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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 님의 서재입니다.

독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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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차.
작품등록일 :
2016.12.08 15:57
최근연재일 :
2017.02.05 16:31
연재수 :
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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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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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글자수 :
68,750

작성
17.01.25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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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2부 - 1화.

DUMMY

그가 이곳으로 이사 온 지도 석 달이 지났다.

복권이 당첨되고 나서부터 거리며 TV 속이건 온통 난리였다.

기자들은 그를 취재하려 안달이 났었다. 그는 새로 이사 온 집에 숨어 지내며 빠르게 행동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짐이랄 건 없었다.

전부 새로 사면 그만인 물건들이었고, 딱히 소중한 것들도 없었다.


한 달 정도는 그렇게 집 안에서만 있었다.

웬만하면 밖으로 나가지 않았고, 음식도 가능하면 시켜 먹었다.

어떤 방법에서인지 그의 집을 알고 찾아온 기자들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직접 열어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문을 두드리며 자기 소속을 이야기하고 존칭을 쓰는 걸 보니 기자가 아니면 누구란 말인가.

물론 그들을 빙자한 사기꾼이나 강도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는 아무도 없는 척 숨소리조차 아꼈다.


한 달이 조금 지나자 더 이상 찾아오는 사람들은 없었고 그제부터 그는 바깥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


“찾으시는 제품이 있으신가요?”


“여기 걸려 있는 것 전부 주세요.”


그는 가장 먼저 백화점으로 향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공식 업체에 가서 자동차를 주문했다. 어떤 모델인지는 보지 않고 세계에서 알아주는 기업 중 하나를 골라 그중 제일 멋있는 거로 정했다.

어마어마한 가격을 일시불로 한다는 말에 직원은 놀랐고, 그는 그 표정에 일종의 희열감을 느꼈다.


그는 굳이 백화점에서 옷 하나하나 뒤져보지 않았다. 애초에 백화점 자체가 그에게는 어색했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무척이나 피로감을 몰려오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는 어차피 쓰기도 힘든 돈으로 하나하나 사기보다는 마네킹에 코디가 되어있는 예쁜 것들을 통째로 사버렸다.


시계는 역시 XXX지. 하며 영화에서만 보던 것을 떠올리며 당당하게 매장에 들어가 가장 비싼 거로 주문 구매를 해버렸고, 지갑이며 벨트. 심지어 속옷까지도 전부 명품으로 사들였다.


그는 전화기를 몇 번 바꿨는지 기억도 제대로 못 했다.

어디서 알아냈는지 바꿀 때마다 연락이 찾아왔었고, 처음에 무심코 받다 난처해진 경험이 있던 후로 그는 이제 모르는 번호는 절대 받지 않게 되었다.



길을 걸으면 땅에 돈이 떨어져 있었고, 스포츠 경기에 돈을 걸면 희미한 확률이라도 그가 걸었던 그대로 결과가 나왔다. 경마에 돈을 걸면 누구도 찍지 않던 말이 일등을 했다.

그가 주식을 사면 대박이 났고, 도박을 하면 그의 손엔 늘 최상의 카드가 잡혀있었다.


궁금해서 건드려본 일은 확신을 가져다주었고, 돈은 넘쳐흘러 쓰기 바쁠 지경이었다.

돈이 될 수 있는 일은 더럽든 깨끗하든 가리지 않고 손대보니 어느새 그의 주머니는 원래의 불룩함만큼 풍족해졌다.


그는 지금 그중에 하나인 경마장에 있다. 되도록 눈에 띄지 않는 구석 의자에 앉아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그는 별 볼 것 없는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어느새 핸드폰도 바꿔 요즘 가장 비싼 최신 것이었다. 이미 그에게 이건 도박이 아니었다. 공짜로 돈을 주는 가게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고개만 살짝 들어 옆의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


엉덩이를 움찔거리는 사람, 아예 일어서서 몸에 잔뜩 힘을 준 채로 바라보는 이. 볼 자신이 없는지 깍지를 끼고 중얼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은 대부분 이번 판에 모든 걸 건 어리석은 사람들이었다.

아마 제일 가능성이 높은 말에 걸었겠지. 아니면 그 반대거나.


그는 입맛을 다시며 달리는 말들을 지켜보았다.

이제 말들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오직 이 순간만을 위해 길들여진 말들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앞만 보고 열심히 뛰어갈 뿐이었다.


그가 고른 말은 시작부터 중반까지 뒷선에 머물다 어느 순간 치고 나와 이제는 선두에서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주 의외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니 결과가 날 때까지 모를 것이다.

오직 자신이 건 말에만 눈길이 집중되어 있을 테니까 말이다.


“지랄이다, 지랄.”


뒤에 쳐져 있는 말에게 건 것으로 추정되는 남자는 이미 자신은 끝났다는 걸 느끼고 욕지기를 사납게 내뱉으며 밖으로 나갔다.

그 말을 끝으로 그와 비슷한 몇몇 사람들은 비슷한 행동을 하며 출입문으로 향했다.

그때 경기가 끝남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는 주머니에 있는 종이를 확인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되셨습니까?”


바로 뒷자리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그는 흠칫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언제 뒤에 왔는지 그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무슨 일이시죠?”


까칠하게 받아치는 그의 모습에 남자는 안심시키려는지 넉살 좋은 웃음을 보였다.


