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 퇴각 (제5부 최종회)
크림반도 19 (퇴각)
창선이가 기습작전이 사전에 누설된 것 같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말하자, 데킨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문했다.
“우리가 올 줄 알고 있었다고요? 시내 쪽 울타리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는 말입니까?”
데킨은 자기 부대원이나 터키 동지들의 밀고 같은 건 꿈에도 생각지 않는 눈치다.
“그런 것 같습니다. 이거 이제 지상으로 비행장 경비요원들이 몰려올지도 모르겠는데요! 들어간 대원들은 폭약설치를 다 마쳤겠지요?”
괜히 말했다 싶어진 창선이 얼른 딴소리하며 주의를 돌렸다.
“한 10분은 더 있어야 끝날 것 같아요. 저 나머지 헬기도 드론이 격추시킬 수 있습니까?”
데킨은 지상으로 올 경비요원들보다는 하늘에 떠 있는 헬기 두 대가 더 부담스럽다.
“헬기가 겁먹고 더 멀리 물러서고 있네요. 가까이 다가오면 드론이 마저 작살낼 겁니다. 걱정 마세요.”
헬기 한 대가 창선의 운전병이 조종하는 드론 ROV의 레이저건을 맞고 공중에서 폭발하자, 나머지 두 대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적을 피해 뒤쪽으로 물러서며 더 높이 올라가서 빙빙 돌고만 있다.
저 위치에서는 지상의 데킨 부대원들에게 기관총 사격을 가해봤자 명중시키기에는 어림도 없어 보인다.
정지 비행 자세로 멀리서나마 지상에 서치라이트를 비춰 줘야 지상의 경비요원들도 접근해서 사격하든지 할 수 있을 것인데 저 상태로는 그것도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다고 침입한 괴한들을 잡기 위해 헬기에서 핵폭탄이 저장된 격납고를 향해 미사일을 함부로 날릴 수도 없는 노릇일 것이다.
“어, 저기 한 명, 아니 두 명이 달려오는데요! 우리 대원들 맞죠?”
밤눈 밝은 창선이 반갑게 소리쳤다.
“어디요? 아, 뒤쪽에서 먼저 끝난 모양이네. 이제 계속 올 겁니다.”
눈을 찡그리고 바라보던 데킨도 안도감을 감추지 못한다.
21개 핵폭탄 저장 격납고로 흩어져 들어갔던 18명의 대원이 시한폭탄 설치를 끝내고 차례로 달려오기 시작하는 것 같다.
철망 울타리 개구멍까지 뛰어온 첫 번째 대원이 데킨에게 거수경례를 붙이며 보고했다.
“필살! 12번, 임무 완료했습니다!”
뒤이어 도착한 두 번째 대원도
“필살! 9번, 임무 제대로 마쳤습니다.”
중간 지점의 격납고를 맡은 대원들이 먼저 도착했다.
제일 먼 18번 격납고는 너무 멀어서 아직 도착 못 하고, 앞쪽은 헬기의 기총사격을 피하느라 늦어지는 모양이다.
길게 2km나 되는 거리에 길쭉하게 지그재그로 늘어선 21개 격납고의 간격이 먼 데는 100m가 넘는 곳도 있다.
“그래, 수고했다. 빨리 출발지점으로 돌아가서 대기해라!”
데킨이 답례를 해주며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철수할 때는 한데 뭉쳐 우르르 몰려가는 것보다 각자 흩어져 가서 예정된 집결지에 모이는 것이 옳다.
“옙! 먼저 가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대장님!”
철망 개구멍을 빠져나온 두 명의 대원은 데킨에게 경례를 붙이고 뒤쪽의 첫 번째 울타리를 향해 뛰어갔다.
거기서 개구멍을 통과하면, 올 때는 낮은 포복으로 30여 분이나 걸려서 기어 왔던 1.2km의 휑한 들판을 이제는 구보로 힘차게 달려갈 것이다.
