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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상


[내 일상] 27. (수필) : 손녀딸

 

손녀딸

삼일 이재영

 

 

매년 11월 셋째 일요일에 집안 친척들이 지리산 자락에 있는 고향의 문중 사당에 모여 시사 時祀를 지낸다.

제대로 하려면 제수 祭需를 싸서 들고 높은 산 속에 있는 5대조 이상의 조상님 묘소에 찾아가서 봉행해야 하지만, 문중의 사당에 모신 제위 앞에 제사상을 차려 의식을 치르고 무덤의 벌초는 별도로 인부를 시켜서 하고 있다.

시사에 모이는 친척은 1대인 내 할아버지 삼 형제들 집안의 후손으로, 3대인 나를 비롯해 5대인 내 손녀딸까지 사오십 명 정도 참석한다.

세 집안이 돌아가며 시사를 주관하므로 며느리 되는 여성들은 3년에 한 번은 꼭 참석해서 음식 장만을 거들어야 한다.

나는 우리 집안 주관이 아닌 시사에는 두 아들만 데리고 가지만, 주관일 때는 웬만하면 아내와 두 며느리까지 다 데리고 다녀온다.

 

시사의 의미가 돌아가신 조상을 섬기는 행사를 통해 친인척들의 안부를 묻고 새로 태어났거나 시집온 친척을 소개하는 데 목적이 있으니까, 가급적 젊은이들이 많이 참석해서 서로 얼굴을 익히는 기회로 삼으면 좋을 것이다.

며느리들 입장에서는 설과 추석의 명절증후군도 모자라, 3년에 한 번씩 먼 길을 가서 하룻밤 지내며 촌수와 이름도 잘 모르는 서먹한 시댁 친척들과 대면하고 제사상 준비와 설거지 등의 중노동에 시달려야 하니 죽을 맛일 것이다.

시대가 많이 변해서 내 아들 대의 며느리들이 제대로 참석하지 않을까 봐 걱정했는데 그래도 군소리 없이 꾸준히 얼굴을 보여서 내심 다행이다 싶다.

 

그런데 내가 벌써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다 보니 어느새 몇 년 사이에 4촌과 6촌 형님 중 여러 명이 돌아가시고 이제 내 위로 다섯 분밖에 안 남았다.

살아 있는 내 4촌 형제 다섯 명 중에 나보다 한 살 적고 어릴 적부터 아주 가깝게 지냈으며 고등학교도 동문인 동생이 한 명 있다.

교육대학을 나와 평생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지금은 정년퇴임을 했는데, 원래 붓글씨 솜씨가 뛰어나 십여 년 전에 고향에 사당을 지을 때는 현판의 글씨도 호쾌한 필치로 직접 써서 붙인 아우다.

그런데 그 아우는 초등 교사인 제수씨와의 사이에 딸만 두 명을 두었고 지금은 둘 다 시집가서 따로 살고 있다.

내 오촌 당숙만 해도 큰아들을 자기 형제의 양자로 보냈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도 없는 시대인 데다, 하필 아우의 형제들도 아들은 한 명씩뿐이라서 두 내외가 아들 없이 단둘이 호젓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아우는 시사에 달랑 두 내외만 내려오는데, 내색하지 않으려는 표정이 쓸쓸해 보이는 것은 괜히 나 혼자 지레짐작하는 느낌일까?

 

한국의 성씨 姓氏는 전통적으로 270여 개가 있으며 외국에서 귀화하여 생긴 성씨까지 합하면 5,600개쯤 된다. 이 중에 한자로 표기할 수 있는 성씨는 1,500개 정도이고, 인구 1,000명 이상인 본관은 858개로 전체 인구의 97.8%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중에 양반이라 불리는 소위 뼈대 있는 문중에는 족보가 있고, 한 세대에 해당하는 20년마다 새로 발간한다.

만약 누군가 딸만 낳고 아들이 없으면 딸의 이름과 딸 남편인 사위의 이름은 족보에 오르지만, 딸네 자식의 이름은 아들일지라도 더는 족보에 오르지 못한다. 그것으로 그 사람은 대가 끊어지고 마는 것이다. 딸의 자손인 외손주는 사위의 성씨 집안 족보에 올라서 대를 이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시집가면 시댁 귀신이 될 여자보다 대를 이어 제사를 지내줄 남자를 선호하고 존중하는 남존여비 사상이 지금까지 전통처럼 세습되어 온 것이다.

