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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세하루 님의 서재입니다.

내 일상


[내 일상] 6. (수필) : 매미 공원

 

    매미 공원

 

 

                                                                              맘세하루

 

할아버지 왜 차 안타고 걸어가요?”


무덥던 여름도 다 지났지만 건조하긴 해도 아직은 따사로운 초가을 햇살을 받으며 손녀가 찡그린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내년에 입학하는 손녀가 근 석 달 만에 놀러 와서 점심을 마친 한가한 시간에 다가오는 생일 선물이나 사줄까 하고 단 둘이 나섰다.


으응, 기름이 떨어져서. 가까운 곳이니까 소화도 될 겸 살살 걸어서 가자.”

~할아버지, 빨리 가요!”


사실은 둘째 놈 결혼이 내년 봄으로 잡혀서 궁리하던 중에 지금은 별반 몰고 다닐 일도 없고 하여 처분한지가 꽤 오래 되었다.

 

생물인 인간은 물을 먹고 살고, 무생물인 자동차는 기름을 먹고 움직이고.

아무리 잘난 사람도 물 없으면 죽고, 고급승용차도 기름 떨어지면 멈추고.

생물도 미생물도 아닌 기업체는... 돈 없으면 문 닫고.

돈을 먹고 사는 기업체?

아닌데, 돈을 만들어 내는 기업체라야 맞지!

 

부실한 기업은 돈을 축내며 지탱하고 건실한 기업은 돈을 만들어서 사람까지 먹여 살리고. 돈 맛을 본 인간은 밋밋한 물맛을 버리고. 밋밋한 물은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물!

순수함을 버려야만 돈의 단맛을 알 수 있는 건가?

 

원자량 1인 수소 두 개와 16인 산소 한 개로 구성된 H2O !

생명의 근원이고 우리가 사는 지구가 푸른 별로 불리는 이유인 물도 92개의 자연원소 중에 달랑 두 개의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

분자식 C2H5OH 인 술을 마시면 수소가 여섯 개나 있어 수소풍선처럼 간덩이가 부어올라 안하무인이 되고, 산소가 하나밖에 없어서 숨을 헐떡거리다가 일산화탄소 CO에 중독되어 골 때리게 된다던가?

3대 영양소인 탄수화물이 C6H12O6 이니까 밥 대신 분자식이 비슷한 술만 먹어도 활동에 필요한 칼로리는 섭취되지 않겠나? 살 빼려고 애써 운동할 필요도 없어 좋겠네.랑 치고 가재 잡고.

 

할아버지, 뭐 살 거예요?”

으응, 가서 보고. 뭐 살만 한 게 있으려나...”

 

대기업 부장으로 근무했고 얼떨결에 제조업을 차려 십 수 년 간 여려 명 먹여 살리느라고 온갖 고생하다가 그마저 본의 아니게 문을 닫고, 환갑이 훌쩍 지난 나이에 빠듯한 연금생활 하는 내 주머니 속사정을 모르는 손녀는 신바람이 나서 내 손을 잡아끌며 보챈다.

두 해 전만해도 내외가 오붓이 사는 집에 모처럼만에 올 때면, 놀다간 며칠도 되지 않아서 재롱떨던 손녀가 보고 싶다던 아내 생각에, 그러면 자주 올까 봐 포도랑 매화 그림이 있는 예쁜 돈을 주곤 했는데 이제는 그 마저 선뜻 결행할 엄두를 못 내고 망설이는 처지이다.

 

도로변 간이 공원 숲길을 타박타박 걸어가는데 철 늦은 매미가 힘겨운 울음을 운다.


매앰, 매애앰..~.”

, 매미다~! 할아버지 매미는 왜 울어요?”

으응? . 그게, 친구야 놀~자 하고 노래 부르는 거야.”

 

매미 울음은 수컷이 암컷을 부르는 세레나데이다.

나무껍질 속에 낳은 400여 개의 알은 1년 뒤 여름에 부화해서 애벌레로 살다가 이삼 개월 후 잡혀 먹히지 않은 놈들은 껍질을 벗고 완전한 유충이 되어 땅속으로 기어들어간다. 풀과 나무뿌리의 즙을 빨아먹고 열 댓 번쯤의 탈피를 하며 7년 살다가 굼벵이가 되어 천적을 피해 밤에 나무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온다.

굼벵이는 바로 그날 수 시간 만에 변태를 하여 성충이 되고 며칠 후부터 짝을 찾아 복부의 진동판으로 울어 제친다. 5분 정도 울다가 자리를 옮겨가며 7일 내지 길어야 한 달 동안 울던 수컷과 귀머거리로 겨우 30% 정도의 짝짓기에 성공한 암컷은, 번식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고 길고도 짧은 생을 마감하여 몇 개의 구성원소로 환원되어 자연 속으로 돌아갈 것이다.

 

아하, 우는 게 아니고 친구 불러요? 나는 친구 있는데.”

그래? 우리 규리는 친구가 많은가 보네! 허허.”

