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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센타 님의 서재입니다.

내 일상


[내 일상] 프롤

뚜벅뚜벅!

 

대리석 바닥을 차고 나가는 긴 가죽 부츠의 발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무릎 아래까지 오는 검은 가죽 부츠와 허벅지를 감싼 승마복 형태의 검은 팬츠 그리고 국방색의 제복은 그녀의 몸을 단단하게 감쌌다.

 

모를레이 홀츠는 지금 이 순간 기다리고 기다리던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그의 방을 찾아가고 있었다.

 

단정하기만 한 그녀의 제복아래 심장이 쉴 세 없이 두근거리고 있었지만 그녀는 애써 자신의 감정을 감추고 태연함을 가장했다.

 

그리고 대리석 바닥으로 된 긴 통로를 지나온 그녀는 커다란 문 앞에 섰다.

 

후우.’

 

살짝 마음 속으로 긴장을 푼 그녀는 그대로 문을 두 번 두들겼고 그대로 문의 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끼이익!

 

뚜벅뚜벅.

 

!

 

각하에게 충성을!”

홀츠인가?”

그렇습니다. 각하.”

 

그녀는 방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가죽 부츠의 뒷 발꿈치를 붙여 차렷 자세를 취하고는 두 손가락을 이마에 붙여 어둠 속에 자리한 누군가에게 경례를 했다.

 

그리고 그의 대답을 듣고는 다시 팔을 내렸다.

 

그는 커다란 커튼 아래 크고 고풍스러운 의자에 앉아 발을 꼬고 있었고 그의 의자 손잡이에는 다른 누군가가 몸을 기대고 있었다.

 

나탈리.’

 

마치 그와 한 몸이라도 된 듯 그에게 몸을 기대고 있는 그녀를 보자 홀츠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그녀의 입장에서 볼 때 나탈리라 불린 그 여자는 그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여자였다.

 

하지만 그 사실을 논하기 전에 먼저 전해야 할 말이 있었다.

 

각하. 모리츠 소령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내용은?”

뻐꾸기가 둥지로 들어왔다.”

 

홀츠가 입을 열자 그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녀에게 내용을 되물었고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가 받았던 통신문을 그에게 전했다.

 

드디어 시작인가?”

 

그는 나른한 목소리로 의문사를 꺼내 들었지만 홀츠는 그 말에 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가슴 가득 긴장을 안은 채 그 다음에 나올 말을 기다렸다.

 

전군에 전해. 폴라네리아는 돌체연방의 기습 공격을 받았으며 이에 대해 돌체연방에 선전포고. 이 시간부로 우리는 돌체연방과 전쟁에 들어간다.”

! 각하!”

 

어쩌면 세계의 운명을 바꿔놓을지도 모를 선언이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높낮음이 없었다. 그저 귀찮음이 가득했을 뿐.

 

하지만 홀츠의 입장은 달랐다.

 

어쩌면 이번 전쟁에서는 지난 세월의 굴욕을 갚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걸 이루어줄 이는 저 어둠 속에 자리하고 있는 그 남자였다.

 

그럼 명령을 전달하겠습니다.”

. 수고.”

 

홀츠는 얼굴을 잔뜩 상기시키며 그에게서 돌아섰다. 이제 남은 건 선전포고 뿐. 분명 그렇게 생각했을 텐데 그 자리에는 그녀를 늘 괴롭히는 이가 하나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 다시!”

으응? 하이믈러님?”

 

어둠 속에서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외눈 안경을 낀 어느 여성을 발견하자마자 홀츠는 여태까지의 평정심을 잃고 인상을 찡그렸다.

 

쯧쯧 그래선 안되잖아. 뭔가 드라마틱한 부분이 있어야지. 홀츠, 너는 너무 건조하다고.”

우웃. 하이믈러님! 이건 장난이 아닙니다!”

! 그 말이 진심이 아니길 바라겠어. 미스 홀츠. 선전에는 드라마가 필요한 것이다. 특히나 세계의 운명을 바꿀지도 모르는 이 순간에는 더더욱 그러하지.”

크윽! 지금 전선에서는 백만이 넘는 우군이 총사령부의 지시만 기다리고 있다고요!”

어차피 방어전인데 알아서들 하겠지. 어차피 그걸 위한 훈련들 아니었나?”

하이믈러님!”

그만 해. 홀츠. 그의 말도 일리가 있다.”

각하! 각하마저!”

 

홀츠는 하이믈러라는 독사 같은 여자에게 동조를 해주는 그녀의 주군이 살짝 원망스러웠다. 비록 자신의 주군이 이 자리에 오기까지 하이믈러의 역할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고귀한 그녀의 주군 옆에 나탈리 같은 미천한 자나 하이믈러 같은 자들이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이믈러, 너도 그만 해. 어차피 보여지는 건 편집을 하면 그만이잖아.”

