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 쿠르디스탄
크림반도 8 (쿠르디스탄)
“자네,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전 총리, 국방부 장관, 재무장관 등 세 명의 각료들이 회의실을 나가자 ‘에르도안’ 대통령이 남아있게 한 정보부장 ‘하칸 피단’을 보며 물었다.
“그 방법밖에 달리 러시아를 막아낼 방도가 없지 않겠습니까?”
“차라리 흑해함대가 지중해로 나가서 EU 국가들과 붙도록 해협을 열어주고, 나중에 한창 만신창이가 됐을 때 해협을 봉쇄해서 보급로를 차단하는 게 낫지 않을까?”
“예, 그런 방법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러시아 발트함대가 북해로 나와서 유럽 북쪽을 공격하면 영국이나 독일은 그쪽에 전력투구해야 하니까 지중해 쪽 지원은 전혀 못 하게 될 겁니다.”
“흠.. 그리되면 지중해에서는 미 6함대와 프랑스가 흑해함대를 상대해야 되겠구먼.”
“그렇습니다. 그런데 프랑스도 수도 파리가 있는 북쪽 방어에 더 비중을 두지 않겠습니까? 남쪽에는 지중해에 미 6함대가 있으니까 예전처럼 6함대가 러시아 흑해함대를 막아줄 거로 기대하겠죠.”
“그래. 미 6함대는 항공모함도 있어서 흑해함대보다는 전력이 월등하지!”
“그렇지요. 그런데, 미 6함대는 사령관도 7년 전에는 여자였지 않습니까? 지금은 미국 본토의 지원이 끊어졌기 때문에 예전 전력의 반도 안 될 겁니다. 그런 면에서 흑해함대 전력이 기울기는 해도 맞서 싸울 수는 있다고 봐야지요.”
“하긴, 흑해함대가 시리아의 러시아 해군기지에 진을 치고 미 6함대와 장기전을 펼치면 오히려 이탈리아에 주둔한 미 6함대가 고전을 치를 수도 있겠네. 상수도 요금 낼 돈도 없는 거 아니야? 허허.”
“그렇습니다. PIGS에 들어 있는 이탈리아 경제가 별로라서 미 6함대가 제대로 소소한 지원을 받지 못할 수도 있을 겁니다.”
“흑해함대랑 시리아의 러시아 공군기지만 없으면 러시아도 우리 터키를 함부로 건들지는 못할 건데 말이야. 그지?”
에르도안이 현실로 돌아와서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지요! 그러니까 발트함대가 출동하기 전에 흑해함대를 마르마라해에 가둬놓고 영국, 독일, 프랑스 등 나토 공군을 끌어들여서 폭격으로 완전히 괴멸시켜야 합니다. 그러면서 아예 시리아에 있는 러시아 공군기지도 공습해서 완전히 초토화해버리면 끝나는 거죠.”
정보부장 피단이 신나서 완전 판타지 소설을 쓴다.
러시아 흑해함대만 사라지면 얼추 터키 땅덩어리 면적만 한 북쪽의 흑해는 자기들 앞마당이나 마찬가지가 되는 것이다.
터키 석유공사는 과거에 10년 동안 브라질 정부와 공동으로 흑해의 석유와 천연가스 탐사작업을 벌이며 50억 달러(5조 원) 이상을 투자했다.
지금은 상용화를 위한 시추작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시추작업 비용은 10억 달러 정도로 예상한다.
“그럼 이제 흑해에서 러시아 눈치 안 보고 우리 맘대로 시추작업을 해도 되겠구먼. 석유든 천연가스든 펑펑 쏟아져 나와야 할 텐데. 그러겠지?”
터키는 원유 및 천연가스를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한다.
2015년에 총 2500만 톤의 원유를 수입했는데, 주로 이라크(45%) 및 이란(22%)으로부터 공급받았다.
터키는 천연가스도 소비량의 99%를 유럽연합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가스파이프를 거쳐 러시아로부터 수입한다.
“적어도 IS나 쿠르드족한테서 석유 사 오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되겠죠?”
피단이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 말이야. 그때 러시아가 동영상 공개하면서 국제적으로 망신시키는데, 아니라고 잡아떼느라 진땀 좀 흘렸지. 흐흐.”
에르도안도 민망한지 딴 데를 흘깃 쳐다봤다.
2015년 11월 하순에 터키의 전투기가 러시아의 전폭기를 격추한 사건이 발생했다.
시리아 내의 반정부군 격퇴에 동참하고 있던 러시아 공군이 터키와 접경한 시리아 북부의 IS가 장악하고 있는 지역을 폭격하던 중이었다.
실제로는 극단주의 무장조직인 이슬람국가(IS)가 석유를 터키로 밀거래하는 루트를 타격했다.
