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비밀 아지트 동굴
카스피 해전 7 (비밀 아지트 동굴)
“그, 그래요? 알겠소.”
창선이 더 이상의 말대꾸를 하지 못했다.
러시아 특수부대원 정도는 되는 것으로 보이는 이 괴한들이 자기들을 다짜고짜 납치해갈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들을 로보캅 부대를 습격한 용의자로 보는 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기들을 어딘가로 데려가고, 거기로 이들의 상위부대 사람이 내려와 취조할 것이라는 말인 것 같다.
조사 결과 혐의가 없으면 살려 보내줄 거라고는 했지만, 그럴 희망은 없어 보인다. 자기들 소행이 금방 드러날 것이니까.
창선이 두 분대장에게 카누에 올라타자는 눈짓을 했는데, 잔뜩 웅크리고 있던 분대장들은 약간 망설이는 기색이다.
그들도 괴한들 조장의 얘기를 듣고 로보캅 부대 습격 혐의자로 끌려간다는 사실은 캐치했다.
가서 취조당하면 결과는 뻔한데, 고문받다가 죽느니 차라리 지금 여기서 한판 붙어버리자는 표정들이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조사해보고 풀어준다잖아? 어서 올라타!”
창선이 도리질을 하며 발끝으로 땅바닥을 쿡쿡 찍었다.
나한테 생각이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하라는 뜻이다.
여섯 명이 올라탄 카누는 곧바로 강 가운데로 들어가 물살을 타고 하류를 향해 흘러가기 시작했다.
카누 앞뒤에 조원1과 조원2가 노를 쥐고 앉았고, 앞쪽부터 1분장, 2분장, 창선과 조장의 순서로 앞을 보고 앉아있다.
‘저기서 붙었으면 쟤들 둘은 어찌 됐을지 몰라도 나는 살아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부대의 궁극 목표는 러시아와 전쟁을 벌이는 것이다. 이까짓 놈들 셋 죽여봤자 뭐해? 이놈들을 따라가면 최소한 영관급 러시아 장교는 만나게 될 것 아닌가? 목숨 걸고 붙어도 그때 가서 붙는 게 옳다.’
이것이 창선이 도리질을 한 뜻이다.
물론 이 괴한들의 행동거지로 보아 러시아 특수부대 스페츠나츠 요원들인 것 같아서 솔직히 맨손으로 무뎃뽀로 덤벼들 수도 없기는 했다.
공격하더라도 상대방을 안심시켜서 경계심을 풀게 하고 승산이 확실할 때 시도해야 옳다.
‘그런데, 우리 부대 소행인 줄을 어찌 알았지?’
창선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이 궁금하다.
투르크메니스탄 세르다르에 주둔한 러시아 로보캅 부대를 새벽에 습격했을 때 생존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함께 간 쿠르드족 민병대 YPG 대원들이 대부분 그들과 앙숙인 튀르크족으로 구성된 러시아 병사들을 부상자도 일일이 확인해서 사살해버린 것이다.
‘아, 맞다! CCTV!’
창선이 가슴을 툭 치며 통한의 한숨을 내쉬었다.
반짝 떠오르는 게 부대 내부의 생존자 수색에만 열중했지 어딘가에 설치되어있었을지도 모를 CCTV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이 미치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CCTV에 찍혔다면 습격하다 망루에서 내려 비춘 서치라이트 불빛에 드러난 자기 대원들과 YPG 대원들 40여 명의 모습이 전부 담겨있을 것이다.
더구나 창선이 직접 K2 소총으로 아킨페프 중위와 미란추크 소위의 얼굴을 가격해 사살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남아있을 것이다.
‘아, 왜 CCTV 생각을 못 했지?’
지금까지는 담담했던 창선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만약 상급 부대에서 내려온 조사 장교가 그 CCTV 화면을 틀어놓고 창선을 면담한다면 살아남기는 틀려먹었다 싶다.
