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맘세하루 님의 서재입니다.

내 일상


[내 일상] 21. (수필) : 히포크라테스는 죽었다

 

 

히포크라테스는 죽었다

 

                                                    맘세하루

 

대장암 3기 수술 후에 인천의 모 대학병원에서 정기적인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2 3일간 입원하여 항암제 주사를 연속 50시간이나 맞는다.

2주일마다 입원하고, 전체 12(24, 6개월) 받은 뒤 암세포의 타 장기 전이가 없으면 완치판정을 받게 된다.

 

그런데 제10차 입원 예정일 사흘 전에 혈액종양외과에서 전화가 왔다. 전공의의 데모 사태로 인해 입원을 1주일 연기한다는 내용이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그 의료진 파업 여파가 나한테까지 미쳤다.

주삿바늘 찔러 자리 잡는 게 아프고 끔찍해서 어린 애처럼 안 가면 싶었는데, 이거 잘됐다 싶다.

 

전공의는 전문의의 자격을 얻기 위해 병원에서 일정 기간의 임상 수련을 하는 의사, 즉 인턴과 레지던트를 이른다.

지금은 진료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의사인 전임의까지 데모에 동참하고 있다. 전임의는 전문의 취득 후 2~3년 세부 전공 의사이다.

 

엊그제 여당 대표가 나서서 의사협회 회장과 타협을 보고, 보건복지부에 합의문 작성을 넘긴 장면이 언론에 보도됐는데도, 전공의들은 졸속 타협이라며 데모를 중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의사들이 왜 파업하고 환자를 떠나 거리에 나와서 데모를 하는 것인가?

잘 모르면서 무조건 어느 한쪽을 비판만 할 게 아니라, 좀 더 현실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싶어 이 글을 씁니다.

 

우선 정부가 추진하는, 의사의 숫자와 관련된 계획을 살펴보자.

 

첫째, 정부가 의사 증원을 내세우는데, 그 이유는 지방에서 의사를 구하기 어렵고, 역학 조사관과 공공병원 의사가 태부족이라는 점이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숫자는 OECD 평균 3.5명에 비해 한국은 2.4명으로, 멕시코와 동등한 수준이며 독일(4.3), 프랑스(3.2), 미국(2.6), 일본(2.5)에 비해 낮다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매년 400명씩, 향후 10년간 4000명을 증원하고 그중 3000명을 지역 의사로 키워 지방 병원과 의료원의 의사 난을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둘째, 그와 별도로 2018년에 폐교된 서남대 의대 정원 49명을 되살려 국립중앙의료원을 기반으로 공공 의대를 만들고자 한다.

이를 통해 역학 조사관, 감염내과, 소아외과 등 필수 공공 의료 분야에 종사할 의사를 키우겠다는 것이다.

공공 의대를 나오면 의사면허 취득 후 10년 정도 공공 분야에 의무 복무해야 한다.

 

의료계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얼핏 봐도 괜찮아 보이는데, 의사들은 왜 전부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나서는 것인가?

 

그럼 의사협회 등이 주장하는 국가 정책에 반대하는 이유를 살펴봅시다.

 

첫째, 의사 숫자는 신규 의사가 한 해 3000명이 나오지만, 은퇴하는 의사가 적어, 매년 1000명 정도 의사가 늘어난다.

 

이에 우리나라 의사 수 증가율은 2000년 대비 2013 67% OECD 1위를 보였다.

전체 의사 중 55세 이상 의사 비율이 영국(13%) 빼고 둘째로 낮은 15%, 중장기적으로 갑자기 의사가 줄어들 우려도 적다는 것이다.

 

둘째, 우수한 의사를 양성하려면 병원이 좋아야 하는데, 국립대 병원(수입 2500억 원)이나 국립중앙의료원(1000억 원)은 규모가 적고 적자라서, 우수한 의사를 키울 여건이 못 된다는 것이다.

 

일부 선진국에서 전공의 교육을 국가가 지원해서 공공 의료 인력으로 쓰고 있고, 의무 복무 기간도 전공의와 전임의 과정을 빼면 2~3년에 불과해서 조건이 좋다.

