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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 님의 서재입니다.

독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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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차.
작품등록일 :
2016.12.08 15:57
최근연재일 :
2017.02.05 16:31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4,447
추천수 :
25
글자수 :
68,750

작성
17.01.27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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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9쪽

2부 - 3화.

DUMMY

탁경은 정말 조심스레 행동했다. 근 한 달간 사심 없이 친구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같이 가자는 경마장도 몇 번을 거절하다 가끔 한 번씩 갔다.

물론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지만 눈앞에 있는 그가 그냥 시정잡배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제한적으로 행동했고 최대한 술친구 아니면 같이 노는 친구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그 나름대로 부단히 노력했다.

그리고 기간을 재던 탁경은 또다시 경마장을 가자는 기현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경마는 이제 좀 질리지 않아?”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으며 기현이 대답했다.


“사실 이제 좀 재미없긴 해.”


“그래? 그럼 포커나 치러 갈까?”


그는 정말 아무 뜻 없다는 양 가볍게 말했다. 구미가 당기는 듯 기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포커 좋지. 그런데 어디서?”


코를 한번 매만진 그는 턱짓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며 말을 받았다.


“저쪽으로 가면 내가 다니는 하우스가 있긴 해. 거기가 여기 지역에서 제일 크고 깨끗해. 그리고 큰 만큼 판돈도 적은 자리부터 억이 왔다 갔다 하는 자리도 있지. 어때.”


억이라는 말에 기현의 눈썹이 조금 꿈틀거렸다.


“그래? 그럼 오늘은 거기나 가지 뭐.”


탁경은 거기까지 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 말했다간 자신이 홍보하는 것이 되는 꼴이었다.


“포커 말고 다른 것도 있어?”


창 너머로 밖은 어두웠다. 노을이 지기 시작했을 때 만났으니 조금 이른 감이 있긴 하지만 가는 시간이 있으니 괜찮을 것 같다고 탁경은 생각했다.

규모가 큰 곳인 만큼 외곽에 위치하기 때문에 도착할 때쯤이면 거기도 무르익기 시작할 때일 터였다.


“고스톱, 섯다, 마작··· 뭐 대표적인 건 아마 다 있을걸. 나도 전부 다 해본 게 아니라 정확하게까지는 모르겠네.”


기현은 두 손에 잡혀있는 패를 슬쩍 보고는 새삼 주변을 다시 둘러보았다.

밖에서 볼 땐 낡은 백화점 같은 게 있는걸 보고는 우리나라 도박장이 그럼 그렇지 라며 김빠져 하다 막상 들어와 보니 라스베이거스가 따로 없었다.


돈을 얼마나 부었는지 샹들리에마저 달려 있었다. 마치 진짜 그곳을 베낀 듯이 영화에서 얼핏 보여지던 모습과 똑같았다. 그리고 그가 또 놀란 점은 옷차림이었다.

양복 신사도 보이긴 했지만 대부분 꽤 멋을 부리고 이곳을 찾았다.


옷이 날개다··· 그는 지금까지 다니던 곳과는 급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는 사람들만 안다는 곳이 도박장이지만 이곳은 돈 많은 아는 사람들이 오는 것이었다.

그걸 증명하듯이 지금 그가 앉은 테이블의 판돈은 그조차 조금 놀랄 정도로 셌다.


담배를 입에 물며 그는 자신의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을 슬쩍 쳐다보았다.

받아칠지 아니면 죽을지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었다.


"콜."


조금 지루해질 것 같을 때쯤에야 남자는 턴을 넘겼다.


"콜."


"자 그럼 이제 까봅시다."


탁경은 바람잡이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적다 싶으면 분위기를 올려 더 높였고, 때에 때라 연기를 펼쳐 같이 앉은 사람들의 애간장을 태워 쉽사리 일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 중 한 사람이 자신감 있게 외치며 카드를 내려놨다.


"이번엔 힘들겠는데? 백 스트레이트야."


쓰읍 소리를 내며 기현은 자못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아쉽네요."


"이 사람아. 혼자 그렇게 다 해 먹으면 쓰나."


풍성하게 쌓인 칩으로 손을 뻗으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기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아뇨. 마운틴이거든요."


10, J, Q, K, A··· 차례로 그가 패를 내보이자 칩을 가져가려 하던 남자는 화를 참지 못하고 테이블을 내리치고는 신경질적으로 의자를 밀며 일어나 그대로 나갔다.


사실 그럴 만 했다. 도박이라는 게 밀고 당기기 속에 이번에는 이길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하는 것인데 어찌 된 일이지 많은 판을 했는데도 이기는 사람은 한 명이었다.

그것도 약오르게 패가 크게 차이가 나지 않게 말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엄연히 딜러가 따로 존재하기 때문에 손기술은 쓰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시선은 그 요란함으로 인해 집중되었지만 익숙한 듯 다들 원래 있던 시선으로 돌렸다.

