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빛이연님의 서재입니다.

표지

독점 무(武)재능이 레벨업을 못 함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공모전참가작

빛이연
작품등록일 :
2022.05.23 20:57
최근연재일 :
2022.06.22 10:05
연재수 :
39 회
조회수 :
8,280
추천수 :
347
글자수 :
187,548

작성
22.06.17 10:05
조회
125
추천
7
글자
11쪽

9. 흰 늑대, 오르핀(6)

DUMMY

9. 흰 늑대, 오르핀(6)



- 펄럭!


기수의 손에서 하얀 늑대의 깃발이 펄럭였다.


“전군 위치로!”

“위치로!”


오르핀의 군대가 천천히 진형을 갖추며 나아갔다.


마치 행군이라도 하듯 어딘가 긴장감 없는 전진이었다.


횡대로 길게 늘어선 기사단이 랜스가 아닌 검을 뽑아 들었고, 병사들도 방패를 앞세운 채 그 옛날 로마의 팔랑크스처럼 진형을 갖추었다.


“고작 오백이다! 진형을 넓게 펼쳐라!”


벨루스 남작이 그 모습을 보며 병사들을 독려했다.


부산스럽게 병사들이 길게 늘어섰다.


낡은 창 하나씩을 손에 쥔 징집병들이 인파에 떠밀려 옆으로, 옆으로 밀려났다.


언제든 뒤로 빠질 준비를 마친 용병들과 마른침을 삼키는 기사들에 둘러싸인 벨루스 남작의 얼굴은 자신감이 넘쳤다.


“저 녀석들도 똑같은 사람이다! 창으로 쑤시면 똑같이 죽는 인간이야! 세 명이 한 놈만 죽여도 이길 수 있다!”


휘둘러 본 적은 있는지 의심스러운 새 장검과 두툼한 뱃살을 흔들며 말 위에서 떠들어대는 그의 말에 병사들의 눈에도 조금씩 생기가 돌아왔다.


벨루스 남작이 상대의 세 배에 가까운 자신의 병사들을 돌아보았다.


‘이 정도의 인원 차이라면 질 수가 없지. 저 오르핀 백작의 아들놈만 생포하면 이 영지전은 내 승리다.’


행여라도 백작이 직접 왔으면 다 내버리고 수도로 도망쳐 왕실에 읍소할 생각이었지만, 천만다행으로 변경백은 국경을 지키고 있었다.


이미 익스퍼트 몇 명 정도는 머릿수로 찍어 누를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 선 그였다.


벌써 이긴 양 들뜬 남작은 그다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전후 배상으로 오르핀 백작의 막내딸을 달라고 해야겠군, 흐흐.’


잿빛 생머리의 날카로운 미녀를 떠올리자 벌써 하반신이 뻐근해지는 그였다.


점차 다가오는 오르핀 군을 보며 백작이 다시 한번 소리쳤다.


“포위해라! 둘러싸서 천천히 고사시킨다!”


근육 한 점 보이지 않는 팔로 너풀너풀 장검을 흔드는 모습에 파르두스가 입꼬리를 올렸다.


이 상식 밖의 무식한 전진을 하면서도 파르두스의 마음엔 조금의 불안감도 없었다.


자신의 뒤를 느긋하게 따라오는 남자의 존재 하나만으로도 전쟁은 이미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정 무인께서는 기사단이 돌진하고 나면 이후에 중앙을 뚫어 남작을 생포해주십시오.”

“주제넘는 질문입니다만, 굳이 병사들을 맞붙게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가급적이면 적 병력을 최대한 분산시켜 두고 싶습니다. 그래야 돌파하는 기사들에게 조금이라도 덜 죽지 않겠습니까.”


연택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이 군을 이끄는 장수는 결국 파르두스였다.


그는 용병이 해야 할 일을 하면 될 뿐.


다만 최대한 빨리 전투를 끝내 조금이라도 덜 죽게 하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방진을 굳건히 해라! 간격 유지해!”


