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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 님의 서재입니다.

독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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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차.
작품등록일 :
2016.12.08 15:57
최근연재일 :
2017.02.05 16:31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4,452
추천수 :
25
글자수 :
68,750

작성
17.01.13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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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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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9쪽

1부 - 4화.

DUMMY

달리는 버스 안 창가에서 밖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착 가라앉아 있었다. 아침과는 반대되는 조금은 덥다고 느낄 수 있는 햇빛이 창 너머로 그의 몸을 적셨다.


덜컹거릴 때마다 그의 손에 들려있는 봉투에서는 바스락거렸고 그 소리만이 이 안에서 나는 소음의 전부였다. 몇 없는 사람들은 모두 거리를 두고 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거나, 그처럼 창밖을 바라보며 무언가 생각에 깊이 빠져있는 듯했다.


그나마 도시라고 불릴 수 있는 곳이었던 그가 살던 동네를 지나 차는 점점 논과 풀, 밭과 나무들이 무성한 곳으로 달려갔다.


문득 그는 휑한 버스 안이 아주 넓어 보인다고 생각했다. 낡은 버스의 빈 내부는 자신과 약간 닮은 것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또다시 어지럽혀지는 머릿속에 그는 미간을 주무르며 눈을 감았다. 아직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좀 남았으니 눈 좀 붙이는 게 나을 것 같다고 그는 생각하며 머릿속의 생각들을 하나씩 지워가기 시작했다.


“이봐요, 안 내려요?”


귀찮음과 짜증 섞인 목소리가 졸음이 채 달아나지 않은 그의 귀에 분산되어 들려왔다. 종점에 내려진 버스를 보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상쾌한 따뜻함이 그를 반겨주었다. 서늘한 바람과 따스한 햇볕이 그의 마음을 진정시켜주었다. 뻥 뚫린 사방에서 그는 익숙한 듯 방향을 잡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포장되지 않은 길과 그 양옆으로 펼쳐져 있는 논과 밭들. 전형적인 시골이었다. 경치를 구경하며 그는 평소보다 발걸음을 조금 천천히 늦췄다. 점점 가까워질 때마다 복잡 미묘해지는 마음은 몇 년이 지나도 바뀌지가 않았다.


살짝 숨이 탁 막히는 느낌과 계속해서 뱉어지는 한숨들. 방향을 꺾어 옆쪽 산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산의 한쪽 면이 깎여 잘 정돈되어 있는 곳으로 그는 올라가기 시작했다.


걸을 때마다 날벌레들과 작은 여치 같은 벌레들이 그의 발을 피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제법 자란 풀들은 그의 발목과 그 위를 간지럽혔다.

물기가 그의 바지 밑단을 적셔 시원하면서도 질척이는 느낌을 받게 만들었다. 언덕을 올라가며 그는 미루던 벌초를 조만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나 왔어.”


봉투를 옆에 살며시 내려놓은 그는 무덤에 난 잡초들을 정성스레 뽑아내기 시작했다. 약간은 촉촉한 눈빛으로 그는 그것을 한 번씩 쓰다듬었다.


다시 비석 앞으로 온 그는 봉투에서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싸구려 제기 위에 그는 과일을 깎아 떨어지지 않을까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나 오늘 일 관뒀어.”


잠시간의 침묵 뒤에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스스로 관둔 건 아니고··· 이런저런 일이 있었어.”


입을 씰룩거리며 아무 말도 못 하던 그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


그는 말하면서 자신의 처지에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였다.


“좋은 일을 말해줘야 하는데... 아직도 이렇게 사네.”


입이 바짝 타서인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따라놨던 술을 한 번에 입에 털어 넣었다. 코를 한번 훌쩍인 그는 잠시 동안 앉은 그대로 바라보기만 했다.



그는 학교를 나가지 않았다. 일찍 일어나 아침밥을 준비하고 동생들을 깨우고 챙기고, 학교에 보내고서 몰려오는 외로움과 우울함이 그에게는 견디기 너무 힘든 일이었다.


입맛도 도통 나질 않았고, 의욕도 없었다. 그렇게 텅 비어버린 집 안에서 그는 눈물을 매일 쏟아내었다. 막막함. 딱 그 단어가 그를 일어설 힘조차 없애버렸다.


하루 종일 그렇게 혼자 멍하게 며칠을 보내고서야 그는 점점 줄어드는 통장과, 동생들에 대한 책임감 하나로 일어설 수 있었다.

정신을 차린 그는 며칠 동안 말없이 가지 못 한 식당에 찾아갔다.


번화가에서 좀 떨어진, 낡은 건물과 조금은 한산한 거리와 어울리는 단순한 바탕에 단순한 가게 이름. 점심시간까지는 조금 이른 시간이었기에 거리는 물론 가게 안에도 사람은 없었고, 한창 재료 손질에 열중하는 주인아주머니만이 가게 의자에 앉아있었다.

