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잠복조
대도무문단 14
[잠복조가 숨어 있다]
마창패 5명이 서로 등을 마주 보게 하고 둥그렇게 만든 원형진은 난공불락으로 보인다.
원형진 바깥으로 둘러선 땅벌파 선수 5명은 각자의 상대 앞에서 공격 방법을 모색하느라 여념이 없다.
`앞에 있는 이 만만해 보이는 녀석부터 해치워야, 이 요상한 울타리를 깨부술 수 있겠다! `
문도가 둘러보니 털보선장도 그렇고, 다른 동료들은 더더욱 쉽게 상대를 무너뜨릴 것 같지가 않다.
다행히 마주한 ‘구마’ 우측의 ‘창선’은 ‘선장’에 집중해 있고, 좌측 ‘창3’은 폴짝거리는 태권도 하급자 ‘천전’을 쳐다보느라고 정신없어 보인다.
“으야~ 압!”
문도가 기합 소리를 크게 지르자 마주 선 ‘구마’ 뿐 아니라, 좌우의 ‘창3’과 ‘창선’도 움찔하며 문도 쪽을 훔쳐보느라 순간적으로 빈틈을 보였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우측의 선장이 창선에게 달려들며 앞차기로 공격을 시도했고, 좌측의 천전도 폴짝거림의 반동을 살려 뛰어오르며 ‘창3’에게 앞차기 공격을 가했다.
양쪽 땅벌파의 선제공격으로 문도와 마주 선 ‘구마’의 좌, 우 마창패 선수가 한 보씩 뒤로 물러섰고, 정면의 구마가 혼자 뙤똑 남았다.
“으라압! 치앗, 챠~”
순간, 문도가 오른발 앞 돌려차기로 페인트 모션을 취한 다음 연속 동작으로 몸을 돌려 왼발 돌려차기를 가했다. 오른발을 피해 뒤로 허리를 젖혔다 바로 서던 구마의 왼쪽 관자놀이가 정확히 가격당했다.
“캨! -- “
급소를 정통으로 맞은 구마는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돌하르방이 쓰러지듯, 그대로 땅바닥에 철버덕 처박혀 뻗어버리고 만다.
10분은 지나야 눈텡이에 달걀 한 개를 붙이고 깨어날 것이다.
짱개가 창선에게 당한 크기의 두 배는 될 것이다.
“끼야아~ 압!”
문도가 그대로 원형진의 빈틈을 뚫고 달려가 공중 양발차기로 뛰어오르며, 맞은편에 등을 보이고 서 있는 ‘창2’의 목덜미를 왼발로 뻗어 차 내질러 버렸다.
“끜! –“
‘창2’는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돌부처처럼 앞으로 고꾸라져 쭉 뻗어버렸다.
머리와 어깨 사이 목 부분의 경계가 분명치 않은 떡대지만, 회복되려면 몇 달은 걸릴 것이다.
“으랖! 차, 차~!“
‘창2’의 오른쪽 앞에 착지한 문도는 제정신 나간 신들린 사람처럼, 고꾸라지는 ‘창2’를 곁눈질하는 ‘창1’의 움츠린 자라목 울대뼈를, 오른발 홉, 왼발 스텝 앤 점프로 뛰어오르며 오른발로 힘차게 내질러 가격했다.
“껔! –“
더 큰 돌부처 ‘창1’도 단말마의 비명만 남기고, 마창패 ‘창선’의 왼쪽으로 뻣뻣이 쓰러졌다.
창선은 오른쪽에 서 있던 ‘구마’가 문도의 연속 돌려차기로 한순간에 나가떨어지고,
연이어 자기 뒤쪽을 지나간 문도가 앞에선 털보선장을 노려보느라 뒤돌아볼 틈도 없는 사이에 누군가를 `껔` 소리 나게 치는 것 같더니,
급기야 자기 왼쪽에 있던 ‘창1’이 돌부처가 되어 품 안으로 무너져 쓰러지자,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며 옆, 뒤, 앞, 옆, 앞을 정신없이 두리번거린다.
“우와~ 이겼다! 우와~!“
땅벌파 대열에서 전 대원들이 양팔을 위로 뻗어 펄쩍펄쩍 뛰어오르며 만세를 불렀다.
“그만해~! 중지해!”
창원파 오야붕 신창원이 큰 소리를 내질렀다.
막 털보선장이 마주 서서 쩔쩔매는 창선에게 필살의 공격을 가하려는 순간, 신창원이 버럭 고함을 지르고 나서서 털보선장의 공격을 제지한 것이다.
