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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은호 님의 서재입니다.

파인딩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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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나은호
작품등록일 :
2012.11.19 12:30
최근연재일 :
2012.12.26 01:01
연재수 :
59 회
조회수 :
86,408
추천수 :
696
글자수 :
242,379

작성
12.10.20 10:00
조회
1,884
추천
11
글자
8쪽

파인딩 스타 - 개장수(1)

DUMMY

긴 추위가 지나고 다시 봄이 왔다. 겨울은 지나연과 아기에게 지루하고 답답한 계절이었다. 포근한 날씨를 골라서 산책을 나가도 생기를 잃고 수척해진 자연의 모습에 겨울 찬바람이 마음속까지 들이닥쳤다. 자신도 한 그루의 겨울나무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이 지나는 동안은 모든 걸 내버리고 앙상한 모습으로 모진 추위를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살아오면서 이번만큼 간절하게 봄을 기다려본 적도 없을 것이다. 날마다 싱그러운 나뭇잎사귀와 예쁜 꽃들이 뒤덮여 있는 산을 상상했고 아기의 얼굴에 열꽃이 아닌 환한 웃음꽃이 피어나기를 간절히 고대했다. 다행히 겨울을 지나는 동안 아기의 가려움증이 많은 차도를 보였다. 고름과 진물이 배인 상처는 대부분 아물었고 온 몸에 퍼져있는 두드러기는 붉은 기운이 한층 엷어졌다. 가끔씩은 아기가 낮잠에 깊이 빠져있기도 했고 해맑은 표정으로 엄마의 옷을 잡아당기며 장난을 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봄이 왔을 때는 아기의 피부가 다시 악화되었고 외출을 자제하는 일도 많아졌다. 가까운 산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때문이었다. 이틀이 멀다하고 시커먼 연기가 분출되었고 매캐한 냄새 때문에 도저히 창문을 열어둘 수가 없었다. 그 놈의 개장수가 문제였다. 겨울에는 창문을 닫고 살아서 개장수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했다. 개장수가 여름을 앞두고 본격적으로 개사육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작년보다 연기가 더 많이 나고 더 오래 갔다.


연기가 없는 날에 개장수가 사는 곳을 가보니 입구주변에 각종 공사자재들이 쌓여있었다. 황량하고 삭막해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몇 번이고 파출소에 신고를 했지만 그 때 뿐이었다. 자꾸 전화를 하니까 오히려 경찰이 하소연을 했다.


“우리가 가더라도 주의 정도밖에 줄 수가 없습니다. 우리한테 환경단속을 하는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고발사건으로 수사를 해야되는 경우도 아닙니다.”


“그래도요. 마을에 나쁜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나서서 해결해 주시잖아요. 연기 때문에 공기가 오염되고 창문을 못 열어서 아기 피부병이 심해지고 있는데 어떡해요. 제발 어떻게 좀 해주세요.”


“말씀은 이해하겠는데 우리 하는 일에 한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가서 얘기하면 노인네가 바로 불을 꺼버리고 죽어가는 표정만 짓고 있어요. 얘기를 해도 알아듣는 건지 마는 건지. 그러지 마시고. 군청이나 도청에 환경관리 담당하는 부서가 있을 거에요. 거기에서 지도단속하고 과태료도 부과하고 그러니까 그 쪽으로 알아보세요.”


경찰은 더 이상 개장수를 상대하기 싫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군청으로 전화해 보았다. 전화가 여러 사람을 순회하더니 가까스로 담당자에게 연결되었다.


“네. 송주군청 환경관리과 나치곤입니다.”


목소리가 피곤에 절어있었다. 담당자의 이름은 누가 들어도 ‘나 피곤해’를 연상시켰고 목소리는 전화를 빨리 끊으면 감사하겠다는 음색을 지니고 있었다. 지나연이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담당자도 상황을 알고 있다고 했다.


“군청에서도 알고 계시다고요? 그런데도 어떻게 수년 동안 버젓이 불법소각을 할 수가 있는 거죠?”


“과태료도 부과하고 그랬습니다만 시정이 잘 안되네요. 연기가 많이 나는 날에 다시 전화를 주시지요. 한 번 나가보겠습니다.”


전화로 길게 상대할 사람이 아니었다. 높은 사람한테 아기를 직접 보여주며 하소연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다음 날 오전에 군청으로 찾아가서 나치곤을 만났다. 직접 보니 연민이 들 정도로 체격이 왜소하고 얼굴 표정도 목소리만큼 지쳐 보였다.


