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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 님의 서재입니다.

독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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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차.
작품등록일 :
2016.12.08 15:57
최근연재일 :
2017.02.05 16:31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4,443
추천수 :
25
글자수 :
68,750

작성
17.01.20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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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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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1쪽

1부 - 6화.

DUMMY

“어서 오세요. 몇 분이세요?”


전체적으로 좀 어두운 조명. 가게는 비교적 작았고 바닥이나 테이블은 전부 진한 갈색보다는 더 어두운 나무로 된 재질로 되어 있었다.

신경을 좀 썼는지 걸을 때마다 널이 우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입구에서 바로 오른쪽에 달려있는 계산대에서 일을 보던 남자는 정신이 없어 보였고 조금은 다급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아닌 게 아니라 가게 안은 이미 일 끝나고 한잔 걸치러 온 사람들로 인해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아, 일행이 있어서요.”


테이블씩 둘러보던 그는 익숙한 옆모습들을 발견하곤 지체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어, 왔냐?”


덤덤하게 인사하며 반대쪽의 앉아있던 친구가 먼저 발견하고 웃으며 인사했다.

그 말에 그의 반대쪽에 앉아있던 다른 친구는 안쪽으로 들어가 그가 앉을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오늘은 기분 좀 안 좋아 보이네?”


무심하듯 술을 따라주며 옆에 있던 친구가 슬며시 물어보았다.


“그래? 아닌데.”


반대쪽에 앉아있던 친구는 잔을 입에 가져다 댔다가 그의 말에 낌새를 느끼고는 슬쩍 웃으며 다시 잔을 내려놓았다.


“아니야. 얘 뭐 있는데? 야, 뭔데 말해봐.”


“아 그냥··· 회사 잘렸어.”


그럼 그렇지 라는 표정으로 반대쪽에 있던 친구가 작게 혀를 차며 술을 들이켰다.


“새끼. 보나 마나 또 그 성질 못 참고 깽판 치다 말아먹었구만.”


“하여간 김경태 저 새끼는 말을 해도 꼭 저 지랄로 한다니까.”


약간 빈정상한 투로 기현은 툴툴거렸다.

옆에 앉아있던 그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그거 못 고치면 사회생활 힘들어. 너도 잘 알잖아.”


“야, 봐라. 영광이가 얼마나 답답했으면 저렇게 말하냐.”


경태는 빈 잔을 채워주며 또 한 번 그에게 핀잔을 주었다.


“그래서 이제 어떡할 거야?”


“나도 모르겠다. 어디 좀 아는 데 있냐?”


빈속으로 와서 속이 쓰린지 경태는 안주로 시킨 어묵탕을 연거푸 떠먹어댔다.


“글쎄. 조금 힘들지 사실...”


딱히 뾰족한 수가 없는 듯 그는 팔짱을 끼며 한숨을 푹 쉬었다.


“알아보기는 할 테니까 너무 걱정은 마라.”


“내가 아는 형님한테 부탁해볼게.”


영광이가 슬쩍 끼며 그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잘 좀 부탁한다. 얘들아. 오늘 술값은 내가 낼 테니까.”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영광은 우스꽝스럽게 과하게 몸짓을 해대었다.


“야, 인마. 당연한 거지 그건.”


취기가 올라서인지 술자리의 분위기에서인지 평소에는 웃기지 않았겠지만,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러면서도 그의 마음은 답답했다.

여자 친구와의 오랜 연애. 슬슬 이제는 결혼을 생각하고 준비해야 하는데 모아놓은 돈은 얼마 없고, 능력은 안 되고. 참 씁쓸해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야 됐고. 담배나 태우러 가자.”


술을 마시니 담배가 당기는지 경태는 앉은 지 얼마 안 되었을 텐데 벌써 담배를 찾기 시작했다. 그가 일어나자 기현과 영광도 일어나 그의 뒤를 따랐다.