 

설령 내 사촌 아우의 형제 중에 아들이 두 명 이상 있다고 해도, 아마 아우가 선뜻 양자로 받아들이지는 못하지 싶다.

분명히 아우의 딸들이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사촌을 양자로 들이냐?”며 기를 쓰고 반대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사촌이 논을 사도 배가 아프다는데, 떡하니 양자로 들어왔다가 혹시라도 유산을 다 가로채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은 경계심이 앞서서 그럴지도 모를 일이다.

아우는 그런저런 생각 때문인지 자신의 선에서 대가 끊기는 일을 애써 감수하려는 서글픈 노력이 엿보인다.

 

그런데, 아들이 둘씩이나 있는 내가 그런 사촌 동생을 보면서 상대적으로 훨씬 낫다고 마냥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만은 없는 입장이 되었다.

왜냐하면 장남이란 녀석이 초등학교 6학년인 내 손녀딸의 동생을 낳지 않겠다는 것이다. 클수록 영민하고 참해지는 손녀딸을 보면 안타까워 한숨이 절로 나온다.

 

요즘은 결혼만 하면 분가해서 따로 사는 핵가족 시대이다 보니 남편을 대하는 아내들의 태도가 예전 같지 않다.

남편에게 순종하는 여필종부의 자세를 들먹였다가는 시대에 뒤떨어진 세대로 치부될 것이 분명하고, 혹시 맞벌이 부부라도 된다면 기죽은 남편이 스스로 권리를 포기한 가모장 家母長적 집안이 될 공산이 크다.

 

보통의 남자라면 학교 공부와 군 복무를 마치고 25세에 취업해서 55세에 은퇴하여 30년간 돈을 버는 셈인데, 지금은 수명이 늘어난 고령화 시대라 은퇴 후에도 85세까지 30년간이나 더 살아야 한다.

어느 믿을 만한 자료에 따르면 외벌이 부부의 소득은 월평균 460만 원 정도 된다고 한다. 거기에 12개월을 곱하면 연봉이 5,520만 원이 되고, 30년간 버는 돈은 165,600만 원으로 계산된다.

그런데 노후에도 부부가 제대로 생활하려면 월평균 280만 원은 소요된다고 하니, 1년이면 3,360만 원이 필요하고, 은퇴 후 죽을 때까지 30년간 10800만 원이 있어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남자 혼자 외벌이라면 25세에서 55세까지 30년간 16억 원을 벌지만, 은퇴 후 부부의 30년간 노후자금 10억 원을 제하면 6억 원만 남는다.

이 돈 6억 원으로 30년간 생활비로 쓰고, 자식들 결혼까지 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자식 한 명을 낳으면 영아기(1~4) 3,700만 원이 들고, 중고등학교 8,800만 원과 4년제 대학교 보내는 비용 7,700만 원을 고려하면, 22년간 공부 시켜 키우는데 약 3900만 원이 드는 셈이다.

자식을 한 명 낳아 기르는 외벌이 부부는, 앞의 생활비 6억 원에서 자식 밑에 들어가는 육아 및 교육비 3억 원을 빼면, 30년간 가용 생활비가 겨우 3억 원밖에 안 된다.

이 돈 3억 원으로 30년 동안 한 달에 80만 원 정도만 쓰면서 결혼 비용도 보태야 한다는 말인데,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다.

게다가 한 명 더 낳았다가는, 부동산이나 예금 등에 묻어둔 노후자금 10억 원을 거의 다 당겨쓸 수밖에 없다.

그러니 현명한 젊은 부부라면 어찌 자식을 둘 이상 낳으려고 하겠는가?

 

그 자료에서 맞벌이 부부의 월평균 소득은 700만 원으로 잡고 있으니, 외벌이보다는 한 달에 240만 원을 더 버는 꼴이라 50% 정도의 여유가 생기는 셈이지만, 아내가 포기한 육아를 누군가에게 대신 맡겨야 할 것이므로 그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나는 다행히 외벌이인 장남과는 세 살 터울인 둘째 아들이 맞벌이하고 있어서 넌지시 손자를 기대하고 있다.

부모님 연세가 마흔을 넘은 늦둥이로 태어났던 내가 부모님 생전에 아들 둘 낳기를 참 잘했다 싶어, 평생을 맞벌이하며 내조한 내 아내를 업고 사당 祠堂 마당을 한 바퀴 덩실덩실 돌고 싶어진다.

 

 

 

< 종합문예지 [ 문학의 봄 ] 2020년 겨울호 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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