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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상] 14. (수필) : 묘(猫)한 이야기

 

 

()한 이야기

 

심삼일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근처에는 꽤 넓은 인공 하천이 흐르고 있다. 하천의 양쪽 언덕에는 패랭이꽃, 금잔화 등의 화초와 개나리, 철쭉 같은 관목을 비롯해 단풍나무, 소나무, 편백 나무 등 각종 수목이 우거져, 계절의 변화에 따라 철마다 멋지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키 높이의 갈대와 부들이 무성한 하천 중간에 커다란 화강암을 두 줄로 늘어놓은 징검다리가 만들어져 있다. 나는 한가한 시간에 다리를 건너 하천 둘레길을 산책하며 식물이 배출한 항균성 물질 피톤치드가 밴 신선한 공기를 실컷 마시고 온다.

 

징검다리 건너 비탈진 둔덕에는 하천 쪽에 기둥을 세워 돋우고 나무로 마루를 깔아 차양을 지붕처럼 친 널찍한 공간이 있다. 여러 명이 산책 나와서 둘러앉아 음식도 나눠 먹고 놀 수 있는 휴식 공간이다.

그런데 엊그제 보니 그곳에 걸개그림 같은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있고 개집처럼 생긴 구조물도 놓여있다.

뭔가 싶어 다가가서 읽어봤더니, ‘길고양이 관리에 관한 협조 요청문이었다.

 

내용인즉, “길고양이는 도심지나 주택가에서 자연적으로 번식하여 자생적으로 살아가는 자연생태의 일원으로, 도구 약물 등을 사용하여 상해를 입히거나 죽이는 행위는 동물보호법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T, N, R (포획-중성화 수술-방사) 사업은 개체 수 관리와 영역싸움 및 소음 등을 줄여주고, 적정한 먹이 공급으로 관리되는 고양이는 쓰레기를 뒤지지 않아 생활환경이 개선될 수 있으니 시민 여러분의 이해와 협조 당부드립니다.”라는 거의 경고 수준의 안내문이었다.

 

나무로 만든 개집 같은 구조물을 살펴보니, 안에 고양이 먹이가 담긴 그릇을 넣어 두었다.

기르다 유기된 반려견이나 자연적으로 서식하는 길고양이를 이렇게 먹이로 유인하고 포획하여 중성화 수술을 한 후에 다시 놓아줌으로써, 고양이가 이곳에서 먹이를 조달하며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제 수명대로 살게 해 주자는 취지인 것 같다.

협조문 밑에, ‘S시 미래농업과 ‘S시 동물 사랑협회가 찍혀 있는 것으로 보아 어느 극성스러운 동물 애호가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합작품으로 보인다.

 

고양이는 영역(領域) 동물이어서 자기 영역 안에 머물 때 안정감을 느껴 편안해진다고 한다. 그래서 강아지는 매일 산책을 시켜주는 게 좋지만, 고양이는 밖에 나가면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어 산책을 즐기는 경우는 드물다.

강아지는 짖어대고 시끄럽지만, 고양이는 대체로 조용한 편이다. 게다가 본능적으로 배변을 파묻는 습성이 있어서 모래와 화장실만 준비해주면 스스로 알아서 잘 처리한다.

고양이는 좁은 공간에서도 잘 적응하고 비교적 독립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 주인에게 크게 의존하지도 않는다.

그래서일까, 최근에 반려동물로 개보다 고양이를 선호하는 사람이 늘어나서 반려묘가 급속히 증가하는 것 같다.

 

한국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집은 2018년 기준 566만 가구에 이르며 이는 전체 2,000만 가구의 4분의 1을 넘는다.

통계청 인구 총조사에 따르면 2018년 반려견() 양육은 454만 가구이고 반려묘() 양육은 112만 가구로, 반려견이 반려묘의 4배에 이른다.

그러나 일본은 2017년을 기점으로 반려묘가 반려견 숫자를 앞질렀는데, 2019년 현재 일본의 반려견은 880만 마리이고 반려묘는 964만 마리라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반려동물의 평균 비중은 2016년 기준 개 33%, 고양이 23%, 물고기 12%, 6% 순이며 파충류 등이 그 뒤를 따른다.