그가 지나연을 민원인 테이블로 안내하고 음료수를 꺼내왔다. 인사를 하며 웃는 모습에 소년 같은 순박함이 묻어나왔다. 지나연은 아기의 상태를 설명하면서 빨리 개장수를 조치해 달라고 간절하게 애원했다. 나치곤도 아기를 보자 안타까워 죽을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당장 얼굴로만 봐서는 세상에 이 사람보다 불쌍한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그는 안경을 매만지며 얘기를 꺼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기나 엄마나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습니까. 거기에 왼쪽 손이 없는 노인네가 삽니다. 1급 장애인에 1종 생활보호 대상자입니다. 얘기를 하면 늘 알겠대요. 그러면서 또 태우고. 벌써 5년 가까이 됐을 겁니다. 저도 민원인들한테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 과태료를 부과해도 그냥 ‘나를 잡수세요’에요. 압류할 재산도 없으니 딱지를 계속 끊는 것도 골치 아프고.”


“1종 생활보호 대상자라구요? 개를 얼마나 많이 키워서 팔아먹고 사는데요. 그렇게 불법을 공공연하게 저지르고 있는데 경찰도 손 놓고 있고 환경담당자도 방법이 없다고 하고. 이게 말이 되는 건가요? 동네사람들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잖아요. 우리 아기는 어쩌란 말이에요. 그럼 환경부나 국무총리실, 청와대에 민원을 넣어야 일이 해결되나요?”


“정말 죄송합니다. 앞으로 현장을 자주 나가서 노인네를 설득해보고 정 안되면 증거자료를 수집해서 고발이라도 하겠습니다. 안그래도 요즘 매일같이 전화하고 경과를 따지는 남자 분이 있습니다. 여러 번 오시기도 했구요. 계속 민원이 생기고 해서 저희도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고 고심하고 있습니다.”


계속 전화를 한다는 남자는 누구일까. 같은 동네에 살고 있다면 분명히 아는 사람일텐데. 그 사람과 함께 힘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남자 분 성함이랑 연락처 좀 알려주실래요? 같은 동네 사람인 것 같은데.”


“몇 번을 물어보았는데도 그 사람이 신원을 안밝히고 있습니다. 저희는 민원인이 신원과 연락처를 말하지 않으면 정식민원으로 처리할 수가 없거든요. 그런데도 계속 전화를 하는데 웬만해서는 물러설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인지 정말 궁금해졌다. 나치곤에게 꼭 신원을 확인해달라고 부탁을 하자 마지못해 그러겠다고 했다. 나치곤의 목소리는 며칠을 굶은 사람처럼 힘이 없었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환경단속 같은 험한 일을 하고 있을까. 주로 거친 사람들을 상대해야 할 텐데 말이다.


지나연이 겉으로는 정색을 하고 항의를 했지만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직감하고 있었다. 도대체 그놈의 개장수는 누구일까. 세상은 막 나가는 사람을 감당하기가 힘든 법이다. 개장수한테 벼락이라도 떨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 고발하신다고 하셨는데 아직까지 그런 조치를 한 번도 안하신 거네요. 과태료 부과도 시늉만 내시고.”


“고발을 해도 일이 쉽게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범죄행위를 명백하게 입증해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고 또 처분까지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정작 그 노인네가 문제입니다. 그 사람 말투나 안색을 보면 당장 내일이라도 죽을 사람 같아요. 주변도 너무 지저분하고 냄새가 심해서 10분만 있어도 제가 병에 걸릴 것 같더라구요. 그 개장수를 옹호하려는 게 아니라 정말 그런 사람은 법도 소용없는 것 같습니다. 영장을 발부해서 연행을 한다고 해도 죽을 병에 걸렸다고 쓰러져 버리면 어떻게 할 수가 없거든요. 그 개장수는 그러고도 남을 노인네에요. 얼굴만 보면 정말 죽을 병에 걸린 사람처럼 보이구요.”


지나연은 속으로 웃음이 터져서 참느라고 혼이 났다. 나치곤이 개장수를 생활여건이 열악하고 당장 내일이라도 죽을 것 같은 불쌍한 사람으로 애써 설명하고 있는데 그녀의 눈에는 나치곤이 근무여건이 열악하고 당장 오늘이라도 쓰러질 것 같이 불쌍한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사람에게 개장수를 단속해 달라고 항의하는 게 미안할 정도였다. 개장수를 조치하는 것보다도 나치곤의 근무부서를 바꿔달라고 민원을 넣고 싶은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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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파인딩 스타 - 초감각(1) +2 12.10.24 1,743 10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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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파인딩 스타 - 교도소(1) +2 12.10.22 1,782 1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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