일어나서 뒤따라 가려던 기현은 자연스럽게 주변을 둘러보다 한 테이블에서 혼자 술을 먹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


혼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어서였을까. 왠지 눈길이 그 사람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무언가에 홀린 듯 쳐다보던 그는 뒤에서 어깨를 톡톡 치는 영광을 보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어? 아냐.”


무의식적으로 그는 핸드폰을 꺼내었다. 역시나 여자친구의 문자가 와있었다.

‘집이야?’ ‘아니 지금 친구들이랑 술 마시러 왔어.’ ‘아, 그래?’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시간 되면 잠깐 만나려고 했지.’

그는 표정 없이 덤덤하게 작은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안. 오늘은 안될 것 같은데.’ ‘그래, 알았어.’

그것을 끝으로 그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다시 집어넣었다. 형식적인 말들. 감정 없는 표현.


오랜 연애는 친숙함과 익숙함을 가져다주었지만 그 대신 강렬함이나 설렘을 가져가 버렸다. 더 이상은 답장 하나에 고민을 하지 않게 되었고, 그녀가 봤을 때 어떤 기분일까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한 순서라 느꼈다. 떨림을 주는 감정들은 일시적인 것들뿐이니 말이다.

그는 그녀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미안하기도 했고, 서로 감정만 상할 것 같은 상황이 올 것 같아서였다.


아무렇지 않은 감정으로 담배를 끈 그는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그는 아까와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분이 이상해 주변을 둘러보니 아까 혼자 술을 마시던 사람이 자리를 떴던 것이다.

그리고 그 테이블 위에는 그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반지 하나가 놓여 있었다.


“아. 뭐야.”


곧장 테이블로 가 반지를 주운 그는 그대로 나가는 길을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뒤에서 친구들이 무어라 말을 했지만, 그는 대충 손만 흔들고선 밖으로 나왔다.

주변을 둘러보던 그는 그 사람이 갔을 법한 대로로 이리저리 뛰어다녔지만, 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이놈의 오지랖은···.”


중얼거리며 반지를 만지작거리던 그는 잠시 고민을 했다.

평소 같았으면 가게 종업원에게 맡겼을 텐데 왠지 지금은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무게가 조금 있는 것으로 보아 싸구려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는 찔리는 마음에 주변을 한번 조심스럽게 훑더니 자연스럽게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무슨 일인데?”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앉는 그에게 경태는 자못 궁금한 듯 물어보았다.


“저쪽 테이블에 누가 뭘 놓고 갔더라고. 가져다주느라고.”


그는 굳이 그것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왜인지 양심에 찔리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은 경태는 약간 바보 같다는 듯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그냥 내버려 두면 될걸. 알아서 찾으러 올 텐데. 그런 것 하나하나 신경 쓰면 너만 피곤해져.”


그는 말 대신 어색한 미소만 지었다.


“······.”


“중요한 건 내일 로또 발표하는 날이라는 거지.”


조용히 있던 영광은 둘의 잔을 따라주며 말을 받아쳤다.


“너 또 로또 샀냐. 그거 안된다니까.”


술을 받던 기현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보였다.


“아니야. 이번엔 좀 달라.”


그러길 바라야 했다. 늘 살 때마다 그랬듯 단순히 이번에 의미를 두는 게 아니었다.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는 인생에서 그것을 뒤집을 수 있는 건 윗사람에게 눈에 띄는 게 아니다. 그가 주머니에 소중히 넣어 둔 그 종이쪼가리. 그것이 전부였다.


그는 애초에 세상에 내던져졌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열심히 하려 해도, 개처럼 일해도 가진 게 없는 밑바닥이라면 아끼고 아껴도 계단을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을.

그에게 있어서 그것은 단순한 흥미 그 이상이었다. 모두가 바라는 인생 한 방.

유일한 탈출구.


자정이 다 돼갈 때쯤에야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새까매진 하늘에선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느낌이 비가 올 것 같았다.


거리가 그리 멀지 않기에 그는 택시를 타는 대신 걷는 속도를 올렸다.