어디로 끌려가서 언제 조사 장교를 만날지는 모르지만, 그 전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놈들에게서 벗어나야만 한다.
창선이 고민하며 머리를 흔들고 있는데, 목적지에 다 왔는지 카누가 왼쪽 강변으로 서서히 접근했다.
뱀처럼 꾸불꾸불한 계곡 사이를 흘러온 강물이라 거리 감각은 없지만 느낌에 한 10km 정도는 내려온 것 같다.
그 정도 지점이라면 우측은 이란 땅이고 좌측은 아제르바이잔의 ‘나히체반’ 자치공화국 영토이다.
강폭이 수십 미터로 좁아진 ‘아라스’ 강 양쪽 강변은 깎아지른 듯한 바위 절벽으로 병풍을 둘러쳤다.
외지고 험준한 이런 곳에 일반 사람이 접근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빠른 물살을 헤치고 솜씨 있게 노를 저은 조원1과 조원2는 카누를 왼편 절벽 아래 커다란 동굴 속으로 몰고 들어갔다.
자연적으로 생긴 동굴의 안쪽은 꽤 너르고 수십 미터를 들어가자 사람 수십 명은 올라갈 수 있을 만한 널찍한 바위 공간이 나타났다.
조장이 무선 스위치를 작동시켰는지 카누가 바위 공간으로 접근하자 깜깜하던 동굴 속이 약간 환하게 밝아졌다.
조원1이 물결도 잔잔해진 바위 공간 끝에 카누를 접안시키고 쇠말뚝에 달린 쇠사슬로 카누의 앞머리를 걸어 매었다.
쇠말뚝이 반짝거리는 거로 보아 이 녀석들이 이 동굴에 자리 잡은 지는 얼마 되지 않는 것 같다.
바위 공간으로 올라간 조원1의 손짓을 따라 창선의 대원들은 차례로 편편한 바위 공간 위로 올라섰다.
바위 공간은 장기간 거주할 방처럼 나름대로 구획이 구분되어 각종 짐이 군대식으로 질서 정연하게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카누에서 올라간 바위 공간 앞쪽 오른편은 부식품 박스가 쌓여있는 거로 보아 주방 같고, 그 뒤 안쪽 공간은 침낭이 놓여있는 침실과 휴식 공간으로 보인다.
침실의 왼편 바위 공간 안쪽은 각종 전투 장비와 총기류가 바닥에 가지런히 놓여있는데, 모두 형태들이 처음 보는 생소한 구조로 되어있다.
짐작하건대 러시아 해군 특수부대가 사용하는 수중용 총기류인 것 같다.
그 앞쪽, 바위 공간 앞쪽 왼편에 송신출력이 높아 보이는 무선통신장비가 큼직한 배터리들과 함께 놓여있다.
저 무선장치로 어디 먼 곳에 있는 본부와 연락을 취하는 모양이다.
무선장치의 뒤쪽에서 손가락 굵기의 동축케이블이 나와 바닷물 속으로 들어간 게 보인다.
동굴 밖 절벽 위로 끌고 가서 안테나를 눈에 안 띄게 설치했을 것이다.
자연동굴을 이용해서 정말 요새 같은 비밀 아지트를 멋지게 만들었다 싶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얘들 몸수색하고 침실 구석에 앉혀놔.”
조장이 부하들에게 몇 마디 지시를 한 다음에 통신장비 앞으로 걸어갔다.
조원1과 조원2는 창선과 분대장들을 팔 벌려 서 있게 하고 손바닥으로 다리와 옆구리 등을 훑으며 총기가 있는지 확인했다.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자, 세 사람을 침실 벽 쪽으로 데려가 앉아 있게 했다.
손목이나 발목을 묶지 않고 자유롭게 둠으로써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 창선네가 오히려 저항하거나 도망칠 엄두를 못 내게 하는 묘한 위협이 되었다.
통신장비 앞에 앉은 조장이 번역기를 끄더니 수경 달린 수영 모자를 벗었다.