두 명이 떠난 뒤에 울타리 안쪽에서는 작업을 마친 다른 대원들이 계속 연이어 달려왔다.
각자 자기가 맡은 격납고의 번호를 댄 대원들은 임무를 완수했다는 자부심이 배인 환한 미소 띤 경례를 남기고 집결지를 향해 차례차례 달려갔다.
-따르르르륵, 따르르르륵
공중에 높이 뜬 헬기 두 대에서 제자리에 멈춰선 채 다시 지상으로 기관총을 난사했다.
공군기지의 비행장에 침투한 괴한들을 요절내겠다고 출동했는데, 그냥 공중에 떠서 기름만 소모하는 게 멋쩍었던지 관제탑의 지휘관이 기총사격이라도 가하라고 명령을 내린 모양이다.
“어? 저것들이 다시 공격할 모양이네! 드론으로 쫓아가서 날려버리면 안 되오?”
다시 걱정 어린 얼굴로 바뀐 데킨이 창선에게 공격하라고 종용했다.
“가만히 있기 민망하니까 저러는 걸 겁니다. 앞으로 다가오면 드론이 격추할 겁니다.”
창선이 히죽이 웃으며 염려 마시라고 다독였다.
비행장 울타리 주변에 과격 테러 단체인 이슬람국가(IS)의 침투에 대비해 끌어다 놓은 고사포가 띄엄띄엄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동원해서 지상경비대가 핵폭탄이 저장된 격납고 쪽으로 포탄을 날릴 수는 없을 것이다.
기껏해야 소총을 든 경비요원들이 달려오는 수밖에 없을 텐데, 발각된 괴한들을 쫓아내면 그만이지 헬기 한 대도 격추된 마당에 그렇게까지 무리한 작전을 벌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누군가의 고자질에 의해 미리 헬기로 대비하고 있었다면 괴한들이 쿠르드족 YPG부대라는 것을 알고 있을 테니까, 신원을 밝히기 위해 굳이 침투한 괴한들을 사살하거나 포로로 잡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창선의 생각과 판단대로 헬기는 제자리에서 기총사격만 갈겨댔고, 지상으로 오는 경비요원도 없는지 작업 중인 YPG부대원들의 대응 사격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그렇게 1~2분이 지나자, 제일 먼 곳에 갔던 18번 대원도 돌아왔다.
“필살! 18번, 임무 완료했습니다.”
창선은 지금까지 돌아와서 보고하는 대원들 하나하나의 표정과 몸동작을 유심히 살펴봤다.
대원 중에 혹시 배신자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먼 곳에 갔던 이 대원도 다른 대원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임무를 완수한 자긍심으로 가득 차 있다.
‘데킨의 부대원 중에는 배신자가 없다는 말인가? 아직 괴뉠과 함께 간 두 명이 남아있기는 한데······’
창선은 혹시 자기가 잘못 짚었고, 관제소에서 예상외의 감시 장치를 설치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잠시 후에 가까운 격납고에 갔던 괴뉠이 두 명의 부하와 함께 마지막으로 달려왔다.
“대원들 다 왔습니까?”
헐레벌떡 달려온 괴뉠이 작전상황부터 확인했다.
“응, 다들 집결지로 갔다. 너희들 다치지 않았냐?”
데킨이 헬기 기총사격을 받은 세 명의 안부를 물었다.
“아, 그래요? 잘됐네요. 예, 저희는 아무 이상 없습니다. 짜식들 사격 솜씨가 영 형편없던데요. 흐흐. 그런데, 창 사장님 드론이 와서 헬기를 격추한 겁니까?”
괴뉠이 놀랍고 고마운 표정을 지으며 대단하다는 듯 물었다.
“예. 혹시나 해서 가져왔는데, 다행이네요.”
창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겸손을 떨었다.
“다행의 정도가 아니지요. 우리 창 사장님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습니다. 허허.”
