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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시루스 님의 서재입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웹소설 > 작가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아이시루스
작품등록일 :
2020.02.22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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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27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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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롱 - 14

DUMMY

"군단 이상의 단위부대를 지휘하는 장군이라면 적국과의 능수능란한 협상도 할 줄 알아야 한다네. 잠자코 따라와서 지켜보기나 하도록. 자네가 얼굴을 비추는 것만으로도 오금을 저는 놈들의 표정을 볼 수 있을 테니."


그러면서 호탕하게 껄껄껄 웃는 켈베르만 중장이었다.


회담장에 도착한 나폴레옹은 어째서 협상과 외교가 총성 없는 전쟁이라 불리는지 깨달았다.

총과 대포가 오고가는 전쟁 못지않은 심리전과 전략이 판을 치는 게임이었다.

영국과 스페인의 외교특사는 자국의 고위 제독과 함대 전체가 포로로 잡힌 와중에도 연일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마치 그들의 신병 따위는 언제든지 쉽게 포기할 수 있다는 듯이.

혁명전쟁에서 궁지에 몰려있는 것은 여전히 프랑스라는 사실을 주지시키듯이 떠들어댔다.


"허세와 배짱도 정도가 있지, 저들은 어째서 저리 얼굴에 철판을 까는 겁니까?"


나폴레옹은 진심으로 궁금했다.

지금 포로로 잡힌 채 목숨을 구걸해야하는, 영국군과 스페인군이 처한 상황을 모르는 건가?

그러자 켈베르만 중장이 답했다.


"영국군과 스페인군이 정말 이판사판으로 나왔으면 툴롱 항구는 불태워졌을 것이고 공화국의 함선은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네."


왕당파의 반란이 툴롱 시를 휩쓸었을 때, 항구에는 36척의 전열함과 16척의 프리깃함, 14척의 코르벳함 등이 적재된 상태였다.

항구를 점거하고 있었던 영국과 스페인은 언제든지 그것들을 자침시킬 수 있었다.

켈베르만 중장이 원군이 도착했을 때조차도 마음만 먹었다면 함선들 일부를 태워버리는 것이 가능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지. 함선의 소유에 대한 욕심이었는지는 몰라도 최소한의 외교적 도의와 수사를 지킨 거야. 그렇다면 우리도 어느 정도의 양보는 할 필요가 있다네."


뭐, 가지고 도망가려다 물건 몇 개를 부순 스페인 놈들에게는 약간의 예외가 적용되겠지만.

켈베르만 중장의 말에 나폴레옹은 이마를 긁적였다.

외교적 도의라.... 결국 구체제를 갈아엎고 왕의 목까지 자른 공화국도, 유럽이라는 커다란 체제에 편입되지 않고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확신이 있었나보다.


이번 협상 담당자가 신출내기 외교관이라면 영국, 스페인 외교특사의 허세에 넘어갔을지 모르지만, 국민공회에서 파견된 쥐르동이라는 외교관은 결코 녹록치 않은 인사였다.

쥐르동은 겉으로는 영국과 스페인의 외교특사를 살살 구슬리면서 뒤로는 포로들에 대한 처우개선(?)에 들어갔다.

안 그래도 드문드문 나오던 포로들의 식사를 아예 끊어버렸고, 영국과 스페인 함선을 돌아다니면서 내부의 값나가는 것들을 쓸고 다녔다.

마치 너희들이 합당한 배상금을 내지 않으면 알아서 뜯어가겠다는 듯이.

영국, 스페인 외교특사들의 항의에도 쥐르동은 거침없었다.


'유리한 협상의 고지를 점하기 위해서 별의 별짓을 다하는구나.'


어떻게 보이면 치졸한 모습이었지만 그 속에 들어있는 노련한 심리전과 이해관계들을 나폴레옹은 관찰할 수 있었다.

쥐르동은 영국과 스페인 함대의 전열함들을 팔아치워서 포로들의 몸값과 전비마련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특사들에게 넌지시 말해두기도 했다.

자신들의 배를 팔아서 포로교환 금액을 마련하라는 말을 들은 영국과 스페인 특사들의 똥 씹은 표정은 남다른 경험이었다.

4일간의 줄다리기 끝에 드디어 작은 협정이 체결되었다.


1. 영국은 37척의 전함과 약 6천여 명의 선원, 수병, 보병들 그리고 제독 리차드 하우와 귀족장교들에 대한 몸값으로 65만 파운드(약 1600만 리브르)를 공화국에 지불한다.


2. 스페인은 35척의 전함과 약 7천 5백여 명의 선원, 수병, 보병들 그리고 제독 란가라와 귀족장교들에 대한 몸값으로 1500만 리브르를 공화국에 지불한다.


3. 스페인은 공화국의 파손된 8척의 전열함, 2척의 프리깃함, 2척의 코르벳함에 대한 수리비 750만 리브르를 추가로 지불한다. 이 중 완전히 손상되어 수리가 불가능한 3척의 전열함과 1척의 프리깃함은 스페인 함대의 같은 등급 함선들로 돌려받는다.