문 여는 소리와 함께 아주머니는 고개를 돌려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안녕하세요.”


죄송스런 마음과 머쓱한 기분에 어색해진 그는 말투까지 어색해져 버렸고, 그 마음에 그는 아주머니를 쳐다보지 못했다.


아무 말 없이 다시 그녀는 재료를 손질하기 시작했고, 가게 안에는 마늘 꼭지를 자르는 소리와 그가 삼키는 마른침뿐이었다.


“무슨 일 있었니?”


무심한 듯 그렇게 물어오는 그녀의 말에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차라리 화를 내셨더라면 더 마음 편할텐데라고 생각한 그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최대한 누르며 사과를 드리고 솔직하게 전부 이야기했다.


“···그래서 며칠 나오지 못했어요. 정말 죄송해요.”


말없이 묵묵히 듣던 아주머니는 조용히 그를 꽉 안아주었다.

숨을 들이쉬고 내뱉으며 말하는 아주머니의 목소리에는 살짝 물기가 묻어있는 것 같다고 그는 느꼈다.


“고생 많았구나···.”


그 한마디에 설명하며 꾹꾹 참아왔던 눈물이 터져 흘렀다. 한번 흐르기 시작한 눈물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는 결국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다시 앞치마를 두르게 되고서 그는 원래 학교 시간에 맞춰서 일하던 것에서 시간을 늘렸고, 오전에는 새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그는 다시 학교에 가 담당 선생님을 찾아갔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선생은 부드럽게 회유하는 말투로 그에게 다가갔다.


“기현아, 물론 지금은 힘들 거야. 그런데 이대로 그만둔다면 앞으로는 더 힘들 거야. 고등학교만 졸업. 아니, 지금 2학년이니까 일 년만 더 다니자. 3학년 때부터는 취업을 나가니까 자격증도 학교에서 따고. 기초생활수급자 신청하면 매달 돈이 나오니까 그걸로 부족하더라도 지금은 참고. 선생님이 급식비는 내줄 테니까. 응?”


안타까움이 섞여 나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그는 가슴이 저릿해져 왔다.


“선생님 저는···제 미래는 이제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요. 전부가 힘들게 사는 것보다 차라리 저 혼자 희생하고 제 동생들이 좋은 학교 가서 좋은 곳에 취직하는 게 훨씬 낫다고 저는 생각해요.”


“그래도 기현아. 자격증을 따고 취직을 하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어. 그러면 네가 원하는 대로 동생들 뒷바라지에 좀 더 힘을 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도 그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런데 당장 통장에는 돈이 얼마 없고, 집세에 생활비에 동생들 옷이며 버스비··· 일 년이라는 시간은 그에게 너무도 가혹했다.


“전 지금 당장 돈이 필요해요. 죄송합니다···선생님.”


고개를 푹 숙이며 말하는 그를 바라보며 선생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미 마음을 굳게 먹은듯한 모습에 더 이상은 소모적인 대화일 뿐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 알았다.”


씁쓸한 말투에 작게 대답한 그는 조용히 종이 한 장을 들고 와 그의 바로 앞에 펜과 함께 올려놓았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저녁놀이 조금은 따뜻하다고 그는 느꼈다. 무언가 일이 잘 맞아떨어지는 게 사람이 꼭 죽으란 법은 없다는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약간은 부푼 가슴을 안고 그는 장을 보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찌들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들어가면 동생들이 그를 반겨주었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태연하게 밝은 모습만을 보여주었다.

모두가 그 자신에게 기대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이상 그는 절대 약한 모습은 보여주면 안 된다고 다짐했다.


생각에서 잠시 빠져나온 그는 왠지 궁상맞은 것 같다고 느꼈다. 빈 잔에 술을 따른 그는 담배 하나를 물어 불을 붙였다.

연기 너머 보이는 그의 눈빛은 촉촉해져 있었다.


“내가··· 좀 더 능력이 있었다면, 좀 더 많이 신경 써줬다면··· 이렇게 됐을까. 재현아?”


이렇게 되어버린 상황이 그는 모든 게 자신의 잘못 때문인 것만 같았다. 나이가 더 많아 직장을 다녔더라면, 세심한 성격을 가졌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지금 너희는 내 옆에···.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 그는 술을 재빨리 입에 털어 넣었다. 독한 알코올 향과 쓴맛이 입안을 지나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그는 말없이 담배만 태우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주말간 약속이 있어서 못올릴 것 같아 오늘 미리 올리겠습니다.

여기는 눈이 오고 엄청 추워졌습니다.

다들 감기 조심하시고 따뜻하게 입고 다니셨으면 좋겠습니다.

글에 많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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