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다리 1.
영도다리 1.
“아, 문도 너는 4학년 때부터 바다수영을 했구나! 그런데, 삿포로 근처면 북한보다 위쪽에 있는 북해도 아니야? 거기는 추운 곳인데 열대어가 있어?”
문도가 일본 삿포로 근처 오타루라는 항구에 살 때 바닷물 속에 들어가 각종 열대어를 보며 수영했다는 얘기를 듣고 근상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응, 네 말이 맞아. 알록달록한 남방계열의 열대어는 없었어. 그런데 초등학교 1학년 때 수족관에서 처음 산호초 사이를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를 보니까, 전부 열대어인 줄 알았지. 흐흐.”
문도가 겸연쩍게 웃어넘겼다.
“그러면, 그 수족관에는 무슨 물고기가 있었는데? 엔젤피쉬는 없더나? 히히.”
열대어 종류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근상이, 어느 식당 수족관에서 보고 알았던 이름처럼 예쁜 물고기를 떠올렸다.
“엔젤피쉬? 그런 건 없고 지느러미가 부챗살처럼 펴진 솔베감펭하고 곰치는 있더라. 그리고 엔젤피쉬는 열대어이긴 하지만 바닷물고기가 아니야! 남미의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를 가로지르는 오리노코 강 유역에 서식하고 있는 민물고기라는 사실은 알고 있냐? 흐흐.”
흑해도 열대어 바람에 무안했던 문도가 쪼끔 아는 상식으로 반격할 찬스를 잡았다.
“엥? 엔젤피쉬가 담수어야? 히히. 딴 데 가서 해수어라고 말했으면 개망신 당할 뻔했네! 키키. 고마워.”
근상이 민망해서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친한 친구 사이라면 이렇게 친구의 잘못 알고 있는 내용을 곧바로 지적해 주는 것이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나도 처음엔 그런 줄 몰랐어. 열대어에 조금 관심 가지고 나서부터 알게 된 거지. 우리가 흔히 보는 구피나 소드테일도 민물고기야. 식당 수족관 물고기는 수돗물로 기르니까 전부 민물고기라고 보면 되지. 크크.”
“아, 듣고 보니까 그러네. 그런데, 볼만한 열대어도 없었다면서 오타루인가 하는 그 북해도 항구의 바닷물 속에는 무슨 재미로 맨날 들어갔어?”
“응, 그 오타루 수족관에 돌고래 쇼가 있었거든. 이리저리 헤엄치다가 수면 위로 높이 치솟아 오르기도 하면서 재주를 부리더라고. 히히, 그래서 어린 마음에 나도 돌고래처럼 멋지게 바닷물을 헤집고 다니며 수영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흐흐.”
“아, 그래서 기를 쓰고 맨날 바다로 뛰어들었구먼. 그런 하드트레이닝을 거쳐서 지금은 숨을 5분이나 안 쉬고도 잠수할 수 있게 된 모양이구나. 별명을 코모도 대신에 돌고래라고 붙여야 되겠다. 히히.”
근상이 이제야 이해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불판 가장자리에 옮겨놓은 삼겹살 살점을 집어 들었다.
문도도 적당히 익은 큰 살점을 골라 맛있게 씹어 먹고 맥주 한 모금을 더 마셨다.
“5학년 초에 귀국하고 영도에 살 때도 맨날 바다 속에 들어가 놀다시피 했다. 흐흐.”
문도의 머릿속에 부모님이 문도의 고모와 함께 귀국하여 고국생활의 터전을 잡았던 부산 영도 바다가 떠올랐다.
“아, 맞다. 너네 집이 영도라고 그랬지. 영도 섬 뒤쪽 어디에 살았던가 보네. 그때만 해도 자갈치시장이 있는 영도다리 근처는 바닷물이 더러워서 물고기도 못 살 것 같아 보이던데!”
근상이 15년 전 12살이던 6학년 시절의 기억 속에서 영도다리를 떠올리며 웃었다.
“응, 맞아. 그런데, 너는 함안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면서 영도다리 밑이 더러운 줄은 어찌 알았어?”