러시아의 항의에 대해 터키는, 그동안 IS 격퇴를 주장한 러시아가 IS 근거지보다 오히려 시리아 ‘알아사드’ 정권에 맞서 싸우는 자기들 동족인 투르크멘족 반군 등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며 시리아 아사드 정권을 지원했기 때문에 취한 조치라며 반박했다.
그러자 며칠 뒤 러시아가 동영상을 공개하며, 터키가 IS로부터 원유를 밀반입하는 장면이라고 폭로했다.
동영상에는 원유를 수송하는 유조차들이 일렬로 빼곡히 들어차 있고 급유 시설 안에는 터키 국기가 걸려있었다.
러시아 국방부는 IS가 유조차를 몰고 시리아와 이라크 내의 IS 점령지에서 터키로 원유를 수송하는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그와 함께 IS의 점령지에서 터키의 지중해 연안 항구 메르신으로 가는 서부 노선과, 터키 동북부 바트만으로 이어지는 북부 노선, 터키 동쪽 쉬르낙 주 지즈레로 향하는 동부 노선 등, 원유 수송 밀거래 루트 3곳도 자세히 지목했다.
실제로 IS는 자기들 수중에 들어있던 시리아 최고 석유산지 ‘데이르에즈조르’에서 하루 평균 3만 배럴을 생산해서 이라크 북쪽 쿠르드족 장악지역인 ‘자코’까지 차량으로 이동했다.
‘자코’에서 ‘엉클 파리드’라고 불리는 터키의 밀매업자가 배럴당 15~18달러에 현찰로 사들였는데, 국제 유가가 배럴당 50달러 정도 할 때이다.
이라크 쿠르드 지역에서 생산된 석유로 둔갑한 IS 원유는 터키에서 이스라엘로 수출됐는데, 이스라엘 수입 석유 전체의 75%나 차지했다.
“러시아가 무력해지면 시리아는 더 이상 수호이 타고 우리 국경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못할 겁니다. 이라크하고 잘 얘기해서, 쿠르디스탄 지역에서 나오는 석유의 절반은 우리가 계속 싼 값에 가져와야 되겠지요?”
이라크 동북부에 있는 ‘쿠르디스탄’은 쿠르드족의 국가 설립 예정지 명칭인데, 유엔에서도 그 땅을 인정하는 곳이다.
현재 전 세계에 흩어져있는 3천3백만 명의 쿠르드족 중 1천만 명 가까이 거주하고 있으며, 대통령도 있고 100석이 넘는 의회도 있다.
민병대 조직에 뿌리를 둔 쿠르드 보안군 ‘페쉬메르가’는 18개 여단에 20만 명의 대병력에 이르고 있다.
이들이 보유한 전투 차량은 중국제 낡은 69식 전차와 장갑차를 포함하여 2,000여 대며 수송 헬기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쿠르디스탄’의 군대인 ‘페쉬메르가’는 대통령이 소속된 집권당인 이라크계 쿠르드민주당(KDP) 편과 이라크 정부 측에 붙어있는 반대 세력인 이란계 쿠르드애국동맹(PUK) 편으로 나뉘어 서로 대립하고 있다.
이들 2개 정당에 소속된 페쉬메르가 대원들은 1990년대에 서로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특히 2003년 12월 14일 ‘잘랄 탈라바니’가 이끌던 이란계 쿠르드애국동맹(PUK)은 현상금 사냥꾼에 의해 지하에 감금되어있던 전 이라크 대통령 ‘사담 후세인’을 인도하는 조건으로 미국에 2,500만 불(270억 원)을 요구했다.
‘후세인’은 그날 저녁 8시에 고향 ‘티크리트’의 ‘아두아’ 마을 한 농가에 구축된 작은 참호 속에서 체포돼 바그다드로 압송됐고, PUK의 지도자 ‘잘랄 탈라바니’는 그 후에 이라크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이런 짓거리를 벌이며 사분오열되어있는, 전 세계에 3천3백만 명이나 되는, 쿠르드족은 솔직히 말해 아무리 관련 국가연합이 ‘쿠르디스탄’이라는 국토를 보장해 줘도, 터키의 방해가 있는 한 독립된 국가를 갖기는 어려워 보인다.
터키는 그동안 유럽연합(EU)에 가입하기 위해서 시리아 깊숙이 자리 잡은 과격 테러단체 IS(이슬람국가)의 공격에 억지로 참여해왔다.
그러나 터키는 시리아 온건 반정부군인 자유시리아군(FSA)을 앞장세워, IS를 공격하는 대신, 시리아 쿠르드 정치 세력인 민주동맹당(PYD)과 그에 소속된 인민수비대(YPG)를 공격했다.
FSA는 귀순한 시리아 병사와 지원병으로 구성된 시리아의 핵심반군 조직으로, 병력이 5만 명 정도 된다.