털보선장이 신창원의 말을 항복선언으로 받아들여 공격을 멈췄고, 땅벌파 나머지 선수들도 자세를 거두고 슬금슬금 자기들 패거리 쪽으로 모였다.
바로 그때,
“우와아~! 우와~! “
마창패 뒤쪽 50m 거리의 어둠 속에 숨어있던 10명의 진해파가 각목과 야구방망이를 들고 농구장 쪽으로 쇄도해 쳐들어왔다.
문도를 비롯한 땅벌파 선수들은 황급히 자기 패들 대열로 뛰어서 피했고, 도열해서 승리에 열광하던 땅벌파 대원들은 놀라서 흩어지려고 우왕좌왕했다.
연장은 모두 주차장의 차 안에 두고 맨손으로 내려왔다.
이 다급한 순간에 뛰어가서 연장을 들고 와 싸울 시간적 여유는 없다.
이대로 맨손으로 붙는 것은 샌드백 대용품을 제공할 뿐이다.
유일한 선택은, 삼십육계 줄행랑이다.
“걱정 말고 대열 지켜! 나를 믿고, 자리 지켜라!”
이때, 땅벌파 후계자 도동파 보스 계두식이 대열의 앞으로 서너 걸음 나가 뒤돌아서서 팔을 벌리고 대원들에게 소리쳤다.
각목과 야구방망이를 들고 달려오는 10명의 진해파 잠복조는 벌써 마창패 뒤쪽 강변 길에 모습을 나타냈다.
마주 서 대치하고 있는 마창패 35명이 함께 덤벼온다면, 이 농구장은 땅벌파의 무덤이 될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연장을 차에 두고 와 맨손인 땅벌파 35명은 혼비백산하여 전의를 상실하고, 도망칠 구멍을 찾으며 대열을 이탈하려고 허둥거린다.
이때, 땅벌파의 2인자며 사실상 이화수 오야붕의 후계자로 내정된 도동파 보스 계두식이, 용감하게 대원들 앞에 나서서 양팔을 벌리고 자기를 믿고 대열을 지키라고 명령하고 있다.
“저 자식이 계두식이야? 체격은 안 크네?”
7대7 맞짱 전투에서 6명이 나둥그러지고 심복인 창원파 보스 창선이 한 명만 남게 되자, 창원파 오야붕 신창원은 숨겨두었던 진해파의 공격을 명령했던 것이다.
어차피 맞짱 전투는 패한 것이고, 보상금 2억 원을 물어 줄 바에야, 수하들이 땅벌파 대원들을 실컷 두들겨 패는 구경이나 할, 이미 예정된 속셈이었다.
“머리 쓰는 먹물이랍니다, 형님!”
신창원의 수하 보스가 주저하면서 귀띔을 해준다.
“머리를 써? 지금 저렇게 나서서 머리로 우리를 막겠다고? 하하, 그 머리통 박살 나는 거나 구경시켜줄 모양이네! 하하하.”
신창원이 크게 웃고, 연장 든 진해파가 농구장에 들어서고, 고무된 마창패들이 앞으로 돌격하려는 순간,
“우와아~! 와~ 와~! “
땅벌파의 뒤쪽 어둠 속에서 커다란 함성이 들려왔다.
양쪽 패거리들이 깜짝 놀라 주춤거리고, 농구장으로 진입하던 진해파도 멈춰 서서 소리 나는 맞은편 강변 길 쪽을 바라봤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아까 정훈이 드론을 띄워 살펴본, 강변 하류의 차양막 아래서 담배 피우며 놀던 바로 그 고등학생 10여 명이, 손에 야구방망이를 들고 몰려오는 것이 아닌가?
“땅벌~! 모두 공격 대열로 정비해!“
머리 쓴다는 땅벌파 후계자 계두식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대원들 앞에서 진두지휘하고 나섰다.
“저건 또 뭐야? 엉? 땅벌 새끼들도 잠복시켰어?”
창원파 오야붕 신창원이 화들짝 놀라서 안경을 치켜 올리며, 농구장 입구에 다다른 고딩이 패들을 노려봤다.
머리에 피도 덜 말라 보이는 새파란 놈들이 10여 명이나 방망이를 들고 잽싸게 달려와, 겁대가리 없이 감히 조직폭력배 진해파 앞을 가로막고 늘어섰다.
“여~ 신창원 오야붕님! 고작 한다는 짓거리가 이 정도요?”
