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사막의 여우 2
사막의 여우 2
“예? 지금이 떼돈 벌기에 좋은 기회라고요? 무슨······”
남창선이 전한 신창원 회장님의 “지금이 떼돈 벌기에 아주 좋은 기회”라는 말에 공장장 한충석이 이해 안 된다는 표정으로 창선을 빤히 쳐다봤다.
“무슨 뜻이냐고요? 전쟁이 터지면 군수물자 수요는 더 늘어날 것 아닙니까?”
터키의 흑표전차 엔진용 실린더를 밀수출하고 있으니 중동에서 시아파와 수니파 사이에 전쟁이 터지면 자기들 대도정밀은 대박이 날 거라는 말이다.
“그건 그렇지만, 전쟁이 터지면 우리도 여기 이란에서 사업을 더 이상 못하고 한국으로 철수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본국으로 철수를 해요? 한국이라고 전쟁이 안 터집니까? 지금쯤 아마 일본하고 일전 붙고 있을지도 모를걸요? 하하.”
“예? 한국이 일본하고 붙어요? 북한하고 붙는 게 아니고요?”
“고 사장이 전화도 안 해준 모양이네요? 전쟁이 터지면 주 적국이 북한이 아니고 일본이랍니다!”
“그래요? 그럼 우리가 북한하고 손잡고 일본을 치기라도 한다는 말입니까?”
“맞아요! 유진중 사령관님이 국방부 장관 만나고 와서 분명히 그렇게 말했대요. 엊그제 회장님한테 물건 어찌 되는지 확인 전화했을 때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아, 그랬어요? 음.. 그래서 사장님이 아직 안 돌아오시는 모양이네요. 어떻게 되는 건지 전화 한번 넣어봐야 되겠군요.”
“괜히 전화하면 걱정하지 않겠어요? 여기는 아무 문제없이 잘 돌아가는데, 뭐 하러 전화해요? 흐흐.”
“아, 예. 그렇기는 하지만··· 한국 내 사정이 어찌 돌아가는지 궁금하기도 해서요.”
“한 공장장님 가족들도 아네이튬 섬에 가 계시지 않나요? 그런데 뭘 걱정해요?”
남태평양 바네이투 공화국의 아네이튬 섬에는 ‘구국대열’ 대원 300명의 가족과 친인척 1,200여 명이 이주해서 공동체 마을을 이루고 있다.
“아, 예. 그렇기는 하지만 한국과 일본이 전쟁을 붙는다는데, 걱정은 되지요. 북한까지 가세하는데, 크게 터질 거 아닙니까? 우리 사장님도 그 전투에 참전하실 건지 어떤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일본하고 전쟁이 제대로 터지면 고 사장은 이쪽으로 당장 달려올 겁니다. 걱정하지 말고 이 공장이나 잘 지키고, 훈제칠면조나 제대로 만들고 있으면 되요! 그게 우리 회장님이 바라시는 거니까요.”
“아, 예. 그렇기는 하지요. 그러면 터키 쪽에 줄 물건도 계속 들여와야 되겠네요?”
“당연히 그렇죠! 아마 수량이 급격히 늘어나지 싶소. 그러니 고 사장도 전투 요원 데리고 이쪽으로 와서 지원해야 되지 않겠어요? 나 혼자서 감당하기에 역부족일지도 모르니까. 어, 흠.”
남창선이 헛기침을 하며 이제는 고문도 사장도 밀수품 운송에 힘을 좀 보태라는 요구를 내비쳤다.
“예, 그러네요. 가만있자, 이거 8시가 다 됐는데, 칠면조 수송팀이 아직 도착을 안 한 것 같네요? 경비실에 확인해봐야 되겠습니다.”
공장장실 벽시계를 본 한충석이 깜짝 놀라 응접 테이블 위의 전화기를 집으려 했다.
훈제칠면조 공장인 ‘창원-터키(Chang Won-Turkey)’의 칠면조 생닭은 하루에 1천 마리씩 필요한데, 이란 북쪽 ‘투르크메니스탄’ 너머에 있는 ‘우즈베키스탄’의 칠면조 사육농장 여러 군데를 돌면서 구입하고 수송해 온다.
남창선의 전투부대인 사막의 여우 페넥 폭스(Fennec-Fox) 제3분대 9명 중의 6명이 트럭 3대를 타고 매일 두 나라의 국경을 넘어서 운송해오고 있다.
나머지 3명은 하루 동안 푹 쉬고 나서 다른 3명과 교대하여 무박 2일의 운송 업무에 다시 투입된다.