공식적인 이유는 PYD와 YPG가 터키의 쿠르드 반군인 쿠르드노동자당(PKK)과 연계됐다는 것이다.
PKK는 쿠르디스탄에 쿠르드족의 사회주의 국가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해서 1970년대 세워진 과격한 무장단체로, ‘압둘라 와잘란’이 이끌었으며, 1984년 이후 터키와의 무장투쟁으로 약 4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2015년 PKK와 터키 정부의 평화협상이 결렬되자 터키군은 PKK 토벌 작전을 재개했고, PKK도 악랄한 테러를 다시 전개했는데, 2018년 8월에는 폭탄 공격으로 터키 군인의 아내와 젖먹이가 숨지는 사건이 발생해 터키 국민의 분노에 찬 여론이 비등했다.
그러나 터키의 진짜 속셈은 바로 이들 쿠르드 세력이 시리아에서 어렵게 IS를 물리치고 탈환한 지역에 있는 유전을 빼앗아 가로채기 위함이다.
독립된 국가 한번 세워보겠다고 피 흘려 IS와 싸운 쿠르드족의 전과를,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은 사악한 술수로, 한때는 8만 명에 이르렀던 시리아민주군 SDF를 사분오열로 약하게 분산시키면서, 승냥이처럼 치졸하게 가로채려는 것이다.
“그럼! 이라크하고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쿠르드족이 쿠르디스탄에 독립국을 못 세우게 해야 돼. 그것들 나라 세우면 우리가 아주 골치 아파져!”
터키 인구 8천만 명 중에 20%가 쿠르드인이다.
이슬람 수니파 무슬림이 98%라서 그 들이 종교적으로 터키인과 동화되어 있기는 하지만, 인구의 7%가량이 사용하는 쿠르드어는 시골 및 동부와 남부의 이주민들 사이에서 폭넓게 쓰이고 있다.
작년, 2018년 6월 24일 대통령선거와 함께 치른 총선에서 쿠르드계 소수당인 인민민주당(HDP)이 10.94%를 획득해 원내 진출이 가능해졌다.
터키 의회는 정당별 비례대표로 구성되며, 소수정당의 난립을 방지하기 위해 10% 이상 득표한 정당에서만 원내에 진출할 수 있게 되어있다.
에르도안이 창당했던 정의개발당(AKP)이 42.68%였는데, 2위인 민족주의행동당의 11.28%에 불과 0.34%밖에 차이 안 나는 3위의 성적이었다.
그러니 그동안 쿠르드족을 핍박해왔던 ‘에르도안’으로서는 쿠르드족 국가 ‘쿠르디스탄’의 탄생에 계속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게 생겼다.
“러시아와 유럽이 제대로 전쟁에 휘말려 들면 러시아에 빌붙어있던 이란을 사우디아라비아가 본격적으로 공격하지 않겠습니까?”
“두 나라가 직접 붙지는 않을 거고 예멘의 대리전이 더 큰 전쟁으로 확전 되겠지. 우리는 이란과 사우디 중에 어느 한쪽으로 편중돼서 지지해서는 안 되고, 사우디에 무기 팔아서 그 돈으로 이란에서 원유 사 오면 되는 거야. 흐흐.”
“설마 러시아가 우리 본토에 미사일 공격을 해오지는 않겠지요?”
피단의 입꼬리가 슬쩍 말려 올라갔다.
“우리한테 핵폭탄이 있는 줄 알면서 푸틴이 감히 그러겠어? 미치기 전에는 어림도 없는 짓이지! 흐흐.”
에르도안은 양쪽 입꼬리가 다 올라간다.
“그렇겠죠? 역시 쿠데타를 일으키기 잘했습니다. 각하의 혜안을 누가 감히 따르겠습니까? 정말 존경합니다, 각하!”
피단이 앉은 자세에서 몸통을 꺾어 존중을 표했다.
“이봐, 말조심해! 벽에도 귀가 있다잖아? 이건 자네와 나, 둘만의 극비야. 조심해!”
“예, 각하! 무덤까지 안고 가겠습니다. 염려 마십시오!”
터키에 핵폭탄이 있다니?
그래서 러시아가 감히 터키 본토를 공격하지 못할 거라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그리고 쿠데타를 일으키기 잘했다니?
도대체 두 사람 사이에 아무도 모르는 무슨 비밀이 있기에 저러지?
- 작가의말
독자님 안녕하세요?
제 개인사정으로 사나흘 어딜 좀 다녀옵니다.
글은 예약연재라서 월, 수, 금 오전 8시15분에 올라올 겁니다.
다만 댓글에 대한 답글을 제 때 쓰지 못함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코로나 지침 잘 따르시고 건강한 나날 보내세요~ ^0^
Comment '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