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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세하루 님의 서재입니다.

내 일상


[내 일상] 34. (수필) : 편하게 살자

 

 

편하게 살자

 

삼일 이재영

나는 생각지도 않았던 큰 병에 걸려서 갑자기 수술까지 받게 되었다.

힘들었던 사회생활을 접고 이모작 인생을 작가로 살겠다며 집안에 틀어박혀 글을 쓰기 시작한 지가 벌써 5년을 넘었다.

즐겨 마시던 맥주도 3년 전부터 삼가고, 40년간 골초였던 담배도 1년 전에 끊었다.

그러나 매일 컴퓨터 앞에 쪼그려 앉아 몇 시간씩 글을 쓰다 보니, 주전부리 대신 해로운 커피믹스를 하루에 열 잔 가까이 마셨다.

 

열흘쯤 계속된 설사에 이은 하혈로 집에서 가까운 종합병원을 찾았다가, 대장암 3기 판정을 받았다.

조직검사 결과 암세포가 림프샘 수십 군데에 퍼져, 일주일 후에 대장을 10cm쯤 절제하는 개복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잘 되었고 입원 한 달 만에 퇴원했지만, 곧바로 인천의 모 대학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아야 했다.

 

항암치료는 2주일에 한 번씩 2 3일간 입원하여 연속 50시간 동안 항암제 주사를 맞는데, 12(24, 6개월) 받은 후 암세포가 다른 장기로 전이되지 않으면 완치 판정이 내려진다.

항암치료를 받으면 부작용으로 머리칼이 빠진다는 얘기도 있어, 잔뜩 불안했다.

그러나 아내는 대장암의 항암치료 후 5년 생존율이 75%가 넘는다며 되도록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대학교 간호학과를 나온 아내는 고등학교 보건 교사로 근무하다가 50대 중반에 희망퇴직하고 집에서 쉬고 있었다.

그러다 내가 은퇴하고 집에 칩거하자, 환갑이 지난 나이에도 용케 집에서 가까운 요양보호사 교육원에 강사로 취직하여 벌이를 계속하고 있다.

 

대학병원 혈액종양내과에 함께 들러 담당 의사 선생님의 설명을 들었고, 수술 퇴원 후 열흘 만에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입원하러 가게 되었다.

예약된 입원 날짜가 평일이어서 자식들에게 부탁할 수도 없어 그냥 택시로 가기로 했다. 우리 승용차는 내가 은퇴하자 괜히 돈 들이고 세워놓는 게 싫어서 처분했다.

대충 알아보니, 집에서 대학병원까지 승용차로 30여 분 거리로 택시비는 25천 원 정도 나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내가 평소 가까이 지내던,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학원 제자에게 부탁하여 그녀의 자녀가 왕복 5만 원에 태워다 주기로 했단다.

 

그랬는데, 막상 입원 전날 확인했더니 그 제자의 자녀들이 아침에는 안 되고 오후에만 가능하다고 해서 집 앞에서 편하게 타고 가려던 계획이 어긋나고 말았다.

박 선생 애들 차는 안 되겠네요. 우리 아파트 개인택시 기사님한테 연락해볼까?”

약간 머쓱해진 아내는 우리 아파트의 같은 동에 거주하는 개인택시 기사님을 떠올렸다.

며칠 전에 차 옆에 서 있는 기사님한테 인사를 나누고 사정 얘기를 했더니, 전화번호를 알려주며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했단다.

내일이 하필 그 개인택시 휴업일일 수도 있잖아? 길에 나가서 지나가는 택시 타면 되지 않나?”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약간 눈살을 찌푸렸다.

그냥 편하고 쉽게 아무 택시나 잡아타면 될 일을 뭐 그리 어렵게 하느냐 싶었다.

가장(家長)의 자리를 내어줘 발언권이 약해진 나는 평소에 돈 드는 일이라면 현역으로 뛰는 아내의 처분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막상 대장암 수술한 환자가 되어 보살핌을 받고 보니,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우쭐한 기분이 들어 한마디 했다.

 

입원 당일 아침에 짐을 꾸려 들고 둘이 함께 집을 나섰다.

우리 동 주차장에 그 개인택시가 주차되어있다. 역시 금일 휴업이라는 말이다.

아내는 잠시 주저하다가 겸연쩍은 얼굴로 다른 택시 타고 가자며 길거리로 나섰다.

집에서 가까운 아파트 후문으로 나와서 길가에 한참 서 있어도 지나가는 택시가 보이질 않았다.