4. 툴롱 시와 항구는 영국과 스페인의 침공으로부터 3년간 보호를 받는다. 또한 툴롱으로 입항하는 모든 국적의 상선들에 대해서도 안전을 보장받는다.


5.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소장과 알프스 방면군은 3년 동안 플랑드르와 라인 강 전역에 대한 참전이 불허된다.


쥐르동은 비교적 만족스러운 표정이었고 영국과 스페인의 외교특사 역시도 만족까지는 아니었지만 나름 선방했다는 얼굴이었다.

반응만 본다면 세 나라간의 입장이 적절히 조율된 협정안이라고 볼 수 있겠다.

회담장에서 나오는 쥐르동은 나폴레옹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의 악수를 나폴레옹은 거절하지 않았다.


"이번 회담과 협상에는 보나파르트 소장의 역할이 아주 지대했습니다."


"?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만."


"아니죠, 아닙니다.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소장께서는 최고의 활약을 하신 겁니다. 영국과 스페인의 외교특사는 보나파르트 소장의 참전을 두려워했으니까요. 협정문의 5번 조항을 넣기 위해서 저들이 했던 양보는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제서야 나폴레옹은 공화국이 제법 많은 것들을 얻어낸 것 같음에도, 영국, 스페인의 특사들의 표정이 그리 어둡지만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나에 대해서 그들이 느끼는 위험도가 특급으로 상승했나보군. 어떻게 해서든지 공화국의 주 전장에 참가하지 못하도록 할 만큼.’


공화국의 적국들은 이제 나폴레옹의 일거수일투속에 대해 관찰하고 염탐할 것이고, 그가 걸어왔던 행적들을 낱낱이 분석하고 해석할 것이다.

유럽을 뒤흔드는 명장이 되었다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다.

그 하나를 잡기 위해 달려드는 수천, 수만의 집단지성을 상대로 버텨내면서 이름값을 지켜야한다는 것.

나폴레옹에 대한 진정한 시험대는 어쩌면 지금부터일지도 몰랐다.


"국민공회에서는 보나파르트 소장이 전시에서 보여준 냉철한 판단력과 과감한 전술에 대하여 극찬을 늘어놓았습니다. 오늘자의 조간신문을 보셨는지요?"


"봤습니다. 좀.... 낯간지럽더군요."


[<몽블랑> 영웅의 탄생! 툴롱에서의 위대하고 거룩한 승리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프랑스 공화국의 튀렌 자작(17세기 프랑스의 명장)이 되었다.]


[<가제타> 공화국 45일치 재정을 거둬들인 황금빛 대승! 나폴레옹 장군의 전략에 무너져버린, 우리들의 어리석은 숙적들!]


[<파리 드 살롱> 외세를 끌어들인 왕당파들, 툴롱의 천재 지휘관이 판 함정에 파묻혀 아침 이슬로 사라지다.]


<인민의 벗>에서는 위대한 프랑스의 장군, 나폴레옹의 위엄찬 행진 아래 무릎을 꿇고 비는 영국과 스페인 군대의 비굴한 모습을 풍자 만평으로 그려서 1면에 제시하기도 했다.

혁명을 지지했던 언론들이 이렇게 일제히 한 인물에 대한 찬양기사를 내보낸 적이 있을까?

단연코 없었다. 자코뱅당이 자주연방주의당을 밀어내고 집권했을 때도 로베스피에르, 장 폴 마라, 조르주 당통 이 세 명에게 대등하게 배분되었지 오직 한 사람에 대한 기사가 전 지면을 덮은 적은 없었다.

나폴레옹은 그 최초가 된 것이다.

쥐르동이 푸근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라인란트와 플랑드르 전역의 장군들이 보나파르트 소장의 지금 발언을 듣는다면 뒷목을 잡으며 분노할 것입니다. 그들이 보나파르트 소장이 가진 인지도와 명성, 인기를 갖기 위해 치는 발버둥이 어떤지 아시는지요? 아마 소장은 상상도 못할 겁니다."


"뭐, 억울하면 이탈리아 전선 쪽으로 와서 공을 세워야지 어쩌겠습니까."


재미있는 농담을 들었다는 듯 쥐르동이 껄껄거리면서 웃었다.

사실 나폴레옹도 자신의 대중적인 인기와 국민들의 지지도, 개인의 이름값이 상승하는 게 싫을 리가 없다.

나름대로의 야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심정을 함부로 드러내면 공회의 정치가들이 자신을 고깝게 볼 것이 뻔해서 자제한 것이지.


"소장의 앞날에 주님의 경건한 축복이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소장의 넘치는 재치와 지혜, 용기가 공화국을 둘러싼 탐욕스러운 열강들을 무찔러주길 진심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파리에서도 알프스 방면군의 활약을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그 말을 남기고 쥐르동 외교관은 마차에 올라 떠났다.

나폴레옹은 멀리까지 나와서 그를 배웅하였다.


=


툴롱 항구를 거점으로 삼은 베르됭 상회는 나폴레옹에게 파치니오 탑에 머물러도 좋다는 제안을 건넸다.