그러나 그 이후 대거 이탈이 예측되기 때문에 실효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반면 의사협회는 현재의 우수 의대 의학 교육과정에공공 의사 양성과정을 신설해 키우면 공공 의사를 얼마든지 확보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반대 의견을 종합해보면 의사 숫자는 더 늘릴 필요가 없고, ‘공공 의사도 별도의 정책 수립보다 현재 의대 교육과정에 공공 의사 양성과정만 신설하면 된다는 것이다.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2400년 전에 그리스에 살던 의사이다.

그는 평생 의술을 행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며 의학의 발달에 기여했고, 특히 의사의 이상과 윤리에 영향을 미친 위대한 의사였다.

 

그런 히포크라테스의 조국인 그리스는 현재 의사 과잉 배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단다.

그리스는 2007년부터 인구 1000명당 의사가 5.35명으로, 우리의 두 배를 넘었다.

그런데도 전문의 대다수가 공공병원이 아닌 민간병원에 근무하며 아테네 의사 열 중 셋은 실직 상태라고 한다.

기껏 의사 만들었더니, 해외로 떠난 의사가 17500명에 이른단다.

이번 정책을 구상하는 정부의 관계부서가 눈여겨볼 국가이다.

 

반면, 의사 교육과 전문의 양성을 국가가 부담하는 캐나다나 영국에서는 의사가 공무원처럼 일하기 때문에 상황이 전혀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기피하는 외과 계열도 여전히 인기가 있는데, 캐나다의 경우 가정의학과 의사 연 소득이 약 30만 달러인 데 비해, 외과 계열은 50만 달러이다.

힘들고 위험한 일을 하는 것에 대한 보상 시스템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공공 분야 의사 부족 문제의 해결방안이 보인다.

지방이나 공공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의 보수를 파격적으로 올려주면 되는 것이다.

 

학부 과정 6년과 전공의, 전문의 과정을 거쳐 군 복무까지, 일반 대졸자의 두 배나 되는 12년을 보내고서야 정식 의사 노릇을 하게 된다.

그러니 긴 세월 뒷바라지한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의 등쌀에 못 이겨, 환자에게 봉사하고 후학에 힘쓰겠다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순수한 의미를 망각하고, 본의 아니게 수입 많은 분야의 의사직을 택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질병관리본부 등에서 시행한 지역사회 건강조사 시도별 결과(2019)에 따르면, 최근 1년 동안 환자가 병원·의원에 가고 싶을 때 가지 못한 비율인 () 충족 의료율이 서울(5.3%)과 강원도(5.2%) 간에 차이가 없었다.

 

게다가 국민 1인당 연평균 외래 방문 회수가 OECD 평균 6.8회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16.9회로 세계 최대 수준이다.

의료보험이 잘 되어있어 아프면 돈 걱정 안 하고 쉽게 병원에 갈 수 있다는 말이다.

 

동의보감의 저자인 허준의 스승인 유의태는 자기의 시신을 해부하라는 유언을 남김으로써 제자인 허준이 사람의 내부 장기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게 했다.

허준도 스승의 뜻을 따라 재물에 탐닉하지 않고 가난한 백성들의 질병을 보살피다가 임금님을 치료하는 어의를 지내게 되었다.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는 죽었을지 몰라도 이렇게 살신성인의 의술을 베풀었던 의사가 있던 우리나라이다.

물질만능주의로 변해버린 세상이지만 국민과 정부 관계자는 의사들의 양심을 믿고 모두에게 바람직한 정책이 펼쳐지도록 노력했으면 한다.

 

나도 얼른 입원해서 항암치료를 받아야 속히 나을 거니까, 전공의의 파업사태가 하루라도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전공의 데모 사진.jpg



댓글 2

  • 001. Personacon 이웃별

    20.09.07 21:30

    벌써 10차 예정일이었군요.
    저도 의료계 파업 때문에 맘세하루님 치료에 차질이 생기지는 않을까 걱정했어요.

    정부와 의료진의 입장이 잘 정리되었네요.
    의료진도 정부도 맞는 부분과 간과한 부분이 분명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첫술에 배부르지 않듯 잘못된 정책은 보완해 가며 서로 협력하면 될텐데..
    이런 시기에 파업을 강행한 것은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해도 집단이기주의로밖에는 생각이 되지 않습니다.