곳곳에서 병사들을 독려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양 군이 점점 가까워지고 이윽고 서로의 표정까지도 볼 수 있는 거리가 되었다.


군의 뒤편에서 느긋하게 풀린 남작의 얼굴을 발견한 파르두스가 좌우의 기사들을 돌아봤다.


“단번에 중앙을 밀어낸다. 가자!”

“와아아-”


갑작스러운 가속과 함께 파르두스를 선봉으로 한 돌파진형이 구축되었다.


서른한 필의 군마가 흙바닥을 짓이기며 몰아치자, 남작의 느긋하던 얼굴이 조금 굳었다.


“막아라! 창을 세워!”

“난전을 만들어라! 둘러싸서 꼬치로 만들어!”


- 카가강!


중앙을 지키고 있던 벨루스군의 기사들과 용병들이 악을 쓰며 돌진을 막아섰다.


좌우로 어슷하게 세모꼴로 중앙을 파고든 기사들이 난전에 들어섰다.


충분한 돌파력을 얻지 못한 기사단의 돌진이 막히는 모습에 남작의 얼굴에 웃음이 돌아오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면 충분했다.


“지금입니다!”


파르두스의 외침에 연택이 고개를 돌려 소연을 바라보았다.


“다녀오마.”

“조심하세요.”


가볍게 손을 흔들며 배웅을 하는 소연을 잠시 보던 연택이 고개를 돌리며 진군보(進軍步)를 밟았다.


파천과 불괴를 이은 무인에게 화려한 보법은 필요 없다는 두 사부의 지론 덕분에 제대로 된 보법 하나 몰랐던 그의 스승 한무백.


그가 군에 투신하고서야 처음 배운 단순한 걸음이 연택의 발끝에서 펼쳐졌다.


- 쾅!


그저 앞으로 적을 돌파하고 뚫어내기 위해 만들어진 보법이 폭발적인 추진력을 뿜어냈다.


있던 자리에 깊은 구덩이만을 남긴 그의 몸이 총알처럼 쏘아졌다.


희뿌연 기의 아지랑이를 길게 늘이며 나아간 그가 흑랑기사단이란 쐐기를 내려치는 망치처럼 파고들었다.


기사단이 만들어 둔 공간을 달려 순식간에 최전방의 파르두스를 지나친 그가 그대로 어깨를 앞세우며 달렸다.


- 퍼-억! 퍽! 퍼벅!


둔탁한 충돌음과 사방으로 피어나는 피보라.


연택이 나아가는 경로의 모든 것들이 찰흙처럼 깨어지고 풍선처럼 터져나갔다.


발악처럼 내지른 검과 창은 힘없이 꺾여나갔다.


걸음마다 십수 미터를 밀어내며 나아간 그의 시야로 하얗게 질린 남작의 얼굴이 들어왔다.


“마, 막아!!”


- 푸- 확!


귀신이라도 본 듯 경기를 일으키며 황급히 말머리를 돌리려는 남작.


반쯤 돌린 남작의 얼굴로 그의 충직한 기사였던 것이 붉게 흩뿌려졌다.


“어딜 가나.”


온몸에서 흰 안개를 뿜는 흰 머리칼의 귀신이 어느새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얼굴로 검은 눈을 들어 자신을 바라보는 연택과 눈이 마주친 남작이 사지를 파들거렸다.


“히, 히익!”


연택이 가볍게 한 손을 뻗어 말 위의 벨루스 남작의 팔을 움켜쥐었다.


“끄아아악!”


압착기에 들어간 듯 찌그러지는 팔에 버둥거리던 남작이 이내 말에서 떨어져 내렸다.


전장은 어느새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하하하··· 이건 뭐, 아버님보다 더하단 건 알았지만···.”


멈춰버린 전장에서 남작이 생포되는 과정을 지켜보던 파르두스가 한숨처럼 탄식했다.



* * *



전쟁은, 아니 전쟁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일전은 그렇게 끝났다.