 

어릴 적 소나기가 지나간 여름밤 하늘에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이 장관을 이루어 친구들과 함께 부르던 푸른 하늘 은하수도 우리의 태양 같은 항성인 별들이 수천억 개 정도 모인 건데, ‘빅 뱅 이후 138억 년을 빛의 속도로 팽창한 우주 전체에는 우리 은하계 같은 다른 은하계가 수천억 개 더 있어서 이 우주의 별의 숫자는 지구에 있는 모래알 숫자와 같단다.

 

모래알 같이 많은 사람들, 하필이~면 왜 당신이었나? 싫어서도 아니고...”

 

좋은 시절에 고운사람 만나 그럭저럭 살다가 후손 남겼으면 된 거지, 100평의 땅을 더 가지면 무엇하고 10년을 더 살면 무엇 하랴?

어느 날 때가 되면 친구들과 주고받던 술잔만 물려주고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육신은 홀연히 본래의 원소로 돌아가면 그만인 것을!

 

매미가 우는 높지 않은 나무를 올려다보니 이파리 여러 군데에 우화하고 남긴 연한 갈색의 굼벵이 허물이 잔뜩 붙어있고 우는 매미도 손닿을 가지에 앞발의 발톱으로 매달려있다.

나는 문득 좋은 꾀가 떠올라서 철부지 손녀를 유인한다.


규리야 할아버지가, 매미공원 만들어 주까?”

매미공원 요? 어떻게 만들어요?”

으응. 저 우는 매미 잡아서 큰 반찬 통에 넣고, ~기 봐라. 나뭇잎에 매미껍질 많이 있제? 저것들도 꺾어서 넣자!”

우와~재밋겠다. 어서 잡아요, 할아버지!”

근데, 매미공원 만들려면 집으로 얼른 가야 되는데? 엄마 아빠랑 갈 시간 전에 만들어야 되니까.”

그래요 할아버지 얼른 잡아서 가요.

네 생일선물, 사지 않아도 되것냐?”

으응, 나는 매미공원 선물이 더 좋아요.”

살며시 손을 뻗어 콱, 매미를 잡는데 울다가 지쳤는지 쉽게 잡힌 매미는 발버둥을 치며 사력을 다해 우짖는다.

매앰, 매앰 매애앰~”

 

어쩌면 기저귀 찬 손녀가 애벌레처럼 앞으로 기어 온다는 게 자꾸만 뒤로 기어가던 그 무렵에 태어났을 지도 모를 매미다.

 

지구는 초속 447미터로 쉼 없이 돈다.


 

    2014 9월 (첫 수필)



댓글 10

  • 001. Personacon 이웃별

    16.11.26 21:01

    매미 시끄러운 게 친구야 놀~자 하는 거였군요! ㅎㅎㅎ
    오늘도 따뜻한 글 잘 읽었어요^^*

  • 002. Lv.55 맘세하루

    16.11.26 21:46

    예, 이웃별님. 그 시끄럽던 한여름의 매미울음도 겨울이 오니 벌써 그리워집니다.
    가끔씩은 이 계절을 몇번 더 겪고 본래의 원소로 환원되려나 하는 생각에 모든 계절에 대한 애잔한 아쉬움을 느끼게 됩니다.

  • 003. Personacon 二月

    16.11.27 07:14

    어쩌면 할아버지와 노는 것이 최고의 선물일지도요....^^

  • 004. Lv.55 맘세하루

    16.11.27 09:08

    그렇습니다. 한창 질문이 많은 아이들에게는 일일이 조곤조곤 하게 설명해주는 할아버지가 더 없이 좋은 선물이고 무료 가정방문 선생님이지요.ㅎㅎ

  • 005. Lv.1 [탈퇴계정]

    16.11.27 21:51

    규리의 표현력이 좋네요. ^^
    동화를 준비하시는 것도 규리를 위한 선물일까요~?!
    잘 봤습니다~

  • 006. Lv.55 맘세하루

    16.11.27 22:10

    네 데조로님 그렇습니다.
    제 동화에 주인공 이름 규리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팔불출이가 손녀 자랑 좀 하자면, 작년 1학년 때 반 대표로 독서발표회에 나가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습니다.ㅎㅎ

  • 007. Lv.1 [탈퇴계정]

    16.11.27 22:21

    할아버지를 닮았네요~^^

  • 008. Personacon 고스테일

    16.11.28 21:32

    와.. 뭔가 이유모를 감명을 크게 받았습니다.

    그리고 선물보다 자연에 대한 호기심과 순수한 기대감을 가진 규리와 맘세님의 기술에 잡혀버린 매미도 그런 규리의 매미공원의 주인공(?)이 되어 다른 매미들과는 다르게 규리의 일기장이나 기억속, 이 글에서 계속 살아서 울고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 009. Lv.55 맘세하루

    16.11.29 07:46

    네, 고스테일님. 님의 얘기 들으니 매미에게 미안했던 맘이 한결 나아지네요.ㅎㅎ
    감수성이 예민한 어릴적 자연과 마주한 온갖 경험들은 어른이 되어 각박한 사회생활 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 010. Lv.16 [탈퇴계정]

    18.06.20 15:41

    정말마음을울리는글이네요존경해요 맘세하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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