숱이 긴 장교 머리에 헤드폰을 뒤집어쓰더니 어딘가로 무선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창선네가 앉은 곳에서 오륙 미터가 넘어 번역기를 끄지 않아도 거기까지는 잘 들리지 않을 것 같다.
그사이 수영 모자를 벗은 조원들이 작은 생수병을 가져와 창선네에게 하나씩 나눠줬다.
“아이구, 고맙소.”
불빛 아래에서 스포츠머리에 위장 크림 바른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니 나이들은 젊어 20대 후반 정도로밖에 안 보인다.
아마도 나이 들어 보이는 조장은 장교이고 조원들은 부사관인 것 같다.
술 마시다 잡혀 오면서 죽는 줄 알고 불안감에 떠느라 입술이 바짝 말라 있다.
생명수 같은 생수를 벌컥벌컥 들입다 마시고 입술도 축이니까, 긴장감이 풀리고 숨통이 트여 조금은 살 것 같다.
조원 두 명은 무선통화 중인 조장 앞에 생수병을 놓아두고 자기들은 조장의 등 쪽, 총기류 보관장소 앞에 편히쉬어 자세로 나란히 앉아 생수를 조금씩 꼴깍거리며 마셨다.
그러고는 창선네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침묵하며 단검의 칼날을 손끝으로 다듬고 있다.
검은색과 녹색의 위장크림으로 얼룩진 그 들의 얼굴이 저승사자처럼 무섭게 보인다.
그들의 모습을 유심히 보고 있던 창선이 나직한 목소리로 좌우에 앉은 분대장들에게 자연스럽게 말했다.
“라어들! 기하말 로꾸거.”
거꾸로 말하기로, 예전에 창원파 조폭 시절에 상대방이 못 알아듣게 대원들끼리 가끔 써먹던 수법이다.
그러자 분대장들이 깜짝 놀라 대장을 쳐다봤다.
몇 미터 떨어져 앉아있는 조원들도 고개를 돌리고 창선을 바라봤다.
그러자 창선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아무것도 아닌 척 다음 말을 이었다.
“테한 들놈저. 라달켜시 경구총, 해말.”
조원들이 자기들 귀를 손바닥으로 가리고 누르며 귓속의 이어피스에서 나오는 번역된 소리를 귀담아들으려고 애쓴다.
그러나 잘 알아듣지 못하겠는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1분장이
“요왜?”
라며 미소로 답했다.
그러자 창선이
“고들만 게하랑자, 게풀 장긴. 해!”
라며 자기의 혁대 끝을 만지작거렸다.
뭔가 생각이 있으니까 시키는 대로 하라는 뜻이다.
조원들이 허리춤에 찬 번역기를 툭툭 쳐본다.
“다슴게알!”
1분장이 알아들었다고 답하고 2분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겨맡 게내!”
하며 창선이 입을 꾹 다물고 등을 벽에 기댔다.
할 말 끝났으니 알아서들 요령껏 해보라는 뜻이다.
러시아제 고급 번역기가 버그 나서 고생 좀 했지 싶다.
“저기요, 아저씨!”
1분장이 능청스럽게 손을 들고 조원들을 불렀다.
조원1이 무슨 일이냐는 눈으로 바라봤다.
이제는 번역기가 제대로 작동하는 모양이다.
“저 총이 처음 보는데 참 신기하게 생겨서 그러는데, 저거 총알 나오는 총 맞아요?”
1분장이 무전 통화 중인 조장이 옆에 놓아둔 권총을 손으로 가리키며 순진한 표정을 지었다.
조장의 권총은 유난히 가늘어 보이는 총구 네 개가 아래위로 2층을 이루며 포개져 있다.
이것은 4연장 총열 방식의 수중 권총 SPP-1M으로, 러시아 해군 특수부대 스페츠나츠가 사용한다.
그러자 조원1이 싱긋 웃으며 촌놈 쳐다보는 표정만 짓고 아무 대답을 안 한다.