땅벌 도동파 보스 44살 계두식이 느긋하게 폼을 잡고, 어느새 주위에 늘어선 보스들 중간에 서서 신창원을 노려보며 일갈했다.
“저건 뭐야? 연장 든 놈들 숨겨놓고 우리를 이 아래로 끌고 내려온 거야? 그러고는 맨손으로 결투 안 하면 반칙패라고?”
전혀 예상치 못한 사태가 발발하자 당황해서 얼굴이 벌게진 47살 신창원이, 지금까지 와는 달리 침이 마른 듯 반말로 쇳소리를 내고 나왔다.
“당연하지 않소! 남의 집 앞마당에 손님으로 와서 쌈 잔칫상 벌이자고 해놓고, 쌈 나눠 먹는 척하면서 담장 밑에 졸개들 숨겨두는데, 낸들 뒷마당에 내 하인들 좀 감춰뒀기로 뭐가 잘못된 기요? “
비록 학생들이지만 계두식이 배치해두었던 10명의 학생은 진주 시내 고등학교 연합 태권도유단자 서클 `사하라`의 핵심 회원들이다.
계두식의 모교인 J 고가 주축이 되어 매년 초에 3학년을 대상으로 입회시키고, 땅벌파 지원으로 상금이 푸짐한 대련 시합을 개최한다.
여름엔 하계수련회도 가지며 다음 해 초 졸업 무렵에 땅벌파에 입단을 희망하는 사람은 선별해서 입단시키고 있다.
어제 창원파의 결투 신청 소식을 전달받고 만일을 대비하여 입단원서를 제출한 녀석들 중에 정예 요원을 선발해서 매복시켰던 것이다.
“그럼, 이대로 집단 떼싸움을 해서 사생결단을 내보자는 말이요? 저 어린 학생들까지 동원해서?”
신창원의 말꼬리에 `요` 자가 붙었다.
이런 상태로 동생뻘도 안 되는 학생들과 연장 든 싸움을 벌여서 패하지는 않겠지만, 차마 그러기는 민망하고, 설령 이긴다 해도 이득 볼 게 하나도 없다.
서로 연장은 들었지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피장파장인 셈이고, 맞짱 전투는 이미 땅벌파가 완승을 거둔 마당에, 여기서 더 나아가 기분 따라 복수전이라도 벌렸다가 경찰이라도 출동하면, 원정 온 자기들이 불리할 것은 자명한 현실이다.
아직은 허세를 부려 한번 해볼래? 하는 말투지만, 슬며시 꽁지를 내리지 않을 수가 없는 신창원이다.
“웬만하면 그냥 가시지요! 설마 저 환자들을 여그, 진주 시내 병원에 입원시킬 겁니까? 마산까지 가려면 한 시간은 걸릴 건데, 서둘러 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전투 결과는 확실히 하시고요!”
여유 있는 계두식이 선심을 베풀었다.
이미 전투는 자타 공히 승리로 끝났고 마창패는 중상자가 6명이나 되지만, 자기들은 짱개 한 명 눈텡이가 좀 튀어나온 부상밖에 없으니, 신창원이 공언한 보상금 2억 원을 받고 승전고만 울리면 되는 일이다.
“좋소! 여기서 중지하고 서로 물러섭시다! 나, 신창원이가 한번 입 밖에 내뱉은 말은 책임지는 사람이오. 보상금 문제는 내일 별도로 연락하겠소!”
신창원이 마지못해 패배 선언을 하면서 자존심은 세우려고 애를 썼다.
마창 패거리들도 몸에 상처만 생길 떼싸움을 굳이 하고 싶지도 않은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고, 오야붕 얘기를 들은 진해파도 무안한 듯 연장을 아래로 내렸다.
“그러시면 서둘러 가십시오, 신 오야붕님! 멀리 배웅은 안 하겠습니다. 다음에 또 뵐 일 없었으면 합니더!”
“알겠소, 계두식 보스! 나도 다시 볼 일 없었으면 하오!”
계두식이 자기소개도 안 해줬는데, 심기가 불편해진 신창원이 헷갈려서 수하에게 들은 땅벌 후계자의 이름까지 외워서 읊었다.
마산, 창원, 진해의 45명 연합 원정 패거리들은 풀이 죽은 패잔병이 되어, 부상당한 6명의 대표선수를 추슬러 부축하고 주차장으로 서둘러 올라갔다.