“그러네. 이 자식들이 오늘은 왜 늦지?”
남창선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창선의 디지털 무늬 전투복 가슴 포켓 위에 페넥 폭스 부대 표시인 ‘Fen-Fox’ 로고가 자랑스럽게 붙어있다.
우즈베키스탄에 칠면조 생닭 사러 가는 운송팀은 낮 12시에 공장을 출발해서 수천 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달려 20시간만인 다음 날 아침 8시까지 공장 정문에 도착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새벽같이 출발해서 통상아침 8시 정각 이전에 공장 정문에 도착한다.
지금까지 한 번도 그 시간을 어긴 적이 없다.
“경비실? 나 공장장이요. 우즈베크에 간 수송팀 들어왔어요?”
한충석이 남창선도 들을 수 있게 일부러 스피커폰 기능으로 눌러 통화를 했다.
-“예, 공장장님. 아직 수송팀이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요? 8시 정각 지나면 수송팀에 핸드폰 걸어 보도록 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전화 걸어 확인하고 결과 보고 드리겠습니다.”
핸드폰을 가져갔어도 멀리 국경 너머에 있으면 거의 터지지 않는다.
정문 경비실과 공장 울타리 경비초소 두 군데에 경비 서는 인원도 남창선의 페넥 폭스 부대의 제4분대 대원 9명이 3명씩 3교대로 8시간씩 근무서고 있다.
교대 시간은 아침 09시와 저녁 17시, 그리고 새벽 01시이다.
처음, 이 경비분대가 고문도 사장에게 전속되어 공장을 지키러 왔을 때, 남창선은 자기 대원들이 경비를 제대로 서고 있는지 시험을 해본 적이 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밤 12시에 다른 대원 5명을 보내서 야간침투를 시켰던 것이다.
그때 마침 고문도가 사업상 업무로 터키에 출장 가고 없어서 그 틈을 이용해 남창선이 제 딴에는 경비근무 확인 겸, 고문도 밑에 보냈어도 네 놈들은 내 부하라는 인식을 확실하게 심어주고 싶어서였다.
경비근무 조 3명이 정문 경비실과 공장 뒤편 망루 초소 두 군데에 나눠서 경비를 서고 있는데, 철조망을 뚫고 공장 안으로 몰래 들어가서 경비실에서 70m 거리에 있는 도축장 안에 시한폭탄 연막탄을 설치하게 한 것이다.
예비군훈련 때 공수부대가 침투조로 들어오고 예비군은 방어 조로 경계하는 모의 침투훈련을 모방한 것이었다.
그런데 경비하던 대원들은 전혀 사전에 통보받지 않은 모의전투여서 하마터면 침투조가 경비 조의 실탄사격을 맞고 큰 사고를 당할뻔한 사태가 벌어졌었다.
그날따라 마침 밤늦게 출장에서 돌아온 고문도가 경비원들 근무태세 점검도 하고 격려도 해줄 요량으로 숙소인 아파트에서 멀지 않은 공장으로 걸어가다가 공장 철조망 울타리를 뚫고 침입하는 괴한들을 발견했던 것이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핸드폰도 안 가지고 나섰던 문도는 괴한들이 공장에 돈이라도 있는 줄 알고 들어온 강도로 오해하고 혹시 총기를 소지했을지도 몰라서 몹시 당황했다.
정문경비실은 100m도 더 떨어져 있어 경고를 보낼 방법도 없었는데, 마침 괴한들이 타고 온 SUV 차량에 키를 꽂아 놓은 채 길가에 세워두고 있었다.
아마도 들키거나 했을 때 재빨리 도망치기 위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차 안으로 숨어들어 간 문도는 차 문을 잠그고 드러누워 비상등을 켜서 깜박거리게 한 채 클랙슨을 빵빵 울려서 정문 경비실에 경고를 보냈다.
새벽 1시가 거의 다 되어가는 시간이라서 교대근무 할 다른 경비원 3명이 빨리 오기만 고대하고 있었다.
그래서 금방 눈치챈 정문경비실 대원이 철조망 둘레에 설치된 서치라이트를 켜서 돌리고, 비상 사이렌을 울려 뒤쪽 망루에 있던 두 명이 소총을 들고 달려왔다.
정문경비실 대원은 도축장 쪽으로 위협 사격을 가한 다음 확성기로, 손들고 나오지 않으면 사격하겠다는 경고를 보내고 열까지 카운트다운을 했는데,
파이브, 포, 쓰리에 이르렀을 때 정문 앞에 남창선이 나타나 호루라기를 불며 괴한들이 같은 부대원임을 밝혔던 것이다.