오르핀의 군의 피해라곤 고작 흑랑기사단 네 명의 경상이 전부였다.


포로의 숫자가 이끌고 온 병력보다도 한참 많아 징집병부터 무기를 회수하고 집으로 돌려보낸 오르핀 군이 벨루스 성에 입성했다.


어떠한 저항도 없이 성으로 들어선 그들은 영주성으로 향했다.


‘병사들에겐 영지 통제만 잘 시키면 될 거라고 하시더니만···. 그게 병사들이 싸울 일이 없을 거란 얘기였나.’


허탈한 전투의 결과에 실소한 파르두스가 포박당한 채 꿇려진 남작과 그의 기사들을 바라보았다.


완벽하게 전의를 상실한 그들은 연신 연택을 힐끗거리고 있었다.


“하, 항복했잖소. 내게 귀족으로서의 대우를 해주시오.”


귀족은 전장의 포로가 되어도 귀족.


귀족 포로로서 대우를 요구하는 뻔뻔한 남작의 얼굴에 파르두스가 싱긋 웃었다.


“네 놈은 죄인이다. 귀족의 대우 같은 걸 바랄 생각 마라. 도망간 네 놈의 아들놈도 곧 잡아다가 옆에 꿇려주마.”


남작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내, 내가 왜 죄인이오? 애초에 그 영지에서 사고를 친 것도 내가 아니고 내 아들놈이외다! 내가 죄인 취급받을 이유가 없소!”

“두고 보면 알겠지. 뒤져라!”

“예!”

“숨겨진 공간이 있을 수 있다. 벽 뒤, 지하를 가리지 말고 샅샅이 살펴라!”


애써 항변하는 남작을 무시한 채 파르두스가 기사와 병사들에게 명했다.


남작의 표정이 점점 더 무너지고 있었다.



가장 처음 발견된 것은 저택 뒤 작은 숲에 숨겨진 창고였다.


아무것도 없는 창고를 수상하게 여긴 기사가 바닥에서 지하로 향한 통로를 발견했다.


내부는 라이트 스톤(light stone)으로 밝혀져 있었다.


길지 않은 통로를 지나쳐 들어간 기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 이런 개 같은!”


벽에 박힌 사슬마다 힘없이 매달린 젊은 여성들.


그 용도를 짐작하기 불쾌한 온갖 기구가 검게 죽은 피에 물들어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기괴한 광기가 느껴지는 정경에 아득해진 기사가 저도 모르게 토해내듯 욕설을 뱉었다.


“으음···!”


보고를 받고 따라 들어온 파르두스가 침음을 흘렸다.


그 끔찍한 참상에 두 눈을 질끈 감았던 그가 잇소리를 내며 공간을 빠져나갔다.


잠시 후 다시 돌아온 그의 손엔 벨루스 남작의 뒷덜미가 잡혀있었다.


- 쿠당탕


“해명해봐라.”

“이, 이건··· 나, 나는 모르는 일이오!”

“네 놈 저택에서 일어난 일을 모른다?”


남작이 필사적으로 항변했지만, 내부에 들어선 모든 이의 눈빛은 이미 차게 식어있었다.


병사들이 벽에 묶인 여인들을 풀어 조심스레 들것에 실어 나르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파르두스가 다시 남작을 끌고 밖으로 나왔다.


남작을 바닥에 내팽개친 그가 병사들을 불렀다.


“이놈을 감옥에 처박아라. 물 한 방울도 주지 말고 가둬둬라.”

“예!”

“아, 아니! 난 모르는 일이라니까! 자, 잠깐만 내 얘기를···!!”


끌려가면서도 끝까지 무고를 주장하는 남작을 일별한 그가 연택을 돌아보았다.


“정 무인께서 그 산채와 서신을 발견하지 못하셨다면, 아무도 모른 채 이 끔찍한 일이 계속될 뻔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깊이 고개를 숙여 사의를 표하는 파르두스의 말에 연택이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감사를 받으려 한 일이 아닙니다. 그저 우연이 겹쳤을 뿐입니다.”