이따금씩 들리던 비명 소리는 곧 울음과 함께하기 시작했다. 조금은 다급한 마음에 편의점에서 우산을 살까 하다 그러기를 그만두었다.

어차피 내일 나갈 일도 없는데. 그는 후드에 달린 모자를 쓰고는 고개를 조금 숙인 채 걷기 시작했다.


자신의 처량한 지금 이 느낌을 그는 비를 맞으며 그것으로 씻어 내리려 노력했다.

세상을 하얗게 바꾸며 치는 천둥소리에 같이 소리를 지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그는 점점 머리를 따갑게 때리는 비에 집중했다.

한껏 오른 취기는 내일 할 일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막아주었다.


돈을 아끼기 위해 조금 감수하더라고 번화가보다 멀고, 꽤 낡은 원룸에서 살 수밖에 없었다. 조금은 더럽고 음흉한 길거리가 점점 펼쳐지기 시작했다.

좁은 길옆으로 몇몇 줄지어져 있는 집들 중 하나를 찾아 그는 어느새 차가워진 손으로 문을 잡아당겼다.


그는 제일 먼저 오자마자 젖은 옷을 벗지도 않은 채 창문이 있는 곳들을 가며 혹시 열려 비가 놀러 오지 않았나 돌아다녔다.

옷을 타고 흐르는 빗물은 규칙 없이 뚝뚝 떨어져 그가 혹여 길이라도 잃어버릴까 봐 바닥에 표시를 해주었다.


모두 닫힌 것을 확인하자 그제서야 오한이 들어 그는 재빨리 엉겨 붙은 옷을 힘겹게 벗어 세탁기 안에 던져버렸다.

바지마저 벗어 던져 넣은 그는 그 자리를 나오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 바지를 다시 꺼내었다.


“정신을 어디다 둔거야.”


속삭이며 자신에게 훈수를 던진 그는 주머니에서 약간은 눅눅해진 꼬깃꼬깃한 종이와 반지를 꺼내었다.

조심스럽게 그것들을 방 안에 잘 보이도록 책상 가운데에 올려놓았다.

그제야 그는 안심이 된 듯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긴장이 풀리니 바람이 불지 않았지만 그런 것처럼 몸이 추워졌다.

그는 구부정한 모습으로 양팔로 몸을 감싸 안은 채 건조대에 걸려있는 속옷과 수건을 집어 화장실로 걸어갔다.


풀벌레조차 잠에 들었을 때까지도 그는 잠들지 못했다. 눈을 감으니 온갖 잡생각들이 한데 뭉쳐 밀려와 도무지 그를 놔주려 하지 않았다.


뜨지 않으려 했던 눈을 결국 뜬 그는 TV를 볼까 하다 이불을 좀 더 올려 덮었다.

그것보단 작지만, 더 강렬하고 자극적인 나오고 나서부터 그는 웬만하면 리모컨을 집지 않게 되었다. 노래 듣기마저 질릴 때나 그가 좋아하는 스포츠 경기를 볼 때가 아니면 말이다. 익숙한 적막함이 가끔 참기 힘든 외로움으로 바뀔 때 그는 마지막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억지로 잠드는 것을 반쯤 포기한 그는 문득 자신이 길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을 깨달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길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또 다른 이유라면 길이 되는 아스팔트가 직선이나 곡선을 이루는 게 아니라 온 바닥 전체에 깔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광경에 그는 몸을 돌려 전체를 둘러보았다. 주변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마치 이건··· 사막. 모래가 아닌 아스팔트로 뿌려진 사막과 똑같았다.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함과 먹구름이 잔뜩 낀 보랏빛이기도 하고 청록빛이기도한 하늘에 뻥 뚫려있었지만, 숨 막히는 갑갑함이 밀려왔다.


“아··· 꿈이구나.”


도무지 믿기지 않는 풍경들에 그는 꿈을 인지하는 자각몽을 꾸고 있다고 확신했다.

물론 그로서는 자각몽에 대해서는 처음 겪어보는 현상이었다.


“글쎄, 아닐걸? 아니. 맞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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