아파트 정문 쪽 큰길가에 있는 택시 정류장까지 걸어가자면 10분 정도는 걸린다.

2 3일간 병원에서 묵을 짐을 꾸렸는데, 별거 넣지도 않은 가방이 제법 묵직하다.

환자인 나 대신 들고 가자니 팔에 힘이 빠지는지 아내는 괜히 짜증이 나려는 표정이다.

정문 방향으로 천천히 걸으며 도로의 뒤쪽도 살폈지만, 빈 택시는 보이지 않았다.

 

한참 뒤 아파트 정문에 이르자, 나는 핸드폰을 꺼내 아내에게 아무 말도 안 하고 전화를 걸었다.

, 콜택시지요? 인천까지 갈 건데요.”라고 말했다.

아내가 약간 놀란 눈으로 쳐다보길래, 동의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 여기 OO 아파트 정문입니다.”라고 말하자,

아내 입에서 대뜸 콜택시 부를 거였으면 아까 후문 앞에서 오라고 해야지. 여기까지 와서 뭐 하는 짓이야? 좀 편하게 삽시다!”라는 퉁명스러운 말이 튀어나왔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정문 앞에 서 있으면 기사님이 쉽게 볼 텐데, 조금 걸어오면 어때서 그래?”라고 대꾸하며 약간 측은한 눈으로 아내를 바라봤다.

이것저것 생각했던 교통편이 다 무산된 아내가 무안해서 괜히 저러려니 싶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곧바로, 1분 내로 도착한다는 문자가 왔다. 아내는 다소 민망해져서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방만 내려놓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잠시 후 우리는 콜택시를 타고 편안하게 40여 분 만에 목적지인 인천의 대학병원에 도착했다.

출근 시간이라 조금 지체됐다는 기사님의 말을 들으며 톨게이트 요금을 포함해서 2 8천 원을 지불했다.

 

과연 편하게 살자라는 건 뭘까?

단순하게, 상식적인 보통의 규정을 따르며 살아가면 되는 거 아닐까?

내가 좀 편하게 살겠다고 요리조리 요령을 부리다가는 오히려 더 큰 불편함을 당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내게 다소 불편한 점이 있더라도 타인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여, 남을 배려하고 양보하는 자세로 사는 게 어쩌면 편하게 사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내는 잠시라도 내주장(內主張)을 하며 남편을 우습게 여긴 자신이 부끄러운지 얼굴에 얕은 홍조가 배어났다.

초등학교 동창으로 대학교도 같은 대학을 다녔고, 졸업하자마자 결혼하여 벌써 45년 넘게 살고 있다.

내가 은퇴하기 전까지는, 대기업 연구소에서 근무하다 나와서 작은 제조업을 운영하는 남편을 거의 하늘같이 모시며, 매사에 내 뜻을 따르고 살았다.

그랬는데, 남편 대신 돈벌이를 한다는 생각에선지, 나에 대한 존중의 마음이 무심코 무시의 저항심으로 바뀌어버린 모양이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잔머리 굴리는, 되레 불편한 생활을 택할 뻔했던 것 같다.

 

이참에 다시 옛날로 돌아가 마음 편하게 살며, 예전처럼 다소곳이 나에게 순종하는, 아내의 고왔던 모습을 꾸준히 보여줬으면 좋겠다.

 

 

 

 

[ 종합문예지 문예감성 2021년 봄호 등재 ]



 


댓글 2

  • 001. Personacon 이웃별

    21.04.27 22:15

    세하루님. 이제 완치 판정 나온 건가요? 수술도 잘 되고 항암치료가 잘 받아서 정말 다행입니다.
    사모님은 정말 멋지십니다. 세하루님의 다소 불만스러운 뉘앙스가 있긴 하지만 아무리 봐도 사모님 자랑인 것 같아요. ^ㅁ^초딩친구가 한평생을 함께 했으니 영혼의 단짝이 아닌가 합니다.
    낭만소년 세하루님 화이팅!!!

  • 002. Lv.55 맘세하루

    21.04.29 20:12

    네, 이제는 넉 달에 한번 확인 진찰 받으러 갑니다. (CT촬영과 피검사 등)
    지금 반장은 집에서 놀고, 부반장은 돈 벌러 갔습니다. (한번 반장은 영원한 반장! ㅋ)
    그래도 반장은 놀면서 내일 보낼 수필 한 편 마쳤어요.ㅎ (생명의 강 낙동강 수필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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