마창패 대표선수 중에 유일하게 땅벌파 짱개를 부상시켜서 그나마 체면을 세운 창원파 중간보스 남창선도, 땅벌파 털보선장을 힐끔거리며 패거리를 독려하여 맨 뒤에 처져서 따라갔다.
예전에 삼천포파 보스 자리를 놓고 결투를 벌이다 창선의 반칙으로 얼굴에 칼자국이 생겼던 털보선장 심천보는, 창선에게 앙갚음할 절호의 기회를 잡은 순간에 신창원이 시합중지를 외치고 나서는 바람에 복수를 못 해서 분한지, 계속 두꺼운 입술을 씰룩거리며 떠나가는 남창선의 뒷모습만 뚫어지라 바라봤다.
땅벌파 대원들은 전투에 승리해서 기분은 좋지만, 솔직히 몽둥이 들고 뒤늦게 나타난 고딩이 10명 덕분에 구제된 거나 마찬가지여서 그런지, 크게 함성을 지르며 환호성을 울리지는 못하고 분파들끼리 모여서 웃으며 웅성거렸다.
“어때? 많이 아프지? 어디 보자.. 다행히 급소는 살짝 비꼈네! 한, 댓새 쉬면 낫겠다.”
문도는 창선에게 관자놀이 주변을 차여서 눈덩이가 부어오른 짱개를 위로해 주고, 세 명의 땅벌 중앙파 아우들을 시켜 병원으로 후송시켰다.
“야~ 이, 고딩이들은 우찌 된 사건이요? 계 보스! 야~들 아니 었으모 큰일 날 뻔 했고마! 허허.”
털보선장이 땅벌파 후계자 도동파 보스 계두식에게 공치사를 해줬다.
`도동`이라고 부르지 않고 `계 보스`라고 까지 호칭을 변경해 가면서.
겉으로 내색은 잘 안 하지만 조직 내에서 사실상 두 패로 갈라져 서로 라이벌인 두 사람은, 서로의 영역과 역할은 존중해 주면서 지금까지는 별 무리 없는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오늘 전투가 승리로 끝나서 가장 전리품을 크게 갖게 될 사람은 바로 털보선장이다.
신창원이 공언한 대로 창원파가 거제도 장승포항에서 물러나면, 거제도, 통영, 고성은 삼천포파의 관할구역이 되고, 남해 섬에서 부산항에 이르는 남해안 일대의 바닷길은 털보선장 해적왕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일부러 눈에 띄게 전공을 세우기 위해 대표선수로 출전까지 했던 것인데, 막상 자기는 단 한 명도 때려누이지 못했다.
땅벌파 오야붕 이화수 직속 본대 중앙파 보스인 문도가 혼자서 5명을 때려뉘었고, 진주 구역전파 출신 55살 노인네의 천전파 행동대장 ‘천전’이 한 명을 빠갰다.
더군다나, 출전 선수는 ‘도동’ 한 명만 내보내 놓고, 비상 대기조를 잠복시켜서 사실상 승리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사람은 바로 도동파 계두식 보스이니, 털보 선장이 전리품으로 거제도 관할권을 주장하기가 영 쑥스러운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러니 털보선장은 내키지는 않지만, 머리도 굴릴 줄 아는 후계자 계두식에게 자존심을 꺾어서라도 입에 발린 공치사를 안 할 수가 없는 형편이다.
“응! 영화 잘 봤냐? 나 괜찮게 나오디? 이상.”
주먹을 입에 댄 문도가 비로드 가죽 모자에서 들려온 정훈의 음성을 수신하고 응신을 해준다.
-“그럼! 야~ 우리 코모도, 정말 쥑이게 잘 싸우던데? 신창원이는 확실히 항복한 거냐? 이상.”
“제 입으로 약속 지킨다고 하고 갔어! 확실해 보여. 이상.”
-“땅벌 형님이 한턱내신다고, 보스들과 출전 행동대장은 흑장미 홀에 집합하라신다. 도동파 보스가 위치 안단다. 이상.”
“흑장미 홀? 알았다. 전달하겠다. 오버!”
-“감 잡았고, 네 BB가 공격할 일 안 생겨서 정말 다행이다. 그럼, 드론은 철수한다. 드론 철수, 오버!”
“드론 철수 확인! 오버.”
정훈과 교신을 마친 문도가 고개를 들고 어둠 속을 올려다봤다.
머리 위 30m쯤에서 문도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정지 비행하고 있던 검은색 드론 BB가, 서서히 움직이더니 쏜살같이 남강을 가로질러 동방호텔로 날아갔다.
Comment '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