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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세하루 님의 서재입니다.

내 일상


[내 일상] 10. (수필) : 생존이 실감되는 날 (과똑똑이의 변명)

 

 

        생존이 실감되는 날 (과똑똑이의 변명)

 

                                                                            맘세하루

 

고등학교 동기동창회 총무로부터 친구 한 명의 본인상 부고가 문자로 전송되어왔다. 그 친구는 고등학교 때 학생회장을 지낸 리더십 강한 친구였다.

서부 경남의 명문고등학교였던 우리학교는 학생회장 선거에 부회장후보가 러닝메이트로 함께 출마하고, 차점 회장후보는 대대장이 되는 제도였다.

 

학교 내에 태권도 유단자가 회원인 약간 불량한 서클이 있었는데, 학업성적이 5위권이고 태권도대회 밴텀급 우승컵도 땄던 친구 하나가, 나에게 러닝메이트로 나가자고 제안했지만 모범생이었던 나는 정중히 거절했다.

그 친구는 서울 S대에 떨어지고 재수해서 축산과에 들어갔는데, 지금은 잊혀진 인물로 고향에서 조용히 지내고 있다.

 

그때 세 후보 팀이 출마해서 차점자로 대대장을 지낸 친구는 육사에 입학하여 졸업식 때 수석을 차지하고 승승장구 했다. 그러나 하나회에 연루되어 별을 달지 못하고 결국 대령으로 예편하고 말았다. 육사에 간 다른 친구는 합참의장까지 지내고 전역했다.

나하고 한 동네에 살았던 그 대대장 친구는 2학년 때 내가 다니던 학교 앞 태권도도장에 몇 주일 나오다 그만 뒀다. 나는 편도 3키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자전거로 통학했는데, 그 친구가 도장에 나올 때는 뒤에 태우고 아침 일찍 도장에 다녀오느라 무척 힘들었다.

그 친구가 사회에 나와 직장을 찾을 무렵, 내 친구의 부인이 운영하던 제법 큰 횟집에서 내가 당시 상장회사의 전무로 있으면서 사장으로 모시던, 다른 친구와 함께 만난 적이 있다.

그것을 끝으로 그 대대장 친구는 동창회에서도 볼 수 없었고, 저명한 기업체에서 이사 직책으로 잘 지낸다는 소식만 들었다.

 

학생회장 친구는 서울 광진구 K대학교 재학시절에 총학생회장을 지내며 한창이던 유신헌법 반대 데모에도 앞장 선 줄로 알고 있다.

이 친구와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는데, 덩치는 컸지만 성격은 온순하고 조용해서 반장이던 나와 친하게 지냈다. 그때는 고교 3학년 때 학생회장이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이 친구는, 민권변호사를 지냈고 나중에 국가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동창친구가 꼬마 민주당 시절 국회의원에 출마했을 때,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 열심히 뛰었다. 물론 3등으로 낙선했지만.

그 후에도 이 친구는 K대학교 동문회 일을 보면서 정계진출을 꿈꿔 온 것으로 아는데, 어찌된 일인지 기대처럼 그렇게 출세하지는 못했다. 그러면서도 고등학교 동기동창회 모임에는 빠짐없이 나왔고 회장도 한번 맡아봤다.

고교 동기생 420명 중에 동창회 홈페이지에 등록된 회원은 200여명쯤 된다. 오륙 년 전만해도 석 달에 한번씩 열리는 서울 동창회 모임에 40명 넘게 참석했다. 그런데 점점 숫자가 줄어들어 지금은 30명도 채 안 나오는 것 같다. 물론 나도 이제는 못 나가고 있지만.

 

나는 육군에 입대해서 6개월만에 의가사 제대를 했다. 부모 65세 이상인 독자여서 방위병 근무를 해도 됐지만, 군대생활을 체험해보고 싶어서 그랬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보다 늦게 만기 제대할 선임병들의 심정을 전혀 헤아리지 못한 의기적인 욕심의 소치라 부끄럽기까지 하다.

 

어쨌거나 나는 남보다 군복무를 2년쯤 적게 한 덕분에 사회에 일찍 진출했고, 다른 친구들보다 당연히 승진도 빨라 부러움을 사며 출세 가도를 달렸다.

물론 직장생활에 충실했던 결과로 만27세에 대기업 연구소 과장이 되고, 32세에 부장이 되었다. 그때 핸드폰 개발책임자로 S전자보다 1년 앞서 국내 최초 출시를 했으니, 엔지니어로서의 자만심도 대단했다. 핸드폰 크기가 거의 벽돌만 해서 허리에 차고 다니기는 했지만.

 

그래서 그때는 내가 다른 사람보다 엄청 잘난 줄 알고 안하무인에 기고만장의 지경에 이르렀다. 겁도 없이 이사 발령 영순위인 자리를 박차고 나와 39세에 회사를 차렸고, 철저하게 망가지고 말았다.

지금은 집안에 칩거하며 글이나 쓰는 주제이면서도 옛 친구였던 재수생, 대대장, 학생회장 들의 근황을 떠올리며 나는 잘 살았고, 지금도 잘 살고 있다는 억지 자존심을 세우고 자위해본다.

 

고인이 된 학생회장 친구의 발인 며칠 뒤에 동창회 모임이 예정되어있다.

친구의 부고를 받은 날, 진정한 삶의 가치는 돈도 권력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 과똑똑이는, 나의 생존에 희열을 느끼며, 친구들에게 뭇매 맞을지도 모를 너절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 계간지 ㅁ ㅇ ㄱ ㅅ  2018년 봄호 게재 ]



댓글 4

  • 001. Personacon 고스테일

    18.05.06 15:31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002. Lv.55 맘세하루

    18.05.11 22:08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003. Lv.1 [탈퇴계정]

    18.05.22 22:28

    과똑똑이~?!!
    열심히 살고 계신 맘세하루님~ 홧팅~!!!

  • 004. Lv.55 맘세하루

    18.05.23 21:55

    네, 데조로님 오랜만에 뵙네요. 반갑습니다.
    제 잘난 체 하는 과똑똑이가 스스로 반성하는 수필을 쓰면서 넌지시 또 제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ㅎㅎ
    데조로님이 쓰시는 순수 문학소설은 언제 공표하시나요? 좋은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어디서든 항상 건승하시고,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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