! 그렇긴 하지. 알았어.”

 

하이믈러는 조금 더 완벽한 자료를 가지고 싶었지만 어차피 그의 말대로 자신의 힘이라면 얼마든지 보여지는 것은 바꿀 수가 있었다. 그리고 오히려 그 쪽이 자신의 능력을 그에게 보여줄 기회이기도 했다.

 

그럼 저는 총사령부로.”

. 내일 09시에 사령부에서 보자고. 아무래도 한번쯤은 얼굴을 내밀어 줘야겠지?”

각하! 이 국가의 모든 이들은 각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헤에. 홀츠는 성실하네. 하지만 과연 그럴지는…”

 

홀츠는 그의 말에 살짝 울컥했다.

 

분명 이 국가는 그에 의해 그를 위해 존재하건만 그는 늘 이런 식이었다. 가진 바 재능은 가득하건만 항상 의욕을 보여주지 않았다. 자신이 그와 같은 재능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이 국가를 위해 모든 걸 다 바쳤을 텐데.

 

홀츠?”

 

그녀는 자신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에 움찔했다.

 

그는 늘 그렇듯 의욕 없는 무미건조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녀는 그 눈을 보며 자신의 입장을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실례했습니다. 각하. 그럼 저는 이만.”

. 빨리 가보는 게 좋을 거야. 이미 5분은 늦은 거 같거든.”

! 각하!”

 

그가 의욕을 보이든 안 보이든 어차피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리고 그는 늘 저런 모습이었지만 그 게으름과는 별개로 항상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 내었다.

 

홀츠,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오로지 그에 대한 믿음뿐. 그녀는 다시 한번 그걸 깨달았다.

 

그녀는 그대로 방을 나섰고 그는 하이믈러에게도 축객령을 내렸다.

 

하이믈러, 너도 가서 잠이나 자는 게 어때?”

나도 어지간하지만 너도 참 대단하군. 이런 날 잠이 온다는 게 말이야.”

어차피 오늘이 지나면 내일의 해가 뜨는 건 똑같지 않나.”

하아? 난 말이지. 두근거려서 도저히 잠을 못 이룰 것 같아. 우린 지금 역사의 주역이 되어 이 자리에 서 있다고. 너는 이 순간이 두근거리지 않는 거야?”

두근거린다기 보다는 앞으로 생길 일들이 걱정이지. 아마 내일부터는 쓸데없는 걱정들로 가득한 녀석들이 나를 잠들지 못하게 할 것 같거든.”

. 기대 이하지만 그래도 겁먹고 움츠리는 것 보다는 나은 것 같군. 내가 줄은 제대로 선 모양이야.”

. 그러니까 너도 가서 자라고.”

알겠네.”

 

하이믈러와 그녀의 수족인 촬영기사는 활동카메라를 챙겨서는 어둠으로 가득한 방을 나섰다. 그리고 남은 것은 나탈리와 그 뿐이었다.

 

후우. 정말 이렇게 되는 거야?’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에 대한 실망으로 그는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왕이면 몇 년 정도는 더 끌어줬으면 좋았을 텐데. 전쟁의 발발 시점은 너무나도 예상대로였고 그 말은 앞으로 치뤄야 할 대가도 예상대로 혹은 그 이상 일 것이란 소리였다.

 

어차피 운명이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이 모든 건 신들의 장난. 그리고 그도 그의 국민들도 그들의 체스판 위에 올려진 장기말 하나에 불과했다.

 

몰락 둘째 편이나 되지 않았으면 좋겠군.’

 

그는 인터넷 밈으로 돌아다니는 영상을 떠올렸다. 만약 발을 잘못 내디디면 자신도 아마 그 인터넷 밈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리라.

 

아이러니 하지만 그 상황을 떠올리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게임은 시작되었고 이제 남은 건 그 운명이란 장난에서 누가 먼저 빠져 나오느냐 마느냐가 남았을 뿐이었다.

 

자기야?”

?”

나 이제 졸려.”

. 알았어. 침대로 갈까?”

 

그는 자신의 팔에 매달려 있는 미녀의 말을 듣고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녀의 허리를 살짝 감싸고는 그녀와 함께 침대로 향했다.

 

19383142205,

 

폴라네리아 공화국은 플리첸 연방의 기습공격을 받고 거기에 대응하여 선전포고를 선언. 그리고 그 선전포고가 도화선이 되어 세계를 뒤바꾼 제 2차 대륙전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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