    십 수년 뒤에 의사들이 남아도는 결과가 나오는 것을 예상한다면, 그땐 우리나라 노인인구도 많아질 테니 노인의학 쪽으로 인력을 돌리는 것도 한 방법일 테고.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위해 정책을 보완해 나갈 수도 있고.
    감염병이 일반화되어 지속적으로 의료진 충당이 필요할 수도 있고.
    그 때가 되면 (AI의 개입 등으로) 의사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도 인재과잉과 불균형이 나타날 것이고. 그에 맞춰 정책은 유연하게 조정되어야 하겠고...
    최근엔 2~3년 에 한 번씩 감염병이 유행하고 있는데, 과거의 데이터만 가지고 미래의 통계를 예측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요...

    언제나 최선을 찾아 조정하는 방안을 병행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나 싶습니다.

    정말 젊은 의사들의 장래가 환자를 내팽개치고 파업을 강행해야할 만큼 절실하다면,
    윤리적, 물리적 사고를 낸 의사들의 면허반납을 통해 자격미달인 기존 의사들을 적출해내는 법안에 대해서는 어째서 반대할까요.(?)
    제도를 의사들의 입맛에 맞춰야 한다는 식의 태도가 괴씸하게 느껴진달까요..

    어쨌든 최근의 굵직한 몇몇 사건들을 지켜보면서 의사, 판검사는 직업의식보다 조직의 구성원이라는 집단의식이 우선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환자의 치료를 미루면서까지 주장을 관철하려는 의도는 아무리 너그럽게 생각해도 수긍이 어렵습니다. 세하루님 같은 경우가 얼마나 많을지...

    어쨌거나 스트레스는 가장 좋지 않은 거니까요 해소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찾으면서 다음 진료를 기다리도록 해야겠지요.

    세하루님. 화이팅~~~
    완치 판정 나오면 후기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 002. Lv.55 맘세하루

    20.09.07 21:55

    네, 이웃별님 금세 오셨군요.
    그렇습니다. 사회 지도층에 속하는 의사와 판사가 집단 이기주의 속성을 보입니다.
    죽어나는 건 애먼 조조군사인 돈 없고 빽 없는 민초들이구요.
    특히 의사들은 '원격 화상 진료'부터 당장 동의해서 외딴섬이나 산간 오지의 중환자도 구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아주대 외상연구소장 이국종 교수처럼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지키는 착한 의사분도 더러 있기는 합니다만.
    댓글 감사하고, 항상 건강하게 희망에 찬 나날 지내시길 바랍니다. ^0^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글목록
번호 제목 작성일
34 내 일상 | 34. (수필) : 편하게 살자 *2 21-04-16
33 내 일상 | 33. (수필) : 소라게의 교훈 *2 21-04-03
32 내 일상 | 32. (소설) : 육군 이등병 *2 21-03-24
31 내 일상 | 31. (시) : 창 *2 21-03-23
30 내 일상 | 30. (수필) : 지하도 무뢰배 *2 21-03-12
29 내 일상 | 29. (수필) : 호박죽 *2 21-01-12
28 내 일상 | 28. (수필) : 보호자 *2 21-01-12
27 내 일상 | 27. (수필) : 손녀딸 *2 20-12-04
26 내 일상 | 26. (수필) : 면장과 교장 *2 20-10-12
25 내 일상 | 25. (꽁트) : 바닷가에서 - (60년 결실) *2 20-10-06
24 내 일상 | 24. (사진) : 흑백에서 컬러로 (유수와 같은 56년 세월) *2 20-10-05
23 내 일상 | 23. (수필) : 전면 주차 20-09-17
22 내 일상 | 22. (수필) : 셋째 누나 *2 20-09-09
» 내 일상 | 21. (수필) : 히포크라테스는 죽었다 *2 20-09-06
20 내 일상 | 20. (수필) : 황혼길 20-08-30
19 내 일상 | 19. (수필) : 땅속 워킹 다이어트 20-08-23
18 내 일상 | 18. (수필) : 천장 천공 20-08-23
17 내 일상 | 17. (수필) : 해마 아빠 *2 20-06-25
16 내 일상 | 16. (수필) : 애연 40년 *2 20-06-25
15 내 일상 | 15. (수필) : 노부부 *6 20-06-23

비밀번호 입력
@genre @title
> @subject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