데킨이 창선을 대신해서 자랑을 해줬다. 사실이 그렇다.
“자, 이제 우리도 빨리 철수하지요.”
창선이 뒤쪽 울타리를 돌아보며 서둘렀다.
“그럽시다. 자, 빨리 가자.”
데킨이 부하들에게 손짓하며 뒤돌아 앞장서 뛰었다.
부상자 한 명 없이 작전을 완료하고 돌아가는 발걸음이 이렇게 가벼울 수가 없다.
다섯 사람은 나는 듯이 달려서 1.2km나 되는 어둑한 벌판을 5분도 안 돼서 주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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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버스가 안 보인다고?”
집결지에 도착한 데킨이 먼저 와서 기다리던 대원들로부터 타고 온 버스가 보이지 않는다는 보고를 받자 황망한 얼굴로 소리쳤다.
“다른 골목으로 옮겨서 숨어있는 거 아니야?”
놀란 괴뉠이 얼굴을 찌푸리며 부하들을 다그쳤다.
“아닙니다. 근처 골목은 다 뒤져봤습니다.”
부하들이 불안에 떨며 어쩔 줄 몰라 한다.
새벽 1시가 다 됐는데, 버스가 없으면 450km나 떨어진 앙카라까지 돌아갈 방법이 없다.
이곳 ‘아다나’ 시내 어디에서 노숙하다가, 아침에 시외버스 터미널에 가서 정규노선 버스를 타고 가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리 관광객 옷차림을 했지만, 20명이나 되는 대원들이 한꺼번에 몰려가면 누군가의 눈에 띄어 신고를 당하고 말 것이다.
내일이면 이 아다나 시내는 완전 비상이 걸려있을지도 모르는 거니까.
그러나 그보다도 이 터키 동지들이 도대체 어찌 된 사연이란 말인가?
혹시 이들이 바로 배신자?
그렇다면 지금 당장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이 자식들이 전화기도 꺼놨는데?”
급히 핸드폰으로 터키 동지들 번호를 눌렀던 데킨이 굳은 얼굴로 괴뉠과 창선을 번갈아 봤다.
“혹시 그 자식들이 공군기지에 밀고한 거 아닙니까?”
그제야 부대장 괴뉠이 아차 싶은 표정으로 대장인 데킨을 뚫어지라 쳐다봤다.
터키 동지들과의 연락은 전적으로 대장인 데킨이 주관하고 있었다.
“음.. 이거 심상치 않네. 창 사장 말이 맞는가 보오. 이놈들이 우리를 배신하고 공군기지에 밀고한 모양이오.”
데킨이 이제야 아까 창선이 우리가 올 줄 알고 있은 것 같다고 한 말을 기억하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예? 이런 죽일 놈의 새끼들! 동지를 배신하고 팔아먹다니! 우리가 다 죽거나 잡힐 줄 알고 아예 돌아가 버렸구먼! 이제 어쩌면 좋습니까?”
성질 급한 괴뉠이 대장한테 화풀이도 못 하고 얼굴만 벌겋게 달아올라 씩씩거렸다.
“와, 진짜 나쁜 자식들이네. 이럴 수가 있나, 이거! 우리가 살아있는 줄 알면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르잖아?”
데킨의 얼굴이 거의 울상으로 변했다.
대원들이 보는 앞이라 최대한 자제하며 위엄을 갖추려고 애쓰지만, 어떻게 해볼 묘안이 떠오르지 않는데 어쩌겠는가?
“자, 자. 다들 침착합시다. 우선은 여기서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어이, 폭스! 드론 조종기에 지도 띄우고, 고속도로에서 가까운데 찾아봐라. 거리는 여기서 20킬로 근처로!”
감을 잡은 창선이 나서서 드론을 회수하여 여행용 가방에 담아 넣고 있는 운전병을 불러 지시했다.
“옙! 알겠습니다.”
운전병이 잽싸게 드론 조종기의 지도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고속도로 근처요? 어떻게 하시려고요?”