 

고양이는 개와 함께 인간의 가장 오래된 동반자이다. 개는 1 4,000년 전쯤부터 인간을 따라다니기 시작했고, 고양이는 9,500년 전 중동에서부터 인간과 같이 살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 개는 늘 사람을 따르지만, 고양이는 사람과 함께 살아도 독립적인 삶을 즐기는 것 같아서, 고양이가 사람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는 오해를 살 정도다.

야생 개는 늑대처럼 무리를 지어 먹이를 찾아 배회하다가 가축이나 시체가 썩어가는 인간의 야영지 근처에서 먹이를 구했을 것이다. 그러다 인간은 개에게 먹이와 안식처를 주고, 개는 인간에게 다가오는 위험을 알려주는 공생 관계로 발전했을 것이다.

 

고양이는 약 5,000년 전 아프리카 리비아 지방에서 고대 이집트인에 의해 다량 사육된 것으로 추정한다. 고양이를 길들인 것은 아마도 고양이가 설치류로부터 곡식 창고를 지켜준다는 것을 이집트인들이 알게 된 때부터일 것이다. 이집트인들은 고양이의 머리를 한 여신(Bast)에게 경배했으며, 수천 마리의 고양이 미라가 발견되기도 했다.

고양이는 다른 문화권에도 퍼져, BC 500년경에는 그리스와 중국에 흔하게 되었고, 인도에는 BC 100년경에 알려졌다. 우리나라에는 대체로 10세기 이전에 중국과 내왕하는 과정에서 들어온 것으로 추측된다.

 

고양이를 좋아해서 반려동물로 삼는 것까진 좋은데, 유기된 반려묘가 늘어나 숱한 길고양이가 어슬렁거리는 이 시기에, 고양이를 가까이할 때 유념해야 할 주의사항 한 가지를 꼭 알리고자 한다.

미국 과학 매체 사이언스 데일리는 로드 레이지’(난폭운전을 이르는 말) 등 극단적이고 충동적인 분노를 터뜨리는 간헐적 폭발 장애라는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은 톡소포자충에 감염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세균도 바이러스도 아니고 단세포 기생충인 톡소포자충은 감염된 설치류나 새를 먹은 고양이 몸속에서 일생의 대부분을 보낸다.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고양이는 몇 주 동안 매일 대변을 통해 수백만 개의 톡소플라스마(toxoplasmosis)’ 난포낭()을 배출한다. 사람들은 토양이나 물속에서 1년 이상 생존할 수 있는 이 난포낭을 통해 감염된다.

고양이 배변용 모래나 깔개를 교체한 더러운 손으로 입을 만지면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온다. 임신부가 감염되면 기생충이 태반을 통해 영아에게 선천성 톡소플라스마증을 일으킬 가능성이 50%나 된다.

 

미국의 고양이들은 약 40%가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고 약 11%의 미국 사람들이 톡소포자충에 감염되어 있지만, 보통은 증세가 나타나도 림프샘이 붓거나 근육통이 며칠간 지속하는 몸살감기 정도라서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고 한다.

그러나 톡소포자충에 만성적으로 감염될 경우 염증이 증가하여 조현병, 자폐증,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정신장애를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도 인구의 10%가 톡소포자충에 감염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경제가 어려워 취직도 힘든 각박한 시대에 살며, 결혼마저 포기한 싱글족과 고령층이 점점 늘어나면서,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에 의지하려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다.

인간은 짐승과 달라 선천적으로 사랑이나 친근감을 느끼는 정()이 많은 동물이다.

말수 적고 독립적이면서 앙증맞게 구는 고양이에게 호감을 보이는 것은 좋지만, 흙이나 물을 통해 부지불식간에 치명적인 톡소플라스마 기생충에 감염될 수 있다는 끔찍한 사실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동물 애호가들 덕분(?)에 이제는 우리 동네 하천 둘레길을 산책하다가 계단이나 잔디밭에도 함부로 앉지 못하게 생겼다 싶어, 어째 씁쓸한 기분이 든다.




[ 2020년 4월 ‘한국예인문학’ 제10호 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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