'툴롱을 지켜낸 영웅'에게 바치는 보상이라는 명목의 후의.

나폴레옹은 이를 굳이 거절하지 않았다.


파치니오 탑은 과거 프로방스 지방을 다스리던 프랑스 귀족들의 별장을 개조한 공간이다.

로코코 양식이 진하게 묻어나는 고급스러운 방과 툴롱의 야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테라스, 언제나 상시대기 중인 잘 교육받은 사용인들까지.

베르사유나 쇤부룬의 궁전 같이 사치스럽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아담하면서도 고급스러움과 아늑함이 묻어나오는 것이 나폴레옹의 마음에 쏙 들었다.

거의 평생을 코르시카의 촌동네와 왕립군사학교의 골방, 그리고 비바람이 함께하는 전장에서 보냈던 나폴레옹에겐 가히 신세계였다.


"쥐르동 외교관님이 보나파르트 각하께 이것을 남기셨습니다. 외교관님께서는 본인이 떠나신 다음에 각하께 전해 달라 하셨습니다."


파치니오 탑의 관리인 겸 집사가 나폴레옹에게 정중히 동봉된 편지를 전달했다.

그것을 받아서 열어든 나폴레옹은 가장 먼저 국민공회의 인장과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의 사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길게 이어진 편지글을 다 읽은 나폴레옹은 한쪽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당장 줄 보상이 없으니 이런 걸로 때우려고 하는군."


그것은 공회와 로베스피에르가 약속하는 '우대권'이었다.

나중에 나폴레옹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것을 없던 일로 해주거나, 들어주기 어려운 부탁을 들어주겠다는 공인된 약속이다.

뭔가 대단해보이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실속은 별로 없었다.

정말 큰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이 우대권은 아무 소용이 없다. 군부와 공회가 머리에 총을 맞지 않은 이상, 우대권이 없더라도 작은 잘못으로 나폴레옹을 처벌할 일은 없을 것이고.

들어주기 어려운 부탁이라는 조건도 코에 걸만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다.

어려움의 정도를 설정하고 판단하는 주체가 로베스피에르와 공회였으니, 오히려 호의를 받아야할 나폴레옹 입장에서 끌려 다니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다.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발상인지는 몰라도 주는 것 없이 생색내는 방법으로는 기가 막히게 훌륭했다.


"하기사 내 승진이 비정상적으로 빠르긴 했지. 여기서 더 올려주었다가는 다른 장군들이 난리를 칠 게 뻔해."


준장에서 소장이 된 지 2달도 채 되지 않았다.

게다가 중장이라면 사단장이 아닌 군단장들의 계급이다. 격이 다르다는 이야기.

6월에 사단 편제를 받은 장성이 그해 9월에 군단장이 된다?

이런 미친 진급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를 따져도 존재치 않았다.

물론 루이 필리프처럼 18살에 대령을 달고 19살에 중장이 되는 경우도 존재했지만, 왕실 권리를 포기하고 혁명을 지지한 왕족과 벽촌 오지의 보나파르트가 같을 수는 없는 법.

나폴레옹의 공훈이 제아무리 탁월해도, 그의 역량이 아무리 뛰어나도, 공회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 이상 승진을 시킬 순 없었다.


그래, 지금은 조금 숨을 고르고 쉬어가도 될 것이다.

너무 튀어나온 돌은 사람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법이니까.

나폴레옹은 우대권을 쓰다듬었다. 고급 양지의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별 쓸모가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 낫다.

그리고 이것을 잘 사용한다면 지금껏 미뤄왔던 몇 가지 일들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쥐르동 그 인간, 로베스피에르 쪽의 인물이었군. 이 우대권도 로페스피에르의 주도 아래 내려준 것이겠지.'


나폴레옹 자신을 같은 일파로 끌어들이기 위한, 로베스피에르 쯕의 구애행동이라 생각해도 될까.

그는 도대체 나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는 것일까.

별이 쏟아지고 있는 툴롱의 앞바다를 바라보며 나폴레옹은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작가의말

챕터의 마지막입니다.

IDARGO님, 바얀티무르님 소중한 후원금 정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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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툴롱 - 13 +5 20.03.26 879 3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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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툴롱 - 2 +4 20.03.11 1,024 32 13쪽
18 툴롱 - 1 +10 20.03.10 1,095 34 12쪽
17 혁명과 모략의 시대 - 16 +16 20.03.09 1,100 37 15쪽
16 혁명과 모략의 시대 - 15 +8 20.03.08 963 37 13쪽
15 혁명과 모략의 시대 - 14 +10 20.03.07 983 33 13쪽
14 혁명과 모략의 시대 - 13 +6 20.03.06 975 32 13쪽
13 혁명과 모략의 시대 - 12 +6 20.03.05 974 35 14쪽
12 혁명과 모략의 시대 - 11 +4 20.03.04 1,015 30 13쪽
11 혁명과 모략의 시대 - 10 +9 20.03.03 1,066 37 13쪽
10 혁명과 모략의 시대 - 9 +11 20.03.02 1,037 36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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