뜻밖의 반가운 말에 데킨이 눈을 끔벅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괴뉠과 대원 18명도 지옥에서 살아나는 기대감으로 모두 창선에게 시선을 모으고 침을 꼴까닥 삼켰다.
“일단 여기서 벗어나면, 제가 우리 대원들에게 연락을 취해서 데리러 오라고 하겠습니다. 지금 삼순 항에 우리 대원들이 타고 온 랜드로버가 여러 대 있습니다. 고속도로 근처면 쉽게 찾아올 겁니다.”
내일 아침에 만나기로 한 고문도의 부대원들이 몰고 온 랜드로버가 지금 삼순 항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아, 그래요? 아이구 이제는 안심이네요. 이거 진짜 창 사장님은 우리 식구들의 은인입니다!”
데킨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진심으로 감사를 보냈다.
“알라신 만세! 창 사장님, 만세~!”
누군가가 기쁨을 참지 못하고 두 팔을 들어 환호성을 질렀다.
남창선이 이슬람교 수니파 무슬림들에게 알라신이 되어버렸다.
하기야 신이 뭐 별건가? 죽은 목숨 구해주는 사람이 신이지.
“여기, 좋은 데가 있습니다. 비행장 지나서 동쪽으로 고속도로 인터체인지에 접한 공단인데, 근처에 모스크 사원도 있는데요. 거리는 여기서 25킬로 정도밖에 안 됩니다.”
지도를 살피던 운전병이 환한 얼굴로 보고했다.
“그래? 그러면 왕복에 50킬로 잡고, 시속 150킬로로 달리면 20분. 네가 운전해서 일곱 명씩 태우고 세 번만 갔다 오면 되니까, 한 시간이면 충분하겠다. 됐다! 어떻습니까?”
계산 머리 빠른 창선이 손가락을 꼽아보지도 않고 머릿속으로 계산하며 줄줄 읊어댄다.
그 짧을 시간에 전혀 당황하지 않고 안전하게 퇴각할 방법을 치밀하게 생각해 내다니, 정말 대단한 사내다.
“아이구, 어떻고 말고가 어디 있습니까? 자, 빨리 이동합시다. 얘들아, 들었지? 총 든 대원들은 사주경계하고 격납고 순번대로 올라탄다. 실시!”
부대장 괴뉠이 나서서 대원들을 지휘했다.
“아이고, 정말 다행입니다. 창 사장님이 먼저 가십시오. 저는 맨 뒤에 가겠습니다. 허허.”
데킨도 죽다가 살아나서 얼굴을 펴며 창선에게 먼저 가라고 말했다.
“아이구, 참 대장님도! 대장님이 창 사장님하고 함께 가셔야 모스크 직원에게 뭐라고 얘기라도 할 게 아닙니까? 빨리 가십시오. 여기는 제가 남아서 뒤처리하겠습니다. 하하.”
괴뉠이 그래도 자기 대장인 데킨은 잘 챙긴다.
“그래요. 데킨 대장님은 저랑 먼저 가십시다. 나머지 대원들도 금방 다 올 건데요. 그새 무슨 일이야 있겠습니까? 하하.”
창선이 웃으며 데킨의 소매를 끌었다.
“아, 그런가? 그렇지. 삼순항에서 데리러 올 때까지 모스크에 숨어있어야 하니까, 내가 먼저 가서 얘기를 잘해야 되겠네. 허허.”
데킨이 마지못한 듯 앞장서 창선의 랜드로버로 향했다.
- 작가의말
독자님 안녕하세요?
그동안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117회를 끝으로 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이후 목표는 150회 정도이지만 개인사정으로 다음으로 미루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자 합니다.
코라나 19로 힘든 시기입니다.
모쪼록 슬기롭게 견뎌내시기를 기원합니다.
항상 건승하세요~ ^0^
2020년 10월 4일 맘세하루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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