가 쓸데없이 이렇게 시간을 낭비해야 하지?


이제 더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있을 필요가 없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전화를 걸었다.

연결 음이 끝없는 것처럼 길게 이어지더니 안내 말이 흘러나왔다.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아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


두 번째, 세 번째···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는 더는 호의를 베풀 마음이 사라졌다.

원래부터 살아온 배경 탓에 철저히 계산적이었던 그였다.

이성이 다시 감성을 잡아먹은 순간이었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건물 밖을 나섰다.


“······.”


이젠 차 안에서 그 어떤 말도, 이야기도, 웃음도 들려오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그것이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했다. 진공과도 같은 침묵 속에서 그는 차분해졌다.

그와 같이 감정의 찌꺼기를 버려버리니 남아있는 것은 오직 분노였다.


좋게 생각해 같이 놀아줬으니 그걸로 됐다. 라고 생각하며 억지로 넘기려 했지만, 순간적인 분노는 그렇게 쉽게 사라질 성질이 아니었다.

끓어오름에 그는 차 창문을 열고 담배 하나를 물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그의 머리를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갔다.


어디를 간 거지. 왜? 무슨 이유로?


알 수 없는 일이다.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그가 어떤 이유로 어떤 생각으로 갑자기 갔는지는 그가 집에 도착할 때까지 알아낼 수 없었다.

만약 그가 탁경에게 조금의 따뜻한 마음이나 관심이 더 남아있었더라면 그는 후에 그토록 안타까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의사들의 빠른 발걸음 소리, 그 조급함만큼이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웅성웅성 거리는 사람들의 말소리, 그에 반대되는 절규에 가까운 울부짖음.

어느 곳은 커튼을 치고 침묵을 고수했고, 어느 곳은 흰 시트를 머리끝까지 올려 씌웠다.

매시간마다 들려오는 듯한 죽음을 알리는 거북한 기계음.


죽음의 문턱에서 스스로 낙담하여 포기한 사람이 있었고, 보기 흉측할 정도로 망가진 몸을 가지고도 희망의 숨을 들이쉬려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그 중 한 자리에 탁경은 서 있었다.


"환자분 상태가 현재···."


의사의 말이 이명처럼 들려왔다. 수술이고 나발이고 그는 무엇이 됐든 간에 그저 고개만 주억거릴 뿐이었다.

그의 눈에는 아내와 딸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의사의 멱살을 잡으며 화내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고, 그렇다 한들 달라질 게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럴 힘조차 그에게 남아있지 않았다.


오히려 멱살을 잡힌 건 탁경이었다.

상대방 쪽 보호자로 보이는 사내는 탁경에게 설명하던 의사가 가자마자 그에게 달려들다시피 거칠게 밀어붙였다.


"당신 어떻게 책임질 거야. 어? 어떻게 할 거냐고!"


정신을 잃은 목소리는 응급실 전체에 울려 퍼져나갔다.

그때까지도 탁경은 솜 인형 마냥 축 늘어져 있었다.


완벽하게 본인 과실. 상대방 상태도 좋지 않았다. 암담했다.

수술비는 괜찮았다. 지금까지 번 돈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피해보상이다.


그쪽에서 얼마를 부를지는 어림잡아 예상 가능했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닐 것이다.

피해보상비와 수술비. 그리고 다 청구하더라도 앞으로의 병원비와 생활비.

그리고 이사비용.

그가 감당할 수 없을 거란 얘기였다.


탁경은 아내와 딸을 번갈아가며 머리칼을 정리해 주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딸은 아내에 비해 많이 다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물기 섞인 한숨을 그는 내뱉었다.

화장실에 들어간 그는 문을 걸어 잠그고 변기 위에 무너지듯 주저앉아 입을 틀어막았다.

억장이 무너진다.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심정이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 같았다.


한바탕 눈물을 쏟아내고는 그는 겨우 돌아오는 사고에서 기현을 생각할 수 있었다.

그라면 돈을 빌려줄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겐 별거 아닌 푼 돈일 테니 말이다.

그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


“···내가 꼭 갚을게. 부탁한다.”


수화기 너머로 그의 연기가 보인다. 두 다리 뻗고 앉아 여유롭게 연기를 펼치고 있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니 기현은 속이 울렁거렸다.

역겨웠고, 경멸스러웠다.

당장에라도 욕지기를 뱉어버리고 전화를 끊어버리고 싶었지만, 그렇게 끝을 내면 분이 채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옷걸이에 걸려있는 옷 안주머니에서 명함 하나를 꺼냈다.


“그래, 얼굴도 볼 겸 xx에서 만나자. 거기 골목길 알지? 어, 그래. 내가 다시 전화할게.”


통화를 끝낸 그는 곧바로 명함에 적혀있는 번호를 눌렀다.

긴 꼬리를 밟을 때가 된 거야.

기대해. 좋은 선물을 보내줄 테니까.


“사람 손봐주는 건 얼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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