“아,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


그러며 그는 안주머니를 뒤지며 종이를 꺼내 그에게 보여주었다.


“저도 땄거든요.”


보여준 종이엔 그와 똑같은 말에게 배팅이 된 것이 보였다. 액수를 보니 꽤 크게 걸었다. 얼굴을 한번 슬쩍 훑어본 그는 겉으론 경계하지 않기로 했다.


“눈썰미가 좋으시네요.”


20대 후반쯤 되어 보인다고 생각했다. 머리는 세련되게 정리를 한 거 보아 관리를 받는 것 같았다. 이목구비는 뚜렷했고 남성성이 강한 미남형이었다. 왜인지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외모였다.

남자는 씩 웃었다.


“볼 줄 아시는 것 같은데, 판돈은 꽤 크게 벌렸겠죠?”


기현도 같이 미소 지었다.


“돗자리 까셔도 되겠네요.”


약간은 어색한 느낌이 그를 살짝 불안하게 했다. 대충 끝맺으려 머리를 굴리는 도중 안내방송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남자에게 선수를 뺏겼다.


“그럼, 가실까요?”


남자는 오랜만에 말동무라도 생겨 기분이 좋은지 계속 그의 옆을 따라다니며 말을 했다.

귀찮아하던 그도 이사를 오고 나서 말을 거의 하지 않아서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 떠드는 형태가 되었다.


남자는 자기는 서른두 살이고 이름은 성탁경 이라고 알려줬다.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어 이렇게 도박에 전전하는 삶이 되었다고 이야기하는데 그는 크게 개의치 않아 했다.


기현의 입장에서 볼 때 그는 확실히 쾌활했다. 그뿐만 아니라 말을 참 잘했다.

들어올 때 들어오고 빠질 때를 알았고 미묘한 단어 하나하나의 차이를 만들어 그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한마디로 얘기를 참 재미있게 하는 재주를 가졌다.

남자의 매력에 빠져서 둘은 어느새 조금 이르지만, 술을 한 잔 걸치기로 했다.

탁경은 기현의 잔은 채워주며 화제를 바꿨다.


“아, 너무 내 이야기만 했네.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그는 한 잔 마시자마자 금세 얼굴이 빨개졌다.


“저는 그쪽보다 어려요. 스물여덟이에요.”


탁경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생각보다 꽤 되네요. 얼굴만 봐서는 중반쯤 될 줄 알았는데··· 저랑 얼마 차이 안 나네요.”


기현은 당황스럽다는 듯 되물었다.


“네 살 차이가 얼마 안 되는 건가요?”


“뭐··· 제 기준에선 그렇네요. 약간 외국 마인드라서요. 허허.”


재미없는 농담을 하며 실없이 웃는 그의 모습에 기현은 픽 웃어버렸다.

탁경은 그 모습에 또 좋은지 마주 웃었다. 기현의 잔을 따라주며 그는 말했다.


“그래요. 그럼 말 놓는 거로 하죠. 어··· 이름이 뭐랬더라?”


“아직 안 알려줬는데··· 기현이야, 기현. 최기현.”


“그래, 기현아. 한잔하자.”


말벗이 생긴 즐거움에서인지 그는 잔을 든 손에 힘이 들어갔고 술잔이 부딪치는 소리는 꽤나 크게 나왔다.


“이만 원입니다.”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려던 그를 기현은 제지했다.


“내가 낼게, 내가. 여기요.”


그는 한숨을 푹 쉬고 입맛을 다시며 주머니에서 지폐 아무거나를 하나 꺼내 대리 기사에게 건넸다. 오만 원이었다.


“잔돈은 가지세요.”


힘없이 비틀거리며 나와 문을 닫으며 기현은 그렇게 말했다.

탁경은 기사가 주차한 차를 다시 한번 봤다. 틀림없이 고급 세단이었다.

차 자체만으로 1억이 훌쩍 넘는 차인데 이것저것 비싼 걸 달아 놓았다.

겨우 시선을 떼 기현을 부축하며 앞의 집을 바라보았다.

딱 봐도 좋아 보이는 고급 주택이었다. 그는 이미 예상한 듯 그러려니 했다.


“여기야?”


기현은 이제 버거운 듯 고개만 주억거렸다. 그는 작게 한숨을 쉬고 그를 끌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그가 밖에서 본 것만큼 으리으리했다.

벽난로도 있고 바닥이며 벽지 의자나 탁자 하나하나 전부 고급스럽게 보였다.

확실히 혼자 사는 남자 집치고는 컸다.


곁눈질로 집구경을 하며 기현을 방 침대에 눕힌 그는 침대 맞은편에 있는 유리로 된 전시장 같은 걸 보았다.

안에는 전부 현금으로 채워져 있었다. 모두 금색이었다.

한동안 그렇게 바라본 채 서 있던 그는 곤히 잠든 기현에게 이불을 덮어주고는 의미 모를 미소를 짓고는 집을 나섰다.


“······.”


잠금장치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 후 남은 건 기현의 숨소리뿐이었다.

그렇게 오 분 정도 지났을까. 기현은 침대에서 상체만 일으켜 앉았다.

취했던 모습이라곤 발견할 수 없었다.


그는 창문을 통해 밖을 한 번 본 후 불을 켜 거실을 둘러보았다.

처음과 다를 바 없음을 느낀 그는 휴대폰에 새로 저장된 그의 이름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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