“저거 혹시 총알 안 나오고 다트 화살 나오는 거 아니에요?”
1분장이 웃으며 오른손 검지와 중지 손가락 두 개를 포개서 총을 만들고, 왼손 검지와 중지를 손가락 총구 끝에 대었다가 앞으로 날려 보내며, 다트 화살이 날아가는 모양을 연출했다.
그러자 조원2가 피식 웃으며 뒤돌아 앉더니 총기류 속에서 뭔가를 집어 들었다.
창선네를 향해 슬쩍 보여주는데, 꼭 다트 화살처럼 길쭉하게 생긴 총알이다.
송곳처럼 생긴 앞쪽은 가늘고 길쭉한데 탄약이 들어 있는 뒤쪽의 탄피는 일반 총알의 탄피처럼 굵게 생겼다.
권총의 구경은 4.5mm이고 탄자의 길이는 11.5cm이며 그중 두툼한 탄피 부분의 길이가 3분의 1 정도를 차지한다.
“야~ 총알이 희한하게 생겼네! 그거 물속에서 쏘는 권총 맞아요?”
1분장이 일부러 과장해서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계속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조원2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줬다.
상대방이 신기해하니까 역시 자랑스러워지는 모양이다.
창선이가 바라는 대로 1분장의 연기가 수준급을 이룬다.
“그러면 저 권총은 지상에서는 못 쓰는 거 맞지요?”
이때다 싶은지 1분장이, 저거 지금 우리한테 쏴도 발사 안 되는 거 아니냐고 꼬집었다.
그러자 조원2의 얼굴이 난색을 이루며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하는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바뀌었다.
제대로 설명을 하자면 당장 시범 사격을 해서 보여주면 좋겠는데, 조장이 아닌 자기가 함부로 그럴 수는 없으니까 조장이 통화를 끝내면 얘기해볼까 말까 생각 중인 것 같다.
SPP-1M 수중 권총은 지상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데, 치사 거리는 공기 중에서는 20m이다.
수중에서는 수심에 따라서 치사 거리가 다르며, 수심 5m에서는 17m이고 수심 10m에서는 14m, 수심 20m에서는 11m밖에 안 된다.
총알의 무게는 13.2g이다.
잠시 망설이던 조원2가 조장의 뒤통수를 힐끔 쳐다보더니 얼른 총기류 중에서 제법 큰 총을 하나 골라 양손으로 받쳐 들고 자랑스럽게 창선네 쪽으로 구경시켜줬다.
역시 나이가 젊어서 그런지 아무리 힘든 훈련과정을 거쳐 막강한 스페츠나츠가 되었어도 인간의 순진한 구석은 남아있기 마련이다.
얼핏 보니까 개머리판도 달린 작은 소총인데, 아주 납작하고 희한하게 생겼다.
탄환이 길쭉하니까 그것을 여러 개 넣어둔 탄창도 널찍한 폭으로 부챗살처럼 앞으로 구부러져 매우 특이한 모습을 보인다.
이것은 수중 돌격소총 APS이며 구소련 특수전 부대의 잠수부용으로 특화된 장비이다.
지상의 돌격소총과 마찬가지로 자동 반자동 선택 사격이 가능하고 탄약도 수중 권총 SPP-1M과 마찬가지로 화약의 힘으로 발사되는 긴 다트 형태인데, 구경을 4.5mm에서 5.66mm로 확장해서 전반적으로 대형화되었다.
이로 인해 수심 5m에서는 30m, 수심 40m에서도 11m의 유효사거리를 발휘한다.
지상에서는 물의 저항이 없어 사거리가 더 늘어나지만, 강선이 없는 총열에서 발사되므로 유효사거리는 100m에 불과하다.
창선네가 놀라는 척 입을 떡 벌리고 눈을 끔벅거려 주고 있는데,
그때 무전기 앞에 앉아있던 조장이 무선통화를 다 마쳤는지 헤드폰을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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