“나머지 일은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바로 오르핀으로 돌아가십니까?”

“따로 며칠 쉬었다 갈까 합니다.”


연택의 말에 아쉬움을 표한 그가 두 사람을 배웅했다.


“저희는 이 성에 있을 예정이니,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언제든 찾아주십시오.”

“감사합니다.”


떠나는 두 사람에게 마주치는 기사들이 손을 가슴에 올리며 예를 취해 왔다.


그의 압도적인 무력을 봤던 기사들의 반짝이는 눈빛을 뒤로한 두 사람이 거리로 나섰다.


“어쩐지 속 시원하게 해결한 것 같지가 않네요.”

“우리가 할 역할은 여기까지다.”


어딘지 아쉬운 얼굴로 소연이 말을 꺼냈지만, 연택은 선을 그었다.


이제 잠시 숨을 돌리고 백작에게 의뢰금을 줄이는 대신 받기로 한 대가를 받으러 가야 했다.


남은 일은 이 세계의 사람들에게 맡기고.


말수가 부쩍 줄어든 두 사람은 익숙한 여관을 발견했다.


“어서 오···, 오! 다시 찾아주셨군요!”


‘나그네의 쉼터’에 도착한 두 사람을 여전히 졸린 얼굴의 주인장이 반겼다.


카운터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가이드 꼬마 아이가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오랜만이네~.”


소연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자 아이가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코끝에 맴돌던 피 냄새가 조금은 옅어지는 기분에 연택도 작게 미소지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무(武)재능이 레벨업을 못 함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중단 안내 22.06.22 73 0 -
39 10. 사람을 찾습니다(5) 22.06.22 77 6 11쪽
38 10. 사람을 찾습니다(4) +1 22.06.21 86 5 11쪽
37 10. 사람을 찾습니다(3) 22.06.20 89 5 11쪽
36 10. 사람을 찾습니다(2) 22.06.20 101 5 12쪽
35 10. 사람을 찾습니다(1) 22.06.19 111 5 11쪽
» 9. 흰 늑대, 오르핀(6) 22.06.17 126 7 11쪽
33 9. 흰 늑대, 오르핀(5) 22.06.16 118 6 10쪽
32 9. 흰 늑대, 오르핀(4) 22.06.15 135 6 11쪽
31 9. 흰 늑대, 오르핀(3) +2 22.06.14 152 7 12쪽
30 9. 흰 늑대, 오르핀(2) 22.06.14 136 7 11쪽
29 9. 흰 늑대, 오르핀(1) 22.06.13 144 6 11쪽
28 8. 첫 번째 의뢰(5) +1 22.06.12 165 6 10쪽
27 8. 첫 번째 의뢰(4) 22.06.11 153 7 10쪽
26 8. 첫 번째 의뢰(3) 22.06.11 159 7 10쪽
25 8. 첫 번째 의뢰(2) 22.06.11 160 7 12쪽
24 8. 첫 번째 의뢰(1) +1 22.06.10 170 6 10쪽
23 7. 도시 벨루스(4) 22.06.09 171 7 13쪽
22 7. 도시 벨루스(3) +1 22.06.08 186 7 11쪽
21 7. 도시 벨루스(2) 22.06.07 189 7 12쪽
20 7. 도시 벨루스(1) 22.06.07 202 7 11쪽
19 6. 스승님(3) 22.06.06 215 8 10쪽
18 6. 스승님(2) 22.06.06 214 9 10쪽
17 6. 스승님(1) 22.06.05 220 8 10쪽
16 5. 연공법(4) 22.06.04 240 12 10쪽
15 5. 연공법(3) +1 22.06.04 233 11 11쪽
14 5. 연공법(2) 22.06.03 226 11 9쪽
13 5. 연공법(1) 22.06.03 232 11 10쪽
12 4. 불시착(3) 22.06.02 227 11 10쪽
11 4. 불시착(2) 22.06.02 231 11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