남창선이 조금만 늦게 나타났어도 사상자가 날 뻔했던 아주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훈련이었다.
남창선은 자기 페넥 폭스 부대 대원들을 그런 식으로 담금질해서 키웠다.
벽시계가 8시를 넘어가고도 몇 분이 더 지나자 초조하게 경비실 보고를 기다리던 한충석이 다시 전화기에 손을 댔다.
그때,
-삘리리리, 삘리리리
전화기 벨 소리가 울렸다.
“아, 나요. 연락해 봤어요?”
스피커폰 모드에서 한충석이 염려와 기대가 어린 얼굴로 물었다.
그런데,
-“거기, 창원 터키 공장 맞소?”
하는 투박한 아랍어 사내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울려 나왔다.
공장 외부에서 이란 사람이 건 전화를 받은 것이다.
“예. 창원 터키 맞습니다. 어딥니까?”
충석이 어눌한 아랍어로 천천히 응답하며 얼른 마주 앉은 남창선의 허리춤을 가리켰다.
그러자 창선이 재빨리 허리춤 혁대에 부착된 아랍어 자동번역기의 버튼을 눌렀다.
그러면서 귀에 꽂고 있던 이어피스를 얼른 뽑아서 충석에게 건네줄 준비를 한다.
이 이어피스는 측음을 이용하여 마이크로도 사용할 수 있는 송수신 겸용 제품이다.
사람이 말을 하면 성대의 울림이 아주 작은 소리로 그 사람의 귀에 되돌아와 전달된다.
그래야 그 사람은 자기의 발성 음량과 높낮이를 조절하면서 제대로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측음(side tone)이라고 하며, 전화기의 송수화기도 송신 음량을 일정량 감쇠시키고 수화기에서 들리게 만들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것을 측음 당량(equivalent)이라고 한다.
그래서 귓속으로 궤환(feed back)된 이 아주 낮은 자신의 측음을 이어피스에서 증폭하여 마이크 역할로 사용할 수 있다.
이어피스는 근거리 무선통신방식인 블루투스(Bluetooth) 주파수에 의해 자동번역기 사이에 송수신이 가능하게 된다.
번역기를 찬 상태에서 이어피스를 귀에 꽂고 있으면 상대방에게는 내가 한 말이 아랍어로 번역기 스피커에서 울려 나가고, 상대방이 한 말은 번역기 마이크로 들어와 한국말로 번역되어 내 귓속의 이어피스에서 들리게 된다.
아랍어로 말하는 사람과 마주한 한국 사람이 이 번역기와 이어피스만 착용하고 있으면 서로 불편 없는 대화가 가능한 것이다.
만약 한충석이가 이 이어피스를 끼고 통화를 하면 한국말이 아랍어로 번역되어 창선의 혁대에 부착된 번역기의 스피커에서 울릴 것이다.
지금 전화기가 스피커폰 모드로 되어있으니까 번역기에서 울린 아랍어는 전화기의 스피커폰 마이크로 들어가서 저쪽 전화 거는 아랍인에게 그대로 전달될 것이다.
반대로 전화기의 스피커에서 울려 나온 상대방의 아랍어는 번역기의 마이크로 들어가서 한국말로 번역되어 한충석의 귓속 이어피스에서 들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앞에 앉아있는 남창선의 이어피스 꽂지 않은 귀에는 번역기를 통과하지 않은, 전화기의 스피커에서 울려 나오는 번역 안 된 아랍어만 들릴 수밖에 없다.
그래도 남창선은 이란에 온 지 오래되어서 웬만한 아랍어는 대충 알아듣는다.
그러나 아직은 아랍어를 유창하게 말할 수 없는 수준이라서 밖으로 자주 돌아다니는 남창선은 이 번역기를 항상 차고 다닌다.
-“한충석 공장장 바꿔!”
창원-터키 공장인 것이 확인되자 상대방은 곧바로 반말로 나왔다.
“제가 한충석입니다만, 누구..십니까?”
상대방이 반말로 나올 때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대부분 경찰서나 세무서 같은 힘이 센 권력기관일 확률이 높다.
민주화가 덜 된 이란은 한국보다 훨씬 더 심하다. 일단은 낮추고 숙여서 응대하는 게 상책이다.
-“여기 창원 사람 6명 있다. 돈 갖고 와!”