탁경은 조심스레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불편해하며 눈치를 보는 게 느껴지자 그는 기현의 발을 약하게 톡톡 쳤다.


"저도 그만 갑니다. 재밌게들 치세요."


돈으로 바꾸고 건물을 나와 차 앞까지 다가갈 때까지 탁경은 금단현상이라도 온 것 마냥 주변을 계속 두리번거렸다.

뭐에 쫓기듯 그는 잠금이 풀리자마자 빠르게 타 문을 닫았다.

차에 타자마자 탁경은 참기 힘들었는지 빠르게 말을 토해냈다.


"어떻게 된 거야?"


"뭐가?"


"뭐긴 뭐야. 어떻게 너만 딸 수 있냐고. 수를 쓴 것도 아닌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그는 탁경을 돌아봤다.


"왜 못 할 거라고 생각해?"


"뭐?"


이번엔 도로 탁경이 되물었다.


"어째서 수를 못 쓴다고 생각하냐고."


"그야 당연히 딜러가 있으···."


기현은 피식 웃고는 능구렁이처럼 말하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쓸 사람은 다 씁니다."


그들은 그렇게 그곳으로 아예 자리 잡았고 자연스럽게 더 이상 경마장은 가지 않게 되었다. 노출이 되는 자리라 그랬을까. 손해를 보지 않는 그들의 소문은 그 건물 안으로 삽시간에 퍼져나가 웬만한 판돈 자리에는 그들과 같이하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당연하게도 관계자들에게도 들어갔다.


사실 기현은 판돈을 올리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지금까지 벌어들인 돈과 원래 가지고 있는 돈만 하더라도 엄청나게 쌓여 있었고 더 벌지 않아도 이자가 엄청났다. 그리고 꿈속에서 들은 그 이야기.


돈을 써야 한다는 이야기를 그는 잊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꾸준히 후원을 했다.

유니세프부터 시작해서 아동, 독거노인, 장애 등등 여러 곳에 많은 돈을 주었고, 시계나 신발 같은 것은 모으는 게 취미라고 할 정도로 쌓여있었다.


“하...”


유난히 어둡고 안개가 낀 날이다. 별마저도 가려져 더욱 우중충해 보여 오싹하게까지 보이게 만들었다. 다들 밖으로 나가기라도 했는지 밖에서의 소음은 들려오지 않았다.

한창 새벽인 시점에 기현은 불 꺼진 방 침대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사실 그는 이제는 전 여자친구라고 해야 할 수현에게 돈을 보냈었다.

그것도 평생 일하지 않고 놀고먹을 수 있을 만큼. 그런데 그는 하나도 행복해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후하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그냥 그대로 청혼해서 살면 됐을 텐데.

왜 몰랐을까. 사랑이 식은 게 아니라 편해진 것을.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당연한 이치다.

그런데 그는 그 시간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니 자신의 치졸함과 저질스러운 행동을 깨닫게 되었고 동시에 그녀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은 커져만 갔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

그는 그렇게 후회하고 후회하며 처참히 부서져 버린 외양간에 힘없이 망치질을 해댈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의 핸드폰엔 그녀의 전화번호가 찍혀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몇 개월이 지난 지금 무슨 변명을 할 수나 있을까.


“너무 늦었지···.”


늦어도 너무 늦은 셈이었다. 막차는 끊겨 버린 지 오래다.

오히려 그 전에 그녀가 기현의 목소리를 듣고도 전화를 계속할 지가 의문이었다.

그러면 양반이다. 며칠도 아닌 긴 시간을 잠수를 타버렸으니 당장에 욕이라도 튀어나오지 않으면 다행이니까.


물론 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그리웠다.

비겁하게 도망친 건 자신이었지만 다시 시작하려 하는 게 참 우스웠다.


그에게는 많은 영향을 준 그녀다. 그가 세상을 뜨려 할 때 막아준 것도 그녀였고, 그 모습을 보고, 아무것도 없는 그를 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준 그녀였다.

그리고 일자리를 찾아주기 위해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도와준 것도 그녀였다.

그런 그녀를 향해 안녕이라는 말 한마디 없이 가버린 그였다.


“······.”


한 방울이 시작이었다. 볼 줄기를 타고 흐르는 눈물 한 방울을 시작으로 그는 새어 나오려는 흐느낌을 입으로 막으며 하염없이 눈물만을 흘려대었다.


막혀버린 입에서는 미안해라는 말만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그 말은 그녀에게도 닿질 않았고, 그에게도 위로가 되어주지 못했다.


복권이 당첨되던 그 순간을 제외하고 그는 지금까지 행복한 적이 없었다고 생각했다.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처럼 그는 펑펑 울다 미쳐버릴 것 같아서 그는 거실로 나와 냉장고에 있는 술이란 술은 다 꺼내 필름이 끊겨 버릴 때 까지 마셔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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