상추쌈을 입에 넣던 문도가 미심쩍은 눈초리로 째려봤다.
“으응.. 초등학교 6학년 때 수학여행 가서 본 거야.”
얼렁뚱땅 대답하는 근상의 얼굴에 수학여행 때의 즐거웠던 추억보다는 뭔가 어두운 여운이 스치는 듯 보였다.
“그랬구나. 우리 집은 영도 남항초등학교 뒤쪽 산기슭에 있었는데, 동네 친구들하고 재잘거리면서 한 10분만 내려가면 바닷가였어. 2Km 바다건너에 있는 송도해수욕장보다 더 길쭉한 백사장도 있고, 물도 제법 깨끗하고 맑았지!”
문도의 눈빛이 그 옛날 어린 시절이 그리운지 초롱초롱 빛났다.
“그라모, 친구들하고 헤엄치면서 돌고래하고 조오련이하고 누가 더 빠를까, 내기도 했겠네? 히히.”
근상이가 영화 친구에 나오는 한 장면을 연상하며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그랬으면 내가 장동건이처럼 칼 마이 묵고 죽을 뻔 했겠지? 크크. 그런데.. 영화 친구는 아마 중학교 1학년 때인가 개봉됐을걸?”
농담처럼 대답하던 문도의 얼굴에 뭔가 섬뜩한 느낌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랬나? 나는 함안 촌구석에 살아서 영화 나온 줄도 몰랐고, 대학 가서야 비디오로 봤다. 문도 너는 중학교 때도 짱이었을 테니까 일찍 봤겠네. 언제 봤냐?”
시골 중고등학교에서 모범생이었던 근상이 문도를 부러운 듯 쳐다보며 싱긋 웃었다.
“음··· 사실은 내가 6학년 때 아버지가 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셨어. 어머니도 충격으로 두어 달 후에 돌아가셨고. 그 바람에 나는 중학교를 김해 고모님 집에 가서 다녔어. 나도 영화는 나중에 부산 똥통 고등학교 들어가고 나서 비디오로 봤지. 흐흐.”
웃으면서 말했지만 문도의 얼굴에는 과거의 끔찍했던 기억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다.
“아, 참. 부모님이 6학년 때 돌아가셨다고 했지! 저··· 문도야, 나도 실은 영도에 수학여행 갔던 게 아니야. 아버지 혼자 부산 가서 영도근처에 있는 직장에 다녔거든. 그랬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고로 돌아가셨어. 그래서 영도에 있는 병원응급실에 엄마랑 함께 가보게 된 거야.”
거짓말한 근상이 미안해서 문도의 눈치를 살폈다.
“응? 너네 아버지도 영도에서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무슨 사고였는데?”
문도가 깜짝 놀라 물었다.
“응, 아주 좋지 않은 사고였어. 냉동 창고 직원이었는데, 밤에 강도가 들어와서 그만······”
근상이 울상을 지으며 쓰라린 과거를 잊으려고 애썼다.
“뭐? 냉동 창고에 근무하다가 변을 당하셨다고? 저런! 병원에 갔을 때는 살아계시더나?”
냉동 창고라는 말에 더 쇼크를 받은 듯 문도가 큰 소리로 되물었다.
“응, 냉동 창고에서 가까운 곳에 마침 큰 병원이 있었어. 다행이 얼른 모셔갔던지, 인사불성이었지만 그 때까지 숨은 쉬고 있었어.”
“영도에 큰 병원은 해동병원뿐인데, 거기였니?”
문도의 눈이 점점 커지면서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는 모습이다.
“응, 맞아. 병원이 커서 그런지.. 그 때 중환자실에 다른 한 사람도 실려와 있더라. 얼핏 들으니까.. 아버지회사 사장님이라고 하는 것 같데. 그 분은 집에서 당했다던가?”
근상이 자기를 노려보는 문도의 눈길에 주춤거리며 우물쭈물 대답했다.
“그럼 혹시··· 너네 아버지 다니던 회사 이름이 한일냉동 아니었어?”
“응?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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