“예? 창원 사람 6명이라니요? 돈은 무슨······”
-“한 사람에 1만 달러! 여섯 사람, 돈 6만 달러 갖고 와!”
다짜고짜 창원 사람 6명 있으니 돈 6만 달러를 가지고 오란다.
옆에서 듣고 있던 창선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금세 감을 잡았다.
어떤 놈들이 자기 칠면조 운반부대원 6명을 납치하고, 1인당 1만 달러씩 모두 6만 달러의 돈을 갖고 오라는 협박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이란 내의 지역은 아닌 것 같고 전화가 아침 일찍 걸려온 거로 봐서 이란과 우즈베키스탄의 중간에 있는 투르크메니스탄으로 보인다.
그까짓 돈 6만 달러, 6천만 원 조금 넘는 금액은 이 창원-터키의 하루 치 매상 5만 달러를 조금 웃도는 푼돈에 불과하다.
놈들도 창원-터키에서 매일 칠면조 1천 마리씩 공수하는 줄은 알고 있을 것이고, 시중 체인점에서 판매하는 가격이 한 마리당 50달러니까, 하루 매출 5만 달러 정도는 현금으로 갖고 있을 줄 알고 이러는 것 같다.
우선은 대원들의 생사부터 확인하고 상대방의 조건을 알아봐야 한다.
한충석도 대충 감을 잡고 전화를 자기가 계속 받아도 되겠는지, 아니면 대장인 남창선이 직접 받는 게 좋을지 손짓과 눈짓으로 물어본다.
남창선이 뽑아 들었던 이어피스를 도로 귀에 꽂아 넣자 충석이
“에.. 내가 아랍어 잘 몰라요. 잘하는 사람, 바꿀게요.”
하면서 얼버무리고는 창선을 바라봤다.
“여보시오! 당신들이 우리 칠면조 수송하는 사람 6명을 데리고 있다는 말이요?”
창선이 또렷한 목소리로 말하자 번역기에서 금방 아랍어로 바뀌어 울려 나갔다.
그러자 저쪽에서 잠시 멈칫하더니,
-“그렇다. 미국 돈으로 6만 달러 갖고 와라. 안 그러면 이놈들 목을 베어버릴 거다.”
하며 강한 어조로 나왔다.
“알겠다. 어디로 가면 되는가?”
-”투르크메니스탄 아슈하바트에 와서 이놈들 핸드폰으로 전화해라.”
“아슈하바트? 알겠다. 거기까지 가려면 빨라도 5시간은 걸린다. 은행에 가서 돈 찾아가야 되니까 1시간 더 보태서 6시간 뒤, 오후 2시까지 가겠다. 됐나?”
-“알았다. 시간 지키고, 두 놈만 와야 한다. 꼬리 달고 오면 네놈들은 이놈들 모가지만 가져가게 될 거다.”
“알겠다. 그 대신 우리 사람과 통화하게 해달라. 확인해야 되겠다.”
-“좋다. 잠깐 기다려라.”
잠시 후에 대원 한 명이 울먹이며 나왔다.
-“대장님, 죄송합니다. 크으, 크···”
“괜찮다. 걱정하지 말고 모두 안심시켜라. 다친 대원은 없나?”
-“예. 트럭에서 자다가 급습당해서 아무도 다치지는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크···”
“알겠다. 너희들 잘못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라. 오후 2시에 도착하니까, 그때까지 마음 편하게 먹고 가만히 시키는 대로 하고 있어라.”
-“예,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크.”
“여보시오? 다른 할 말은 없소?”
대원들 안전을 확인한 창선이 빠진 게 없는지 물었다.
-“너는 우리가 누군지 안 궁금하냐? 왜 안 물어봐?”
“내가 물으면 누구라고 대답은 해줄 거요? 안 가르쳐 줄 줄 알면서 내가 왜 쓸데없는 걸 묻겠소? 시간 아깝게. 우리 애들을 꼼짝 못 하게 납치한 거 보니까, 댁들도 보통은 아닌 것 같네.”
-“뭐야? 너, 도대체 누구야?”
“나는 페넥 폭스 부대 대장, 창이라는 사람이다!”
-“뭐? 네가 이놈들 대장 창이라고? 네가 직접 올 거야?”
-“그렇다. 내가 직접 갈 거니까, 지금부터 내 부하들 손끝도 건드리지 마라!”
이란에서는 창(Chang)으로 불리는 창선이 전혀 기죽는 기색 없이 오히려 서릿발 같은 호통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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